Search Results for '살다 살리다 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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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2011.01.07 nigh ni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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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2010.12.25 공짜밥

April 2011

Posted 2011. 4. 16. 23:18
잔인한 4월은 공기에 방사능을 싣고 다가왔지만,
절망의 구렁속에서 희망을 엿보게 하는것이 cruelty라고 했던가. 쉰들러스리스트에 나오는 독일군들이.

오늘 수유에서 공지훈 끝나고 집으로 오는 길,
날씨가 너무 좋다. 카지노 호텔처럼 바깥 세상과는 단절된 지하철 구역으로 내려가고 싶지 않다. 요즘 몸도 부실 해 계단 오르 내릴 기운도 없고, 버스를 타자. 151번에 올라타, 2인석 옆에 남아있는 한 자리에 앉는다. 아마도 북한산에 올라갔다 오신 아저씨가 옆에 앉아 계시는데, 아저씨가 움찔하시며, 손으로 입을 가로막고 뭐라고 말씀 하신다. "네?" "아, 제가 술을 좀 마셔서 냄새가 날꺼에요." "아, 네..." 그러시면서 창문을 더 여신다. 날씨도 이케 좋은데, 배려쟁이 아저씨까지 만나고. 픕~


얼마전 내 생일에 간 파스타집 전경이다. 빙그레식품 옆집. 현재상태로, THE favorite restaurant of mine in the entire city -- 어딘지 다른 사람들한테 안 갈쳐주고 싶다. 나하고 갈 사람한테만 알려주려공. 음식은 완전 완벽하진 않지만, i love the whole ambience of the place. and their speakers.

이 날도 날씨가 짱. 운전을 하면서 기분이 참 좋았다.
태어나서 처음, 아.. 내가 참 좋은 때 태어났구나.라는 생각을 했드랬다.

back to the bus scene. 차 창밖으로 도심 가운데 띄엄띄엄 보이는 개나리 진달래 벚꽃 목련의 향연 ㅡ 참으로 가슴 뭉클하다. 여름에 대놓구 푸르른 녹음이 아닌, 아직은 앙상한 가지 사이 사이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이 생명. 혹독한 겨울을 지내고서 마음의 가난함이 아직 남아있는 터라,
봄 꽃의 감동이 그들의 색채 만큼 뚜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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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Posted 2011. 4. 7. 23:41
2001년 9월 11일 아침,
9시가 좀 넘었었나. 10시10분 ILRIC333 수업시간에 TA한테 내는 한 장짜리 숙제가 있어서 황급히 하던 중, 급해 죽겠는데 전화가 울리는 것이다. 한국에서 걸려온 엄마 전화였고, 미국에 큰일이 났단다. 엥? TV를 켰고, ABC 저녁 뉴스를 진행하던, 나의 all-time 훼이버릿  Peter Jennings 아저씨가 아침부터 방송을... and the rest is history.

9월 11일 하루는 다 휴강이었고, 계속해서 뉴스를 보고 학교에서 공개 토크에 참여하면서, 그 당시 난 미국에 산지가 이미 꽤 오래되었던지라 미국에 가해진 이 엄청난 사건에 대해 아메리칸들과 어느 정도는 동화되어 미국의 loss를 애도 했다.

그 후, 적군이 폭격한 트윈타워에서 400 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시골 타운의 대학을 졸업하고. 여차저차해서 캘리포냐로 거처를 옮기고 나서, 2003년 즈음. 9/11 조사위원회에서 500쪽이 넘는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Costco에 갔더니 무더기로 쌓아 놓고 팔길래 나도 5불 99전에 한 권을 사긴 했다. 읽지는 않았지만. 그 조사위원회의 발표 내용 중 이런 말이 있었는데, "Across the government, there were failures of imagination, policy, capabilities, and management." 여기서, 상상(력)이 실패했다는 말. 여러 사람이 이거에 대해서 말이 많았다.

여하 이유를 막론하고, 테러리스트의 어택을 합리화 혹은 정당화 할 수 없지만.
아니, 도대체 뭔짓을 하고 어떻게 살았길래 대도시 한 복판의 고층 건물에 비행기가 폭격하여 아침에 멀쩡히 출근한 사람들이 100층 높이에서 건물 밖으로 튕겨나가야 하는 상상...을 하고 살아야 하는거야?

Spatial Concept `Waiting'  1960 by Lucio Fontana

2011년 봄.
맨하탄의 트윈빌딩이 무너진지 10여년이 흘렀다는 사실도 경악할 노릇이지만,
일본에서 얼마나 엄청난지 설명 안되는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쓰나미가 발생했고, 그 여파로 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더 많은 사람들의 일상이 처참하게 침범을 당하였는데. 그 쓰나미만큼, 아니 더 커다란파장을 불러온 것이 있는데, (아이참. 설명도 안되는 수식어 붙여대기 거추장스럽다.)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하여 거기서 방사성 물질이 나오고 그 물질이 대기를 둥둥 떠 다닌단다. 그리고,

봄비가 내렸다.

난 정말. 참 나. 때가 되어 하늘에서 봄 비가 내리는데 대기에 방사성 물질이 있으니까 오늘 이 비를 맞으면 안 된단다. 아침에 라디오 뉴스에서 가급적 큰 우산을 들고 나가라 길래, 선량한 시민.인 나는 접는 우산보다 크고 골프 우산보다 조금 작은 우산을 들고 비좁은 인도를 걸어 간다. 우산을 들고 옆에 지나가고 오는 사람들과 안 부딪히려고 요리조리 피하면서, 방사성 물질을 어딘가에 품고 있을 빗 방울을 피해보겠다는 것이 손 바닥으로 하늘 가린다고 뻘짓하는 거랑 무엇이 다른가, 하는 생각이 든다.

테러리스트 어택이 있었을 때 미국 정치인들은 우리가 테러범들의 공격 때문에 일상이 위축되는 것은 지는 거다. 그냥 에브리데이 살던데로 살아라. 특히, 돈을 계속 써라. 경제가 침체되지 않도록. 그래야 쟤네들한테 우리가 건재하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다. 이랬는데.

봄비님한테 맞장뜰것도 아니고.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잠깐 피한다고 해서 얼마나 내가 건재할 수 있을까. 아.... 어이 없다 증말.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피해야 하는 내 처지가 말이야... 이게 전쟁통을 겪고 and/or 밥을 쫄쫄 굶는게 다반사인 삶을 사는 것에 비했을 때, 그랬을 때 어떤게 더 다행인 노릇인지 여기에 답이 있기는 한건지 몹시 깝깝하다.

점심 때 니시키에서 우동을 기다리며. 생면 면발이 특수하여 한참이 걸려도 꾹 참아야 하는 이 집에서, 기다리는 동안 창밖을 내다 보는데 가랑비에 젖은 이태원 길이 참으로 한갓지다. 그런데말야,

쓰나미로 죽은 사람들, 가족, 피해자들 한테는 당연히 골백번 애석한 일이지만, 쓰나미가 밀려오지 않아 원전을 돌리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에 어떠한 태클도 가해지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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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날

Posted 2011. 4. 6.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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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11

Posted 2011. 3. 27. 23:33



Dear March,

I've been meaning to do a post for you for some time now - 25 days to be exact. It was going to be about, fittingly enough, the Spring time. I've been looking and looking and waiting for the right time to click and type away a few notes and add some springy songs to your page. And yet, I realized that you were not fully here. I'm not sure if you are now.

You can be a bit flaky, like we all are at times. But I hope you will come back to us being you, the same and ol' you we know of. At any rate, I remain,

Truly yours,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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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fine afternoon

Posted 2011. 3. 18. 13:11


날이 너므 좋아서 뒤숭숭한 오후다.
세 사람이 맛있는 우동 점심을 먹고서. 각자 볼일이 있어 흩어졌다.

나는
남산에나 오를까,
리움에 함 가볼까 하다가.
이태원 언덕길을 올라 거미 앞에 멈춘다.
리움 앞 친절히 놓인 벤치에 앉아 kings of convenience를 들으며 햇살아래 외로움울 호소한다.

긍데 너무 눈부셔서, 빛을 눈으로 해를. 볼 수가 없다. 내 몸은 그늘로 피하고,
내 눈은 그늘아래서, 그늘 밖 햇살을 바라본다. 칙칙하고 꾸리한 나날 후에 맞이하는 해이지만,
함부로 쳐다볼 수가 없다.

