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Results for '살다 살리다 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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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0.10.26 코뿔소.되기 & 노동 7
  3. 2010.10.24 "속아도 꿈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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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10.10.21 호모섹슈얼리티, 호모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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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10.10.18 자라섬에 드리운 롯데의 그늘 3
  8. 2010.10.18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 4
  9. 2010.10.17 a late-night subway ride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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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2010.09.20 at Border's, Santana 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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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2010.09.15 Sausalito 2
  17. 2010.09.15 A Night at the Park 2
  18. 2010.09.15 Before Jumping 4
  19. 2010.09.11 at SFO
  20. 2010.09.03 September 2010 14

사랑을, 안 믿을 수도 있나?

Posted 2010. 10. 29. 23:21
살면서 겪는 일들은, 내 감정의 구석구석을 파고 들어 온갖 세포를 들쑤신다. 어떤 일은 너무 당황스러워서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멋있게, 제대로, 옳게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인지, 그냥 내멋대로 하면 되는 것인지...하고 낡은 어른스러운 고민을 하다가 너무나 곤혹스러운건, 기름을 바르지도 소금을 뿌리지도 않은 민밋한 마른김 같은 반응이다. 반응이 없지는 않는데 보이지도 않고.

이런 고민은 바쁜 일상을 살다가 불쑥 나왔다. 한 달치 분량으로 꽉 채워진듯 벅찼던 일주일. 이리봐도 저리봐도 한국의 사회조직 부적응자인 나는, 커다란 새로운 조직에 가서 그 조직과 상하좌우로 연관이 있는 또 다른 크고 작은 조직의 사람들을 만났다. 그렇다고 내가 예의 커다란 조직의 구성원이라고는 할 수 없다. 아마도, 이번 한 주 동안 한강의 남과 북을 수차례 오가며 바삐 지났쳤던 그 길 어딘가 쯤에 내가 있는 걸지도.

빡센 일주일의 끝자락인 금요일이지만 내 주말까지 침범당하는 것은 아닌가 불안해 하면서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지난 며칠동안은 지하철에서 책을 펼쳐 들고도 지면의 문자와의 교감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그냥 귀에 흘러오는 음악에 기대어 갔는데. 오늘은 2008년 이상문학상 작품집인 "사랑을 믿다"라는 궁금한 제목의 책을 들고, 짧으니까 지하철에서 다 읽어야지 하며 한 쪽 두 쪽 넘기기 시작했다. 한 줄, 두 줄 위를 움직이는 내 눈과 한 장, 두 장을 움직인 손가락이 내 전체에 맑은 위로를 주었다.

사랑을 믿다 - 라는 이 중립적인 어감은 사랑에 대한 믿음을 예찬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역시나, 사랑에 대한 믿음에 킁- 한다.
서른다섯의 나이에 자랑할 일도 아니지만 비밀도 아니다. 난 사랑을 믿은 적이 있고 믿은 만큼 당한 적이 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사랑을 믿은 적이 있다는 고백이 어처구니없게 느껴진다.
누구나 철이 든 나이가 되면 (개인적으로 다른 숫자의 시기이겠지만) 사랑을 믿어서는 안되는 것 처럼. 말하는게 내겐 불편하다. 그런데,
사랑을 잃는 것이 모든 것을 잃는 것처럼 절망적으로 느껴지는 때가 있다. 온 인류가 그런 일을 겪지는 않을 것이다. 손쉽게 극복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그런 게 있는 줄도 모른 채 늙어버리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드물게는, 상상하기도 끔찍하지만, 죽을 때 까지 그런 경험만 반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1. 그런 일을 겪지 않는 사람들
2. 그런 일을 손쉽게 극복하는 사람들
3. 그런 게 있는 줄도 모른 채 늙어 버리는 사람들
4. 그런 경험만 반복하는 사람들. 죽을 때 까지.

나를 설명해 주는 범주가 있다는 것은 외롭지 않은 일인가? 그게 4번 일지라도? as far as i know, 금새 죽을 것 같지는 않아서, 미리 끔찍한 상상까지 해야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절망이 절망에서 끝나지 않고 또 다른 기대와 희망이 고개를 쳐들 수 밖에 없는 것은,
인생을 살다 보면 까마득하여 도저히 다가설 수 없는 것으로 보였던 것이 의외로 손쉽게 실현 가능한 것으로 여겨지는 때가 오기도 한다. 나 또한 그런 순간에 들렸던 것뿐이다. 더 기막힌 건 앞으로 살다보면 그런 일이 또 찾아오지 말란 법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우산이나 상비약을 챙기듯 미리 대비할 수도 없다. 사랑을 믿는다는 해괴한 경험은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퇴치하거나 예방할 수 없는, 문이 벌컥 열리듯 밖에서 열리는 종류의 체험이니까. 두 손 놓고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는 고통이니까.
오늘 <사랑을 믿다>와 <내 정원의 붉은 열매>를 읽었는데, 여러모로 담백하고 깊이 있으면서도 구질구질하지 않은게 좋다. 특히나, 음식에 대한 묘사와 은유가 진정 맛깔스러워서 읽는 내내 신이 났고.

여튼, 오늘 아침 지하철에서 권여선을 읽다가 받은 에너지의 기운은 real했다. 그 기운을 이어, 아침부터 시내에 미팅이 있어 상사 두 분과  차를 타고 남산 소월길을 지나는데, 뒷 자석에 앉아 고개를 젖혀 바라본 하늘이 너무 넓고 맑아서 정말 그 하늘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오늘 나는 적당한 때에 퇴근해서 집에와서 오랫만에 집밥을 먹고, 샤워를 하고, 침대에서 컴퓨터를 안고 이. 소중한 밤을 맞이했다.

또 한가지 기쁜 소식, 이번 일에서 평창이 중요한거라, 이 일을 시작하면서 몇 번 타다가 포기했던 스노우보드를 다시 시도해볼 수 있게 되지는 않을까 기대 했는데, 진짜로 1, 2월에 많은 시간을 평창에서 보내게 될 것 같다. 게다가 일을 가장 많이 같이 하는 내 보스는, 스노우보드 강사셨단다. w00t!!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궁뎅이패드를 어서 찾아 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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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뿔소.되기 & 노동

Posted 2010. 10. 26. 23:56

고양이는 다리가 몇 개지요?
네 개입니다.
그럼 고양이가 두 마리이면 다리가 몇 개입니까?
8개.
네, 맞습니다.
그럼, 그 다리 8개 중에서 두 개를 빼면, 각 고양이는 다리가 몇 개일까요?
그 중 한 마리는 다리가 하나고, 다른 하나는 다리가 다섯 개여도 고양이 일까요?
다리가 하나여도 쥐를 잡을 수가 있을까요?
그럼 고양이지!
고양이는 다리가 하나도 없더라도 쥐를 잡아야해. 왜냐, 그게 고양이의 천성이기 때문이지.

머, 이러면서 (연극속에서) 논리학자.라는 역할을 맡은 자들이 말놀이를 한다. 이성을 들이대면서. 대략, 계몽주의자들.

하얀 무대에, 커다란 방 문 크기의 하얀 판넬이 무대 가장자리로 양옆과 뒷면을 메우고,
하얀색 큐브 의자 9개가 무대 중간에 놓여있다.
8명의, 각이 딱 떨어지는 검정수트를 입고 검정 구두를 신은 등장인물들이 그 큐브에 앉아서 바삐 일한다. 락스로 세균청소까지 말끔히 한 듯한 분위기의 사무실. 여기에 술이 취해 헤롱헤롱한 주인공 베랑제가 머리는 산발을 하고 셔츠는 푸라헤치고 등장. 세상이 정해 놓은 틀에 맞추어 성실히 살아가는 무리들, 예를 들어, 인간이라면 "주어진 의무감을 책임감 있게 수행해 나가면서 살아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베랑제의 친구 쟝같은 인간들이 득실거리는데, 그 경직한 질서의 장에 베랑제가 균열을 내고, 숨구멍을 튼다.

그러던 어느날, 이 동네에 코뿔소가 등장하여, 사람들은
코뿔소가 나타났네,
말도 안되, 니가 봤냐?
아니 정말로 봤어. 굉장히 크고.. 또 어... 이렇게 생겼어. 정말 내가 봤다니까.
뿔이 하나야? 두개야?
뿔이 하나면 아시아 코뿔소야, 아프리카 코뿔소야?
아니면 그 반대야?
격하게 싸우다가, 하나 둘 씩 코뿔소로 변해가기 시작한다. 코뿔소의 출연을 목격한 자들의 증언을 비이성적이라고, 언론기사는 조작된 것이라고 바락바락 우기던 보타르까지도.

이 때, 베랑제와 그가 사랑했던 데이지만 인간으로 남아, 끝까지 인간으로 남아 있기로 다짐을 하고, 서로에 대한 사랑을 고백한다. 드디어, 먼발치에서 지켜보던 사랑을 확인했는데, 둘은 행복해지는가 싶더니만, 결국은 그녀는, 마음을 두고 있던 코뿔소의 무리를 보고 마음이 흔들려, 그 무리에 합류한다.

