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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e chopping...

Posted 2010. 9. 2. 02:30
8/31 화요일
오늘은 조촐하게 정은언니랑 단 둘이서 밥을 먹게 되었다. 

전날 먹고 남은 야채를 처리해야 했기에. 이럴 때는 제일 만만한 메뉴가 볶음밥이다. 

감자는 며칠 전에 깎아 둔 것이라서 진한 갈색, 마치 껍질을 벗기지 않은 듯한 색으로 변했다. 아깝지만 0.5cm 정도의 두께를 베어내고 채썰고 다졌다.

양파도 껍질을 다 까 놓았었는데, 멀쩡했다. 꿋꿋한 양파. 
내 눈물을 짜내는 힘을 지녔으니, 그럴만 하지. 

당근은, 늘, 챌린지다. 너무 단단해서 칼질하기가 어렵다. 특히, 미국산 당근은 빼빼로 같이 생겨서 통당근에서 얇게 슬라이스하는 단계부터 쉽지 않다. 그래서, 조금 자르다가 휴식이 필요하다. 계속 하나 둘씩 집어 먹으면서 칼질을 한다. 슬금 배가 불러진다.

이쁜 호박. 칼질 하기도 부드럽고 맛과 영양도 훌륭하다는. 이뻐서 가운데 앉혀준다. 흐.

오른쪽으로는 샐러드에 넣으려고 준비한 애들. 오이는 가운데 씨를 다 빼내어서 부피가 확 줄어들었다. 보라색 양파는 단맛이 강하면서도 손질할 때는 매운향이 은근히 강하다.  토마토가 좀 너무 익어버려서 많이 물컹. 

여러 가지 야채들을 손질하다 보면, 이것저것 다 자르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린다.
생각이 복잡하거나 골치가 아플 때, 
아무 생각없이 칼질을 하다 보면, 예쁜 자연의 색깔에 위로를 받기도 하고. 
맵기도 하고 달짝지근하기도 한 향기에 오감이 분주해 진다.
마치 야채들이, 멀리 있는 다른 생각하지 말고, 내 앞에 있는 자기들한테 집중하라고 보채기라도 하는 듯이.

정은언니가 일 끝나고 와서 샐러드 드레싱을 만들었다.
올리브오일, 발사믹비니거, 머스타드, 한국산 매실짱아치, 한국산 매실액을 넣고.

볶음밥은, 
짰다. 야채 볶을 때 소금을 너무 많이 넣어서. 한 숟갈씩 떠먹을 때, 어제 먹다 남은 아보카도 슬라이스를 얹어서 중화시켰다.
짠맛과, 새콤한 샐러드의 오묘한 조화.

원래 밥먹고 보더스에 가서 책보고 일하려고 했으나, 밥 먹으면서 식탁에서 얘기가 길어졌다. 회사를 다니면서 루아 사업을 시작한 언니와 일.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고객과 직원을 생각하는 순서. 컨텐츠 확보. 좋은 보스가 되는 것. 어느 하나도 쉬운답은 없다. We all have well-meaning intentions. But, 밥상에 놓인 음식의 색깔들처럼 선명한 것은, 우리는 시행착오를 많이 겪을 것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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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ring the table and the appetite

Posted 2010. 9. 2. 01:43
8/30 월요일 저녁

어렸을 때 엄마가 종종, 오늘은 또 모 해먹지?
고민을 하시던게 생각난다. 다른 사람들을 먹이려면, 먹이는 것도 중요한데 무얼 먹일지가 고민이 되는 것이다. 오늘은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비교적 빨리, 떠오른게 있었다.

Let the colors tell you what it is!





여기서 unlikely하게 상에 오른 재료는 중간에 하얀거 - asiago cheese. 쌩뚱맞았으나, 나머지 재료들과 조화를 잘 이루었다.

make your own handroll -
그저, 먹으면서 얼마나 먹는지 양을 가늠할 수 없기에, 밥을 다 먹고나면 종종 더부룩한 배에,
힘들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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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late-night dinner

Posted 2010. 8. 28. 16:31
Pizza Antica at Santana Row




오늘은 그냥 사람들 밥 먹는거 구경하면서 셧업하고 싶었다.
저녁을 챙겨준 현모오빠의 마음도 너무 고마웠고,
레몬이 들어간 피자는 상큼했는데,
내 마음은 복잡한 생각으로 꾸질했다.

local time
Friday, August 27,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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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made French Dinner

Posted 2010. 8. 27. 15:52
8/26
오늘은, 바바라가 홈메이드 프렌치 디너를.... 했다. 예이~!
주메뉴는 라따뚜이와 풀레바스케이즈

라따뚜이를 보고서 쥐.가 요리를 한다고 더럽다고 말한 평도 들었지만,
나는 재미있게 보았다. 그런데, 막상, 라따뚜이 요리가 어떤건지는 기억이 안났다. 
바바라 옆에서 조수역할 - 야채 다듬고 설겆이 하기 - 하면서 지켜보니, 야채가 엄청 많이 들어가는거다.

얘는, fenouil.
이름을 여러번 들었는데, 늘 까먹는다. 발음도 어렵고.
씹는 느낌은 아삭아삭, 무엇보다 향이 독특하다. 샐러리 향이랑 비슷하지만 살짝 꽃냄새가 난다.

바바라네 파리 아파트 부엌은 너무 좁아서 요리를 제대로 할 수 없는데, 여기는 넓어서 너무 좋단다. 
음식 준비를 다 하고 접시에 담고 있는 바바라. 그 옆에서 도와주고 있는 정은언니.

나는 식탁 준비를 하고. 포크가 부족하여 그냥 젓가락으로 먹기로 한다. 이날 마침, 정은언니 회사동료 Jet이 와인을 들고 왔다.

Jet이 자기가 좋아한다는 Orangina 쥬스도 사왔다. 탄산 오렌지 레몬 쥬스. 프랑스에서 처음 만들어진 음료이다. how fitting! 고등학교 때 불어교과서에도 자주 등장한 쥬스병이다. 그리고, 보스턴 갈 때 들르던 au bon pain에서 자주 마셨던.

이것이, 라따뚜이:
얘는, poulet basquaise:
poulet는 닭고기/poultry, basquaise는 Basque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에 걸쳐있는, 그래서, 정치적으로 복잡한 지역... 이라고 한다. 그런데 굉장히 아름다운) 스타일로 만든 닭요리. 바스크 스타일은 보통 토마토와 파프리카, 피망을 많이 넣고 조리한 음식.

바바라가 이걸 만들고 나서, "사실 알리스가 만든 닭요리 보고 굉장히 비슷하다고 생각했어."
풀레바스케이즈랑 닭도리탕은 물론 맛이 다르다. 여기에는 버터와 와인과 향신료가 들어가니까. 그래도 비슷한 모습이 재미있다. 새로운 음식을 먹어보면서, 너와 내가 다르기도 하지만, 비슷한 점이 있는걸 배운다.

바바라가 평소에 디저트를 반드시 챙겨먹지는 않지만,
프렌치 스타일로 저녁상을 차리면서 디저트를 꼭 포함시켜 레몬타트를 만들었다.
상콤달콤, 아이스크림과 함께!!!

바바라는 캘리포니아를 뜨기 전에,
한번 더 프렌치 디너를 해주기로 했다. 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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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을, 잡다.

Posted 2010. 8. 26. 16:50
나는 오늘,
아줌마 대열에 끼였다.

닭으로 요리를 처음 만들어 본것은 대학 때 였다. 닭다리를 사다가 양념을 발라서 구웠는데, 내가 닭 껍질을 안 좋아해서 열 개의 닭 다리 껍질을 다 손질하기로 한 것이다. 미끈덩, 좋지 않은 느낌이었다. 맨손으로 잘 되지 않아 페이퍼타올을 잡고 했는데, 하나, 둘, 하면서 이걸 계속 해야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러다가 문득, 아... 아줌마들이 이래서 터프해 지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 후에 닭볶음탕을 할 때는 한 마리를 통째로 하더래도 이미 손질되고 잘라져 있는 닭을 사다가 하곤했다. 껍질은 그냥 두고. 흐르는 물에 잘 씼어서 양념하는 닭.

그런데 오늘, 저녁 메뉴로 닭을 고르고서 장을 보러갔는데,
글쎄, 글쎄, 세상에나,
통닭이 이렇게 통째로 있는 것이다.

삼계탕이나 백숙이 아닌, 여럿이서 한 마리를 사이좋게 나눠먹을 수 있는걸 해야했기에, 도막을 내야했다. 그런데 닭다리만 넣고 탕을 만들기가 아니다 싶어, 제대로 하고 싶어서, 용기를 내어,
통닭을 골랐다. 흐.

집에 와서 포장비닐에서 얘를 꺼내서, 흐르는물에 씻는데, 갑자기 안에서 손질된 간이 흘러나왔다. 포장하는 사람이 내장을 안에다 넣어나보다. 흡... 여기서 한번 놀라고.

잘 씻은 닭을 일단, 페이퍼타올을 깐 도마에 올려놓고, 바라보며
칼을 들었다.
"언젠가 한 번은 해봐야 할일이야." 라고 나한테 말하면서.

이젠, 닭을 꼬꼬댁 닭으로 생각하면 안된다. 그저 내가 지금 도막을 내야 하는 대상일 뿐이다.

우선 내 왼손으로 닭의 왼쪽 다리를 움켜 잡았다. 작은 칼로 다리와 몸통 사이의 살을 가르고나서 큰 칼을 들고 뼈를 내리 쳤다. 비교적 용이한 분해. 그동안 내가 먹은 닭다리가 얼만데, 여기서 끔찍해 하는 것은 너무 이기적인 내숭이다 싶어 꾹 참고, 오른쪽 다리도, 툭. 탁.

그 다음은 정면과 후면의 분해: 등과 가슴사이의 양쪽을 갈랐다. 가슴 부분은 잠시 제쳐두고 등을 잡았다. 가르기 시작했다. 아, 정신이 혼미해졌다. 등은 비교적 쉬웠나보다. 닭은 등뼈가 약한가? 저녁을 먹고난 이 밤, 등뼈 자르는 기억은 별로 안난다. 손 쉽게 몇 도막을 내었던것 같다.