햇님과의 대면에 몰입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처럼 점심시간에 짬내서 (삼삼오오) 나온 사람들도 있고,
중국인 관광객들도. 있다.
우리 모두의 공동점은ㅡ 카메라 (혹은 아이폰)을 통해서 세상을 보느라 분주하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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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질

Posted 2011. 3. 14. 00:05
모처럼, 알람을 맞춰놓지 않고 자도 되는 금요일 밤이었다.
느즈막히 일어나 커피 내려마시고,
빈둥대다가.
어서 해치워야(?) 할 버터가 있어서 무엇을 만들까 하다가,
내 안에 무언가 해소되고 싶어하는 게 있어서.

칼질을 좀 해보자 하여, 사과를 꺼내 자르기 시작했다.

칼질의 효과에 대해서는 여기에서도 심취되어 얘기한 적이 있지.

사과를 통통 자르면서, 머 당연히 계속 입으로도 쏙쏙ㅡ
어머, 간만에 너무 맛있는 사과다. 사실 오븐에 넣어 익혀버리기에 아까울정도로.
그런데 뭐든지 재료가 훌륭해야 하기에, 맛있는 사과로 만든 케키는 그 맛도 으뜸일듯.
단지... 버터가 최상의 상태가 아니었던지라.
사과야ㅡ 미안해. -_+


뿌듯하게 한 사발(?), 양재기 (?) 가득 사과를 썰어 놓고서
프렌치애플케이크를 두 판 만들었다. 결과물 모습은 여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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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1)

Posted 2011. 3. 11. 00:42
쉽고도 만족스러운 일이 있을까?
:: 아니 ㅡㅡ

어떠한 이유에서건
한 가지 일, 특히 한군데 직장에서 오래 있는 사람들을 보면 대단해보인다.
난 대학에 들어간 이래 ㅡ 학기 중, 휴학 중, 졸업 이후 백수생활도 꽤 해보고 여러군데 옮겨다니게 되어  지금까지 진득하니 한 분야를 파보진 못했지만, 반면 많은 사람들이 참으로 다양한 현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지금은 여차여차해서 영상에 관련된 일을 하면서, 또 다른 세상을 들여다 보며 신기해하고 있는 중!

영상제작에서
촬영 - 잉글리쉬로 shoot! - 에 들어가기전에는,
벼라별일이 다 일어나고 해치워야 할 것들이 굵직한 것 부터 시작해서 잡다구리한 많은게 있더라. 그런 수고 끝(?)에 지난 며칠간 촬영장에 따라 당기면서 또 굉장히 드라마틱한, 일들을 많이 겪으면서. 일부러 드라마는 왜 찍나 -_+ 이런 생각 잠시. 픕~


촬영현장에서는 각종 카메라와 조명을 설치하는데 건장한, 주로 남성들이 바삐 움직인다. 모든 직업에 달갑지 않은 면모들이 있겠지만, 추운 날씨에 무거운거 날라 움직이고, 또 장시간 대기해야 하는 환경에서, 감독, 촬영감독, 프로듀서 등 몇 명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이도 별로 없는 상황에서 묵묵히 일하는 그들이 있다.

옆 사진 앞에 얌전히 앉아있는 아줌마는 이번 촬영의 아트디렉터였다. 우리 한국사람들의 추측으로 50은 거뜬이 넘겼을 연령인데 눈밭에 엎드러져 카메라를 들고 대상물과 씨름하기도 하고, 배우의 옷가지와 헤어를 챙기느라 잠을 설치기도 하고, 그녀의 열정에 우리 모두 감탄했다.

한국에서도 나이든 여성이 대빵이 (if at all)  아니구서도 이런 활발한 활동을 했으면 좋겠다.... 우와ㅡ 궁시렁.








호텔씬 ㅡ
방의 셋업은 끝나고 감독과 DoP 등 몇몇만 빼고 또 죽치며 기다린다. 잠시 한숨을 돌려볼까 하지만, 전화는 끊임없이 울리고, 다음 씬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분주히 예측한다.













레일이 깔리고,
땅바닥 수평에 맞추어 나무도 괴고,
조명나오고, 배우 머리와 의상 소품 하나하나 ㅡ 한명의 인간이 태어나기에 a lot of things have to go right, they say. 몇 초 짜리 씬 하나에도 너무나 많은 수고가 들어간다.





참으로 탈 많았던 4일간의 촬영.
recce와 pre-production을 포함해서 일주일동안 평균 하루에 4시간 가량의 수면으로 버티었다. 촬영 현장에서 내게 주어진 구체적인 롤이 있었던게 아닌지라, 난 추우면 살짝 뜨뜻한 곳으로 피하기도 하고, 혼자 몰래 커피도 마시고, 그랬다. =_=

먹고사느라 일.을 하는 것 처럼 자신에게 최면을 건다 사람들은.
마치 밥이 해결되면 일을 안 할 것 처럼. 그러나 누구나 인정할 것은, 한 개인과 노동이 맺는 인연을 보면 단지 돈 때문만이라고는 하기 어렵다. 물론물론당근, 그저 돈이 필요해서 절박하게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좋아서 하든 싫어서 하든, 한 사람의 몸과 손과 머리, 그리고 럭키한 사람들의 경우 가슴까지 동원해서 하는 모든 일은 그 사람의 삶에 또 그의 정체성에 많은 상관관계를 초래하고야 만다.

얼굴 붉히며 으르렁 대던 순간도 많았지만,
이렇게 웃으며 촬영을 끝냈다.
너무나 추웠던 명동의 한 복판에서ㅡ

쉽고도 만족스러운 일이 없는 게 모든 일이 어려워서일까?
인간이란것이 쉬이 얻은 것에서 또 만족을 누리지 못하는 요상한 존재가 아닌가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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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2011

Posted 2011. 2. 26. 22:56


시계도 치려거든 칠 것이다 하는 마음보로는
한 시간 만에 세번을 치고 삼 분이 남은 후에 육심삼 분 만에 쳐도
너 할대로 내버려두어버리는 마음을 먹어버리는 관대한 세월은
그에게 이때에 시작된다.
이상 <지도의 암실> 中

새로운 달이 왔다가 끝자락에 이르렀을 이 무렵까지
2월에 소홀하게
격동적으로 보냈다. 오히려 기나긴 1월의 연장선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1월 동안 기온이 0도를 넘은게 딸랑 4시간이라던데,
오늘 슬프도록 푸르른 하늘을 올려다보니,
추웠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쩜.

20대는 10년이 꽉 차게 느껴졌던 것 같은데,
서른을 넘긴 후 몇 년은 1년도 안된 것 같다.
어서 마흔이 되어버리고 싶다는
생각.

내 인생을 싫어해서 그러는거는 아니고.
픕ㅡ

문득문득,
내 삶을 차지하는 여러 사람들의 존재가
내 마음을 훅 뭉클하게 한다.
지금 이걸 읽고서 휘릭~ 가버리는 그대를 포함해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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食後思

Posted 2011. 2. 25. 00:25
무엇을 먹을까 하다가 낙찰된 곳은 마이 차이나타이였다. 이태원 맛집들이 몰려있는 골목의 끝자락, 배고픔에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갔더니 이 집 옆으로 두 개의 식당이 더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불가리아 식당!! 한 두해전에 마이차이타이 왔을 때 슬쩍 보고서 다음에 여기 와야지 했는데 그동안 주욱 까먹고 살았네. 배가 고픔에도 신선한 초이스가 반가워 모험심을 발동하여 이 집으로 들어갔다. 이태원이라지만 레스토랑에는 한국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었고, 한국의 여느 식당에 비해 낯선 공간이었다.


내가 불가리아에 대해서 아는건, 어렸을 때 광고에서 쇠뇌되도록 보았던 불가리스 + 요구르트 조합, 그리고 몇 해전에 오빠가 불가리아로 공연갔다가 사다준 이. 쌩뚱맞은 선물:







얼추, 비슷한 삘이 느껴진다고 우길 수 있을 것 같다.