베랑제가  orz 끝까지 인간으로 남아있겠노라, 절규하면서, 하얀 판넬의 반대면 거울이 무대 위에 벽을 만든다. 관객들이 모두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게.

오라버니가 지난 여름에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에 가서 연기한 작품인데, 이번 주에 2010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일부로 대학로에서 공연을 하여 오늘 보았다 - 코뿔소. 오빠가 작년 이맘 때 4, 5차 까지 늘어지는 코뿔소 오디션을 치르며, 피가 마르는 것 같다.고 하던게 기억이 난다. 벌써 1년.

부조리극 작가로 잘 알려진 유진 이오네스코. 오빠가 작년에 이오네스코의 <의무적 희생자>도 해서 봤는데, 이오네스코의 작품은 굉장히 주제가 무거우나, 2010년 대한민국의 체제에서 엄청 공감가는 부분이 많다.

오빠 연극을 보러갈 때면,
의례적으로 집에서 만든 빵으로 샌드위치를 한 보따리 만들어다 주곤 한다. 공연 전에 배우들이랑 스탭들이랑 나누어 먹으라고. 그런데 이번주에 너무 정신이 없어서, 간식은 커녕 작품설명글도 제대로 못 읽어보고 갈판이었다. 꽃을 사가면, 배우는 무지 싫어한다. 나는 땜빵은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기 싫어 문자를 보냈다.
"모사다줄까?"
"담배... 말보로레드"
"-_-"

공연이 끝나고 대학로예술극장 앞 GS25로 갔다.
"말보로 레드 두 보루 주세요."
"네, 5만원입니다."
"네? 오마눤이요?"
허거걱.
가난한 연극쟁이가 이 왠 부르조아질이냐.
담배가 싸지 않다는 것은 대충 알고 있었는데, 돈을 막상 내려니 너무나... 비싸다.
난생 처음, 내 돈 내고 담배를 사 본거.

사실 오빠한테 5만원의 범위내에서 미래의 가능성을 상상해 볼 수 있도록 현금을 줄까 했었다. 그럼으로써 오빠가, 강신주의 <상처받지않을권리>에 나오는, 부르디외 식으로 말해서, 5만원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소멸시키며 구매할 만한 가치 있는 상품들은 무엇일까? 생각 해 보며, 담배를 덜 피우지 않을까 싶어서리.

그른데, 보니까, 현금이 없었다. 그래서 긁었다.
카드를.

그리고 나는, 자본주의의 진정한 목적에 부합하기 위해서 노동을 한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을 길들이고 자극하여 끝없이 상품을 소비하게 합니다. 그 결과 노동으로 얻은 화폐는 소비되고, 그럼 또다시 노동을 할 수 밖에 없지요. 결국 소비와 노동이라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 때, 자본주의는 계속해서 번영하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 (상처받지않을권리 프롤로그)
이번 주 부터, 정해진 날짜에 통장에 월급이 찍히는 댓가로,
내 시간과 적지 않은 기회비용을 팔기로 했다.
물론 노동에 대한 댓가를 금전적 보수에 국한시키는 것은 상당히, 상당히 비약적이지만,
일천한 내 노동히스토리를 뒤 돌아 볼 때, 이번 일은 과히, 참아내야 할 인고의 몇 달이 될 듯하다.

그래서 난, 지금 코뿔소가 되어야 한다. 내 안과 밖에 부조리와 참을 수 없음이 도처에 널려있지만, 내 자신에게 한 점 부끄럼 없으려는 투쟁은 잠시, 휴전에 들어간다.
지극히, 코뿔소가 되어 그렇게 살아야 한다. for the time being.


그른데,
되어야 하다니? 나도 이미 코뿔소가 아니었던가..... 레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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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아도 꿈결"

Posted 2010. 10. 24. 00:24


이 노래.
도시를 훌쩍 떠나지도 못 하면서 투덜투덜만 대다가,
잠시 찾아간 한적한 지방의 들판에서 만난 코스모스같다.
하늘하늘 살랑살랑 연약한 척 하지만,
가뭄에 축 쳐져버린 들풀처럼 지친 내게 강한 기운을 훅~ 불어 넣어주는 코스모스.

노랫말이 좋은가 멜로디가 좋은가 보컬의 코맹맹이 소리가 좋은가,
내가 이상에 꽂혀 있는 이 때에 봉별기 부르는데 급 친근감을 느껴서 그른건가.
......
예의 없이 이런 환원주의적인 생각은 말자.

인생살이 마냥 콕 찝어 낼 수는 없는,
속 시원하고픈 욕망에 찬물을 끼언지는 듯 해도,
가뜩이나 적빈 (멜리사... -_- 스미마셍데스 ) 한 내 마음이 한 껏 더
낮아진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한 번 더 고마운.
산책이라고 함은 정해진 목적 없이
얽매인 데 없이 발길 가는 대로 갈 것

누굴 만난다든지 어딜 들른다든지
별렀던 일 없이 줄을 끌러 놓고 가야만 하는 것

인생에 속은 채 인생을 속인 채 계절의 힘에 놀란 채
밤낮도 잊은 채 지갑도 잊은 채 짝 안 맞는 양말로

산책길을 떠남에 으뜸 가는 순간은
멋진 책을 읽다 맨 끝장을 덮는 그 때

인생에 속은 채 인생을 속인 채 계절의 힘에 놀란 채
밤낮도 잊은 채 지갑도 잊은 채 짝 안 맞는 양말로

산책길을 떠남에 으뜸 가는 순간은
멋진 책을 읽다 맨 끝장을 덮는 그 때
- 이를테면 <봉별기>의 마지막 장처럼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
굽이 굽이 뜨내기 世上
그늘진 心情에 불 질러 버려라"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
그런데, 이 노랫말을,
with all due respect to 정바비,
다섯 글자로 줄여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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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칼바위 능선 인증샷

Posted 2010. 10. 22. 10:44
지영이로 부터 드뎌 사진을 받다.

한글날에 북한산에 올라갔다. 토요일이라서 사람들 뒷 꽁무니만 쫓게 될 줄 알았는데,
오후 1시 쯤에 올라가서 그런지 붐비지 않고 좋았다.

날씨는 이랬다:

이날, 놀랍게도, 
내가 주최할 수 없는 어떤 힘으로 내 다리가 씽씽 달렸다.
멤버 중에 제일 young한 지영이, 최저-_- 의 체력을 보이며 내게 말했다.
"언니, 산 마을 아이 같아요."

효숙이가 선두부대에서 나와 페이스를 같이 해주었다. 사실, 혼자였음 씽씽갈 수도 없었겠지만.

칼바위 능선은 이렇게 생겼고,

우리는 이렇게 바위에 붙어 네 발로, 능선을 탔다.

북한산에 피는 가을 꽃 중 하나. 이름이 적힌 푯말을 보았는데, 까먹었다. 효숙이한테 물어봐서 나중에 적어야지.

대동문을 찍고 하산하다.

이것은 인수봉과 백운대. 다음에 갈 코스.
이번주가 단풍이 절정이라는데, 이쁜 단풍이 다 지기전에 어서 가봐야겠다.

to finish off the day:

인수동 재미난밥상에서
황태닭볶음찜
오늘 아침 트위터에서 보고 알티:
다른 나라에는 없다, 한국에는 있다? 북한산! 세계적으로도 인구 1,000만명이 거주하는 수도에 '국립공원'이 존재하는 경우는 다른 사례를 찾기 힘들다고 하는군요. 국립공원 북한산은 단위 면적당 탐방객 수 1위로 기네스북에도 올라 있다는군요.
by @bookhunter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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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섹슈얼리티, 호모포비아

Posted 2010. 10. 21. 00:53

드라마에서 동성애를 다룬다.
조선일보가 드라마 때문에 동성애가 발생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드라마가 인간의 sexual identity를 형성한다는 웃기는 논리에 대해 비웃음 이어진다.

이 얘기가 나온지가 벌써 몇 달은 지난 것 같다.
그런데 오늘밤 트위터에서 한 차례 또 떠들석 하다.
긍데, 얘기가 똑같다. -_-
중요한 사안이 등장할 때 마다, more often than not, 사건의 본질은 관심을 못 받고 그에 겉도는 얘기로 싸움이 지난하게 이어진다.

나는 아마도 영화, "필라델피아"를 보고서 동성애에 대해서 처음 인식했던 것 같다. 세상이 정말 복잡하구나. 생각했고. 별 관심과 생각없이, 동성애를 잘 못 된것이라고 여기고 다녔던적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은 아니고, 대학교 3학년 때 HR에서 employee relations and diversity라는, 조직에서 다양한 배경의 구성원을 어떻게 "관리"하는지에 대한, 그러니까 나름 상당히 실용적인 수업을 들었다. 강의실 앞 테이블에 걸터 앉아 수업을 진행하면서, 중간 중간 손가락을 스냅하며 몸에 항상 리듬감을 유지했던, 젊은 흑인교수였다. 목소리가 우렁찬, 아마도 그 때 30대 초반 이었을. She gave me one of the most memorable assignments of my college years.