마지막으로 가슴부위를 들었는데, 닭 가슴 부분에 잔뼈가 너무나 많았다. 칼도 잘 안들어가고. 내 손이 닭살에 힘껏 매달려, 뼈를 분리해 내야 했다. 미끈덩만 하고 잘라지지는 않고. 아, 너무나 괴로웠다. 잔인한 나. 이걸 먹는 나. 얼마나 많이 먹었냐. 징그럽다고 못 자르면 정말 더 잔인한거다. 먹을 건 다 먹어놓구선. 칼을 내리치고, 뼈에 살짝 끼인 칼에 힘을 계속 가하고...

이렇게 하여, 닭 한 마리를 다 잡았다.

닭 껍질 벗기는거는 정말 껌이었다. 갈비찜하면서 핏물 고인 갈비조각 더미에서 한 조각씩 꺼내어 기름 발르는 일도 참 싫었었는데, 그것도 아무것도 아니다. 기름이 미끈하여 수고가 들뿐.

닭 뿐만이 아니라, 가족들 먹이겠다고 수 많은 닭을 잡으시고 생선을 토막내고 하신,
우리의 엄마들과, 또 소수의 아버지들. 아줌마보고 터프하다고 하는 수 많은 non-아줌마들. 셧업~
아줌마의 손이 부드럽지 않고 칼집이 난 (나도 살짝...) 까닭은, 주변인들 때문이다.

닭을 손질하여 볶은 야채위에 얹은 모습은 찍지 않았다. 오늘 엄청 호들갑을 떨었지만, 점점 더 이 일에 익숙해지겠지. 손질...된 닭과 식탁의 사이는 건너뛰고, 결과물은 이랬다.

내가 닭하고 낑낑대는 동안 도망간 태훈오빠,
내가 해준 밥을 먹은적이 없다고... 투덜댄 재홍호빠,
다행히. 모두들 맛있다고 해주었다. 흐, 맛이 이상했으면 너무 더 슬펐을꺼야.

닭 한마리 희생하고, 나는 더 터프해지고,
우리는 정겨운 밥상을 나누었다.

이렇게 저 닭은,
지구에 태어난 소임을 다하고,
우리의 뱃속으로 종적을 감추었다.

레서피에서 마지막에 고추를 넣으라기에, 파란 고추를 샀는데 왠지 너무 매워보여서 넣을까 말까 살짝 고민이 되었다. 그래서, 씨를 빼고, 송송 썰어서 넣었다. 그런데, 씨를 빼는 과정에서 손가락을 사용한것이다. 고추 하나쯤은 괜찮을줄 알고.

어렸을 때 부터 나는 부엌에서 끼어드는 것을 좋아했다. 엄마가 귀찮다고 뿌리치셨지만, 틈새를 노려 한 바가지 감자를 퍼서 깍든지, 마늘을 까든지, 김을 재든지... 무수리 성향이 짙었다. 내가 열살쯤이었나. 할머니 생신이었다. 엄마가 그 해는 비교적 크게 상을 차리셨다. 일손이 부족하여 나도 떳떳이 한 몫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그리하여 내가 고추전을 맡았는데, 초록색 풋고추를 측면으로 반절 자르고 씨를 다 빼내고 엄마가 준비하신 소를 넣는 것이 내 임무였다. 감자 깍고 마늘 까는 것 보다 훨씬 더 있어보이는 태스크였다. 완전, 성실하게 맡은바 소임을 다 한후, 하루를 마무리 하는데,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손이 욱신욱신 아리기 시작했다. 살짝 잠이 들다가 다시 깨서 울었던 것 같다. 엄마가 미안해 하시며, 고추씨때문에 그런걸꺼라고... 매운기를 빼려고 설탕을 발라서 비벼보고 물에 손을 담가 두고, 긴밤을 지새웠던,

그런 적이 있었다.

오늘밤, 고추 하나 때문에 손이 계속 손이 아린다. 
그런데, 고추씨도 계속 접하면, 그 매운맛이 무뎌지나 보다.
엄마의 손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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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zzeria DELFINA

Posted 2010. 8. 26. 16:36
at Mission District 
3611 18th Street






cucumber marinated

parmesan cheese, pepper flakes and oregano

Salsiccia
Housemade fennel sausage, tomato, bell peppers, onions, mozzarella
(half without the meat)

초저녁 부터 피자 먹으려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는 레스토랑이다. 이날 (8/24 화) 혼자서 샌프란시스코 투어를 한 바바라를 여기서 만나기로 해서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밖에서 기다렸다. 여자친구들끼리 온 무리, 어린아이들도 동반한 가족, 연인들 등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문 밖에서 맥주나 소다를 마시면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린다. 그 무리 사이로, 어김없이, 노숙자가 지나간다. 아니, 그 무리에 끼여 왔다갔다 한다.

우리가 밥을 다 먹고 나오니, 같은 노숙인이 식당 문밖 코너에 앉아있었다. 식당의 레귤러 손님들과 문밖의 상주자. 서로 무시하는 사이이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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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Posted 2010. 8. 26. 16:36
정말 아주 오랫만에 밥을 하게 되었다. 8월 23일 월요일 저녁.

미국에 살 때는 언니오빠들과 이집 저집에 모여서 밥을 참 자주 해먹었다. 적어도 내 기억에는.
그런데, 엊그제 몇몇 오라버니들이,
"왜 나는 안 해준거냐?"
헉, 그럼 밥은 다 누가 먹은거야?

어쨌든,
한국에 간 뒤로, 내가 밥을 해서 누구를 먹일일이 없었다.
사람들 만날 때는 밖에서 만나서 사먹게 되고, 그렇다고 부모님 집에서 얹혀살기는 하지만,
엄마가 계신데 내가 밥을 하기도 웃기고. 아빠가 별로 반기지 않으실테니 =_=

이번에 캘리포니아에 오면 밥을 자주 해먹으려 했는데, 도착한지 일주일만이다.
장을 보러가지 못해 일단 언니네 집 냉장고를 툴툴 털어서 있는 재료들을 모았다.

그리하여, 메뉴는 잡채와 오징어 볶음으로 결정.

분주하게 야채를 다듬으면서 오랫만에 하니까 너무 떨렸다. 흐흐. 정말로 6년 가량 다른 사람을 위해서 내가 만든 음식으로 밥상을 차려본 일이 없는 것 같다. 엄마가 만드신걸로 아빠 상은 차려드렸어도 말이다. 내가 혼자 먹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을 먹이는 건데, 괜히 여럼 사람이 맛 없는 저녁을 먹게될까봐. 물론, 다른 사람이 나한테 밥을 해주면, 맛이 있든 없든 감사히 행복하게 먹겠지만 : )

역시 잡채는 재료 다듬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걸린다. 시간이 부족해서 마지막에 당면은 태훈오빠한테 삶아달라고 부탁했다.
"오빠, 잡채의 핵심은 잘 삶아진 당면이에요."

한국음식은 조리법에 재료의 정량이 제대로 나와있는게 드물다. 그리고 모든 양념의 계량은 동일하다: 적당히. 나는 그 "적당히"가 원샷에 되질 않으니, 들어가는 재료를 준비해서 간을 맞출 때, 조금씩 넣어가며 내가 아는 맛에 맞춰질 때 까지 더 하는것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간을 많이 하면 정말 난감해진다.

다음에 기억할것은:
오징어를 너무 작게 잘랐다. 좀 더 크게하고.
야채를 볶아서 양념을 다 한 다음에 오징어를 넣었어야 했는데, 오징어를 좀 일찍 넣은감이.
그리고 엄마표는 색이 더 붉었는데 나는 좀 하얌. visually not so attractive or presentable. so no close-up shot.
(and a note to 태훈오빠: 붉은 음식은 붉은 접시에 담으면, 안 이뻐요. =_=)

이 사진을 찍어준 바바라도, 맛있게 먹어주었다.
바바라는 역시 프렌치라서 그런지, 엄청난 미(味)적 호기심 모험심을 지녔다. 한국에 왔을 때도 거침없이 청국장과 보쌈을 먹었드랬다.

Cook's delight: an empty pl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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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pa Valley

Posted 2010. 8. 26. 14:41
대학 때 와인수업을 한 번 들어보니 와인의 세계가 너무 무궁하여, 그다지 알고 싶지 않았다.
그냥, 있으면 마시는거. 
졸업하고서 캘리포니아에 살게되면서는 와인을 비교적 손쉽게 접했었는데, 
여전히, 와인은 커피가 내게 유발하는 호기심이나 매력을 주지 못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어쨌든, Bay Area에 왔으니, 또 여기 처음 온 바바라가 있으니, 나파밸리를 방문하기로 했다. 
8월 22일 일요일.

Napa Valley (그리고 그 옆에 Sonoma)는 천혜의 기후와 가용자본의 결합으로 발전된 곳이다. 원래는, 물론, 인디언들이 살던 곳이고, 19세기 부터 와인이 생산되기 시작했는데, 1920년대 미전국을 강타!한 금주법 때문에 10년가량 산업이 주춤한적이 있었다. 금주령이 발발하고, 생계가 막막해진 와이너리들은, 이 기회를 틈타 미국 전역에 퍼져있는 이태리와 스위스 이민자들 중 가내와인메이커 가정에 포도를 보내어 소득을 만들어냈다. 무언가 금지되었을 때, 틈새 시장은 늘 생기기 마련이다. 어쨌든, 1931년에 금주령이 풀리면서 포도값은 급락을 하고. 이 때, A. P. Giannini - 뱅크오브아메리카 설립자 - 가 흑기사처럼 나타나 나파지역에 와인산업을 재건설하여 오늘날의 눈부신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한다. 위키피디아 曰.

Napa에 도착하여 St. Helena길에 들어서면 넓다라게 펼쳐진 포도밭 위에 듬성듬성 자리잡고 있는 멋있는 건물을 볼 수 있다. 강렬하게 내리쬐는 태양에 주춤하지 않고 그 열을 반사라도 시키는양 반짝반짝 빛 나는 초록 나무들. 이 나무 종대를 양쪽에 두고 St. Helena길을 달리다 보면 (물론 천천히 가야 구경을 하면서 갈 수 있다), 세상에 근심이라는게 있나 싶어진다. 아래 사진들은, 그런 분위기에서 찍힌거다. 인생에서 걱정이 빠진 모습. 적어도 이 곳에서 방문객 역할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나파에 올 때 마다 처음 들르는 곳은 V. Sattui Winery이다. 여기 와인이 특별해서는 아니고, 아름다운 피크닉 장소가 있기 때문이다. 이날도 날씨가 정말 환상이었고, 피크닉 마당에 벤치가 모두 꽉 찼다. 여기 저기 그릴에서 바베큐 연기가 피어 오르고, 그 앞으로 사람들이 줄지어 섰다.