불가리아 음식에 대해서 아는게 요구르트 밖에 없어서, 메뉴를 펼치기 전에 내가 한 짓이란ㅡㅡ 위키피디아로 "bulgarian cuisine"을 검색해 봄. 동남부 유럽 지역으로서 슬라브에  발칸에 어쩌구 저쩌구, 매 끼니에 샐러를 곁들이고 까지 읽다가, 모하는 짓인가 싶어 메뉴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카뜩 (katak)이라는거ㅡ물기를 짜낸 건조한 플레인 요거트, 화이트 치즈, 구운피망과 호박으로 만든 불가리아 전통 에피타이저

Stuffed Calamari ㅡ 해산물 리조또가 가득 채워진 오징어 위에 파마산 치즈를 얹은

카뜩은, 메뉴에 적힌 화이트치즈라는 것이 어떤 흰치즈를 말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일드한 goat cheese 맛이 났다. 거기에 야채와 너츠를 섞어서 씹는 맛인데 그냥 먹기에 좀 찐해서 빵에다가 발라 먹었다. 그리고, stuffed calamari는 대략, 오징어순대라고 할 수 있겠다. 안에 리조또라고 들어 있던 것은 토마토해산물 볶음밥 맛. 오징어순대는 익힌 후 잘라서 서빙하면 다 터지고 흐르고 난리나는데, 그냥 저렇게 통째로 내놓고 먹는 사람보고 알아서 먹으라고 하는 게 좋겠다고. 배움. 흡.



음식을 두고 먹기 전에 사진을 찍으려면, 왠지 움찔하다. 그러나, 새로운 퀴진을 시도한다는게 참 뿌듯하고 신나는 일이라 기록을 해야 했다. 픕.

사실 이날 너무 배고프고 귀찮아서 마음 한 켠에는 익숙하지 않은 음식에 대한 주저함이 있었다. 몸도 마음도 피곤해서 comfort food를 먹고 싶었던거다. 피곤할 때 새로운 것은 스트레스를 더 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밥을 맛나게 먹고 나니 (곁들여 나온 후진 식빵이 좀 에러였으나 -_-) 뿌듯했다. 불가리아 사람, 심지어 동유럽 사람을 만나면 할 말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ㅡ 오, 나 불가리아 음식 먹어봤어. 맛있더라; 움, 그래도 현지 음식에 비하면 좀 짝퉁이지 한국에서 먹는 거는. 언제 불가리아 가서 꼭 먹어봐. ㅡ 대략 이런 대화를 주고 받지 않을까. (제 아무리 맨하탄 32번가에서 파는 된장찌게가 맛있다 한들,,, 한국에서 먹어보라고 말할테니까 나도) 밥 한끼 먹고나서, 갑자기 불가리아에 대해서 아주 많은 것을 알게된 듯 하다. 호호. 이태원 한 구석쟁이에 외롭게 자리잡은 Zelen이라는 이 식당처럼, 불가리아라는 나라는 나와 많은 한국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아주 작은 구석을 차지하는 존재인게 사실이니.

리비아라는 나라도 대략 그럴것이고. 저기 아프리카 어디쯤 있을 그 나라에서 독재정권에 항의하는 시위가 일어 나기 전까지 내가 리비아에 대해서 관심 둘 일이 무엇이 있었겠어. 연일 북아프리카의 민란 소식이 들려오더니, 양 옆집으로 있는 튀니지아와 이집트 민중의 봉기에 대한 제압이 너무 미약했다고 생각했던지, 카다피는 생존을 걸고 항거하는 시민을 무력진압했다. 마치, 광주의 어느날 처럼 말이다.

이런 저런 얘기를 줏어 들으면서 튀니지아고, 이집트고, 리비아.고간에, 이들이 민주주의적인 발전을 이룩하여 더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 나가겠지, 이들도 대한민국이 민초들의 핏값으로 이루어온 데모크라시를 내세울 수 있는 때가 오겠지 생각했지만. 땅덩이는 독일, 프랑스, 이태리, 스페인 4개국을 합쳐놓은 크기에 600만명이 살고 있는 리비아에서 가난과 실업으로 허덕이는 그들이 광주를 겪고 온갖 험난한 꼴을 다 겪은 한국이라는 나라가 밟아 온 길을 고스란히 따라오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다. 그들에게는 정말 코딱지 만한 크기의 이 나라가 세계 경제 십 몇위 하면서 살고있는 어이 없는 모습을 피해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런데 리비아는 인구가 워낙에 적어서 지식층, 그러니까 새로운 정부를 꾸려갈 수 있는 역량이 되는 인간들이 모두 카다피와 이러쿵 저러쿵 연관이 되어 왔기 때문에 새로운 정부라는 것 자체가 성립되기 어렵다고 한다. 그리고, 내 정서로는 이해하기 힘든 강력한 부족문화가 있댄다. 그들간의 싸움이 일어나기 쉽상이라는.

기름이 저렇게 펑펑 쏟아지는 자연 환경덕에 우리나라에서 뼈빠지게 반도체 만들고 자동차 만들어서 팔 때 그냥 기름 퍼다가 팔아서 큰 수익을 내는 나라이지만, 결국 그눔의 기름이라는 것은 민생을 물로 보고 있는 것이다. 펑펑 샘솟는 기름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는 많은 사람들은 소수 권력층의 희생양으로 철저히 소모되고 희생되어 밥 한끼 해결하기에 허우적 거린다. 블러디 다이아몬드 처럼.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싱싱한 명태를 잡아다가 공들여 황태로 만들어서 남들에게만 갖다주고, 제대로 삭히고 익혀서 만든 된장은 내가 맛도 못하고 팔아야만 한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오늘 Black Swan이라는 발레를 소재로 삼은 영화를 보면서 내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하다가 링컨센터 앞에서 사진 찍은 몇 년전의 그날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나와, 떡볶이 먹고 소화가 잘 안된 이 밤에 pat metheny음악을 틀어놓고 맥북앞에서 키보드를 딸그락 대고 있는 이 순간에, 저기 아프리카ㅡ 중남부 아프리카 허벌판에서 굶고 있다는 얘기를 늘상 들었던 사람들 보다, 무언가 내 땅이 겪은 그 것을 겪는 이들에게 조금 더 공감이 가면서. 이들은 무얼 먹고 사나 궁금해졌다. 우리의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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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가 끝내지며...

Posted 2011. 2. 7. 02:35


휴일을 워크데이처럼, 평일을 노는 날 처럼, 일상을 늘 특별하게 보내고. 특수한 상황에 호들갑 떨지 않고 그냥 그런가부다... 하기. 꼭 어떠한 경지에 도달한 상태가 아니더라도 말야.

이번 연휴는 길었다. 그 시간동안 내 몸과 마음은 연실 엇박자를 내었다. 그러니까, 나의 기대치가 연거푸 어긋나버린것이다. 일요일 저녁이 다 되어서야 나는 내 마음을 턱ㅡ 놓아버렸고, 그래서 내일 월요일이지만 하나도 아쉽지 않다. 움... 더 이상 기대를 할 여지가 없어서 아쉬움도 없는것일까? 기대,라는 것이 가만히 평행선이 포개지듯 맞아 떨어진다면 그게 그거였는지도 모를 것 같다. 어긋나버려야만 하는 걸.

텅빈거리에서 불쑥 맞이한 빨간 불에 반사하는 내 다리에 멈춘 차 안에서,
브레이크라는 것이 쵝오의 매케니컬하고 인위적인 사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절대적으로 물리적인 성질을 지녔기에 그 멈춤이 가능한 것일거다. 것이다. 그렇다.

따라서 물리적이지 않은 것에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는다고 했을 때, 여기서 생 떼를 쓴다면,
안되겠지?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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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reciation of poetry

Posted 2011. 2. 7. 02:13
Every day I receive one poem delivered to my e-mail inbox from The Writer's Almanac. On most days, I delete these messages unread since poems baffle me to frustration, but I still bear with the Writer's Almanac e-mails because they come with juicy, extraordinary stories of some used-to-be ordinary people. Today, however, while killing some time between meetings, I read this poem and reread it and I liked it.

Modern Declaration

by Edna St. Vincent Millay

I, having loved ever since I was a child a few things, never
        having wavered
In these affections; never through shyness in the houses of the
        rich or in the presence of clergymen having denied these
        loves;
Never when worked upon by cynics like chiropractors having
        grunted or clicked a vertebra to the discredit of these
        loves;
Never when anxious to land a job having diminished them by
        a conniving smile; or when befuddled by drink
Jeered at them through heartache or lazily fondled the fingers
        of their alert enemies; declare

That I shall love you always.
No matter what party is in power;
No matter what temporarily expedient combination of allied
        interest wins the war;
Shall love you always.