제목은 "diversity journal"이었고, 각 학생이 소수자그룹 중 하나를 맡아서 주변에서 그 사람들을 몰래 관찰하는 것이었다. 나랑 다른 "저"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고 보통 사람들이 "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diversity에 대한 이해, 및 나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민감성을 높여보자는 취지였다. 교수님이 쪽지에 흑인, 동양인, 동성애자 등등 을 적어서 애들한테 제비뽑기를시켰고. 나는 벌써부터, 호모섹슈얼이 걸리지 않기를 바랬다 - 그 때는 싫어서라기 보다는 그냥 무지로 인한 두려움과 귀찮음 때문에. surely enough, 나는 homosexual이라고 적힌 종이를 뽑으심.

내 역할이 흑인이었다면, 그냥 지나가다 관찰하면 되지만, 호모섹슈얼은 짐작을 너머서는 식별이 불가능한관계로 직접 찾아나서야 했다. 내가 수업을 듣던 건물 중 하나에서, 늘 지나다니면서, 어 저런것도 있네 스쳤던, 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Resource Center에 찾아갔다. 센터 스태프한테 내 과제를 말해주고, 동성애자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거기서 만난 아줌마는 레즈비언으로서 받은 차별에 대해서 굉장히 적대적인 감정을 실어 설명해주었다. 그 아줌마가 한 말중에서 오늘날 까지 내 기억에 남아있는 말은, 낮은 베이스 음성으로, "you don't mess with me." 그리고 나서, 그 아줌마의 주선으로 학교 행정직원들 중 두 명의 아줌마를 더 만났다. 이 아줌마들은 남성과 결혼을 해서 애들 낳고 살다가, 고민고민 하다가, 이건 아니라는 결론으로 커밍아웃을 하고 이혼을 했다. 애들이 열대여섯살인 때. 이 부분이특히 쫌 더 쇼킹이었다 나에게는. 난 이 아줌마들을 만나면서 낯설은 것도 있었고, 내가 행여 그들을 offend할까봐 매우매우 폴라이트해야 한다는 두려움에 떨렸던 기억이 또렷하다.

암튼 과제로는, 주변에서 대상 소수그룹인들을 관찰하고, 관련 기사를 골라 읽고 해서 일주일에 두 개씩 총 8개의 기록을 적어야 했다. 지난 번에 책장정리하다가 이 폴더를 잘 두었는데, 오늘 다시 보니까, 귀찮아서 다 읽지는 못하겠고, 내가 이 숙제 때문에 매우 혼란스러워했던 흔적이 역력했다. 어쨌든 이 과제를 통해서 동성애자에 대한 관념적인 게으른 판단은 반성하고. 호모섹슈얼인 개인들을 만나, 호모섹슈얼 라이프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것이 매우 충격, 의미있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주변에 여러 분분한 의견들 가운데 내가 어떤 "옳은" 그런데 쉬운 결론을 맺고 싶다는 충동이 강했는데, 내가 읽은 기사에서 쉬운 대답은 없다,라는 것에서 멈췄다.

그 후로 계속 이 문제가 나올 때 마다 누군가 속시원한 대답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러던 지난 겨울의 어느날, 명동의 한 월남식당에서 눈물나게 맛없는 쌀국수를 먹으며 교회공동체 친구들과 동성애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하게 되었다. 당시에, 한 진보성향이 강한 교회의 전도사로 있던 은주로부터, 우리는 그 교회의 두 명의 레즈비언 얘기를 매주 들어왔던 차였다. 한 명이 병으로 죽어가는데 그녀의 파트너는 옆에서 눈물없이는 못 볼 정도로 극진하게 죽어가는 애인을 간호했다. 결국 아팠던 그녀는 세상을 떠났고, 교회에서 장례를 치루고 여러 가지 모든 궂은 일을 처리해 주었다. 죽은 여성의 가족들과 엮인 불편한 문제도 많았고. 은주는 너무도 헌신적으로 그 두 레즈비언 여성을 보살펴 주시던 그 교회 목사님께 왜 이렇게 까지 하시냐고 여쭈었보았댄다. "그냥 동성애에 대해서 왈과왈부 따질게 아니라, 예수님이라면 이렇게 하실 것 같아서 그렇게 하는거지."

그리고.
남은 파트너는. 추후에 남성과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제, 일반인들은 이 여성에게 바이섹슈얼이라는 딱지를 곧장 붙이겠지만, 은주가 그녀를 보고 느낀것은, 그녀가 여성의 애인과 연애를 할 때나, 남성의 애인과 연애를 할 때나 그녀의 사랑에 대한 진정성은 똑같아 보인다고 했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은 아니었다. 같이 밥먹던 다른 여성 친구 한 명은 헤테로섹슈얼이지만, 여성 친구한테 성적인 감정을 느껴봤던 경험이 있고, 자기 주변에는 그런 친구들이 아주 많다고 했다.

우리가 장황하게 나눈 이야기를, 도식적으로 간단히 말해보자면, 한 인간이 느끼는 성적 감정에는 일종의 스펙트럼이 있다,였다. 한 쪽 끝이 동성, 다른 끝이 이성. 많은 사람들이 이 양극의 어느 지점에 위치해 있다.는. 나는 곰곰히 생각해보니, 여성한테 어떤 야릇한 감정을 느껴본일은 없다,가 결론이다. 고로 나는 울트라 헤테로섹슈얼. 그날 얘기한 친구들 중에 내가 가장 극단적이었다.

암튼, 우리의 결론은 대략 그랬다. sexual orientation/preference spectrum. 이것을 보편적인 진리로 주장할 수는 없으나, 내 마음은 좀 편해졌다. -_-

난 김수현이 한국사회 성숙도를 위해서 일조했다고 본다. 신정아가 학벌주의 사회 병폐의 물고를 틀어주었던 것 처럼. (파장의 magnitude는 다르다는 것, 인정.) 일단 동성애라는 화두로 논의의 장이 만들어 졌다. 그런데, 지금의 말싸움이 한 동안은 지속될 것이 미리부터 지겨워진다. 동성애.에 대한 본질적인 얘기를 했으면 좋겠다.

그날 명동에서 친구들과 맛없는 것으로 허기를 채운 불쾌감을 안고 그 식당을 나오면서,
"근데, 니가 애를 낳았는데 그 애가 호모섹슈얼이라고 하면 어떻게 할꺼야?"
"음. 한국에서 살면 불행 그 자체일터이니... 네덜랜드 같은 곳으로 갈 수 있게 해줘야할 것 같어."



"Can you hear the heartache in her voice? Can you feel it, Joe?"

La Mamma Morta by Maria Callas
Tom Hanks, Denzel Washing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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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은 일상에 위로를

Posted 2010. 10. 20. 16:03
10대 초반 즈음부터 내 주변은 정치.경제.문화.사회.종교적으로 너무나 다른 사람들로 붐비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신경끄고 나 대로 살아볼 수 있지 않았나 싶지만, 그 서로 다름의 간극속에서 그 "나대로" 사는게 안되었다. 나만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본능적인 분투가 지속. 그렇다고 해서, 지금 서른을 넘긴 나이에 내 정체성을 찾은 것은 아니고, 얼마전에는 나는 그냥 이렇게 끼인 상태에서 잘 살아가보는게 좋겠다는 well-meaning 조언을 받기도 했다. 흡!

2년쯤 전에 세진이의 추천으로 아트앤스터디에서 자본주의에 관한 강신주 교수의 강의를 접했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장(자본주의)에 대한 무언가 불편한, 심히 불편한 점을 콕 찝어주는 시원함과 강사의 어눌하고 재미있는 말투에 푹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작년에 이 내용이 책으로- 상처받지 않을 권리: 욕망에 흔들리는 삶을 위한 인문학적 보고서 - 나왔을 때 4권을 사서 3명한테 선물을 하고, 나머지 한 권은,
고이 모셔두었다.
모셔두길 1년.
이번에 여울 세미나교재로 밀어부쳐... 간택되다.

확 꽂히는 머리말 -

자본주의적 삶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친숙하다는 것, 그것은 무엇인가에 길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길들어 있다는 것은 - 왠지 네거티브한 느낌이다.] 어떤 것에 길들면, 우리는 그것을 나의 일부분인 듯 편안하게 여기기 쉽지요. [근데, 편한거다. 바로, 불편하지 않다는 거. 발가락이 끼는 작은 신발을 신었을 때의 느낌과는 비교도 안되는 그 불편함이 없다는 거.]  가령 누군가 그것을 문제 삼을 때, 우리가 마치 모욕을 당한 듯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것도 이 때문일 겁니다. [이 것은 너무 편하게 살지말라고 비판하는 것인가?] 하지만 친숙해진 것이 항상 바람직한 것만은 아닙니다. [오 정말요?] 사실 친숙한 삶을 낯설게 성찰 [성찰! 이라는 big word]하는 일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삶에 대한 의무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의무고 선택이고를 떠나, 그저 낯설은 내 일상이 불편하여, 뜨악하며 떠밀려 골치를 앓아왔다.] 삶은 우리 뜻과는 달리 항상 낯설어지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지요. [계속 이래야 하는거?] 미리 낯설어지는 경험은 우리에게 삶에 대한 정답은 아니더라도, 지혜는 제공할 수 있는 법입니다. [무슨... 지혜???]