우리는, 고기를 안 먹기에 안으로 들어가서 피크닉 거리를 준비했다. 샌드위치, 각종 샐러드, 빵, 올리브오일, 치즈 등등 다양한 음식이 구비되어 있는 안쪽 매장에도 사람이 정말 많았다. 주말이니까.

My Love

치즈 진열대 앞에 서면,
욕심과 흥분에 선택이 너무 어려워지지만,

Wisconsin (왼쪽)과 캘리포냐 산 Black Mountain을 골랐다.

그리고 바게뜨와 올리브/모짜렐라 샐러드, 아티초크 샐러드를 사고,
집에서 준비해온 포도와 블루베리로 상을 차렸다.

바게뜨를 작은 크기로 자르고 한 쪽을 반으로 갈라서 블랙마운틴 치즈와 올리브, 선드라이드 토마토를 넣어 꾹 눌렀다. 베어 물기에 질겼지만, 움, 마침내 한 입 사이즈로 입안에... 올리브와 치즈와 빵이 섞이는 맛이란, 아.. 이거 먹고 그냥 집에 가도 좋겠다. 

물론, 100마일 (160킬로미터)이나, 그것도 주말이라 가득 밀리는 고속도로를 운전해준 정은언니한테는 아주 얌체같은 소리다! 나는 전날 잠도 잘 못잤고 해서, 뒷 자석에 앉아서 선글라스 끼고, 안 자는척 하면서, 쿨쿨 잤다.

두 번째 조합은 위스콘신 치즈에 아티초크 잎사귀. 냠냠.

보통 여기서 피크닉을 할 때는 V. Sattui 와인을 사서 함께 마시는데,
우리는 그냥, 물만 마셨다.

자리 잡을 때 비어 있는 벤치가 없어, 그냥 좀 여유있어 보이는 벤치에 합석을 했는데, 옆 자리에 있는 여성 하나가 프랑스 출신이다.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한 그녀와 갑자기 불어로 !!#$$#^&&*()*&^% 대화를 시작한 바바라. 100단어 중 하나 정도만 들렸다. 그리고,  mon amie Alice. 

밝은 초록색에 이쁜 스카프가 매달려 있는 가방. 탐나. 흐.

요기는, V. Sattui안에 랜드마크인 분수대이다.

2002년 9월 14일
같은 분수대에서 찍은 사진.

8년전 이 날은 비교적 한가했다. 8년.

밥먹고, 사진을 몇 장 찍은다음에 이동한 곳은,  Castello di Amorosa
앞에 갔던, V. Sattui주인아저씨가, 몇 십년동안 중세시대 성을 공부하고 전 재산을 털어서 이태리 스타일로 지은 야심작이라고 한다. 모든 재료는 이태리에서 공수하여 1993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2007년에 완성. 이 안에 방은 107개이고, 그 중에 고문실 (torture chamber)도 있다.  캐슬 안내글에 "authentic castle"이라는 것을 엄청 강조하는데, 21세기에 중세시대 건물을 재현했으면서 그걸 왜 정통이라고 우기는지 모르겠다. 몇 백년을 거친 사람의 흔적이 묻지 않은 이 공간은, 그저 theme park로 느껴질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큰 돈을 들여서 왜 이런걸 짓고 싶은지, 사뚜이 아저씨의 심정은 
내 이해할 수 없지만, 
16불 내고, 캐슬 구경하고 다섯가지 와인 테이스팅은 괜찮았다.

그리고, tasting bar에서 만난 Vincenzo Coppola. 
tasting bar에서 서빙하는 다른 직원들은 다 미국인인것 같았는데, 우리는 운좋게 이탈리안인을 만났다. 좋다는 것은, 이탈리안인의 특유한 경쾌함이 즐거웠던. 이 와이너리에서 일하기 위해 3년전에 미국에 왔는데 집이 너무 그립다고 한다. 고향 음식과 친구들. 크리스마스 때 한 달간 나폴리 집에 간다고, 기다리고 들떠있다.

포도 밭

한국에서 귀여운 포도밭은 보기 힘들지만, 
산은 저거보다 훨씬 멋있다.

와인 만드는 포도

하나 따 먹어보려 했는데,
바바라가, 아마 농약이 많이 묻어있을꺼라고, 금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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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또의 추억

Posted 2010. 8. 26. 14:12
8월 20일 금요일,
이날 처음으로 Cal Train을 타 보았다. 북으로 샌프란시스코에서 남으로 길로이/Gilroy (마늘산지로 유명한 곳) 까지의 구간을 연결하는 기차이다. 이 동네 살면서 멀리 - South Bay 쪽에서 샌프란시스코사이 - 출퇴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한다. Santa Clara역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는 시간대 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1시간 15분정도 걸린다. 

나도 뚜벅뚜벅 걷는 걸 좋아하지만, 바바라는, 정말 에너지가 넘쳐난다. 처음봤다, 나보다 센 사람. 이날 샌프란 기차역에서 (4th & Townsend)에서 Market까지 걸어갔다가, Market에서 Embarcadero & Green 까지 걷고, 다시 Market으로 와서, Mission & 4th 까지 - 장장 3시간을 넘게 걷기만 했다. (그리고, 저녁 먹고, 얼떨결에 두시간 가량 더 걸었다.)

그리고, 저녁은 Mission District에 있는 멕시칸음식을 소개 받아서 가기로 하고. 다행히, 버스를 탔다. 샌프란시스코의 미션 디스트릭트는 블락을 지날 때 마다 여기는 ghetto분위기인데, 저기는 길 건너면 화사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레스토랑 앞에 다양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밥먹으려고 줄지어 서 있다. 같은 시공간에 공존하면서 다른 세상을 연출하는 이들이다.

버스에서 내려, 말 걸으면, 아니 눈이라도 마주치면 해꽂이 할 것 같은 청년들 무리를 무사히 지나서, 서너블락을 또 걸어서, 드디어 식당을 찾았다.

515 Valencia St.

이런 메뉴를 보고 음식을 고르면, 바로 즉석에서 부리또 조합!을 해준다.

바바라와 나는 둘다 super veggie burrito를 골랐다.
콩, 밥, cheese, guacamole, tomato, lettuce, sour cream, 등등 고기 아닌 것은 대략 다 들어간다.

토띠야에 내용물을 넣고 두르르 말면, 김밥 한 줄 모습이 된다.

김밥 싸는 것과 비슷하나,
김밥보다 훨씬 쉽다. 일단 밥을 고르게 필 필요가 없다. 날라가는 밥이기 때문에.
스륵, 들어갈 재료를 후다닥 토띠야에 얹어서 말면 완성.

콩과 사우어크림과 아보카도 과카몰 그리고 살짝 녹은 치즈....가 어우러져...
yum!

내가 먹은 부리또 중에서 최고의 부리또는... 캘리포니아 식당이 대부분 그렇지만, 내가 예전에 일했던 스시레스토랑도 주방 및 설겆이 일은 멕시코 사람들의 몫이었다. 그들은 손님과 접촉이 없으며 주인과 서빙직원들과도 많은 소통을 하지 않았다. 

내가 일했던 식당의 주방직원들은 점심 영업 전이나 오후에 틈이 날 때 홈메이드 스타일 부리또를 만들어주곤 했다. 토띠야는 그릴에 살짝 굽고, 내용물은 그날에 신선한 재료에 따라 달랐다. 치킨, 아보카도, 토마토, 양상추 등등. 들어가는 내용물은 간단해보였는데, 둘둘 말아 건네받은 부리또를 한 입 앙-- 물면, 아직도 그 맛의 기억이 생생하다. (후룹, 침이... 고인다.) 부리또는 내가 자라면서 먹은 음식은 아니지만, 사먹는 것과는 정말 차원이 다른 창작성과 정성이 깃들은게 내 혀로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주방에서 일했던 사람들은 몇 달 일하고 돈 벌어 멕시코 고향으로 갔다가, 또 몇 달 후에 돌아오곤 했다. 주방에 여러 사람들이 거쳐갔지만, 필립과 모나코와 알베르토는 꽤 오랜 시간을 함께 지냈다. 그 때 (그리고 지금도) 내가 아는 스패니쉬는 gracias와 burrito가 전부였고, 그들도 영어가 그다지 편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주로 눈빛과 미소로 소통을 했다. 그래서 유난히 그들의 까만 눈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레스토랑 실내 분위기 두 컷:


515 Valencia St
(between 16th & 17th St)
San FranciscoCA 94110
Neighborhood: Mission
(415) 863-8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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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avorite Dessert

Posted 2010. 8. 20. 16:53
바바라와 둘이서 Mountain View로 향했다. 
갔더니 다운타운에서 찻길을 다 막아놓고 무슨 축제를 하고 있다. 
장터처럼 야채, 과일, 꽃, 옷가지와 애완동물들을 데리고 나와서 파는 부스들이 줄지어 서있다.

이런 신기한 자동차들이 주욱 들어오더니 차로 중간에 폼나게 자리를 잡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처럼, 사진을 찍어댔고, 차 주인을 붙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내가 보기에 가장 이뻤던 차는 얘. 앞 모습도 찍고 싶었으나, 길건너기 귀찮아서 그냥...
주인(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차를 운전한)아저씨를 보라. 티셔츠 색깔을 맞춘게 너무 귀여우시다. 후후

무대를 설치해 놓고 공연도 있었고.
그런데 음악이 좀 후졌어서, 별로 귀가 즐겁지는 않았고.

나를 사로잡은 것은 바로:
라즈베리가 이렇게 한꺼번에 몰려있는거!! 
얼마만에 보는 라즈베리 실물인지!!!

집에 들어오는 길에 슈퍼 (Safeway)에 들려, Breyers 아이스크림을 샀다.
바닐라맛으로 프렌치바닐라와 내츄럴바닐라가 있는데,

내츄럴바닐라에는 이렇게 vanilla fleck이 보인다.
이 아이스크림에 생 라즈베리를,

얹는다.