"Modern Declaration" by Edna St. Vincent Millay, from Selected Poems. © HarperPerennial. Reprinted with permission.
Love how this piece has its form and content so in sync.

always라는 말이 좀 거슬리기는 하는데, 사실 사랑을 할 때는 사랑이 "마치" 영원한 듯이 죽도록 해야하지 않을까. 사랑할 때 목숨을 걸어 그 한 사람으로 듬뿍해져버리는. just like what happens to me when i fall in love.

그래서 그 사랑이 어떻게 해서든 드디어 끝이 나고 나면, 아무런 미련이 남지 않는다.
건조한 기억외에는 별로.
난, 다 그런줄 알았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그렇지는 않더라궁.
그러나 나라고 해서, 난 꼭 이래ㅡ 주구장창 일관성을 유지한다고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하나마나한 얘기?!><>?<

p.s. This post should be titled "appreciation of a poem," not so much "poetry" but what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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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블릭 화장실

Posted 2011. 1. 27. 22:14

내가 몇 년 째 드나들고 있는 치과 건물의 화장실,에서 스톨에 들어가 문을 닫고 보니,
눈앞에 떡. 이런게.


화장실 스톨 한 칸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저렇게 다양한가?
시계 방향으로 --
1번은 - what's normally expected
2 - 드라마에서 토하는 장면이 나오면, 꼭 저렇게 변기를 붙잡고 해야 하나 늘 궁금했다. 흐 -_-
3 - 대학 갓 졸업하고 다녔던 첫 직장에서, 그 때 2002 월드컵 때. 매일 밤 온 나라 모든 경기를 다 보던 미국남자애가 월드컵 기간동안 출근해서 화장실에서 잔다...고 했던게 떠올른다. 이름은 joshua. 걔 너무 잘 생겨서 볼 때 마다 너무 설레었던!!!  *_*
4. 도통, 이해가 안되는 걸. 무슨 행위인지.
5. 이거, 정말 아니다. 그런데, 궁색한 환경에서 이 만큼 편리한 컵라면 국물 처치방법도 없기는 해.
6. 가끔 여자들이 저렇게 볼일 본다는 데. 안 미끄러운가? 퐁당 (혹은, 풍덩) 빠지면 우째?
진.짜. 궁금데쓰.

몇 년전 스위스에서 coop (코앞 or 쿱, however you want to call it)에 장보러 갔다가 들렀던 화장실에서 발견 -  me and my friends thought this was so European. (excuse the wrong use of flash on the photo. i know better not to now)


남자들도 조준만 잘 한다면,
자신들의 본성을 유지한 채 쉬.할 수 있을텐데.
조준이 안 되어도, 앉아서 쉬 하는건 너무 본성저항적인거 아닌가?

그리고, 대학교 4학년 무렵 포워드이메일이 한참 유행으로 돌던 시절 받았던 메일 한 통에서, 남자들이 하는 컴플레인트 중에:
Men are supposed to lift the toilet seat when they pee and put it back down;
but they don't bitch about it when women don't leave it lifted up when they (women) are done.
여자들이 토일레뜨 시트를 올리고 내리는거 갖구서 남자들 한테 머라 하는거,
나도 좀 미안하다고 생각했었다. 여자들은 내려놓는 것을 당연시 하면서. 그치만, 흘리고 모르는 채 하는 것은, 용서안되지.

근데, 요즘에는 여자화장실에서도 공용화장실에서의 현상이 종종 일어나는지라. i won't go into too much detail here. 어쨌든 나는, 제일 중요한건, 화장실에 휴지가 있는 것과, 거품이 제대로 나는 비누다. cuz i'm germophobic and obsessive and compulsive about being free of invisible contamination. (strangely and unfortunately enough, i put up with physical messes and dusts better.)

at any rate, 오늘의 교훈 (?):
화장실을 깨끗이 사용하자.

싫음 말구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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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어디에서 와서 내 뱃속으로

Posted 2011. 1. 23. 00:46
문화가 인간의 욕구와 사회의 충돌을 중재하기 위해 고안한 모든 관습과 규칙은 성적 존재로서보다는 섭식자로서의 인간에게 더 큰 만족을 주었다. 프로이트와 또 다른 학자들은 많은 사람들의 성적 신경증에 대해 과도하게 억압적인 문화를 비판했지만, 우리의 신경증적 식습관을 두고 문화를 그 주요 범인으로 몰아세울 수는 없을 것이다. 이와 반대로 우리의 식습관은 음식과 우리의 관계를 제어하는 문화적 힘이 약해질수록 더 큰 고통의 수렁에 빠지는 것 같다.

오늘날, 특히 미국에서 우리가 섭식자로서 처해 있는 상황은 바로 이런것이다. 미국에는 안정된 전통 음식이 한 번도 있어본 적이 없다. 이주민들은 저마다 고유의 전통 음식을 미국의 식탁에 옮겨놓았다. 하지만 그 가운데 지속적으로 국민적 음식이 될 만큼 영향력 있는 음식은 없었다.

...........

세대를 거듭하여 대략 똑같은 음식을 먹고 있는 문화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 문화는 음식 선택에 있어 맛이나 전통 같은 오래된 기준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가 놀라는 사실은 일부  문화는 영양학이나 마케팅보다 습관과 즐거움이라는 측면에서 요리법을 결정하지만 우리보다 더 건강하다는 것이다.

잡식동물의 딜레마 (The Omnivore's Dilemma by Michael Pollan) 중
여울에서 세미나 책으로 내가 추천해 놓구선 난 한 번 읽었다고 진도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책. 일단 밀린 부분 제치고 내일꺼만 읽었다. 짧아서 다행. 흡.

마이클 폴란을 21세기에 가장 큰 업적을 이룬 사람 중에 하나로 꼽는다. at least in my world.

폴란아저씨가 대놓구 지적하기를 미국의 식생활에서 포도식이니 백번씩 씹어먹기니 (19세기 말), 그리고 무탄수화물 다이어트와 고기만 먹는 앳킨스 다이어트 (20세기 말) 등 유행이 들쑥날쑥 하는 것이 미국에 안정된 전통 음식이 없어서라고.

사실 이민자들이 모여있는 사회이기 때문에 맘만 먹으면 참으로 다양하고 풍부한 음식을 즐길 수도 있는 곳이 미국인데, 그눔이 패스트푸드 (a.k.a. multi-billion dollar industrialized food) 때문에 농사는 산업화 되고 음식은 가공되고 건강은 악화되는 총체적인 난국이 생긴거 아닌가 싶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자랑스러운" 한국 음식이 있는데 한국 사람들이 음식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고유의 cuisine이 살아남은게 난, 신기할 따름이고. 0_0

특히, 각박한 도시 생활을 하는 Seoulites - 밥을 너무 소홀히 생각한다. 하루 일과중에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 하는 행위. 너무나 빨리 먹어 치워 버리고, 음식의 정체에 대해서 고민을 거의 하지 않는다. 폴란이 이런 얘기도 했다. 현대인들은 휴대전화나 컴퓨터를 살 때는 이것저것 꼬치꼬치 따져보면서 내 몸속으로 들어가는 음식의 출처에 대해서는 너무 생각을 안 한다고.

그니까, 비빔밥 한 그릇 먹을 때, 쌀은 몇 시간이나 뱅기, 아니 며칠이나 배를 타고 여기 왔을까, 콩나물은 몬산토가 어처구니 없는 권리를 -_- 갖고 있는 GMO 콩으로 재배되었을 확률이 90%이고, 고사리는 아마도 중국에서, 호박이랑 당근은 어디서 왔을까나, 계란 후라이는 엄청 스트레스 많이 받은 닭 (달걀을 생산하는 닭은, 미국의 경우, 대략 A4 용지 두 장의 크기만한 공간에서 열 두마리가 공존한단다)이 낳은 달걀에서 부쳐진.  머 이런 고민.

피곤하다고. 됐고요, 하고 넘어가기에는,
too much is at st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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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know what to do with myself

Posted 2011. 1. 21. 00:34

1.
언제부터인가 무언가를 간절히 기다릴 때
그 기다림의 끝에 올 기쁨에 대한 희망을 품는 동시에,  more often than not 내가 기다리는 것이 일어나지 않을 상황을 상상하며 내 마음을 worst scenario에 대비시키곤 한다. 간혹 내 모습이 안타깝기도 한데 막상, 내 희망이 처참히 짓 밟히는 때는 그런 대비를 했던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단 극심한 실망이 깊은 자국을 남긴 후지만 말이다.