살면서 내게 딱 맞는 옷을 입은 듯한 편한 "느낌"을 항상 갈망하지만, 언제부터인가는,
어떤 종류든 획일적인 장에 있으면 불안해 진다. 낯선것에 낯이 익어버린.
강신주책에서, 낯설음에 대한 변론이 내게는 깊은 위로가 되어서 요즘 이 책을 열심히 읽고 있다. 덕분에 이상도 읽고.

강신주교수가 이 책을 쓴 이유는,
자본주의에 대해 경제학적 관점이 아닌,
이 돈 체제에 깊이 연루되어 있는 우리 내면세계를 탐색하게 해주려고.
"자본주의로 인해 상처받고 분열되어 있는 내면세계를 보듬고 치유할 수 있는 희망도 필요하다고 절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치유.라는 것은 아프다는 것을 인정할 때만 가능한 것이다. 이 돈 체제에서 쪄들어 사는 우리들 중에는, 이로 부터 받은 상처에 대해서 인지하지 못하거나 거부하는 이들이 많다 아주.

저자의 방법론:
이 책에 보면, 19세기 말 파리의 아케이드에서 변모한 백화점이 동경을 거쳐 경성에 상륙한 당시 (1930년대) 상황에 대한 재미있는 묘사분석이 있다. 그런 백화점에,
오늘날 애기들은 간난쟁이 시절부터 유모차에 실려 이른 경험을 시작한다.
일한이 - 우리교회 정원 9명의 평균 연령을 화악 깍아주는 대학교 3학년 생 - 가 마침 학교에서 강신주 교수의 수업을 들으면서 여러 여담을 얘기 해 주었는데,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서 6개월 간 백화점에 가서 살다시피 하셨단다.
100년전의 모던보이들처럼.
salute to his passion!

자라섬에 드리운 롯데의 그늘

Posted 2010. 10. 18. 23:21
자라섬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열린 창문으로 나를 반겨준 사람은,
롯데카드 세일즈 아줌마였다.
"롯데카드 하나 만드세요."
"아니요 안 만들어요. 죄송해요."
"아니 그러지 말고 하나 만드세요. 3만원 드려요."
이 아줌마는 오늘 하루종일 도리도리하는 사람들로 부터 얼마나 실망을 하셔야 할래나.
묵묵부답하자 다른데로 가버리시긴 했으나, 옆으로 이동한 차에서 내린 어떤 아줌마로 부터 짜증 가득한 대꾸를 받아야 했다.

차에서 내려 짐을 꺼내는데 또 다른 분이 오셨다.
"롯데카드 하나 만드시고 3만원 받아가세요. 이걸루 오늘 맛있는거 사드세요."
"아, 롯데카드 있어요. 아줌마 그러지말고 저희 사진 한 장만 찍어주세요."
이번 아줌마는 애써 상냥한 표정으로 찍사를 해주셨다.

돗자리랑 물병이랑 짐을 챙겨 공연장으로 발길을 옮기는데 기업광고 현수막이 나무와 나무사이를 빼곡히 매우고 있었다.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이 7년 째 이어지면서 기업들의 스폰서행렬이 줄을 짓는건 당연하겠지.

자라섬 입구를 지나 공연장 마당으로 들어서자 깔끔한 부스들이 줄지어 있었다. 나중에 눈씻고 자세히 보니, 가평군 특산품을 파는 곳도 서너개 있고, 저기 멀찍히 구석에 쁘띠프랑스와 환경, 선거 등 이슈관련 단체들의 부스도 있었다.

그런데 이리봐도 저리봐도 눈에 들어오는 것은,

롯데 계열사 부스였다.

그리고, 카드만들면 3만원 준다고 맛있는 것 사먹으라는 그 아주머니 말씀도, 결국 롯데껄 먹으라는 것이었다.
눈에 밟히는게 롯데부스였건만, 친절한 척 하는 이 이정표는 뭥미. 이 푯말 이름 중에 진정 green스러운게 한 개도 없다. 이 속임수가 역겨워 사뿐히 즈려밟고 가기에는 내 고픈 배에게 너무 미안했다.

photo by 김세진

현장 녹음을 하는 지연씨의 예민한 귀, 덕분에 산만한 공연장에서 억새풀의 스삭하는 소리를 잠시 들을 수 있었다. 맑은 공기와 청정한 자연에서의 공연을 즐기러 오면서, 장거리에 서는 파전, 떡볶이, 국수를 먹을거라 기대한건 야무진 기대였던건가?

지연씨가 3년 전에 왔을 때는 빈대떡, 막걸리 등을 파는 부스가 꽤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올해는 음식을 파는데는, 이게 전부였다 - 롯데리아, 롯데햄, 롯데주류, 크리스피크림, 세븐일레븐, 엔젤인어스. 안 그래도 추운 자라섬의 찬 공기를 급냉 시키는 시츄에이션이다. 그냥 안물어봐도 알겠다. 롯데가 큰 돈 쓰고, 가평 지역주민이 파는 음식부스는 못 들어오게했겠지 싶다. 그리고, 티켓에 "가평사랑상품권" 5,000짜리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 상품권은 모든 롯데매장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었다는.

그래도 뭔가 있겠지. 공연장 지도에도 조그만 글씨로 먹거리 시장.이라고 쓰인게 있었다. 영 보이질 않아서 주황색 옷을 입고 있던 자원봉사자에게 물어보니, 대여섯명 모두 아는 이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지도를 더듬어 우리는 걸었다. 자라섬 정문을 지나 주차장을 지나, 쭉 한참 가니까 9개의 부스가 멀찌감치 서있었다. 메인 공연장인 Jazz Island에서 걸어서 20분쯤 걸렸다. 추워서 재빠르게 걸으면 15분? 그런데 추우면 귀찮아서 가까운데서 해결하고 싶어지는게 문제다.


멀리 걸어간 보람이 있었다. 맛나는 메밀부추전과, 상당히 괜찮았던 떡볶이와 오뎅으로 허기를 달랬다.그리고 한방순대. (아줌마한테, 왜, 한방순대냐고 여쭈어 보았더니, 한방재료를 넣은 물에 쪄서 돼지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_- 한방순대가 아니라, 한방스팀순대!) 어쨌든, 순대도 정말 맛있었다. 그외 족발, 귤, 가래떡구이 등이 있었고.

두 분의 아주머니한테, 왜 여기 이렇게 멀리서 장사하시냐고 물었다.
"저 안에는 자리세가 비싸서 못들어가요."라고 한 분이 대답;
"밤에는 이쪽에서 공연이 있어 여기가 더 좋아요."라고 하신 아줌마 2.
그런데 이 먹거리시장 Party Stage/배수펌프장에서 진행된 공연은 많지 않았을뿐더러, 마지막날에는 공연이 하나도 없었다. 나도 셋째날에는, 자라섬 제일 안 쪽인 Jazz Island에서 모든 저녁공연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거기 앉아있다가 벌벌 떨면서 한참을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아. 저 메밀전을 포기했다.

가평 자라섬에서 열리는 축제에서 가평 지역주민이 혜택을 못 보는 것은 나와 개인적인 이해관계가 없다손 치자. 그럼, 롯데가 떡볶이를 만들고 빈대떡 부쳐 팔든가.

페스티벌 주최측을 어디 까지 비판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멀리멀리서 뮤지션들 불러오는데도 돈이 많이 필요했을 것이고, 공연 자체로 봐도 음향도 괜찮은 편이었고, 대형 스크린에 영상을 내 보내는 촬영기사의 기술도 상당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그런데, 그 화면에, 매 공연 사이에 롯데카드, 롯데멤버스, 롯데소세지, 토요타 프리우스, LIG보험의 티비 광고가 반복에 반복을 거듭해서 나왔다.)

어쨋든, 힘있는 사람들은 이런판밖에 짤 수 없는것인지.

셋 째날, 롯데리아도 썰렁했고, 롯데햄은 말할 것도 없고, 롯데주류, 크리스피크림 모두 횡했다. 결국 세븐일레븐만 문전성시를 이룬 까닭은, 바로, 오뎅이었다. (어묵,이라는 폴리티컬리 코뤡트 한 텀이 있지만, 난 걍 오뎅으로) 오뎅은 원래 원래 허름한 포장마차의 떡볶이와 아삼륙을 이루는 아이템인데. 오뎅국물 한 그릇에 국물 떠 주는 아줌마/아저씨의 다채로운 표정과 인삿말이 같이 오가야 하는 것인데 말이다. 편의점 알바의 매뉴얼 준수의무에 바탕한 멘트는, 종이컵이 건네지는 순간 뜨끈한 국물을 싸늘하게 식힌다.

조폭영화를 몇 편 보고나서 깡패들 세계에 건달과 양아치 사이의 간극이 있는걸 알았다. 내가 감지할 수 있는 차이의 뉘앙스는 아니지만, 건달들은 양아치라 불리는 것을 몹시 수치스러워 한다. 양아치라 불릴만한 행동도 창피해 한다. 이마트 피자, 대기업 SSM 규제 문제로 트위터에서 구설수에 오른 신세계그룹 부회장 정용진. 그가 선택은 소비자에게 있다고 했는가?

