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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9.18 처연한 것
  2. 2012.03.13 March 2012

처연한 것

Posted 2013. 9. 18. 19:45

연휴이면서도 여러 사건으로 쉴 수가 없는 지경이다. 어젯밤 부모님 집에 와서 부산하게 안절부절 하다가 잠시 숨을 고르고 집에 두고간 책장에서 황교익선생의 미각의 제국을 잠시 꺼내었다. 그리고 어쩌다가 놀랍게도 점심을 먹지 않은 것을 깜박했던것을 알고 장보러 나가신 엄마아빠 없는 조용한 집에서 냉장고를 뒤지다가 생비빔면을 발견하고 얼른 삶아 헹구고 비볐다. 얼음물로 헹궜더니 면발이 쫄깃한 것이 무엇이든 천천히 먹으려는 최근의 다짐을 생각나게 해주었다. 한 젓갈 후루룩 꼭꼭 냠냠 씹으며 짧은 꼭지로 이루어진 책을 넘기다 "가장 처연한 음식"이라는 장에 이르렀다.


책의 53쪽

밥을 빌어먹는 것을 말한다. 스님들이 그랬으나 이젠 그러지 않는다. 나라가 가난했던 예전에는 집집이 돌며 걸식하는 거지들이 많았다. 요즘도...

저자 황교익선생이나 단순하게 일반 대중으로 여겨지는 자들과 다른 모습으로 밥상을 대하는 이들을 철저하게 대상화, 타자화 시키는 관점으로 그려낸 묘사이지 싶다. 식판 혹은 밥상에 오롯이 집중하며 한 술 한 술 떠 넘기는 그들은 밥 한끼의 온전한 힘에 대해서 누구보다 강렬히 느끼지 않을까 감히 상상해 본다. 아마도 황교익선생은 밥이란 자고로 둘러 앉아 식솔이나 지인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라 여길 수 있으나 그래도 그렇다면 참으로 낭만적인 생각인 것 같다.


식사와 대화가 함께 이루어지는 풍경도 흔치 않거니와, 단지 쪽팔림을 모면하기 위해 밥 친구를 찾아 나설참이라면 차라리 밥과 온전히 대면하는게 나을 것이다. 학생 신분을 벗어난 어른(?)이 되어서 이따금 혼자 밥을 먹을 때면 어렸을 때 혼자 밥먹는게 너무 싫었던 기억이 귀엽다. 그렇다고 해서, 가끔은 혼자 내 속도로 조용히 먹고 싶을 때가 있기도 하지만, 그래도 쪽팔리는 감정이 이제껏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저, 학생 때 쪽팔림은 너무 걱정거리가 귀해서 그것이 신경 쓸거리의 축에 들었던 것이 아닐런가 말이다.


그냥, 세 끼 밥먹는 것이 대수롭지 않은 인생을 사는 삶에서 필연적으로 결여되는 것들이 자꾸 보인다. 결여가 폐해로 이어지기도 하고. 밥과도 온전히 마주하지 못해서 더더욱 가벼워지는 만남과 사귐을 참아야 하나 싶기도 하고...


면을 삶는 동안 고추장소스 봉지를 미리 잘라 가스레인지 (우리집은 전기이기는 하나) 옆 냄비에 기대워 놓았다. 그 봉지는 면을 헹구는 동안 쓰러졌고 소스가 흘렀다. 부족한 양의 스프로 비볐지만 비빔면은 여전히 매웠다. 혓바닥을 헥헥거리며 매운맛을 좀 식히고 컴퓨터를 부둥켜 앉고 좀 있었다. 얼마 안되어 엄마가 저녁먹으라 하신다. 오랫만에 엄마아빠가 차리신 저녁상을 그냥 건너띄기가 모해서 저녁밥을 또 먹었다. 그리하여 세 끼를 꼬박 채웠다.


헛헛하거나 허탈하거나 그런 것들, 그대로다. 한 것은 채울 수 있는 것은 아닌가 보다. 빈 채로 가득 삶을 매우고 있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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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12

Posted 2012. 3. 13. 23:50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익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은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긇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

       <국수> 中 by 백석
(댕추가루: 고축가루; 탄수: 식초, 아르궅: 아랫목) 

여기서 국수는 냉면, 정확히 말해서 평양냉면, 내가 좋아하는 스탈의 냉면이다.
평양에서는 지금도 냉면을!? 국수라고 부른다,고 한다. (내용 출처는 여기에서 소개된 책)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냉면은 겨울음식이다.
이틀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는데, 그 새 꽃샘 추위는 지나갔으리라 믿는다. 한 자락, 추운 기운이 아직도 남아있을지 모를 내일, 냉면을 먹으리.
후룹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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