모 이렇게 마음을 사리고 사는지 모르겠네.

2.
"니가 아침에 환하게 웃으면서 인사하면 아주 기분이 좋다."  출근하실 때 내 자리를 지나쳐 가시는 어떤 분이 하루는 회식자리에서 말씀하셨다. 내가 웃는 모습이 지붕위에 핀 커다란 박꽃; 같다고.

어제는 팀 회의를 하다가 팀장님이랑 내 보스가 내 계약일자가 언제 끝나는지 필요하면 연장을 제 때 잘해라 너는 있고 싶니 플젝트 끝날 때 까지는 있어야 하지 않겠니 사정은 되는거니 이런 얘기를 하는데, 다른 한 분이, 아니, 나경씨 의리가 있지. 내가 나경씨 웃는거 보고 매일 출근하는데 계속 있어야지 - 이런 쎈-- 발언을 하셨다. 머 암튼, 매일 스트레스에 파닥파닥 하시는 이 분이 이렇게 말하니 고마웠다.

사실은, 나는, 별거 아닌일에 실실 웃고, 조금만 웃기면 웃음보가 터져서 컨트롤이 안되서 자주 웃게된다. 웃는 낯에 침뱉으랴, 다 좋을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도 않다. 젤 괴로울 때는 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서 재밌는 얘기가 한 판 돌아 다들 한 바탕 웃고 났는데 나 혼자 여전히 낄낄 웃음을 멈출 수 없을 때다. 때로는 어디서 웃긴 얘기를 줏어듣고 와 다른데 가서, "내가 재밌는 얘기 해 줄게에." 의욕있게 이야기를 풀고는, 펀치라인을 얘기하고 난 후....가 아닌 그 직전에 나 혼자 웃음보를 터뜨려 말 문을 못 잇는다. 그럴 때면 멀뚱멀뚱 당황해 하는 상대방의 표정이 너무 웃겨서  나, 혼.자.만. 또 웃는다.

한 마디로 미친게지. *sigh*

여튼, 여러 사람들한테 웃는 얼굴에 대해 칭찬을 들었는데,
그래도, 꽤 많은 사람들이 하는 그 얘기를 듣다가,
평생 처음 칭찬을 들어본 애 처럼 얼굴에 박꽃을 피게 만드는 사람도 간혹 있다.

3.
지난 연말에 회사에서 최연소 팀장으로 승진을 하신 울 팀장님은, 새해가 되면서 그 감투자리가 지펴대는 스트레스를 엄청 많이 받고 계신듯 하다. (내가 이분에 대해서 크게 존경하는점은, 자신의 스트레스를 애먼 주변사람들한테 분사하지 않으신다는 것.) 그러면서, 요즘, 프로젝트 말고 간부로서 처리해야 하는 여러 가지 잡다구레한 admin work를 내게 많이 시킨신다. 오늘 아침에도 이메일 한 통을 보내셔, 이거 저거 해서 저리 보내라 라는 짧은 이메일 끝에 -- 나경 없었으면 어쩔뻔 했니.
씨익~ *_*

우리 팀 6명은 서로 엇갈려 출장/외근을 많이 나가기 때문에 서로 다 같이 모일일이 참으로 드물다. 긍데 오늘, 저녁 약속이 있으셨던 팀장님을 제외하고 다섯 명이 모이게 되어 저녁을 같이 먹었다. 삼겹살 5인분과 쏘주 두 병을 시켜 잔을 기울이는데, 보스가 말 하기를,
나경을 만나게 되어 행운이라고 생각해.
 -- 내가 이 말에 감개무량할 만큼 내 보스한테 애정을 두고 있지는 않으나 - 미운정은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지만, 어쨌든 고마웠다. 그도 나 때문에 그 성정을 다스려야 할 때가 종종 있었을 텐데 말이야.

+_+_+_+_+_+_+_+_+_+_+_+_+_+_+_+_+_+_+

오늘 기분이 몹시 울적하여 근래에 있었던 유쾌한 일을 좀 생각 해 보았다. 훕훕.
막 어떤 정말 훌륭한 노랫말이 떠오르네 -- 내가 웃는게 웃는게 아냐. =_+

사람들 고기먹는데 나는 계속 알타리무 피클이랑 콩나물무침이랑 호박으깸이랑 김치랑 구운 마늘만 잔뜩 먹었더니 입이 짜다. 창가에 내놓은 카스나 마시고 자야지. 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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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에 대한 생각

Posted 2011. 1. 12. 23:39
하나.

통상적인 것은 아니라지만, 내가 처음 구경해 본 배우 오디션은 남산에 우뚝 솟은 삐까번쩍한 호텔에서 진행되었다. 호텔 라운지에서 사전 회의를 하는 동안 완전 overpriced 클럽샌드위치를 먹고서 2층에 예약된 오디션 장으로 올라갔다. 문을 들어서니 커다란 조명 두 개가 오른쪽 왼쪽 하나씩, 문쪽을 향해 서있고 그 뒤로 마호가니 칼라의 테이블이 전체적으로 중후한 서재 분위기를 연출하려는 그 방과 어우러지게 놓여 있었다. (대략, 아라비카 인스턴트 커피 광고에 나오는 방 분위기.) 테이블 위에는 오디션 심사자들 이름표 딱지 아홉개가 각 소속지별로 주루륵 놓여 있었다. 웃기지만, i was about to take one of the seats at the table.

테이블 끝을 돌아 내 자리를 찾아 않아서 캐스팅 회사에서 준비한 오디션 후보들의 프로필 사진을 훑어 보았다. 내가 만져본 A4용지 중에서 젤 빠빳한 질의 종이에 칼라로 인쇄된 그녀들의 사진은 매끈했다. 시간이 되어 진행자의 안내에 따라 후보들이 한 명 씩 들어왔는데, 내가 몇 십분 뿐이 보지 못한 시크릿가든 1회에서 나왔던 여성도 있었고, 씨에프에서 본 듯한 사람도 한 명 있었고,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톡톡 튀는 발람함이 마냥 귀엽기만 했던 1인 등. 모두들 짧디 짧은 치마를 입고 와서, 감독의 요청에 따라 아무런 도구 없이 즉흥연기를 펼쳤다. 그 중 어느 누구도 얼굴 사이즈가 예사롭지 않았다.

나는 배우,라는 사람들이 늘 위대하다고 생각은 하는데, 어제 만난 아가씨들은 배우라고 하기에는 좀 뭣한,  스물 두 세살 가량의 그냥 이쁜 어린 여자애들이었다. 그런 아이들이 밖에서 줄 서 있다가 자기 차례가 되면 들어와 조명발 아래 웃음을 쪼개며 갑작스레 펼치는 연기를 보고 있자니, 나는 업계에 낯설은 사람으로서 너무나 뻘쭘스럽고 어색했다 몹시. 열여덟 눈동자의 응시 앞으로 놓인 커다란 테이블은 그녀들이 잘 보이고 싶어하는 만큼 무언의 중압감을 실어 건내는 듯 했고. 그녀들의 갸냘픈 몸둥이가 테이블에 깔릴것만도 같았다.

이런 감정은 무엇인가? 측은인가? 왜 난 측은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이들은 화려한 화장과 아주 짧은 치마와 허거걱 높은 구두를 신고서 수 차례 이런 오디션이라는 장소에 서보았을텐데 말이다. 자발적으로 약자의 입장에 자신을 드러내어놓으면서. 썸데이 강자가 되고픈 욕망에서 이지 않을까.

둘.