대기업의 주인 뻘 되는 사람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시장정세에서 "소비자의 선택"을 운운하는 것은, 과히 양아치스럽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신영복선생님이, 우리 사회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회라는 것이 심각한 문제라고 하신거가 떠오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자들의 선택이 협소하게 줄어버린 것은 아마도 마케팅에서 브랜딩 영역이 활기를 뛰우면서 그렇게 된게 아닌가 싶다. market segmentation으로 소수의 대기업이 시장분야에 따라 이름을 바꿔 상품을 들고 나오면서, 소비자들은 관심을 갖지 않는 이상 그 뒤에 보이지 않는 손이 결국은 몇 개 안 된다는 것을 알기 쉽지 않다. 우리나라는 (미국도 그닥 크게 다를건 없다만) 대기업의 영향력이 무소불위하고, 크고 오래된 회사에 후한 소비자들의 정서로 인해 브랜딩을 하더라도 모기업 딱지를 붙이고 나오는 사례가 빈번하긴한데, 한국에서 아메리칸 스타일로 브랜딩을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가 SPC이다. 브랜드가 너무 많아서 기업 웹사이트에서 한 페이지에 나열되어있지도 않다. 특히, 샤니와 파리크라상 계열사 아래의 브랜드 및 제품은 수십가지. 빵이랑 카페, 했을 때 이 그룹의 촉수를 피해가기란 쉽지 않다. 동네 빵집하면 어느새 "파리바게뜨"가 되었을 정도이니. 시장점유율이 프랜차이즈만 50%가 넘으니까 전체 빵집을 놓고 보면 60%를 훌쩍 넘을것이다. 뽀다구나는 분위기 카페도, 청담동 queen's park (이름 진짜 구리다 -_-)와 이태원에서 번쩍이는 시꺼먼 건물에 간판없이도 대박을 누리고 있는 Passion 5도 이 집 가게들이다.

영세한 장사로 쪼들리는 자영업자들은 말할것도 없고, 소비자들도 주는대로 받아 먹어야 하는 처량한 신세로 전락해버린 오늘날. 피곤하다.

내년에 자라섬에 내가 또 갈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 가더라도 누가 메이져 스폰서인지는 확인을 해봐야겠다. 대충 메뉴를 상상해보고 기대치 조절을 해야하니. 그나저나, 난 당분간 롯데 트라우마의 그늘로 불쾌함이 지속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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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섬 재즈 페스티벌

Posted 2010. 10. 18. 17:20
3일 연속 페스티벌에 참석해볼까 했었지만, 토요일에 일이 있어 2일 티켓을 구입했다.

금요일은 드라이브 길도 좋았고 가평의 날씨가 정말 환상이었다.

푸른 하늘에 이쁜 구름, 높지 않은 정겨운 뒷산과 잔디밭에 평화롭게 삼삼오오 자리를 잡은 관객들. 이 분위기에서 옥의 티는: 저기 보이는 아파트!

낮에는 따사로워 보였지만 해가 지면서 찬 공기의 싸늘함이 엄습해 오더니, 깜깜해진 뒤 부터는 너무너무 추워서 덜덜덜 곱하기 백만배쯤 떨었다. 빨간 망도를 두른 이 여성과 드러누운 남자의 포즈는 해석이 안되지만, 주변에 짝지어 온 연인들은 일제히 부둥켜 안고 있는데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_- 왜 어른들은, 애인/배우자 하고만 껴안을 수 있을까?

일요일에는 나도 나름 중무장했다. 바지도 좀 더 두꺼운 것으로, 긴 팔의 면 레이어와, 울 스웨터, 그리고 왼쪽 무릎 밑에 분홍색이 두꺼운 플라넬 후드 쟈켓이고, 하늘색은 노스페이스 윈드브레이커. 해가 지면서 하나씩 주섬 끼어입고, 목도리까지 둘르고 지퍼를 끝까지 채웠다. 그래도, 추웠다.

어쨌든 해지기 전에는 공연을 기다리면서 책을 좀 읽었다. 돗자리에서 앉아 있기가 힘들어 결국, 두툼한 저 분홍색 쟈켓을 베개삼고 옆으로 움추리고 드러누워 무릎담요를 땡겨 덮고서. 그러다가 Rusconi의 공연이 시작되었을 즈음에는, 잠이 들어버렸다. 단잠.

워낙 뮤지션들의 이름까지 꿰뚫고 음악을 듣는 편은 아니지만, 재즈 아티스트들은 더 생소하다. 지연씨의 추천으로 공연장을 정하여 관람한 첫 날은, 이태리 아저씨 트리오가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추위에 담요를 둘러쓰고 벌벌 떠는데 흰색 반팔 티셔츠에 빨간 두건을 매고 피아노 건반, 및 현을 갖고 능수능란하게 열심히 노시던 60세의 Antonellos Salis.

건반위에 움직이던 기일쭉 하고, 현란한 손가락도 인상적이었지만, 여러 가지 도구를 갖고 피아노 현을 북북 긁어대면서 생소한 소리를 들려준 것도 재미였다. 지연씨 왈, 아방하셨던 John Cage가 저런 실험을 많이 했다고. (John Cage의 이름을 현대철학 책에서 종종 보기는 했지만, 그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것은 4'33''뿐.)
 
그리고, 멀리서 대형스크린으로 봤을 때 너무 잘 생기셨어서, 그냥 좋아지는 이 분, Paolo Fresu.

물론 트럼펫 연주도 정말 끝내줬다. 관객을 의식한 쇼우맨쉽도 상당했던 연주자. 나중에 찾아보니 파올로 프레슈는 - 연국, 시, 댄스, 라디오, TV, 영화 분야에 - 작곡도 많이 했다고 한다.

이 아저씨가 연주할 때 화면에 웨딩밴드가 돋보였다. 나는 웨딩밴드를 꼭 끼고 다니는 아저씨들을 보면 왠지 신뢰가 간다. 왜왜. 반지착용이 배우자에 대한 fidelity와는 전혀 상관이 없을 수도 있는데. 

위 두 분이 너무 튀어서 또 다른 멤버 Furio di Castri는 별로 빛을,
그러니까 카메라의 응시를 받지 못하셨다.
[P.A.F 멤버 사친 출처는 여기]

그리고, 셋째날의 하이라이트!  Tania Maria
브라질 출신의 이 아줌마 정말 쵝오였다.

열정적인 연주와 관객을 쥐락펴락 하는 고도의 무대 경험으로 그녀는,
추워서 담요를 덮고 웅크려있던 관객을 모두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방방 뛰게 만들었다.


그녀의 손가락을 보면서 얼마나 연습을 하면 저렇게 될까 그저 감탄만.


이 아줌마 머리 스탈이 원래 내가 하고 싶었던거였다. 말콤처럼. 그런데 내 머기카락으로는 저 굵기의 파마가 나오지 않는지라.

모든 음악이 라이브와 음반에 현저한 차이가 있지만,
얼마전에 만난, 런던의 Touch Music 사장님 마이크도, 대중에게 가장 보편적으로 available한 CD와 mp3의 음질을 개탄스러워하면서 모두들 LP 플레이어를 하나씩 구입하라고 조언하기도 했고.
대학 때 재즈를 CD로 듣다가 맨하탄 어떤 바에서 라이브 공연을 들었는데, 그 차이가 내가 들어도 너무나 극심했던지라. 그 뒤로 재즈 CD는 별로 듣지 않았던 것 같다. 재즈는 음반의 질이 후진 것도 있지만 공연의 현장성이 큰 매력이니까. 그 후, 몇 번 더 라이브 공연을 들었는데, 모두 실내였다. 이날 자라섬은 잔디밭에서 돗자리 깔고 살짝 널부러져 감상하는 음악이 좋긴하였는데, 좀 산만했다.

난 실내에서 듣는 재즈가 더 좋다. 추운 겨울날, 히터가 빵빵하여 잎술이 살짝 마르는 건조한 실내 공기에서, 듣는 재즈. 흥분된다. 이 때 핫쵸코를 마셔줘야 하나?

하지만, 결국, 누구랑 같이 듣냐가 제일 중요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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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late-night subway ride

Posted 2010. 10. 17. 01:27
수유에서 오이도행 막차를 탔다. 아마도 막차였던듯. 별로 졸리지 않아서 여울에서 발제하고 있는 강신주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는데 주변에 취객의 소음이 시끄러워, 어느쪽에서 누가, let alone 왜, 떠드는지 고개 한 번 들어보지 않고 이어폰을 꽂았다. 책 읽기에 방해되지 않으려고 슈베르트 교향곡 모음 앨범을 선택하였다.