맛을 설명을...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고.
후후후 ^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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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ner w/ Two Vegetarian Ladies

Posted 2010. 8. 20. 16:06
오늘은 두 명의 여인들과 저녁식사를.
모두 채식주의를 강력히 선호하는 친구들이다.

Cafe Yulong in Mountain View Downtown
@ Dana and Castro Street

낮에는 태양이 강렬하게 내리쬐 살갗이 뜨거웠는데, 해가 지면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쌩쌩부는 바람은 아니고 차가운 바람. 그래서 부르르 떨었다.
너무 배가 고파졌고...

먼저 누룽지탕 - sizzling rice soup으로 시작,
웨이터 아저씨가 누룽지와 국물을 따로 들고오시더니만,
내가 누룽지를 살펴보기도 전에 누룽지를 숩에 확 부어버리셨다.
바삭한 누룽지의 모습은 캡쳐할 수가 없었고.

두번 째 애피타이저로 - 스프링롤.
이걸 시킨 바바라는 월남식당에서 나오는 라이스페이퍼랩으로 만든 스프링롤을 기대했으나,
튀겨져 나온 모습을 보고 약간 실망.
그러나 껍질이 매우 바삭하고 안에 야채도 맛있었다. 만족.

이건 내가 시킨 거 - 심플 무슈/Simple Mushu
까만건 오이스터 소스인데, 굉장히 짜다. 사실 요리할 때 볶음 양념으로 넣는 것이니, 바로 입에 닿으면 무쟈게 짤 수 밖에. 토티야 같은 팬케이크를 펼쳐서,

이 야채를 얹고, 소스를 살짝 (나는 너무 많이 발라서... 흡.. 너무 짰음).

그리고 이렇게 싸기. 
(사진 색깔은, 식당의 조명이 어정쩡 하였기에, this is the best I could do. No comment please.)

정은언니가 시킨 Northern Vegetable Garden, a.k.a. 북쪽야채밭...쯤 되겠다.
카메라를 음식위에 대니 렌즈에 김이 껴서... 이렇게 되었다네.

위에 하얀게 대략 순두부같은 bean curd라는 것인데,
웨이터 아저씨왈, 너무 뜨거워서 뭉게졌다나. ??? 
현미밥과 함께, 맛은 좋았음.

미국에 온 실감 중 하나: fortune cookie. 
옛날에는 포츈쿠키를 다 먹었었다. (머, 그 때는 다른 것도 다. 안먹는게 거의 없었지.)
언제부턴가 과자는 먹지않고 바로 부셔서 안에 종이만 본다.
이게 오늘 나온 얘기이다. 예전에는 그럴 듯한 말이 꽤 있었던것 같은데, 이거 만드는 사람들이 이제 밑천이 떨어졌나보다. 이게 멍미? 라고 말하고 싶다.
그냥 멀쩡한 걸로, 리사이클이라도 하시지.

카페율롱에 대한 추억: 
싸이를 처음 시작했을 때 여기서 찍었던 사진을 올렸던 기억이 났다. 
날짜를 보니,  사진을 올린날짜가 2003년 11월 18일이다.

오른쪽 끝에 두 명이, 정은언니와 태훈오빠

여기서 그 때 공짜로 고구마마탕을 줬다. 경쟁 치열하게 열심히 먹었던 기억. 얌~


Cafe YulongAddress:
743 West Dana Street, Mountain View, CA 94041-1303; (650) 960-1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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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N-Out Burger / 인앤아웃 햄버거

Posted 2010. 8. 19. 17:39
대장금에서 한상궁 마마님께서 사람의 몸에 들어가는 음식을 갖고 장난치는 것이 아니라고 그렇게 엄하게 말씀하셨었거늘, 돈을 벌기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자들은, 음식을 갖고도. 쉬이 상상할 수 없는 방법과 수단을 동원하여 못할 짓을 한다. 기업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의 영향을 받는 공권력도 식량의 상품화에 톡톡한 한 몫을 하고 있는 현실이다. 

사람 사는데 악이 존재하거늘, 그래도 먹는 것 같고는 정말 안 그랬으면 좋겠다. 식량의 정치에 관련된 정보를 접하면서 가려먹고 싶어지는 음식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데, 그렇지만 그렇게 따지는 논리에 허구점이 있는 것도 인정을 하는 바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로 촛불사건을 겪은 후로는, 늘 즐겨먹던 고기가, 먹기 싫어졌다. 그냥, 가끔 먹는다. 고기가 먹고 싶어서 절육식 하지 못한다기 보다는, 한국에서 채식주의자로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한국의 채식주의자에 관한 일화]

아무튼, 미국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먹을것으로, 몇 주전 부터
인앤아웃 햄버거를 찍어두었다. 가끔 먹는 고기를 햄버거로 섭취한다는 것은 좀 그렇지만, 그래도 인앤아웃은 미국을 떠나서, 캘리포냐를 떠나서 종종 생각이 나던 음식!이다.  

최근에 개점을 한 영업장이지만, 인앤아웃 로케이션 모양은 대략 다 똑같다. 550 Newhall Dr., San Jose, California


1948년 --
해리 & 에스더 스나이더 부부는 단순한 컨셉으로 첫 번째 인앤아웃 버거 가게를 개업했다. -- "반짝반짝 빛나는 청결한 장소에서 고객에게 가장 신선한 최고급의 음식을 친절한 서비스로 제공하는 것." 이 모토는 가업으로 3대째 내려오고 있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고,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이 말에 신뢰를 갖고 열렬한 지지를 표하기도 한다. 자연히, 마케팅/광고비용이 크지 않을 수 밖에. 미국에서 자기 동네에 체인레스토랑이 들어오는 것을 격렬히 반대하는 지역주민이나 단체들도, 인앤아웃은 "다르다"며 입점을 환영한다.

In-N-Out은 현재 미국 전역에 249개의 영업점을 두고 있고, 모두 다 본사에서 직영으로 운영한다. 이들의 전략은 캘리포니아 주 볼드윈 파크에 위치한 물류센터에서 식재료가 24시간안에 차로 운반될 수 있는 거리에만 개점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창업한지 60년이 넘었지만, 미국에는 캘리포니아, 아리조나, 네바다, 유타에서만 볼 수 있고, 다음 단계로 텍사스 주 달라스에 오픈할 경우 새로운 물류센터를 세울 계획이라고 한다. 

오랫만에 찾은 인앤아웃에서 내가 주문한 것은, 치즈버거 위드 그릴드 어니언:

내가 인앤아웃을 포스팅한다고 하자, 지금 나를 먹여주고 재워주고 있는, 베쥐테리언 정은언니가 옆에서 한 마디 한다. Food, Inc.라는 다큐멘터리에 보면, 미국에서 도축시장은 소수의 대기업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최상급 식재료를 사용한다고 내세우는 인앤아웃도 이러한 시장의 체제에서 얼마나 자유로운지는 모른다는 사실. 

하지만 인앤아웃의 프렌치프라이즈 만큼은 현장에서 생감자를 직접 잘라서 튀겨준다. 
갑자기 감자만 주목. -_-

어쨌든, 그리고, 미국의 패스트푸드 문화에 대해서, 그 장의 선두주자 맥도날드에 대해서 맹 비난을 퍼부었던 에릭 슐로서의 패스트푸드의 제국에서도 인앤아웃이 natural & fresh 재료를 사용한다고 하며 영업장의 청결성과 회사의 직원대우를 높게 평가한 바 있다.

인력관리 측면을 보자면. 2008년 1월에 최저임금조례가 개정되면서 캘리포니아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8.00로 인상되었다. (내가 미국을 떠났던 2004년 12월에 $6.75였음). 인앤아웃에서는 starting pay가 시간 당 $10.50이다. 전체적으로 임금스케일이 좀 더 높은 샌프란시스코는 시간 당 $12. 

반면에 맥도날드의 경우, 미국 사회에서 맥도날드가 갖는 문화적 상징성이 크고, 미국의 노동인력 중 8명 당 한 명 꼴로 맥도날드에서 알바한 경험을 갖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McJob"이라는 용어는 대체 인력에 쉽게 갈아치워 질 수 있는 말로 통한다. 2003년에 Merriam-Webster's Collegiate Dictionary는 "McJob"이라는 단어를 사전에 등재하여, "a low-paying job that requires little skill and provides little opportunity for advancement"로 정의한바 있고. 맥도날드 측은 강력히 항의하며 맥잡은, 책임감.을 가르치는 직업이라고 반박했단다. 

책임감. 이라는 단어에 수식어를 좀 붙여주지 그랬어. 소통이 되게. 

아무리 올바른 음식이라도, 맛에 대한 얘기를 안 할 수는 없다.
맛. 물론 재료가 좋기 때문에 맛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릴드 어니언, 볶음양파의 맛이 햄버거의 맛을 한층 더 풍미스럽게 해...주었다.
사실 다른 햄버거를 먹어본지가 너무 오래되서... 비교가 어렵다. 
550 NEWHALL DRIVE
SAN JOSE, CA 95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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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Posted 2010. 8. 14. 00:25
어제 먹은 음식의 일부를 올려보련다.

점심 때, 소영언니를 만나서 쌈지스페이스 지하에 있는 두부식당 (이름은 까먹었다)에 가서 정식을 먹었다. 애피타이저로 초록색 부침이 나왔다. 맛은 밍숭맹숭. 약간의 풀맛과 밀가루 맛이 양념간장과 어울어져 혀에, 부친개인양 다가갔다. 그래도 색깔로 일단 먹어준다.

이 식당은, 음식은 참 훌륭한 편인데, 여느 한식당 처럼 너무 정신없다. 그런데, 그게 바로 한국의 식당 분위기인데 왜 나는 가는 곳 마다 무언가 내 기준에 의해 생성된 완벽한 조화를 기대하는지 모르겠다. 마이 프라블럼, 아이 노우.

상추와 닮은 풀이 정확히 상추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쁘지만은 않게 자유롭게 키워진 잎사귀 같았다. 그 옆에 두부, 완전 싱싱함. 입에서 사르르 녹는 맛이 일품!!  메인이었던 도야지 고기. 요즘 워낙에 고기가 땡기지 않아 많이 먹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맛 있었다. 쫄깃한 육질은 아니었고, 치아가 부실한 내가 먹기에 좋은, 스르르 허물어지는 육질이라고나 할까.

