食後思

Posted 2011. 2. 25. 00:25
무엇을 먹을까 하다가 낙찰된 곳은 마이 차이나타이였다. 이태원 맛집들이 몰려있는 골목의 끝자락, 배고픔에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갔더니 이 집 옆으로 두 개의 식당이 더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불가리아 식당!! 한 두해전에 마이차이타이 왔을 때 슬쩍 보고서 다음에 여기 와야지 했는데 그동안 주욱 까먹고 살았네. 배가 고픔에도 신선한 초이스가 반가워 모험심을 발동하여 이 집으로 들어갔다. 이태원이라지만 레스토랑에는 한국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었고, 한국의 여느 식당에 비해 낯선 공간이었다.


내가 불가리아에 대해서 아는건, 어렸을 때 광고에서 쇠뇌되도록 보았던 불가리스 + 요구르트 조합, 그리고 몇 해전에 오빠가 불가리아로 공연갔다가 사다준 이. 쌩뚱맞은 선물:







얼추, 비슷한 삘이 느껴진다고 우길 수 있을 것 같다.






불가리아 음식에 대해서 아는게 요구르트 밖에 없어서, 메뉴를 펼치기 전에 내가 한 짓이란ㅡㅡ 위키피디아로 "bulgarian cuisine"을 검색해 봄. 동남부 유럽 지역으로서 슬라브에  발칸에 어쩌구 저쩌구, 매 끼니에 샐러를 곁들이고 까지 읽다가, 모하는 짓인가 싶어 메뉴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카뜩 (katak)이라는거ㅡ물기를 짜낸 건조한 플레인 요거트, 화이트 치즈, 구운피망과 호박으로 만든 불가리아 전통 에피타이저

Stuffed Calamari ㅡ 해산물 리조또가 가득 채워진 오징어 위에 파마산 치즈를 얹은

카뜩은, 메뉴에 적힌 화이트치즈라는 것이 어떤 흰치즈를 말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일드한 goat cheese 맛이 났다. 거기에 야채와 너츠를 섞어서 씹는 맛인데 그냥 먹기에 좀 찐해서 빵에다가 발라 먹었다. 그리고, stuffed calamari는 대략, 오징어순대라고 할 수 있겠다. 안에 리조또라고 들어 있던 것은 토마토해산물 볶음밥 맛. 오징어순대는 익힌 후 잘라서 서빙하면 다 터지고 흐르고 난리나는데, 그냥 저렇게 통째로 내놓고 먹는 사람보고 알아서 먹으라고 하는 게 좋겠다고. 배움. 흡.



음식을 두고 먹기 전에 사진을 찍으려면, 왠지 움찔하다. 그러나, 새로운 퀴진을 시도한다는게 참 뿌듯하고 신나는 일이라 기록을 해야 했다. 픕.

사실 이날 너무 배고프고 귀찮아서 마음 한 켠에는 익숙하지 않은 음식에 대한 주저함이 있었다. 몸도 마음도 피곤해서 comfort food를 먹고 싶었던거다. 피곤할 때 새로운 것은 스트레스를 더 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밥을 맛나게 먹고 나니 (곁들여 나온 후진 식빵이 좀 에러였으나 -_-) 뿌듯했다. 불가리아 사람, 심지어 동유럽 사람을 만나면 할 말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ㅡ 오, 나 불가리아 음식 먹어봤어. 맛있더라; 움, 그래도 현지 음식에 비하면 좀 짝퉁이지 한국에서 먹는 거는. 언제 불가리아 가서 꼭 먹어봐. ㅡ 대략 이런 대화를 주고 받지 않을까. (제 아무리 맨하탄 32번가에서 파는 된장찌게가 맛있다 한들,,, 한국에서 먹어보라고 말할테니까 나도) 밥 한끼 먹고나서, 갑자기 불가리아에 대해서 아주 많은 것을 알게된 듯 하다. 호호. 이태원 한 구석쟁이에 외롭게 자리잡은 Zelen이라는 이 식당처럼, 불가리아라는 나라는 나와 많은 한국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아주 작은 구석을 차지하는 존재인게 사실이니.

리비아라는 나라도 대략 그럴것이고. 저기 아프리카 어디쯤 있을 그 나라에서 독재정권에 항의하는 시위가 일어 나기 전까지 내가 리비아에 대해서 관심 둘 일이 무엇이 있었겠어. 연일 북아프리카의 민란 소식이 들려오더니, 양 옆집으로 있는 튀니지아와 이집트 민중의 봉기에 대한 제압이 너무 미약했다고 생각했던지, 카다피는 생존을 걸고 항거하는 시민을 무력진압했다. 마치, 광주의 어느날 처럼 말이다.

이런 저런 얘기를 줏어 들으면서 튀니지아고, 이집트고, 리비아.고간에, 이들이 민주주의적인 발전을 이룩하여 더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 나가겠지, 이들도 대한민국이 민초들의 핏값으로 이루어온 데모크라시를 내세울 수 있는 때가 오겠지 생각했지만. 땅덩이는 독일, 프랑스, 이태리, 스페인 4개국을 합쳐놓은 크기에 600만명이 살고 있는 리비아에서 가난과 실업으로 허덕이는 그들이 광주를 겪고 온갖 험난한 꼴을 다 겪은 한국이라는 나라가 밟아 온 길을 고스란히 따라오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다. 그들에게는 정말 코딱지 만한 크기의 이 나라가 세계 경제 십 몇위 하면서 살고있는 어이 없는 모습을 피해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런데 리비아는 인구가 워낙에 적어서 지식층, 그러니까 새로운 정부를 꾸려갈 수 있는 역량이 되는 인간들이 모두 카다피와 이러쿵 저러쿵 연관이 되어 왔기 때문에 새로운 정부라는 것 자체가 성립되기 어렵다고 한다. 그리고, 내 정서로는 이해하기 힘든 강력한 부족문화가 있댄다. 그들간의 싸움이 일어나기 쉽상이라는.

기름이 저렇게 펑펑 쏟아지는 자연 환경덕에 우리나라에서 뼈빠지게 반도체 만들고 자동차 만들어서 팔 때 그냥 기름 퍼다가 팔아서 큰 수익을 내는 나라이지만, 결국 그눔의 기름이라는 것은 민생을 물로 보고 있는 것이다. 펑펑 샘솟는 기름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는 많은 사람들은 소수 권력층의 희생양으로 철저히 소모되고 희생되어 밥 한끼 해결하기에 허우적 거린다. 블러디 다이아몬드 처럼.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싱싱한 명태를 잡아다가 공들여 황태로 만들어서 남들에게만 갖다주고, 제대로 삭히고 익혀서 만든 된장은 내가 맛도 못하고 팔아야만 한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오늘 Black Swan이라는 발레를 소재로 삼은 영화를 보면서 내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하다가 링컨센터 앞에서 사진 찍은 몇 년전의 그날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나와, 떡볶이 먹고 소화가 잘 안된 이 밤에 pat metheny음악을 틀어놓고 맥북앞에서 키보드를 딸그락 대고 있는 이 순간에, 저기 아프리카ㅡ 중남부 아프리카 허벌판에서 굶고 있다는 얘기를 늘상 들었던 사람들 보다, 무언가 내 땅이 겪은 그 것을 겪는 이들에게 조금 더 공감이 가면서. 이들은 무얼 먹고 사나 궁금해졌다. 우리의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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