몇 정거장을 지났을래나,  볼륨이 제법 높은 내 이어폰을 뚫고 안 이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정말 왜 토하고 지랄이야."
옆 간 차에서 누가 토하는거 보고 건너온 사람인가보다. 구토를 목격한 짜증을 지하철 열차 사이 연결통로를 건너오는 동안 해소하지 못하여 연결문에서 문 두개는 더 떨어져 앉아있던 내 앞을 지날 때 까지 궁시렁대는 아저씨였다. 지난 번에 누가 지하철에서 토했을 때는, 지하철 내에 방송이 막 나오더니, 다음 역에서 역무원들이 승차해 구토를 치웠드랬다. 작년에 지하철 9호선 운영관련 매뉴얼을 대량으로 번역했었는데, 열차내에 구토 상황 발생 시 어떻게 처리하는지는, 없었던 것 같다. 어쨌든 하루에 지하철에서 오바이트하는 인간의 숫자는 얼마나 될까. 분명 통계 수치가 있을터인데.

나는 버스타고 가다가 토가 올라와, 입에 물고 내린적은 있다. 전지현처럼 도로 삼킨 것은 아니고. 내리자마자 아마도 하얀 모습으로 쌓였을 눈위에 깜깜한 밤 어두움덕에 덜 미안한 마음으로 마구 토했던 적이 있다. 지난 겨울인듯. that was one of the two times i threw up after drinking. 매스꺼린 속이 지속되다가 토해버렸을 때 느끼는 시원함도 있지만, 그 시원한 느낌 lasts in between the intervals. 근데 다 끝났을 때, 좀 더 심층적으로 다가오는 후련함이 있다. 참고 싶지 않은데 참을 수 밖에 없는 것을 참고 있다가 드디어 다. 뱉어 내었을 때의 쾌감.

근데 지하철에서는, 후련할 때 까지 토할 수는 없겠지?

여튼 지하철로 돌아가서. 만차는 아니더라도 제법 사람이 많은 지하철에서 세상과 단절하고 귀에는 슈베르트가 울리게 두고, 눈과 생각은 자본주의가 강타한 파리를 몸소 체험해 내고 있는 보들레르에 집착했던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에 집중했다. 도박장과 사창가를 어슬렁거릴 때, 보들레르는 노동과 사랑의 진정한 가치를 망각했었으나. 도박장과 사창가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거의 본능적으로 도박장과 사창가를 멀리 하려고 했다. 이쪽 저쪽 양극을 경험했던 보들레르는, 오늘날 평가/분석되기를, 무의식적으로 종교가 아닌 건강한 노동의 세계를, 그리고 매춘이 아닌 사랑을 지향했더란다. 이념적으로 어떤 한 가지 입장을 고수한 것이 아니라, 양 극단 사이에서 끝까지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그가 중요했다고. 이 책 제목은 <상처받지 않을 권리>라고 매우 허접하지만, 이 책의 머릿말 제목이 더 본질적이다 - 자본주의적 삶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여튼, 강신주선생은 분석하기를,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랑이 자본을 영속적으로 압도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사랑이 자본주의의 포섭을 막는 일종의 혁명적 힘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도 한다.

내려야 할 때가 다 되어 이 챕터를 서둘러 끝내느라 문이 열리자 마자 가방과 책과 아이팟을 주섬 움켜쥐고 문앞에 줄 선 사람뒤로 섰다. 자리에서 일어나 문앞으로 이동하는 몇 초간 내 옆으로 앉아 있던 사람들을 보니, 정신은 말짱해 보이는데 표정은 굉장히 심각해 보이는 아줌마, 그 옆에 몸을 30도 각도 옆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면서 졸고 있던, 얼굴이 취기로 가득 붉은 아저씨, 등등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침에 일찍 탄 지하철은 The Family Man에서 - 이제는 한 때 라고 말할 수 있는 - 자본주의의 정점이었던 월스트리트의 M&A대가로 나왔던 니콜라스 케이쥐가, 아침에 배달된 "crispy"한 월스트리트저널에 매료되는 모습이라면,  지금은 하루라는 시간동안 몇 번 이리저리 접혔다 펼쳐지고 여기 저기 깔리고 받침역할을 해낸, 하루의 마지막 순간에 어딘가에 남겨진 신문지 분위기다. 모두들 하루의 피곤을 고스란히 짊어진 채 얼릉 집으로 가고 싶은게 역력한. 내 상상이지만. 내 정신이 오늘 밤 말짱하여 오밤중에 올라탄 지하철이란걸 살짝 까먹었던 것 같다. 앗, 근데 오늘 토요일인데.

어쨌든 내리면서, 내가 전에 몽롱한 상태에서 막차를 탔던게 기억났다. 내가 술마시고 귀가하는게 빈번해 (in an absolutely relative term) 진게 올해니까, 아무리 오래되봐야 올 초인것 같다. 그 날은 내가 좋아했던 어떤 남성과 다른 몇 사람들과, 아닐법한 조합으로 술을 마셨다. 다른 사람들은 소주를 마시는데 나는 혼자 맥주를. 암튼, 나는 한 병을 혼자서 다 마시고 취했고, 다행히 지하철이 아직 끊기지 않은 시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밤늦게 올라탄 지하철에서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어 몸을 추수리기 어려워 끝자리에 기대어 있었다. 몇 사람 되지 않던 그 열차간에서 대학 신입생의 나이쯤 되 보이는 몇명의 무리들이 마구 떠들더니, 가위바위보를 하더니, 그 중에 한 명이 일어나 지하철 의자 한 쪽 끝의 봉을 타고서 구겨진 신문지들이 올려져 있는 그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맞은편 아래 앉아 있던 그녀의 친구들은 인증샷을 찍어댔다. 그 위에 올라간 그 애가, 너무나 부러웠다. 아, 나도 올라가고 싶어라.

그날의 하이라이트는 집 앞에 간신히 도착하여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였다. 17을 누르고 돌아서서 엘리베이터에 혼자있을 때 의례적으로 하듯, 거울을 들여다 보았다. 어.머.나. 자주색 빛 나비모양 귀걸이가 한 쪽 귀에만 걸려있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만나러 간다고, 내가 좋아하는 니트를 입고, 그 옷에 늘 맞춰걸던 귀걸이였다. 즉, 내가 진심으로 아끼던 귀걸이였던 것이다. 몽롱한 정신이 화득짝 깨어, 17층까지 올라가는 동안,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고양이처럼 살금 현관문을 통과해 내방으로 들어가기 까지 그 짜증을 삭힐 수 가 없었던 기억이,
오랫만에 오밤중에 지하철을 타고 내리면서 든 생각이다. 지하철에서 봉에 기대어 고개를 움직이다가 빠진듯했다. 떨어졌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I have now long forgotten the guy, but I still can't get over with my lost earring. 제 짝을 잃고 이제는 무용지물이 된 남은 한 쪽만이 화장대 서랍 어느 작은 상자에 들어있다. 그 니트를 다시 입을 철이 도래했다. 혼자서는 도무지 쓰일데가 없는 그 나머지 한 쪽을, 버려야 할 텐데 아직 놓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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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의 애벌레

Posted 2010. 10. 2. 23:57
미국에 갔을 때 산이 그리웠다.
특히, 나파갔을 때 예쁜 포도밭 주위로 썰렁한 산을 보니 울나라 산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벌써 일년이 훌쩍 넘게 한 달에 두 번 이상씩 수유리에 가고 있지만,
정작 삼각산/북한산 (whatever you want to call it)에 올라간 횟수는 손에 꼽는다.
이 동네 사는 친구들은 동네 뒷산에 가듯, which it is for them, 이 산을 들락거린다.
특히 명진이 언니는 일주일에 5일은 올라간다. 그래서 이 산을, 그녀는 잘 안다.

나도 오늘은 모처럼 등산화까지 챙겨왔건만,
비가 와주시고.
그래도 우리는 명진언니의 안내를 따라 우산을 들고 저벅저벅 빗 길을 나섰다.

너무 챌린징한 코스를 가지 않고 그냥 둘레길을 걷기로 했다.
나름 예쁘장하게 푯말을 달고 샛길 연결하고 다듬어서 만든길.

내가, 산을 좋아하는 첫 번째 이유는 킁킁 나무냄새가 좋아서이고,
이유 2번은, 그 산을 오를 때, 내 신발 바닥이 산 길의 흙과 살짝 맞 닿으며 일으키는 그 어긋남 때문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딪을 때 마다, 신발 바닥에 거푸집같이 나 있는 틈으로는 흙이 안착되었다 빠지고, 평평한 부분에서는 흙과 신발이 밀리는 느낌.을 상상하게 된다. 쌩뚱스러운 상상이기는 하지만, 하이킹이 나에게 주는 묘미이다. 흙을 너무 밟지 못하고 살아서 그런건가?
아무튼, 그런데, 이 만들어진 계단은 산 길의 흙과 나의 접촉을 방해한다.
(이러다가, 고난이도 코스에서 체력이 소진될 때는 또, 급. 계단이 고마워지기도 한다.)

평소 토요일 같으면 줄을 지어 올라가야 할 텐데 (우리가 딱히, 가파른 상행을 한 것은 아니더라도),
비 덕분에 한갓진 숲속을 걷는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인파가 없어서인지 눈에 잘 띄지 않는 생명체가 시선에 포착되었다.
갑자기 내 일상에 곤충과의 조우가 두드러진다고 여겨진다. 흡~
사실 애벌레는 처음 본다.
에릭칼 아저씨가 얘 덕분에 전 세계 수 많은 어린이들에게 알려지고,
... 떼 돈을 버셨겠지. (그림책 박물관도 만드시고.)