회사에서 저 높은 자리를 차지 하고 있는 한 여성이, 갑자기 우리 팀 파트너사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비서실 및 그 아래 임원들에 의하자면. 그것이 그녀가 우리 프로젝트에 지대한 관심이 생겨서인지, 아니면 어쩌다가 아랫 사람들이 그 회사 이름을 언급하고 설레발쳐서 인지 모르겠으나, 지난 주 어느날, 빠듯한 일정으로 진행되는 업무에 신경 쓸 일이 많은 상황에서, 그녀가 해외파트너를 만나셔야 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에 따라 비서실에서 내게 할당한 업무는 계약 다 하고 실무 회의 다 하고 이미 공동작업을 진행 중에 있는 업체에 대한 소개글과 그 쪽의 인력과 현황과 그녀가 그쪽 대표를 만났을 때 물어보면 좋음직한 말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일단 이 미팅이 발생하는 말도 안되는 타이밍의 어이없는 시점은 차치하고고고, 그 분이 “하실 말씀”을 정리하라니?
“(최대한 무관심성을 유지하며, 오바스럽게 공손히)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부사장님이 하실 말씀을 정리하라니요?”
“아, (완전 진지 심각포스로) 우리 회사 입장에서 부사장님이 하셨으면 좋을 말을 준비하시면 되요.”
“(최대한 무관심성을 유지하며, 오바스럽게 공손히) 아, 그럼 부사장님이 특별히 하시고 싶은 말씀은 없으신가요?”
“아니오 없어요.”
“(최대한 무관심성을 유지하며, 오바스럽게 공손히) 네에.”
내가 전화를 끊자, 옆에서 내가 통화하는 걸 듣고 있던 보스가,
"너 왜 그렇게 친절하게 말하냐? 쳇, 권력자 앞이라고 약한척 하는거야? 비굴한거야?"
... 어안이 여전히 벙벙. "아니, 그녀가 너무 측은해서요."

납득되지 않은 업무에 대해서 성질을 죽여가며 준비 - 그녀 밑에 있는 여러 임원아저씨들의 지시를 받고 비서실에 최종 확인을 받는 과정 - 를 마친 후 이 미팅에 들어가보니, 테이블 상석에 앉아 해외파트너 대표에게 여유있는 모습으로 어줍잖은 (내 취향은 아니더라도 의례적으로 필요는 한) 말을 건네고 내가 작성한 자료의 말을 읊어대는 그녀의 모습은, 완벽한 연기로 보였다. 동시에, 그녀는 자신의 양옆에 주루룩 앉은 부하들에게는 존재감 없음을 확실히 느끼도록 해주었다. 완전 다소곳이 앉아 있던 우리들 말이다. 이날 미팅은 20분도 걸리지 않아 내가 직접 그녀를 제대로 겪어볼 일은 없었지만. 그녀가 휘두르는 권력도 악취가 날 것이라 미루어 짐작해본다. can't help with the prejudice.

대부분의 권력소유자들이 지랄맞은 것은, 자신의 존재감을 낮추어 가며 그들을 모시는 사람의 탓도 크다고 본다. 대표적인 예로, 목사들과 교수들의 거드름은 당사자 보다 주변인들이 너무 그들을 떠 받들어 주는 바람에 그들이 필연적으로 잃어버린 싸가지 때문이지 않을까. 자신도 모르게 말이다.

아니, 알지도 모른다. 그러나

권력이라는 것이,
웬만한 내면의 싸움으로는 내치기가 너무나 어려운 것 아니겠는가.



권력이라는 것은,
한 마디로 몸뚱이가 달콤하리 편한,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세속적으로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킨 조직에서 내가 바라는 바가, 여러 단계 거침없이 내 말 한마디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결정되는 거.
좋은 것과 꾸진 것이 있으면 내가 좋은 것을 갖게 되고,
맛있는 것과 별로인 것이 있으면 내가 맛있는 것을 먹게 되고,
좀 더 푹신하고 넓은 자리에 내가 앉게 되어,
내 몸뚱이와 정신머리가 더더욱 까탈스러워지지만,
여러 사람들이 내가 기분이 나빠질 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 대략 알아서 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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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동계올림픽 유치에 도전하는 평창의 경쟁도시는 독일의 뮌헨과 프랑스의 안시이다. 여러모로 안시의 활약과 내부적인 지지가 저조하여, 비드 경쟁은 평창 대 뮌헨 양대 구조로 이어지는 듯 하다. 그런데 최근, 독일의 환경보호론자들과 뮌헨의 농가들이 올림픽 유치를 반대하면서,
뮌헨은 내부적인 갈등을 겪고 있댄다.

대한민국 평창은 국민의 91.4% (please note the decimal specification)의 지지를 받고 있다.
나도 평창이 2018 올림픽을 유치할 수 있기를 바란다. (2018년이면, 내가 몇 살이여!)
유럽인들, 그들만의 잔치로 이어져온 동계올림픽이 유럽을 벗어나 아시아 대륙에 (일본에서 유일하게 두 차례 개최한적은 있지만) 서도 활발해지면 좋겠지.

그런데, 독일 뮌헨, 너무 멋진거 아냐?
거대한 국가적 대의명분과 자본에 맞서,
그대들 160명의 지역 토지소유자들 (및 현지 농민)이 벌이고 있는 싸움에 나의 응원을 마구 전하고프다.
우리나라가 경쟁 상대여서가 아니라,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지구인 1인으로서 보내는 나의 지지를!!!

평창이 올림픽을 유치하게 되면 700만 (?) 강원도민과 관계자들 및 적지 않은 떡고물의 수혜를 입게될 다수가 얼싸 앉으며 누릴 감동,의 힘도 만만찮겠지만,
독일 뮌헨의 환경보호론자, 현지 토지 소유자 및 농민들, 그대들의 고군분투가 난,
지구인으로서 참말로 감격스럽다.

아그네스 -- 올림픽이 끝나고 나면 훼손된 땅에서 온전한 풀이 자라지 못할것이라는 당신의 염려가, 너무나 아름다워요.

슈피겔 (온라인판) 기사 영어 번역판
Mountain Revolt
Part 1: Bavarian Farmers Threaten Bid for Olympic Games by Gerhard Pfeil
Part 2: The Farmer's Daughter

한글 번역은 아래. (번역자 누군지 모름. 출처는, 신빙성 있는 소스)

바이에른 주 농민들, 뮌헨의 올림픽 유치 위협

가르미쉬-파르텐키르헨 지역 농민들의 저항과 불만으로 2018동계올림픽을 유치하고자 하는 독일의 꿈이 흔들리고 있다피겨 전설 카타리나 비트를 비롯한 관계자들이 뮌헨 비드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논란으로 평화롭던 산속의 리조트 지역은 찢겨지고 있다.

바이에른에 큰 눈이 내리기 전, 동독 출신 올림픽 피겨 금메달리스트 카타리나 비트는 뮌헨의 사무실에 앉아 (이어질 회의에서) 얼마나 약속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저녁에는 가르미쉬-파르텐키르헨에서 2018뮌헨 동계올림픽 유치 반대자들과의 패널 토론이 있을 예정이고, 2018뮌헨 유치위를 이끄는 비트도 그 자리에 참석해야 하는 것이었다.

가르미쉬-파르텐키르헨은 뮌헨 남쪽 알프스 산자락에 위치한 마을로, 동계올림픽의 전형적인 눈 덮인 산의 모습을 연출할 2018뮌헨 비드의 핵심 경기 지역이다.

비트는 천장을 쳐다보고, 합리적으로 설득하면 된다며 “대화는 항상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스스로 다짐했다. 하지만 한때 “작센(구동독 바이에른주 주도)의 얼음 공주”라 불렸던 비트는 현지 농민들과 협상에 나설 적임자가 아니라는 판단에 결국 뮌헨 유치위 대변인이 대신 패널 토론에 참석했다.

 

‘동독의 아이콘’

다음날 비트는 새 후원사와의 미팅이 잡혀있다. 바이에른 로또 운영사가 2백만 유로를 후원금으로 기탁했다. 2018뮌헨 유치위 대변인도 자리에 함께했지만, 힘들어 보였다. 그는 전날 저녁 토론회에 깃이 짧은 바에이른 전통 스포츠 코트를 입고 갔지만 소용이 없었다. 토론회에 함께한 다른 참석자들도 깃털, , 각종 장식물로 치장한 바이에른 전통 모자를 쓰고 앉았다.

하지만 대변인이 한 마디 하려고 할 때마다 야유에 묻혔다. 토론회 끝에 한 농민은 일어서서 유치 캠페인을 “동독의 아이콘”이 이끌고 있다며 발언했고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카타리나 비트는 그로부터 4개월 전, 의류업자이자 올림픽 스키 선수였던 빌리 보그너가 유치에 별 다른 동력을 불어넣지 못한 채 사임한 이후 2018뮌헨 비드를 맡았다. 비트가 정점에 서면서 일이 더 잘 진척됐다. 비트는 보그너보다 형식적이지 않은 느낌이다.