그 다음에 경운동 74 (청담동 고센 맞은편에 세븐티포는 아직 있나, 급 궁금)에서 커피를 투고해서, 러그져리어스하게 사무실을 혼자 쓰는 소영언니 오피스에 가서 오후를 보냈다.

언니의 퇴근 시간무렵 - 그 때 까지 거의 같이 놀기만 했지만 - 인사동 길로 다시 갔다. 늘 무언가 어설픈 분위기의 인사동 상점을 둘러보며 미국에 갖고 갈 선물을 장만했다. 선물을 준비하는 것이란 즐겁지만, 의무감이 과중되면 피곤한 일이 된다. 특히, 인사동 같은 분위기에서 서둘러야 할 때는. 인사동이 전통의 거리라고 많은 한국 사람들이 외국인에게 안내하고, 외국인들도 머스트씨 사이트로 들르는 곳이지만, 이 곳이 얼마나 한국을 알려주는지 모르겠다. 아니 안다:  쪼끔... 알려줌. 훕!

이번에 미국에 가는 메인 이유인 Mr. Burnside 선물은 고심 끝에 식탁 플레이스매트를 골랐다. 93년에 미국에 처음 갔을 때 ESL선생님이셨던 번사이드 할아버지와 그의 부인은 엄마 다음으로, 어떤 면에서는 더 크게, 내게 집에서 만드는 음식과 hospitality에 대한 긍정적인 영향을 주신 분들이다. 늘 주위 사람들을 초대해서 소박한 밥상을 나누고 교재하는 분들. 3년간 췌장암 투병을 하시던 할머니는 올해 1월에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전수받은 요리 및 베이킹 기술로 계속해서 손님 접대를 하고 계신다.

한국식 밥상은 반찬을 가운데 두고 다 같이 나누어 먹기 때문에 젓가락 끝에 잡힌 음식이 그릇에서 부터 입안으로 인테이크 되기까지 이동하는 경로에 조금이라도 떨어질 확률이 높으나, 서양스타일은 음식을 자기 앞에 있는 접시에 덜어 놓고 먹기 때문에, 앞 접시에서 바로 입으로 옮기면 끝이기에, 식탁에 예쁜 천이나 플레이스매트를 깔아도, 괜찮다. 자주 빨지 않아도 된다. 

몇 달전에 결혼한 친구 피터의 선물도 같은 것으로 골랐다. 

얘네들은 구매한 곳에서 포장을 해주셨다. 정사각형이 프랑스에서 샌프란시스코로 놀러오는 바바라에게 줄, 비단 (?) 보석상자이고, 그 밑에 납작한 것은 번사이드 할아버지께 드릴 안경집이다. 보자기 천으로 만들어진 것. 

그리고 나를 위해서 - 부채. 3년 전에 하늘색 부채를 사서 (1,000원) 찢어질 때 까지 쓰고 버렸드랬다. 그리고 올 해, 몇 주 전에 새로 장만했는데, 글쎄 며칠 쓰지도 못했는데 어느날 밤 사라져버린것이다. 인사동 간 김에 똑같은 것으로 다시 샀다. 얘는 2,000원. 200% 인상가. 

찍사 소영언니 曰: "말썽쟁이 흑인같구나."

피곤한 쇼핑을 마치고, 인사동 길에 새로 문을 연 오설록에 갔다. 
지금 내가 웃는게 웃는게 아니지만, 
내 머리처럼 정신없고 부시시한 내 마음을 잠시 밝혀 준,

홍차아이스크림이다.
깔끔한 맛의 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내 입맛이 참으로 자극적이고 센 것에 길드여진것 같다고 다시 생각함. 
(오설록에 대한 평: 위치, 넓은 공간, 맛, 그리고 가격과 견주어 볼 때 언니오빠들의 서비스가 참 걸맞지 않았다. 2-3년 전쯤, 강남 스타타워에 자주 가던 때에, 거기 오설록에서 일하던 아가씨가 아직도 기억난다. 너무나 싹싹하고 상냥하고, 무엇보다 오바스럽지 않으면서 편안한 서비스를 해 주던. 내가 가게를 열면 꼭 그녀를 고용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아직도 거기에 있지는 않겠지? 생각해 보면, 오설록에서 직원 교육을 잘 시켰다기 보다는, 그녀는 그냥 그랬던것 같다. 자기일을 그렇게 야무지게 해내는.) 

이 날의 인사동 투어는 오설록에서 끝나지 않았다. 달짝지근한 아이스크림과 와플을 먹은 우리는, 삼청동으로 올라가서 떡볶이를 먹었다. 즉석떡볶이를 먹고. 여기(선재미술관 옆)까지 오니, 얼마전에 개업한 "카페 코"가 생각이 났다. 내가 커피를 배웠던 곳, 커피스트(성곡미술관 앞)의 시스터 샵. 총총 선재미술관 앞에서 우측 가회동 방향으로 걷다가 헌법재판소 방향으로 우회전하여 직진.하다가. 신한은행과 헌재 사잇길 사이로. 말만 듣고 더듬어 갔는데 쉽게 찾았다. 카페 파사드에 달려 있다던, 코 모형이 킁킁 반겨주었다. 갔더니, 조윤정 샘이 바쁘게 직접 커피를 내려주고 계셨다. 내 뽀글이 헤어스탈을 적극 좋아해 주던 분들 중 1인. 

집에 와서 포장을. 2008년 전주에 갔을 때 15,000원어치 한지를 사왔드랬다. 그 때 부터 포장은 모두 한지로 하고 있다. 디자인 포장지 보다 우선, 싸고, 이쁘다. 2년을 넘게 썼더니 이제 이쁜 색깔이 별로 남지 않았다. 새로운 서플라이를 준비해야 할 때.

신혼부부 선물은 연분홍에 진분홍 띠로.

번사이드 선생님꺼는 무늬 한지와 노끈.

생각해보면, 선물포장 만큼, 뜬금없는 행위도 없다. 싸는 사람 만족이랄까? 꼼꼼히 재단해서 각 잡고 모양을 만드는데 적지 않은 정성과 시간이 들지만, 이 물건이 전달되면 받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내용물일테니. (특히, 미국사람들은, 선물을 받으면, 포장지를 부욱-- 찢어버리는 경향이 있음)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기대치가 살짝 어긋난다고 할까? 포장을 하고 나면, 선물을 고르는데 들어간 수고와 돈은 미미해 보이기도 한다. 

6년만에 처음으로 미국에 간다. 6년 동안 나는 많이 변하고 늙었지만, 미국은 왠지 똑같을 것 같다. 미국이 나라는 저래도, 미국사람들은 좋은 사람들 진짜 많다. 내가 좋아하고 내게 중요한 사람들을 여럿 만나러 가는데, 기대가 별로 안 생긴다. 지금 여기에 두고 가는 과제와 사람들이 지금 내게는 꽤 무겁다. 그리고, 나는 너무 현실에 충실한 것인지, 새로운 장에 settle down하면 내가 떠나온 곳에 대한 미련이 참 없다. 흠. 그 말은 또, 여기를 떠나 미국에 가면, 한국을 살짝 잊어버리고 저기서 만나는 공간과 사람에 집중해서 시간을 보낼 수도 있겠다. 꼭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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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윤의 봄눈

Posted 2010. 8. 7. 13:01


어제 라디오에서 듣게 된 노래. 
박지윤이 작년에 앨범을 낸 것도 몰랐다. 

내가 박진영을 아주. 좋아했던 시절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 기숙사 방에서 박진영 1집을 테이프 늘어지도록 듣기도 했었고. 그 때 창밖에 쌓인 눈과, 기말고사에 압박을 받았던 기억이 너무나 생생하다. 그런데, 대학교 1학년 땐가, 아무튼 2000년 이전, 청담동 안나비니 - 지금도 이 레스토랑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 거기서 밥을 먹는데 우리 테이블 옆에 박진영이 혼자서 앉아있었다. 계속 전화를 하면서. 대부분 영어로. 너무나 아는척을 하고 싶었는데, 친구들이 말렸다. 흐. 끝내 못하고, 우리는 그냥 맹수다를 떨다가 일어서는데 (아, 근데, 무슨 상품의 시장점유율을 논하고 있었던게 어렴풋이 기억난다. 음, 이걸 왜 기억하는거지),

그 때 박지윤이 들어왔다. 
긴 생머리를 풀고, 얌전한 스타일의 치마와, 그 당시 페라가모 구두를 신고 딱딱하게 각진 가죽백을 들고 다니던 여성들의 분위기였다. 이, 동영상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질끈 동여맨 머리, 믹스앤매치로 주렁주렁 낀 팔찌와 검은색 매니큐어 - 그런데 너무나 인형같이 이쁜 박지윤은 와일드 해 보이지 않는구나. 

여튼, 노래 좋다. 
박진영과 루시드폴 -- 
박지윤이 6년동안 쉬었다고 하는데,  
쉬면서 생각하고 고민하고 성장한 과정을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당분간 이 노래를 계속 듣게될 듯. 루시드폴이 만든 노래, 가사를 친히, 복사한다.
자 내 얘기를 들어보렴 따뜻한 차 한 잔 두고서
오늘은 참 맑은 하루지 몇 년 전의 그 날도 그랬듯이
유난히 덥던 그 여름날 유난히 춥던 그 해 가을 겨울 
계절을 견디고 이렇게 마주 앉은 그대여
벚꽃은 봄눈 되어 하얗게 덥힌 거리
겨우내 움을 틔우듯 돋아난 사랑
처음으로 말을 놓았던 어색했던 그날의 우리 모습 돌아보면 
쑥스럽지만 손끝에 닿을 듯이 닿지 않던 그대는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인데 
하루에도 몇 번을 내게 물어봐도 나는 믿고 있어
떨어지지 않는 시들지 않는 그대라는 꽃잎

처음으로 말을 놓았던 어색했던 그날의 우리 모습 돌아보면 
쑥스럽지만 손끝에 닿을 듯이 닿지 않던 그대는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인데
하루에도 몇 번을 내게 물어봐도 나는 믿고 있어 
떨어지지 않는 시들지 않는 그대라는 꽃잎

그대라는 꽃잎
어제 가족들이 놀러가서 오랫만에 혼자만의 아침을 맞았다.
왜 이렇게 좋은지. 후후 
블루베리 머핀을 만들었다. 내가 먹으려고 만든 것은 백만년만이다.
커피 내리고,
적당히 물컹하고, 당분이 농후한 복숭아와 함께.
오늘, 잘 놀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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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2010. 8. 2. 18:15
얼마전에 자전거를 1년만에 꺼내면서, 바람이 다 새어 나간 바퀴에 바람을 넣었다. 한 이틀 씽씽 탔나. 앞 바퀴에 바람이 다시 빠진거다. 그래서 다시 가서 바람을 넣고, 왔는데. 그 다음날 또 샌거다. 그냥 심하지 않아서, 요가수업도 늦고 해서 그냥 타고 갔는데, 약 3km의 길, 가는 길에는 무사히 갔으나 요가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앞 바퀴 타이어가 윌 (자전거도 윌이라고 하나)에서 쑥 빠져나온 것이다.