비가 심하게 내린 것이 아니라서, 가끔 하늘도 올려다 보았다.
우리는 고개를 넘어서 화계사로 들어갔다. 여름에 해인사에 당겨왔더니, 화계사가 너무 작아보였다. 혹시나 수종사처럼 예쁜 茶방이 있을까 두리번 살펴보았지만, 실망.

잠시 수종사 이야기:



한국에서 살면서 여기저기 마주쳐야만 하는 것이 공사판이건만,
이 현장을 여기서까지 봐야하는 건가. 화가 났다. 그냥 산은 산대로 있게 두면 안되나.
산에 올라와서 멀 또 전망대를 올라가서 봐야 하나.

... 그래도 그냥 한 번 올라가봤다.

훕 - 여기 올라와서 보니 경치가 더 좋긴 좋으네.
(그래도, 불필요하다고 여긴다.)

한쪽으로는 복짝복짝한 서울이 내려다 보이고,

뒷 편으로는 화계사, 아카데미 하우스 (사진에서는 잘 안 보인다), 도봉산이.

우리처럼, 이 전망대에 올라오신 아저씨 아줌마 일행에게 사진 한 컷을 부탁드렸다.

올라갈 때는 가르멜수녀원 담벼락을 지나 올라가서,
화계사를 한 번 찍고,
영락기도원 쪽으로 내려왔다.
나무 냄새 신선한 이곳에서 산뜻하게 한국사회의 종교적인 화해/소통이 일어나면 좋겠다고
우리는 웃으면서 말해본다.
(근데 나는, 그 때 타자로 남아있고 싶다는 생각 =_=)

비 때문에 충분히 오르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 하며... 마을로 돌아왔다.
바지 끝자락이 흥건히 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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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2010

Posted 2010. 10. 1. 11:11

추석날 아침 일어나보니, 침대 옆 창문에 잠자리 한 마리가 붙어있다.
창문을 아주, 조심스럽게 연다. 다행히도 아무런 움직임 없이 가만히 있는다.
사진을 찍었다.
복지부동.

그냥 두고서 추석 아침상 준비를, 조금, 돕고 왔다갔다 하다가,
창문을 다시 본다. 그대로 있다 얘가.
내게는 촘촘해 보이는 구멍들이지만,
잠자리가 육지 (잠자리 다리가 몇 개인지 방금 찾아봄 =_=)를 움켜쥐기에는 딱, 적당한가 보다.
내가 깨기전 부터 저러고 있었을테니, 적어도 서너시간은 지난 시점인데.
몸을 몇 시간씩 수직으로 유지하고 있으면 피가 흐르는 방향이 쏠려서 아프지 않나?
여기 붙어서 죽은겐가?
우리집은 17층. 스크린은 열 수 없게 되어있다.

몇 시간이 지나니 나는 이 잠자리에 대해 데면데면해진다.
바깥에서 들어오는 공기가 쌀쌀해,
별로 조심스럽지 않게 창문을 쿵- 닫는다.

잠자리가 화들짝 훨훨 날아가 버린다.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만져지지 않는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
바다의 기별 中 by 김훈

어쩌다가 보니 김훈의 책을 거의 다 소장하게 되어, 얼마전 홍대 와우북페스티벌 갔다가 내게 없던 <바다의 기별>을 샀다. 이 책이 내 책장에 꽂히기 전에, 침대 머리맡에 며칠 머물렀다.

인용한 비애가는 첫 장에 나온다.

방충망너머로
닿을 수 없고 품기는 커녕 만져볼 수도 없고 불러도 들을꺼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스크린을 부술수도 없어 (없는게 아니라 부수고 싶지 않아) 건너와 다가가고 올 수 없었던,
저 잠자리를 나는 좋아하지도 않았다.

암튼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김훈아저씨,
저기서 "모든" 이라는 단어는... 뻥이라고 봅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이 글을 적고 보니, 문득, logic rules가 떠올랐다.
If A, then B 라고 할 때,
If B, then A라고 하면 틀리는 것이고,
If not B, then not A; B가 아닌 것은 A도 아닌것이 A --> B에서 도출해 낼 수 있는거.

또 그리고 보니까, "기어이"라는 단어가 있다.
난, 근데 그 "기어이"가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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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made French Dinner 2

Posted 2010. 9. 20. 22:50
2010.09.03
Our last night in California, Barbara cooked some more French food for us. 
The night was young, and we were happy together. 

 
The sound of silence 
by Simon & Garfunkel

I had to meet a deadline that night, so I tuned out all the fun noise and "tried" to finish my work.

So obvious who's faking and who was actually busy at work. : )



Barbara the chef of the night - consulting the recipes on her iPhone.
 
Having been excused from the prep work, I took the dish-washing job.
Believe it or not, I actually do enjoy doing dishes.
It soothes me some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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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 Border's, Santana Row

Posted 2010. 9. 20. 22:49
Border's Bookstore Terrace, Santana Row
2010.09.03

San Francisco Bay Area - South Bay를 대충 실리콘밸리라고 하는데, 정확히 어디서 부터 어디까지 구분짓는 경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우스베이의 남쪽 언저리에, 산타클라라(Santa Clara)시와 산호세(San Jose)시의 경계 즈음에, 산타나로우(Santana Row)라는 쇼핑몰이 있다.



2002년 늦 여름 - 내가 레스토랑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 공사완료를 앞두고 이곳에 불이 났었다. 시공사 측에서 완료일자를 맞추지 못해서 불을 냈다는 둥, 보험금 받으려고 불을 냈다는 둥, 소문이 무성하였는데, 어쨌든 이 쇼핑몰은 개장을 하고 화려한 샵들이 입주하면서 지역주민 - 실리콘밸리의 고소득층 엔진니어들을 비롯하여 대략 동네 부유층 (to which I didn't belong) - 을 대상으로 새로운 놀이터를 마련해 주었다.

내가 일했던 곳도 여기서 멀지 않아서 (그래도 차 타고 10분) 낮 시간에 종종 들렀었다. 이 동네는 날씨가 늘 좋기 때문에, 그냥 이 가게 저 가게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무언가 사려는 생각을 비우고 다닌다면 말이다. 흡~

이 곳이 문을 열었을 때가 2002년. 9/11 사건이 발생한지 1년도 안된 시점이라서 경기가 좋지 않아서 하이엔드 몰인 산타나로우가 오래가지 못할것이라는 얘기도 많았고.

오랫만에 와보니, 똑같다 거의. 낯설지 않은 숍이 꽤 있었으니까.
8년 이상을 버텼으면, 일단 성공한거겠지?

예전에 비해서 사람은 더 많아진 것 같고.
오랫만에 와서 보고 눈에 띄었던 것은, 
업스케일 모드로 출발했고 아직도 그 분위기가 이어지고는 있지만,
산타나로우에서 가장 넓은 매장을 두고 장사가 제일 잘 되는 곳은 다름아닌,
저가 의류 브랜드 H&M이라고 한다.



캘리포냐에서 마지막 날 - 정은언니가 재택근무를 하기로 하고, 아침에 나랑 파머스마켓에서 좀 논 다음에, 산타나로우에 있는 보더스 책방 2층 테라스에 둘이 랩탑을 풀고 자리를 잡았다.

사실 실내 카페에서 있고 싶었으나 빈 테이블이 없어 밖으로 나온 것이다.

오후에 햇님이 자리를 이동하면서 자꾸 우리쪽으로 강렬한 빛을 보내는 바람에,
그 분의 이동방향을 피해 우리도 테이블을 질질 끌면서 자리를 옮겨야 했다.
너무 뜨거워서 땀이 날 정도였기에.

햇살은 뜨거웠지만, 간혹가다 살랑바람 솔솔.
이렇게 깔끔하게 도회지적인 공간에서,
귀찮은 소음도 코 끝이 매운 오염도 나를 귀찮게 하지 않고,
almost too good to be true.



언제부터인가 나는, 너무 좋은 공간에 있으면 불편해 진다.
한 때, 뽀다구 나고 분위기 좋은 곳을 골라서 찾아 당긴적도 있었지만,
요새는 이런 공간이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굳이 피해서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좀 덜 화려하거나 허름한 데를 간다고 해서
여기가 내가 있어야 할 곳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그냥, 어디를 가도 난,
낯설은 기운에 밀려 공중부양 붕붕
떠 다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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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the Way You Are

Posted 2010. 9. 15. 23:33
캘리포니아에서 마지막날, 정은언니와 큐퍼티노 파머스 마켓에 들렀다.

싱싱하고 맛있어 보이는 여러 가지 야채와 과일 등등을 흐믓하게 바라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노래 소리가 들렸다. 야채와 과일들 신나라고, 쇼핑하는 사람들도 덩다라 즐기라고 거리밴드가 불러주는 노래였다. 따사로운 햇살아래 슬슬 이 부스 저 부스를 돌다가, 갑자기 귀를 쫑긋하게 되었다. 곧바로 카메라를 키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후후 참으로 멋있다. Billy Joel의 오리지널 보다 더 운치가 있게 들리는.

