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Posted 2011. 4. 7. 23:41
2001년 9월 11일 아침,
9시가 좀 넘었었나. 10시10분 ILRIC333 수업시간에 TA한테 내는 한 장짜리 숙제가 있어서 황급히 하던 중, 급해 죽겠는데 전화가 울리는 것이다. 한국에서 걸려온 엄마 전화였고, 미국에 큰일이 났단다. 엥? TV를 켰고, ABC 저녁 뉴스를 진행하던, 나의 all-time 훼이버릿  Peter Jennings 아저씨가 아침부터 방송을... and the rest is history.

9월 11일 하루는 다 휴강이었고, 계속해서 뉴스를 보고 학교에서 공개 토크에 참여하면서, 그 당시 난 미국에 산지가 이미 꽤 오래되었던지라 미국에 가해진 이 엄청난 사건에 대해 아메리칸들과 어느 정도는 동화되어 미국의 loss를 애도 했다.

그 후, 적군이 폭격한 트윈타워에서 400 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시골 타운의 대학을 졸업하고. 여차저차해서 캘리포냐로 거처를 옮기고 나서, 2003년 즈음. 9/11 조사위원회에서 500쪽이 넘는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Costco에 갔더니 무더기로 쌓아 놓고 팔길래 나도 5불 99전에 한 권을 사긴 했다. 읽지는 않았지만. 그 조사위원회의 발표 내용 중 이런 말이 있었는데, "Across the government, there were failures of imagination, policy, capabilities, and management." 여기서, 상상(력)이 실패했다는 말. 여러 사람이 이거에 대해서 말이 많았다.

여하 이유를 막론하고, 테러리스트의 어택을 합리화 혹은 정당화 할 수 없지만.
아니, 도대체 뭔짓을 하고 어떻게 살았길래 대도시 한 복판의 고층 건물에 비행기가 폭격하여 아침에 멀쩡히 출근한 사람들이 100층 높이에서 건물 밖으로 튕겨나가야 하는 상상...을 하고 살아야 하는거야?

Spatial Concept `Waiting'  1960 by Lucio Fontana

2011년 봄.
맨하탄의 트윈빌딩이 무너진지 10여년이 흘렀다는 사실도 경악할 노릇이지만,
일본에서 얼마나 엄청난지 설명 안되는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쓰나미가 발생했고, 그 여파로 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더 많은 사람들의 일상이 처참하게 침범을 당하였는데. 그 쓰나미만큼, 아니 더 커다란파장을 불러온 것이 있는데, (아이참. 설명도 안되는 수식어 붙여대기 거추장스럽다.)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하여 거기서 방사성 물질이 나오고 그 물질이 대기를 둥둥 떠 다닌단다. 그리고,

봄비가 내렸다.

난 정말. 참 나. 때가 되어 하늘에서 봄 비가 내리는데 대기에 방사성 물질이 있으니까 오늘 이 비를 맞으면 안 된단다. 아침에 라디오 뉴스에서 가급적 큰 우산을 들고 나가라 길래, 선량한 시민.인 나는 접는 우산보다 크고 골프 우산보다 조금 작은 우산을 들고 비좁은 인도를 걸어 간다. 우산을 들고 옆에 지나가고 오는 사람들과 안 부딪히려고 요리조리 피하면서, 방사성 물질을 어딘가에 품고 있을 빗 방울을 피해보겠다는 것이 손 바닥으로 하늘 가린다고 뻘짓하는 거랑 무엇이 다른가, 하는 생각이 든다.

테러리스트 어택이 있었을 때 미국 정치인들은 우리가 테러범들의 공격 때문에 일상이 위축되는 것은 지는 거다. 그냥 에브리데이 살던데로 살아라. 특히, 돈을 계속 써라. 경제가 침체되지 않도록. 그래야 쟤네들한테 우리가 건재하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다. 이랬는데.

봄비님한테 맞장뜰것도 아니고.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잠깐 피한다고 해서 얼마나 내가 건재할 수 있을까. 아.... 어이 없다 증말.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피해야 하는 내 처지가 말이야... 이게 전쟁통을 겪고 and/or 밥을 쫄쫄 굶는게 다반사인 삶을 사는 것에 비했을 때, 그랬을 때 어떤게 더 다행인 노릇인지 여기에 답이 있기는 한건지 몹시 깝깝하다.

점심 때 니시키에서 우동을 기다리며. 생면 면발이 특수하여 한참이 걸려도 꾹 참아야 하는 이 집에서, 기다리는 동안 창밖을 내다 보는데 가랑비에 젖은 이태원 길이 참으로 한갓지다. 그런데말야,

쓰나미로 죽은 사람들, 가족, 피해자들 한테는 당연히 골백번 애석한 일이지만, 쓰나미가 밀려오지 않아 원전을 돌리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에 어떠한 태클도 가해지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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