그날, 점심 약속이 있어 서둘려야 했는데,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려고 해도 안 태워주고, 지나가는 택시도 자전거를 붙잡고 서있는 나를 보더니, 기사 아저씨가 고개를 도리도리 하시더니 쌩 가버린다. 하는 수 없이 정류장 근처 아파트 단지 - 즉, 남의 동네 -  자전거 세워두는 곳에 낯설은 자전거 더미를 비집고 내 자전거를 세워두고 왔다. 

이틀 쯤 방치하다가, 오늘 차를 몰고가서 자전거를 태워서 자전거 포에 갔다.
아저씨, 이거 이렇게 됐어요.
"아, 그려. 두고 가. "
"언제 올까요?"
"한 한 시간 후에 와."
"네에. 얼마나 들어요?"
"여기 물 넣어보고 그냥....(못 알아들음)...하는 거면, 3,000원이고, 다 바꿔야 하면 만원이야."
"네. 그럼 이따가 올게요." 

몇 시간 후에 자전거를 픽업하러 가면서, 난 은근히, 바퀴를 다 갈았으면 했다.
아저씨가 그동안 바람도 몇 번이나 공짜로 넣어 주시고,
그 자전거포를 보면 장사가 잘 되는지 안 되는지 몇 년째 거기에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냥, 그 아저씨 수입에 보탬이 되고 싶은... 오지랖. 

그와는 다르게, 지난 주에, 오래된 치마를 고치러 갔다. 허리가 너무 헐렁해져서리. 흐. 동네 백화점에 딸린 수선실인데, 작년에 대학교 1학년 때 산 겨울 원피스를 멋지게 고치는데 성공하여 다시 찾았다. 
이번에는 치마를 4개나 들고 갔는데, 글쎄, 세상에나, 하나에 2만원씩 달래시는거다.
도합 8만원. 헉헉... 
그 중에 하나는 공짜로 얻은 옷이고, 두 개는 예전에 캐나다 출장 갔을 때 세일해서 하나에 20불 씩 주고 샀던거 같은데. 버릴 수도 없고, 울며 겨자먹기로, 8만원 쓰기로 했다.
"4개나 고치는데 좀 갂아주세요."
"원래 하나에 25,000원씩 받아야 되요. 근데 깎아준거에요."
"카드로 결제해도 되요?"
"카드기계가 고장났는데. 이거 봐봐요. 코드도 빼놨어 안 되어서."
"여기요. 현금영수증 해 주세요."
".... (옆 사람 (직원)한테) 얼만데 그래...?" 
얼버무린다.
내 돈을 받으면서 서랖을 여는데, 돈이 수두룩 쌓였다. 
현금영수증을 안 줄 태세여서, 나 스럽지 않게, 그냥 깨갱, 고친 옷을 입어보러 탈의실로 갔다.
어짜피 내가 거기서 따져도, 나 하나 영수증 끊어주고 말면 뭐하나.
내가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저렇게 쌓인 현금에서, 탈세가 얼마나 이루어질까 하는... 생각이 안들을 수가 없었다. (여기서 이건희의 탈세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자.)
집에와서 백화점 고객상담실에 전화했다. 임대하는 공간이라 직접 제재할 수는 없는 사업장이나, 말은 해본다고. 어쨌든.

자전거를 찾으러 갔다.
"아저씨, 다 됐어요?"
"응, 여기 이게 바람새는거 막는거 이게 헐렁해졌드라고."
"얼마에요?"
"됐어, 그냥 가져가."
"아니에요, 아저씨 받으세요."
"아니야 됐다니까." 

작은 자전거포에서 늘 바삐 일하시는 아저씨. 풍기는 공기가 참 부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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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2010

Posted 2010. 8. 1. 01:03

December by 짙은

2010.07.19 ::: 가야산 해인사 앞


더운 여름이지만,
덥기 보다는 예측하기 어려운 여름이다. 
더웠다 좀 더위가 수그러 들었다가. 비가 내리다가, 장마처럼 죽 오는 것도 아니고, 오다 말고.
날씨에 대해 지니고 있는 기존의 생각은 다 리셋트해야 하나 보다.

나는 나름 내 몸에 샘솟는 땀과 잘 지내고 있는 듯 하다.
머 내가 막아버릴 수 없으니까. 
여름을 이렇게 저렇게 잘 보내고, 
시원한 천고마비 가을을 꼭 맞이하고 싶다.
그저, 올 봄이 머무르지 못하고 가야했던 것 처럼,
가을은 그러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길. 모든 오바스러운 것은, 안녕.

내가 잡을 수 없는 시간에 대한 타령도 이제는 그만.
차가운 12월이 왔을 때는
사랑도 일도 좀 더 밝아져 있으면 좋겠다.




머, 아님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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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을 불러내야 할 때

Posted 2010. 7. 29. 17:42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by 장필순

커피 뜸 --
커피를 필터에 담고 표면이 평평하게 한 번 쉐이크 한 후,
커피의 가장자리 1cm가량만 남겨두고 타원을 그리면서 물을 붓는다. 혹은 얻는다.
이 때 더해지는 물의 양은 커피 15그램 기준으로, 15그램이 적당하다.
처음에는, 타원을 고르게 그리면서 물을 붓는 것도 쉽지 않지만, 물의 양을 15그램에 맞추는게 참 어렵다. 잘 부으면 뜸을 들이는 30초 동안 물이 필터 아래로 빠지지 않는다. 물이 자신의 맛을 꽁꽁 감추고 있는 마른 커피파우더 사이로 침투해가며 커피 입자에 숨어 있는 맛을 끌어내온다. 그러면서 맛을 뿜어낸 커피는 부풀기 시작한다. 

여기서 쉬어가는 코너: 심함만고의 (心涵萬古義)

빵을 구울 때 오븐 스프링이 잘 일어나지 않으면 실망스러운 것 처럼, 
커피를 내리면서 스타트에 뜸이 잘 들지 않으면 (나오지도 않은) 김이 빠진다.

커피가 물을 머금고 제 맛을 내지 못하는 상태

처음에는 커피가루의 입자굵기가 너무 가늘어서 그런줄 알았다. 커피 굵기도 영향을 미치기는 하지만, 커피의 신선도가 문제였다. 볶은지 오래되지 않은 (굳이 갓 볶은 콩이지는 않아도 된다) 커피콩을 즉석에서 갈아서 사용할 때 (한국에서는 이미 먼 물길 건너 온 커피이기에 최고의 신선도는 아니어도) 나름 가장 신선한 상태이다.

그동안 내가 새로 커피콩을 사서도 뜸이 잘 안됐던 이유는, 커피콩을 상점에서 갈아왔기 때문이다. 집에서 갈기가 너무 귀찮아서. 그냥 통째로 갈아놓고 쓰고 싶었는데, 역시 무언가 노동이 더 필요했다. 분쇄한지 시간이 지난 커피가 잘 부풀지 않는 이유는, 커피콩을 볶을 때 콩안에 생성된 가스와 연관이 있는데 이 부분은 자세히는 아직 모르겠다. 추후에...

커피스트의 하우스블렌드 이제, 홀빈을 사서 집에서 간다.

그렇지만 분쇄한지 시간이 지난 커피가루도, 로스팅이 잘 되었고 볶은지 오래 되지 않았으면, 뜸 들이는 단계에서 부풀지는 않더라도 그 뒤에 물을 부울 때 거품이 잘 일면서 커피가 그 때 불어나기도 한다.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상태에서 커피의 신선도를 갖춘 후 뜸을 들였을 때, 잘 되면 이런 모습이 된다. 

물이 침투하면서 커피가루가 부풀었다.

그리고,
물을 붓는다.

타원으로 물을 돌리기 전에 중앙에 물줄기를 집중하면서 거품을 불러낸다. 
처음에 하얗던 거품 색깔이 갈색으로 변할 때 까지 가운데 집중한다.

커피수업 때 선생님이 내리시는 모습. 1인을 (150cc) 위해 내리는 커피와 2-3인 이상을 위해 내리는 기술은 다르다.고 한다.

거품을 위로 불러와서,
계속해서 머물게 한다. 
가벼운 거품이 커피의 안 좋은 맛을 잡아두고 있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좋은 맛만 아래로 여과 되도록.

그래서 물을 부을 때 수위를 동일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해지는 물과,
아래로 내려가는 물의 양이 다르지 않게 말이다.

커피를 배우기 전과 후에 큰 차이점 중 하나:
전에는 드리퍼위에 물울 한 꺼번에 붓고 부은 물이 다 내려오도록 기다렸다.
그런데, 그러면 커피의 나쁜 맛까지 다 내리게 되는 것이었다.
수위를 끝까지 유지하면서 내리고자 하는 양의 커피가 서버에 다 차면 (예를 들어 150 cc)
드리퍼에 남아있는 커피물은 
버려야 한다.