장날의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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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usalito

Posted 2010. 9. 15. 22:16
2010.09.02 local time
이번에 미국에 와서 느낀 것은,
서울같은 곳이 정말 없다.

미국에 사는 한국인들은 한국에 올 때마다 1-2년에 한 번씩 와도 많이 다른 것 같다고 한다. 사실이 그렇지. 미국에 6년만에 가니, 내가 떠나기 전이랑 너무 비슷했다. (한 가지 크게 다른 것은 Peet's Coffee 현상. to be posted later.) (아!! 그리고, 레스토랑 앞을 지나다가, 혹은 안에서 밥먹다가, 남자 2인 단 둘이서 밥을 먹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something I didn't really notice before.) 그래서, 좋았다. 6년 쯤 어려진 기분이 들기도 하고. 내가 오랫만에 찾은 그 무엇이, 나를 당황스럽게 하지 않는.

소살리토도 그랬다. 샌프란시스코 베이지역에 살면서 타지에서 방문객이 오면 한 번씩 들려주는 장소이다. 남쪽에서 올라올 때 금문교도 건너고. 101N를 타고 Sausalito exit으로 빠져서 주욱 들어오면 이 길로 들어선다. Bridgeway.

재홍오빠의 추천으로 여기서 햄버거를 먹었다. 나는 채식 지향주의자고, 바바라는 엄격한 채식주의자인지라 베지터블부리토를.

상당히 두꺼운 힘버거 패티가 저 넓다란 그릴에 놓였다. 세월아 네월아 그릴은 아주 천천히 돌았다.

조리대와 나사이에 놓인 유리간막이를 너머 사진을 찍었다. 싱싱하고 크런치해 보이는 양상추. 햄버거에 야채 없이 고기만 먹는다면,  >_< ..

실해 보이는 버거. 결국에 고기는 다 먹지 못했다. 빵이 레귤러 번과 다르게 참 맛있었다.

밥 먹고 나서 Bridgeway안쪽으로 더 들어갔다. 길 건너에 우리가 보이길래...

돌아서서 바바라가 찍고 있는 장면은...

바로 물건너 샌프란시스코.
소살리토에서 샌프란시스토 시내 전경을 보는 일은 매우매우 드물다. 그런데 우리는 이날, Bay Bridge까지 다 보였다. 우와~!
내일 시내에 안개가 낀다고 예보를 보았는데, 이날은 맑아서 너무 좋았다는.

그런데,

왔다갔다 하다가 한 시간도 채 안됐는데,
저쪽에 안개가 밀려오는게 보이더니 순식간에 샌프란시스코를 뒤덮었다. 보이는게 이제 없는.... Welcome to the Bay Area.

다시 남쪽으로 내려오는 길에 금문교 비스타 포인트에 들렸다. 바람이 너무 불어서 레알. 날아갈뻔했다. 

그리고 정말, 기이한 광경을 목격. 안개가 눈앞에서 몰려오다가 걷히고, 금문교 (or 오렌지 다리) 가 보였다 가려졌다. 강한 바람에 맞서 카메라를 움켜잡고, 현장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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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Night at the Park

Posted 2010. 9. 15. 21:41

Not surprisingly, my memory has by now faded. But I've still got photos and warm memory of good time with great people, however hazy my recollection may be. One Saturday morning at the end of August, we got up early and hit the road down on California Highway 1. 

Oh, I lied. I was supposed to get up early and bake muffins before the pick-up, but by the time I got out of my bed, I had less than an hour to shower, pack (which should've been done the night before) and bake (Banana Pecan Muffins and Blueberry Muffins). I'm "sort of" used to running late, so I calmed down and took care of them all.

As if the company of great friends were not enough, we were blessed with beautiful weather - the reflection on my muffins was quite telling of the sky under which we drove that Saturday.

The boys were a bit miffed that we the girls ran a little late. Behind the schedule we were, but the morning had to be awoken with some strong coffee, or some refreshing tea for Barbara who doesn't drink coffee. We asked our "designated" driver and the creator of the perfect plan for this trip, Jaehong, to drive several blocks out of our way to grab coffee at Peet's. Yes, we did bypass a nearby Starbucks and drove some extra miles for Peet's.

Then on the rental van, I fell asleep in the backseat until these guys caught Barbara's attention by the highway:

Everyone got off the van and went up close to see and hear sea lions talk some undecipherable language. The sun was bright but it was too windy for me to appreciate their cute grunts. I hurried back to the van and finished the now tepid coffee from Peet's.

Then, our next stop was Trader Joe's, one of my favorite grocery shops in the US. I especially love their store-brand wine which they sell for $2.00 in California (and slightly higher in other states), hence named "Two Buck Chuck."

We filled lots of food in this pretty red cart, enough to feed 4 girls and 3 boys for one night.

Jaehong did all the research and made reservations for this trip. I was so grateful!!! Sorry, but I don't really enjoy making travel arrangements. Whenever I can get away with it, I would welcome the luxury of tagging along other people. Like most things in life, it's who you go, do, eat, live with that matters. Once that's taken care of, who cares about where and what?

Anyway, this was where I was brought to:  Pfeiffer Big Sur State Park.

Neighboring campers. I shivered all night, but the experienced campers knew enough to bring all their blankets and comforters. See left to the green tent.

Unlike most other state parks, Pfeiffer Big Sur requires reservation and fees for using a campground. By the time we made up our mind on this park, it was all booked. But thanks to Jaehong's tireless research, we were able to get one from someone who had his reservation but had to cancel the trip. Hence, Site 146 was to be ours for the night.

Yes, we were hungry. Before we put up our tents, we unpacked our groceries and fixed up some quick lunch. Good bread, cheese, nuts, peppers, carrots, figs, pita bread, hummus, mango salsa.

Then it was time for a fire. 

Well, actually between lunch and the fire set up, we did spend a few hours at the Pfeiffer Beach.

Hyunmo and Jet were about to show off their (more than) decade-long experience of barbecue set up. At the beginning, it looked promising.
 
Jet had picked up a fire starter from a nearby camping store to help ignite fire on the charcoals. It looked like a votive candle, only it melted away a lot quicker than a votive candle might have. Melted but without setting the charcoals aflame.
 
Jaehong joined Hyunmo with some scraps of paper...

Then, Jet gingerly fanned the little flame in the middle in hopes for spreading it farther out.

But the fire didn't really catch on until I stepped in. Haha!
(Note what Hyunmo's holding in his hands. : ) )

Anyway, setting the fire took us longer than we thought, but we managed to grill the beef and sausage for dinner. And we ate it before I could take any pictures.

Once the grilling was done, we added some wood to the embers. In between the burning pieces of wood were placed two cans of soup (one lentil and one clam chowder), sweet potatoes, and asparagus, all wrapped in aluminum foil.

Oh, we had some garlic too. This is how they looked when they came out of the burning wood. Garlic, I wouldn't have to describe. Asparagus was nice and crunchy, leaving refreshing taste of juice in the mouth when chewed. I just wished we had got more of these at Trader Joe's.

What we thought were sweet potatoes were unveiled and proved to be yams.  Disappointing. But we shouldn't have expected the real yummy pumpkin potatoes only available in Korea.

The bellies are now filled. Time to actually enjoy the fire.

And, of course, it would be remiss to do without marshmallows at camping. Hyunmo, a big time s'more fan, even brought long wooden sticks for toasting the marshmallows. Those did come in very handy that night.

All ready to be squeezed with another piece of graham crackers on top.

The toasted marshmallow squished out perfectly.

As fun as the making of s'more sandwiches is, I don't really enjoy them in my mouth. I think marshmallows are best served in rice krispy treats.

The top of s'more sticks were snapped several times after each toasting of marshmallows, and now they were abandoned to disappear into ashes of the charcoals and wood. As the fire was dying out, we all gathered closer to it to feel the last bit of warmth it was giving out. Jet told us some ghost stories which I don't really remember by now. Sometimes, short-term memory can be beneficial, too.

We sat and talked while the fire was dying out. (It had the normal reddish fire hue, nothing like this purplish laser look; it was the camera's work.) 

Lying in the tent, I looked up. It was pitch dark, but when captured in my camera with flash, it told me a little bit more about what was like it up there.

Nigh ni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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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fore Jumping

Posted 2010. 9. 15. 20:41

at some point on California Highway 1
photo by Jaehong Park (blog, flickr)
August 2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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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 SFO

Posted 2010. 9. 11.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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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10

Posted 2010. 9. 3. 15:11
2010.09.02
Muir Woods, Mill Valley, CA


Yesterday, I am told that I may be a boundary person - stuck in between boundaries in every aspect of life. 

This explains my perpetual predicament of never feeling "fit" in any specific group,
and also relieves my stress over the insatiable urge to find home in a defined set of identity. 

Recognize where I am - between boundaries.
In boundaries I am bound to feel uneasy, uncomfortable, unfit. There, shall I find an opening for free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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