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어디에서 와서 내 뱃속으로

Posted 2011. 1. 23. 00:46
문화가 인간의 욕구와 사회의 충돌을 중재하기 위해 고안한 모든 관습과 규칙은 성적 존재로서보다는 섭식자로서의 인간에게 더 큰 만족을 주었다. 프로이트와 또 다른 학자들은 많은 사람들의 성적 신경증에 대해 과도하게 억압적인 문화를 비판했지만, 우리의 신경증적 식습관을 두고 문화를 그 주요 범인으로 몰아세울 수는 없을 것이다. 이와 반대로 우리의 식습관은 음식과 우리의 관계를 제어하는 문화적 힘이 약해질수록 더 큰 고통의 수렁에 빠지는 것 같다.

오늘날, 특히 미국에서 우리가 섭식자로서 처해 있는 상황은 바로 이런것이다. 미국에는 안정된 전통 음식이 한 번도 있어본 적이 없다. 이주민들은 저마다 고유의 전통 음식을 미국의 식탁에 옮겨놓았다. 하지만 그 가운데 지속적으로 국민적 음식이 될 만큼 영향력 있는 음식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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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를 거듭하여 대략 똑같은 음식을 먹고 있는 문화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 문화는 음식 선택에 있어 맛이나 전통 같은 오래된 기준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가 놀라는 사실은 일부  문화는 영양학이나 마케팅보다 습관과 즐거움이라는 측면에서 요리법을 결정하지만 우리보다 더 건강하다는 것이다.

잡식동물의 딜레마 (The Omnivore's Dilemma by Michael Pollan) 중
여울에서 세미나 책으로 내가 추천해 놓구선 난 한 번 읽었다고 진도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책. 일단 밀린 부분 제치고 내일꺼만 읽었다. 짧아서 다행. 흡.

마이클 폴란을 21세기에 가장 큰 업적을 이룬 사람 중에 하나로 꼽는다. at least in my world.

폴란아저씨가 대놓구 지적하기를 미국의 식생활에서 포도식이니 백번씩 씹어먹기니 (19세기 말), 그리고 무탄수화물 다이어트와 고기만 먹는 앳킨스 다이어트 (20세기 말) 등 유행이 들쑥날쑥 하는 것이 미국에 안정된 전통 음식이 없어서라고.

사실 이민자들이 모여있는 사회이기 때문에 맘만 먹으면 참으로 다양하고 풍부한 음식을 즐길 수도 있는 곳이 미국인데, 그눔이 패스트푸드 (a.k.a. multi-billion dollar industrialized food) 때문에 농사는 산업화 되고 음식은 가공되고 건강은 악화되는 총체적인 난국이 생긴거 아닌가 싶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자랑스러운" 한국 음식이 있는데 한국 사람들이 음식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고유의 cuisine이 살아남은게 난, 신기할 따름이고. 0_0

특히, 각박한 도시 생활을 하는 Seoulites - 밥을 너무 소홀히 생각한다. 하루 일과중에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 하는 행위. 너무나 빨리 먹어 치워 버리고, 음식의 정체에 대해서 고민을 거의 하지 않는다. 폴란이 이런 얘기도 했다. 현대인들은 휴대전화나 컴퓨터를 살 때는 이것저것 꼬치꼬치 따져보면서 내 몸속으로 들어가는 음식의 출처에 대해서는 너무 생각을 안 한다고.

그니까, 비빔밥 한 그릇 먹을 때, 쌀은 몇 시간이나 뱅기, 아니 며칠이나 배를 타고 여기 왔을까, 콩나물은 몬산토가 어처구니 없는 권리를 -_- 갖고 있는 GMO 콩으로 재배되었을 확률이 90%이고, 고사리는 아마도 중국에서, 호박이랑 당근은 어디서 왔을까나, 계란 후라이는 엄청 스트레스 많이 받은 닭 (달걀을 생산하는 닭은, 미국의 경우, 대략 A4 용지 두 장의 크기만한 공간에서 열 두마리가 공존한단다)이 낳은 달걀에서 부쳐진.  머 이런 고민.

피곤하다고. 됐고요, 하고 넘어가기에는,
too much is at st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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