자꾸 버리다 보면, 별로 안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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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2010. 7. 26. 00:20
[[ 진중권님의 트윗 (10/07/25)에서: 
철학, 하면 할수록 머리가 빠개지는 학문입니다. 저 바닥으로까지 내려가 "분절화되지 않은 소리를 내지르고 싶은 심정"이 되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나중엔 도대체 우리의 언어가 과연 사유에 적합한 수단인가 회의가 드는 지점까지.... 
일단 철학은 됐고요, 
나만 그런건 아니겠지만,
단순하게 하고 싶은 얘기를 할 때도 언어라는 것이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지 못해서 답답하다. 너무. Hence, the subject of language has boggled the minds of modern/post-modern philosophers. And then, for me, there's this question of whether to think and express in English or Korean. Being bilingual, albeit imperfect, can bring complementary effects from both languages, but at the same time, it interferes with achieving excellency in either. In other words, it always feels lame. 글 쓰는데 한국말과 영어를 섞어서 쓰지 않는 것을 나름 내 철칙으로 밀어붙여 왔는데, 너무 피곤하다. And it takes too much time. So, now, whatever... Let me be. ]] 

두 세달 동안은 매주 받아서 쌓아만 놓던 뉴요커 매거진을 다시 집었다. 나가는 길에 가방이 무거워 책 한 권 대신의 목적으로. 가벼운 주간지라 어깨는 편하지만, 지하철에서 서서 얇은 종이를 한 장 씩 넘기기가 쉽지 않다. (그치만, 침 바르기는 노노)

뉴요커에서 여름 특집으로 20 Under 40 - 40세 미만의 픽션작가 20명을 선정해 단편집 이슈를 만들었다. 세대를 대표할 만한 작가들을 골랐단다. 그들-편집자-이 인정하듯이 리스트를 만든다는 것에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일단 에티오피아 출신 작가가 쓴 글을 읽고 나서 선정된 작가군을 보니 흥미롭다. 20명 중에 넌네이티브들의 출신지를 보면 나이지리아, 페루, 라트비아, 중국, 에티오피아, 유고슬라비아, 러시아가 있다. 미국이란 나라 자체가 외부의 것의 아말감이면서, 다양성 반영에 매우 뿌듯해하신다. 나도 머, 그것 부터 확인한다. 나름 병이다. 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한 압박감. 



스토리인즉슨,
뉴욕 맨하탄의 사립 고등학교에서 문학수업을 가르치는 에티오피아 헤리티지의 선생님이 평생 아버지랑 나눈 대화가 거의 없었는데,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하여 아버지에게 독백을 시작하며 그 이야기의 청중이 학생들로 옮겨진다. 그동안에 아버지에게 들은 얘기라곤 "Take this," "Don't touch," "Leave now" 등의 짧은 말 뿐. 아버지의 단편적인 조각말을 짜맞추어 학생들에게 아버지의 인생사를 들려준다. 

아버지는, 정치적인 이유로 에티오피아에서 탈출하여 (아버지에 대한 얘기는 대부분이 뻥일 수 있다. 주인공이 풀어나가는 얘기이기 때문에) 수단의 한 항구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드림"의 장소로 갈 것을 꿈꾼다. 아브라임이라는 현지인을 만나 이런 저런 도움을 받는다. 아브라임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아버지를 도와주는. 척. 하는 사람. 아버지는 수단의 한 항구에서 - 자신은 한 모금도 마실 없는 - 차(茶)를 나르기도 하고, 항구에 드나드는 짐을 나르기도 하고, 자다 보니 자기가 누운 곳이 시체 옆이기도 했고, 등등 등등등. 아브라임은 아버지에게 스트레칭을 열심히 연습하라고 한다. 몸을 구부리고 굴리고 수축하고 늘리는. 수단을 탈출할 때 배의 짐칸에 실려 목적지까지 살아서 가기 위한 생존을 위한 연습이었다. 
... my father did not actually make it off that boat alive. He arrived in Europe just as Abrahim had promised he would, but an important part of him had died during the journey, somewhere in the final three days, when he was reduced to drinking his urine for water and could no longer feel his hands or feet.
아버지는 살기 위해 정당한 방법으로 탈출구를 찾고 싶었다. 돈이 많이 들겠지. 그리고, 잡히지 않고 달아남 자체가 상대적으로 honest할 수 없는 운명이다. 정직한 방법으로 인간이 될 수 없는. 아브라임의 잔인함에 이를 갈아도, 아버지에게 다른 옵션을 없었을 것이다.
My father took the photograph from Abrahim and placed it in his pocket. He didn't say, "Of course I will do this," or even a simple "Yes," because such confirmation would have meant that there was an option to refuse, and no such thing existed between them. 
이 글을 읽으면서 추노가 생각났다. 양반의 만행에 말살당한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려는 꿈을 꾸는 노비들. 자기들 끼리 찌질하게 궁시렁거리기만 하다가, 어느날 게중에 똘똘이가 등장하여 좀 더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을 지핀다. 억압과 주눅만 알고 살던 노비들의 가슴에. 여기서 잠깐 삼천포: 쉰들러의 리스트에서 가장 기억이 남는 장면 - 무더운 날씨에 기차간에 꾸역꾸역 미여 터지게 실려가는 유태인들을 향해 호수로 물을 뿌려주는 쉰들러를 보고서, 옆에 있던 독일군이 낄낄대며 말한다. "You are being cruel. You are giving them hope." 추노에서도, 똘똘이 노비를 가칭한 양반의 하수인이 노비들의 취약점 - 인간이고픈 열망 -을 어뷰즈하여 자신들의 목적을 쟁취...하려고 했다.
By the time my father finally made it to London, eighteen months later, he had begun to think of all the men he met as variations of Abrahim, all of them crippled and deformed by their dreams....
The picture of Abrahim's daughter melted away near a large green hedge with ripe, inedible red berries hanging from it. For many nights afterward, he refused to think about her or her father. There were no rewards in life for such stupidity, and he promised himself never to fall victim to that kind of blind, wishful thinking. Anyone who did deserved whatever suffering he was bound to meet.
ripe, red but inedible. 

추노는 몇 백년전의 일이라고 하지만, 주인공의 아버지 얘기는 20세기에, 그리고 아마도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만연하던 일이다. 

인간으로 사는게 너무나 사치인 그들. 내게 적용되는 욕망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적용할 수 없는 상황에 있는 사람들. 커피를 쪼끔 파고들기 시작하면서 에티오피아라는 나라에 새로운 관심을 두게 되었지만, 내가 마시는 커피가 어떤 사람들의 손과 어떤 사람들이 밟고 다니는 땅을 거쳐서 온 것인지 막연하기만 하지만. 
 
만족스럽게 내면을 표현, 전달하는 것은 어렵다. 내 속의 정황 파악 자체가 어려울 때도 있고 말이다. 그런데 인간이 처한 원초적인 상황 설명으로 멀리있어 보이는 사람과 소통에 대한 최소한의 장이 마련되고, 머 유치하게 느껴지는 말이지만, 인생의 덫 없음을 공감하게 된다. 내가 처해서 살아야 하는 오늘과 내 가까이에 있는 사람의 오늘이 다르고, 에티오피아에서 배고파하며 오늘을 보내는 사람의 처지가 다르지만. 공감적인 행위를 그려보고, 다른 점을 느낄 수도 있고. 기본적인 해석은 서로에 대한 예를 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그니까, 호모사피엔으로서 보편적인 공감대 형성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치구박구 싸울 수 밖에 없는 것인가? (아... 무슨소리?) 그런데, 싸움은 늘 극심한 불균형의 조건에서 이루어진다. 인간의 존엄성은 쌍방소통이다. 가해자는 피해자 뿐만 아니라 본인에게도 못 할짓을 하는 것이다. 전쟁하지 말자. 군사훈련같은 것도 할 필요가 없었으면 좋겠다. 이번 군사훈련 때는 또 무슨일이 일어날래나 살벌한 염려를 웃음따먹기로 하는 국민으로 전락시키는 상황이 싫다.

내가 사는 에티오피아 커피콩이 얼마나 그들에게 도움이 될래나. 항구는 자신의 존엄성을 잃어도 크게 개의치 않는 일부 기득권으로 통제될 텐데.

섬세한 네레티브의 문학선생님 -- 읽는 내내 여성선생님이라고 가정하고 읽었는데, 읽고 나니 그 어디도 젠더에 대한 레퍼런스는 없고, 나중에 보니 작가도 남자다. Minaw가 여자 이름인줄 알았다. 

One Great Misnomer: "무상급식"

Posted 2010. 7. 25. 23:04
나눴어야 할 곳에서 나누지 못한 얘기, 
앞으로 나눌 얘기의 raw material:

쌀이 남아서 동물사료로 준다는 발상을 하는 정부를 보면, 그 동안의 투쟁을 또 무색케 합니다. 굳이 남북관계나 결식아동들의 문제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소통의 장벽을 쿵! 한 번 더 느끼게 됩니다.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무상급식”이라는 화두를 들고 나왔을 때 경남지역의 20개 시/군 가운데 10개 군 지역에서는 이미 무상급식이 실시되고 있었다고 합니다. 김상곤 교육감을 통해 국민들의 무상급식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 졌고, 우리가 알다시피, 첨예한 정책문제로 치달았습니다. 

저도 그런 국민 중의 한 사람으로서 “무상급식”하면 아이들에게 밥을 무료로 제공하는 것인가보다 했는데, 조금 들여다보니 훨씬 더 복잡하고 중요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무상급식은 결국 선거의 판도에 큰 영향을 미치기에 이르렀습니다. 무상급식에 대한 찬반을 가르는 핵심 논점을 보면 저소득층에 한정해 지원하는 시혜적 복지냐, 헌법이 보장한 보편적 교육복지로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이냐라고 하는데,
이 급식 문제를 단순히 아이들 밥 먹이는 문제로만 볼 때 해당되는 논의입니다. 