비트는 최근 (역시 동독에서 태어난)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만나 웃음 섞인 대화를 나누며 두 사람이 같은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쓰고 있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2010 옥토버페스트에서 비트는 바에이른 전통 드레스 더들을 입고 로또 운영사 대표와 함께 플라스틱 사자상 앞에 서서 포즈를 취했다. 비트는 BMW, FC 바이에른 축구단, 알파인 스키 챔피언 로시 미테마이어, 메르켈이 속한 기독교민주당의 자매정당인 기독교사회연합 등 거물급 후원을 끌어 모았다

 

우리 목초지에는 안돼

가르미쉬-파르텐키르헨 지역만 비드를 싫어하는 것 같다. 이 마을은 독일 최고봉 추크슈피체산 자락에 위치하며, 뮌헨과는 아우토반을 타고 한시간 남쪽에 위치하는 겨울 스포츠 메카다. 1936년에 첫 번째 동계올림픽이 여기서 열렸으며, 매년 새해 첫 날 스키점프 대회가 열리며, 오는 2월에는 세계 최고의 알파인 크로스컨트리 스키 선수들이 현지 코스에서 세계선수권대회를 시작한다

하지만 환경보호론자들은 수개월동안 2018뮌헨 비드를 비판해왔으며, 현지 농민들은 시설과 경기장 건축에 필요한 부지를 내어주기를 거부했다. 현지 주민들은 고향을 잃어버릴까 두려워하고 있다. 선수촌과 경기장 사이 “Olympic Alley”를 설치하는 계획은 마을을 둘러싼 녹지대 벨트 일부를 상하게 할 것이다. (녹지대 벨트는 일부 농민들의 건초 헛간이 위치한 곳작년 여름, 160명의 토지소유주들은 시 관계자들이 송부한 라이센싱(토지사용 허가) 계약서를 거부하고 변호사를 고용했다.

그러자 주 정부가 나섰고, 비공개 회의들이 열렸다. 올림픽 계획은 축소됐지만 그럼에도 크리스마스 직전 59명의 토지소유주들은 땅을 결코 빌려줄 수 없다고 발표했다.

2018뮌헨 비드를 계획하는 이들이게 가르미쉬-파르텐키르헨은 지뢰밭이 되어버렸다. 1 11일 후보도시파일(비드북) IOC에 제출해야 하지만, 계획을 세우는 이들은 확보하지 못한 부지에 주요 요소들 -- 진입로, 주차장, 관람석 -- 을 그려 넣고 있는 상황에 계속 처해있다.

IOC는 남아공 더반에서 오는 7 2018 동계올림픽 개최지를 선정, 발표한다. 프랑스의 안시와 한국의 평창도 유치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실상 IOC의 선택은 독일 바이에른주와 한국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이고 있다. 평창은 농민들과 전혀 문제를 겪지 않았고, 농민들은 다른 곳으로 이주했을 뿐이다. 

 

‘우리 가축에게 돈을 먹일 수는 없다’

가르미쉬-파르텐키르헨에 사는 아그네스 게이어는 무거운 고무장화를 신고 언덕의 목초지를 걷고 있다. 66세의 게이어는 소에 걷어차여 약간 절룩이고 있다.

젊을 때 게이어는 스키를 잘 탔고, 66세의 남편 테오는 지역의 프로 아이스하키팀 SC Riesserseea 선수였다. 이들 부부는 매년 스키 클럽이 월드컵 대회를 치르기 위해 자신들이 소유한 목초지를 사용하도록 허락한다. 한 목초지는 위험하기로 소문난 “칸다하르” 코스 발치에 위치하는데, 이 코스는 최근 일부 개선되어 빗물이 빨리 계곡으로 흘러가도록 땅을 다졌다. 그 바람에 게이어 부부의 목초지는 이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물이 차서 가축의 방목지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작년에 지방정부는 보상금으로 362유로를 줬다.

게이어 부부는 소 40마리를 키우고 있으며, 경사가 너무 가팔라 큰 낫을 사용하지 않고는 풀을 벨 수가 없는 농장 인근의 산속 목초지에서 일부 먹이를 구해야 한다. 2018뮌헨의 계획은 부부의 목초지에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경기장과 방송중계 카메라를 위한 설비를 짓는 것이다.

사전에 허락을 구한 적도 없이 계획이 그냥 그렇게 세워졌다. 하지만 게이어 부부는 하프파이프 경기장을 자신들의 땅에 세우고 싶지 않다. 올림픽이 끝난 이후 풀이 자라지 않을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목초지를 팔고 싶지도 않다. 아그네스는 “우리 가축에게 돈을 먹일 수는 없다”고 말하며 눈 덮인 언덕을 굴러 내려오는 얼음 덩어리를 걷어찼다.

 

2: 농민의 딸

농민들은 비드를 반대할 사유가 충분하다. 일부는 자연 보호를 걱정하고, 일부는 (유치를 추진하고 있는) 시장에 반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차고를 넓히고 싶었지만 필요한 건축허가를 얻지 못한 한 농민의 경우, 칸다하르 코스가 지나가는 땅 일부를 소유하고 있다. 이 부지가 없으면 결승선을 옮겨야 하고, "free fall"이라 불리는 코스 하단의 매우 유명한 가파른 구간은 경기에서 배제해야 한다. 이 농민은 지자체의 제안을 기다리고 있지만, 관계자들은 추방 위협을 하고 있다.

비드에 대한 논란으로 이 지역은 균형을 잃었다. 호텔업주, 소상인, 그리고 대다수 시의회 위원들은 비드를 지지한다. 하지만 기독교민주당의 청년단체 회원들은 비드를 반대한다. 그들은 특히, 이미 1억유로 이상의 빚을 지고 있는 가르미쉬-파르텐키르헨 지역에 올림픽 개최 비용이 부담이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갈등은 첨예화되고, 사적인 문제로 번지며 물리력이 행사되기도 했다. 축제장과 바에서 지지자들과 반대자들 간 주먹다짐도 있었다. 환경단체 관계자는 살해협박 우편물을 받았고, 누군가 농장주들의 여성 대변인의 차량을 파손하고 집 대문에 “너는 이미 죽었다”라는 메모를 놓기도 했다.

파르텐키르헨에 법률사무소를 운영하는 엘리자베스 코흐는 연이어 담배를 피운다. 지역 의회의 기독교민주당 원내 총무인 그녀는 당초 비드를 지지했지만, 지금은 그 선택이 옳았는지 고민하고 있다. 지역의 일부 친환경 비관론자들은 스키 코스를 확장하기 위해 일부 지대를 정비하는 작업으로 인해 온 산이 내려앉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난 몇 주간 시장은 시청 안에 숨어서 농민들이 지역사회 현대화의 발목을 잡고 았다고 비난하고 있다. 농민들은 전화를 도청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독일 남서부 스투트가르트 시에서 큰 논란이 되었던 대규모 도심 재개발 및 철도 프로젝트인 스투트가르트 21 프로젝트에 대해서 찬반 양측과 수주일에 걸쳐 논의를 진행했던 중재자와 같은 인물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코흐는 생각하고 있다.

독일 NOC 위원장인 토마스 바흐는 한때 지역 농민들을 “근본주의적 반대자들”이라고 비난했다. 물론 비트는 그러한 발언을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정부가 운영하는 식물 종자 회사에서 일했고, 그래서 -- 비트의 말에 따르면 -- 그녀도 농민의 딸이다.

 

금메달과 플레이보이

비트는 비행기 안에 앉아있었다. 베오그라드 EOC 총회 참가자들은 2018 후보도시들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베오그라드에 비행기가 접근하는 동안, 비트는 재빨리 손톱에 매니큐어를 발랐다.

뮌헨 비드의 슬로건은 “우정의 대회(The Friendly Games)". 비드의 밝은 얼굴을 대표하는 비트는 빙상 여왕의 여유로움으로 진행한다. ”선수들을 위한 최고의 무대를 만들고자 합니다.

일부 사람들은 톰 크루즈와 영화를 찍었고 플레이보이 잡지 표지에 나왔던 그녀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힘들어 한다. 하지만 많은 IOC 위원들은 그녀를 올림픽의 전설로 동경한다. 실제로 비트가 뮌헨 비드에 엄청난 스타 파워를 부여해서, 여러 올림픽 관계자들은 오로지 비트가 관계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뮌헨 비드를 지지한다고 한다.