최영한 교수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를 인용하면, “무상급식의 논의는 교육적 차원을 넘어 농업의 산업적 기반을 지속가능한 모델로 바꿔낼 수 있는 기회라고 봤다. ‘학교-농가 직거래를 통해 계약 재배와 안정적인 판로가 확보된다면 가격과 품질의 안전성을 동시에 도모할 수 있다. 정부는 재정 지출도 줄일 수 있다. 이렇게 먹고사는 길을 터주면 매년 농가에 지원하는 보조금을 줄일 수 있다. 또한 학교급식을 통해 경쟁력이 확보되면 회사, 공공기관, 병원 등의 급식이나 식품가공, 외식시장에도 진출할 수 있지 않겠나. 지금의 무상급식운동에 생산자 단체가 적극 결합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무상급식”이라는 정책의 이름은 치명적인 오명입니다. 단지, 무상이라는, 공짜급식이라는 인식으로, 여당에서 “자본주의 경제체제하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경남지역의 사례를 보면, 합천군의 경우 지난해 친환경 급식 예산으로 지원한 17억원 중 6억원 가량이 지역 농산물을 사들이는 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이는 부수적으로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와 더불어 인구 이탈을 막는 효과도 보았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은 수도권에 인구 집중 현상이 일어나면서 비수도권 지역의 침체 현상이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수도 이전이라는 좋은 묘책이 있었으나, 그 것은 물건너 갔고, 차선으로 세종시 계획이 있는데, 큰 난관을 겪어 왔지요. 일단 인구가 수도권으로 밀집되는 것은 비수도권 지역에서 생활토대가 마련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농가나 지역의 특성을 살리는 경제활동이 중요한데, 농가가 점점 줄어들 수 밖에 없는 구조가 큰 문제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빵에 대해서 얘기를 하겠습니다. 밀도 농작물이니 생산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고, 또 그렇게 다른 특징을 지닌 밀에서 나온 밀가루는 빵을 만들 때 (물론 다른 밀가루 음식을 만들 때도) 다른 결과를 줍니다. 여태까지는 우리밀 재배 가공방식이 빵 발효에서 중요한 글루텐 성분이 미미하여 빵의 반죽이 만족스러울 정도 (혹은 필요한 정도)로 부풀지 못했는데, 점점 제분, 가공과정이 발달하면서  우리밀도 제빵에도 적합한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인터넷에서 만난 분 중에 월인정원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전남 구례로 귀농하여 직접 밀 재배에 참여도 하고, 지역 밀가루를 이용하여 수 차례의 실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종류의 우리통밀로 빵을 만드는 제빵조리법을 개발하여 블로그에서 공유하고 있습니다. 제가 빵을 만들기를 좋아하더라도, 재료값도 아깝고 무턱대고 실험하는 것을 꺼려하는데, 이분의 실험으로 큰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밀 소비량은 전체 밀가루 소비량의 1%에 가까스로 미치는 상황입니다. 우리밀은 빈땅에 밀을 심어 농가에 추가소득을 발생시킬 뿐 아니라, 밀 재배시 분출되는 가스가 대기에 이득을 준다고 합니다. 

.....

사업을 영위하는데 있어, 지속가능한 수익모델을 생각해 내야겠지만, 우선 음식이라는 주제를 두고 파생 시켜볼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묶어 주는 정신을 김지하선생의 책에서 참고 합니다.

풍수학에서 중요시하는 형국론 원리에서 농업생산에 관한 부분입니다.
“민중의 삶, 먹을거리, 물, 채소와 과일 등의 경우 요즘처럼 수송로가 길고 제철을 어긴 식품으로 인한 병들이 많을 때 이 원리에 입각하여 유기농산물 유통 장사보다 그 지역 단위에서 유기농산물의 생산-유통-소비가 기본적으로 해결되어 그 지역민의 생명을 원천적으로 보장하는 운동이 지방자치제 선거 등에서 공약 사안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 다가오는 대병겁, 악질만세 시대의 최대 병인은 생활, 즉 먹거리, 물, 흙, 공기 등에서 오기 때문이다. (49)

합천에서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자기가 먹는 쌀이 누구네 집에서 생산한 것인지도 안다고 합니다. 요즘 식품에 생산자 이름을 써 넣기도 하지만, 솔직히 식품 포장지에 찍힌 어떤 사람의 이름 석자하고 농심이나 CJ상표랑 크게 다를게 뭐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반면에 아름다운마을공동체 친구들이 홍천에서 재배한 식량을 내가 먹게 된다면, 정말 기분이 이상할 것 같습니다. 내가 같이 공부한 친구들의 손을 통해서 자란 음식을 먹는 다는 소중한 경험이 되겠지요. 

이런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뀐다면, FTA가 줄지어 체결되더라도 단순히 경제적인 논리에서만 먹을거리를 접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미국정부는 대외적으로 농업 재배작을 상품으로 전락시켜 멀리 멀리 수출하지만, 미국에서도 10년 전 부터 슬로우푸드운동등 단거리생산지를 중요시하는 풍토로 크게 변모해가고 있습니다. 정부의 정책과 국민의 생활이 크게 괴리되는 양상을 띄게 되는 것입니다. 마이클 폴란이라는 사람이 “잡식동물의 딜레마,” “욕망하는 식물,” “행복한 밥상” 등의 저서를 통해서 먹을 거리에 대한 인식을 대두 시켰습니다. 출판시장을 통해서 로컬푸드, 가까운 지역에서 재배된 식량을 먹는 운동이 전세계적으로 전개된다면 현재 여러 나라에서 체결하고 있는 에프티에이가 가격경쟁력으로만 승산을 보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진을 한 장 나눕니다.  처음에 이 사진을 보았을 때, 무슨 커다란 곰보빵 만드나 보다 했습니다. 
출처: 시사인 129호

그런데, 이 사진은 메주 담그기 체험 학습에 참여한 경남 합천 초등학교 학생들입니다. 메주를 만들어 본다니, 너무 부럽네요. 학교 급식의 변화는 아이들의 끼니를 때우는 것이 아닌, 자연과 생명을 공부하는 학습을 장을 마련하는 것이지요.

참고자료>
새 시대의 율려, 품바품바 들어간다. (김지하)
시사인 129호: 무상급식으로 꿈꾸는 세상
교육, 경제 모두 살리는 '식판혁명,' 무상급식
한나라당 텃밭에서 꽃핀 무상급식
시사인 144호
무상급식은 농업의 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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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살짝 무거운 마음으로 대구행 버스에 올랐다. 버스안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니 심신이 더 복잡해져서 의자를 뒤로 젖히고 자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은 듯 한데, 기사 아저씨가 휴계실이라고 깨우신다. "15분 안에 돌아오세요." 흥! 그냥 자야지 하고서 고개를 돌리는데, 창문밖으로 이런게 보였다.

오잉. 아저씨 땡큐 하면서 후다닥 카메라를 챙겨서 일어섰다. 버스 계단을 내려와 아스팔트 위에 발을 디디는데, 킁킁. 나무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가까이 다가가니 강물이 초록색이다. 게다가 하늘까지 어쩜 저렇게 완벽하게 맑은 것인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보다 새하얀 구름과 사이좋게 어우러져 있는 푸른 하늘이 더 푸근했다.

깡시골에서 보낸 고등학교 시절. 맑은 하늘에 뭉게핀 구름을 올려다 보며 많은 위로를 받아더랬다.
뽀송
뽀송뽀송
뽀송뽀송뽀송
다가가 만져보고 싶고, 날아라 손오공처럼 저 구름을 타고 날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그러다 높은 산에 올라 구름을 코앞에서 맞이한 일이 있었다. 구름의 실체를 접하고 굉장히 허무했던 기억이. 그렇다. 그 때 까지 과학적인 사실을 부정하고 내 상상만 키워두웠던 것이다.

어쨌든 이날 금강휴계소에서 서둘러 사진을 몇 장 찍고, 맥스웰하우스 휴계소 카페에서 뜨거운 아메리카노 (휴계소 커피도 이젠 묽지만은 않다.) 한 잔 사들고 버스를 향해 서둘렀다. 날씨는 참으로 다리미 같이 뜨거웠다. 이 무더위 속에 내리 쬐는 햇살과 맑은 하늘과 예쁜 구름, 그리고 그 햇살에 힘입어 한 층 눈부신 자태를 뽐내는 저 낮은 산과 강물이 아무런 첨가물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내 마음을 살랑살랑 달래주었다. 구깃했던 기분이 조금씩 펴지는듯 했다.

서울에서도 얼마전. 평소보다 하루의 일과가 길었던 6월의 마지막 일요일, 그 날의 마지막 순서로 이삿짐을 좀 날라야 했다. 깜깜한 밤이 되었을 무렵, 이사를 하는 신띠아를 하야트 호텔 앞에서 픽업하여 이태원의 한 작은 골목을 찾아야 했다. 처음에 호텔 앞에서 아래쪽으로 내려가다 좌회전해서 쭈욱 갔는데 잘 못들은 길이었다. 후진하기가 귀찮아 해방촌쪽으로 차를 돌려 캐피탈호텔을 지나서 이태원 큰 길을 거쳐 다시 하야트 앞으로 갔다. 그리고 그 앞에서 다른 방향으로 간다 생각하고 독일문화원 앞에까지 갔다가, 이것도 아닌듯 하여, 다시 호텔 앞으로. 하야트와 독일문화원 왕복을 몇 차례. 

가로등이 별로 없어 서울의 다른 길보다 조금 어둑하고, 다니는 차량 수도 적었다. 물론 유턴은 모두 불법으로다가. 신띠아는 아이폰지도를 열심히 검색했고 나는 이제 말을 하지 않았다. 슬글슬금 짜증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가 창문을 활짝 다 열었다. 킁킁. 킁킁킁. 소나무 향기가 차 안으로 급하게 떠밀려 들어와 콧 속을 머리속을 한껏 자극했다. 우와. 그 향긋한 냄새에 안 좋았던 기분이 확 달아나는 듯 했다.

햇살에 빛나는 금강을 보며 남산의 어둠속에서 뿜어져 나왔던 그 향기가 생각났다.

조그만 한국 땅에서, 흐르는 물을 두고 자기 지역의 강 따로 4대강 따로 운운하는 (오마이뉴스기사) 자연에 대한 이 천박한 태도에, 소통에 대한 일말의 노력을 무색케 한다. 강 바닥을 파내는 사람들, 나무를 처참히 베어 내는 사람들 -- 어떻게 살아왔길래 물이랑 산이랑 조우하지 못했던걸까? 다사다난한 생을 살아가는데 우리가 물과 나무로 부터 얻는 정화는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귀한 것인데. 그들이 나무와 강이 주는 생명력을 경험했다면 이리도 처참히 강을 파고 물을 막고 나무를 베어 버리는 만행을 저지를 수 있을까. 결국 그것이 자기 자신을 죽이는 일일텐데 말이다.

죽고 싶으면 혼자, 자기네들끼리 죽었으면 좋겠다. 물귀신 작전으로 온 국민을 이렇게 괴롭히지 말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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