점심 이후 비트는 호텔 로비에서 바흐와 대화를 나누었다. 어두운 색 드레스를 입은 비트는 아름다운 모습이었고, 바흐는 EOC 프레젠테이션을 마치 차기 핵 비확산 조약처럼 심각하게 대했다. 그는 독일 아우토반의 퀄리티와 같은 “독일의 요소들”이 잘 전달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독일의 고속도로들이 비드의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뮌헨과 가르미쉬 간 도로들은 올림픽을 위해 (다시 한 번) 확장될 수도 있다. 바흐는 “우리는 균형을 잡고 디테일을 통해 임팩트를 전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트는 커피를 가지러 일어나며 “물론이죠”라고 답했다.

다음 날, 컨벤션홀에서 비드 동영상을 보여주는 비트의 모습을 일부 참가자들이 휴대전화 사진에 담았다. 동영상은 뮌헨 올림픽 파크(1972 뮌헨 올림픽을 위해 건설), 추크슈피체산, 루드비히 2세 황제를 위해 지어진 19세기의 노이슈반스타인 성 등을 공중에서 촬영한 장면을 비추었다. 비트는 독일의 아우토반과 고속철도와 13억 유로의 올림픽 예산에 대해서 설명했다.

비트는 고공비행을 하고 있고, 너무 높아서 그곳에서는 가르미쉬-파른텐키르헨의 언덕에 있는 아그네스와 테오 게이어 부부를 찾아볼 수 없다.

 

'그만하면 됐다'

계약법 전문인 뮌헨의 변호사 루드비히 세이츠의 책상 위에는 뮌헨의 올림픽 계획이 펼쳐져 있다. 게이어 부부를 비롯한 농민들을 비롯한 세이츠 변호사는 비트, 앙겔라 메르켈 총리, 심지어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요아힘 뢰브 감독까지 상대로 싸우고 있다.

펼처진 가르미쉬-파르텐키르헨 지도에는 경기장이 표시되어 있고, 또한 사유지 구분선과 토지 구획 번호들도 표시되어 있다. 세이츠는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경기장 장소로 표시된 게이어 부부의 2,863번 구획의 토지와 인근 구디버그 산의 스키 구역과 칸다하르 스키 코스로 이어지는 구획들을 가리키며, 이들은 모두 올림픽을 위해 내줄 수 없는 땅이라고 말했다.

크리스마스 이전에 세이츠 변호사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을 서한을 바이에른 주의회 의장에게 보내며 “비드를 공식적으로 철회했다는 즉각적인 확인”을 요구했다. 하지만 카타리나 비트는 어떻게 반격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 이틀 후 비트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찾아갔고, 총리는 공개석상에서 모든 정부보증서를 서명했다.

테오 게이어는 눈발을 피해 집 거실에서 쉬고 있다. 벽에는 어머니의 사진이 걸려있다. 1942년 나치 세력들이 “(베를린의) 올림픽 스포츠 시설 확장”을 위해 어머니 소유지를 강제수용했다.

60년 전 게이어 가족은 산아래쪽 마을에 살고 있었다. 알프스를 찾는 관광산업이 증가하면서 마을에서는 농장을 운영하기 어려워져 가족은 산악 지역으로 올라왔다. 가르미쉬를 찾는 관광산업이 더욱 성장해 다시금 그들 가족을 쫓아 산악지역까지 올라와, 가족의 농장은 스키장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스키 시즌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인공제설기가 목초지에 눈을 뿌릴 것이고, 그 증기로 창문들은 뿌옇게 되고 농민들은 차가운 안개가 소들의 건강을 해치지 않도록 헛간의 창문과 문을 닫아걸어야 한다. 그리고 이제 올림픽까지 개최하려고 한다.

게이어는 세이츠 변호사 옆에 차분히 앉아 있다. 다른 방법이 없게 되면, 그들은 독일 최고 법원인 연방헌법재판소에 호소할 생각이다.

카타리나 비트는 올림픽 개최를 통해 가르미쉬-파르텐키르헨 지역이 더 아름다워지고 더 유명한 리조트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테오 게이어의 생각으로는, 관광객들은 알프스 산맥의 이 지역을 이미 오래 전에 발견했다. “영국, 미국, 러시아 사람들이 모두 이곳에 대해 알고 있다. 그만하면 됐다”고 그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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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Posted 2011. 1. 5. 23:47
내 블로그에 흔적을 남기지는 않지만 고정 reader라고 주장하는,
나를 오래 알아온 한 친구를
오늘 아주 오랫만에 만나 밥상을 나누었다. (알고봤더니 캐슬프라하가 운영하는) 보헤미안 비스트로집에서, 쌩뚱맞은 파스타와 피자를 먹으며.
그나마 체코 맥주 dunkel을 시켜서 프라하를 기억하려고도 해 보았다. 토마스와 테레자와 사비나와 프란츠도. (둥켈, 맛 있었다!!)

대학 때 한 집에 살았던 그녀와 나는 1999년의 어느 날...
식탁 의자에 앉아 2000년 대로 넘어가는 대학졸업 이후의 인생을 그려보았다.
이천년, 이천일년, 이천이년... 이라는 새로운 밀레니엄의 버거운 숫자를 말하는 것이 너무나 어색했던 기억이 난다.  at 33 Fairview Square, Ithaca, NY 14850

여튼, 세월은 흘러 흘러 2000년대는 무색하리만큼 휘릭 지나가 버렸고.
지난 몇 년간 우리 사이를 차지했던 공백을 지내고 난 후,
She and I agreed that I've become more liberated.

내가 살면서 가장 잘 한 일 중에 하나는 회사를 당기다가 어느날 문득 스위스에 가야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그 해 겨울,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쳐온 한 자매님의 간섭으로 인하여 원래 목적지였던 로잔에서 좀 더 산(?)속으로, 알프스 중턱에 위치한 라브리라는 공동체에 갔다. 거기서 30여 명과 한 지붕 아래서 놀고 공부하고 노동하며 세 달을 살고 한국에 와서, 기다렸다는 듯이 기청아를 만나서 공지훈을 하게 된 것이고. 이렇게 죽 이어진 만남과 공부 가운데 계속해서 머리는 아프지만, 사는 데 피곤한 아쉬움을 떨쳐버리게 된 것 같다.

여튼, 요즘 굉징히 소홀하고 있는 공지훈 숙제를 하기 위해 오랫만에 맘 잡고 앉아서 책을 읽다가, 밑줄 긋고 싶은 대목이 있어 적기로 했다.


pp. 14-15, 현대신학의 패러다임 by 도로테 죌레 (Dorothee Sӧlle)


Beethoven Opus 135 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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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2011

Posted 2011. 1. 3. 09:03



아,
오늘이 2011년 첫 월요일이구나.
주말에 심히 졸은 덕에 몸은 살짝 가뿐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천근만근.
지하철역 계단을 올라와 던킨에서 커피를 한 잔 사들고
회사 1층 로비에 도착했을 때는
출근인파에 몰린 엘리베이터 한 대 쯤 먼저 거뜬히 보내버릴
여유가 있었다.

춤,
을 추는 무리에 이따금 끼어들어 띄엄띄엄 추어 보니,
객체로 구경할 때와는 달리 내가 주체가 되어버리면,
흥겨운 음악으로 인해 즐거운 웃음과,
어설픈 내 모습이 너무나 쑥스러워 나오는 웃음이 한 데 뒤 섞이어
유발되는 유쾌한 카타르시스가...

춤은 그냥 추어버리는 데 묘미가 있는 것일 텐데,
이것도 잘 해보고픈 욕심이 꿈틀.
언젠가는 해보고 싶은 백열다섯가지 중 하나인
춤을,
서로 발을 밟아 가며 함께 완성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이나,
이미 선수가 되어버렸으되, 내 발에 밟히는 것을 참아낼 수 있는 사람과 추어보고 싶다.
함께.

머 쉬운게 어디 있겠어.
진심,이란 것도 하나마나한 소리, 군더더기 일뿐이다.
그런데, 눈을 감고 춤을 춘다는건 너무 술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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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밥

Posted 2010. 12. 25. 10:34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을 혼자 못가지 듯이,
밥은
서로서로 나누어 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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