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살짝 무거운 마음으로 대구행 버스에 올랐다. 버스안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니 심신이 더 복잡해져서 의자를 뒤로 젖히고 자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은 듯 한데, 기사 아저씨가 휴계실이라고 깨우신다. "15분 안에 돌아오세요." 흥! 그냥 자야지 하고서 고개를 돌리는데, 창문밖으로 이런게 보였다.

오잉. 아저씨 땡큐 하면서 후다닥 카메라를 챙겨서 일어섰다. 버스 계단을 내려와 아스팔트 위에 발을 디디는데, 킁킁. 나무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가까이 다가가니 강물이 초록색이다. 게다가 하늘까지 어쩜 저렇게 완벽하게 맑은 것인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보다 새하얀 구름과 사이좋게 어우러져 있는 푸른 하늘이 더 푸근했다.

깡시골에서 보낸 고등학교 시절. 맑은 하늘에 뭉게핀 구름을 올려다 보며 많은 위로를 받아더랬다.
뽀송
뽀송뽀송
뽀송뽀송뽀송
다가가 만져보고 싶고, 날아라 손오공처럼 저 구름을 타고 날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그러다 높은 산에 올라 구름을 코앞에서 맞이한 일이 있었다. 구름의 실체를 접하고 굉장히 허무했던 기억이. 그렇다. 그 때 까지 과학적인 사실을 부정하고 내 상상만 키워두웠던 것이다.

어쨌든 이날 금강휴계소에서 서둘러 사진을 몇 장 찍고, 맥스웰하우스 휴계소 카페에서 뜨거운 아메리카노 (휴계소 커피도 이젠 묽지만은 않다.) 한 잔 사들고 버스를 향해 서둘렀다. 날씨는 참으로 다리미 같이 뜨거웠다. 이 무더위 속에 내리 쬐는 햇살과 맑은 하늘과 예쁜 구름, 그리고 그 햇살에 힘입어 한 층 눈부신 자태를 뽐내는 저 낮은 산과 강물이 아무런 첨가물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내 마음을 살랑살랑 달래주었다. 구깃했던 기분이 조금씩 펴지는듯 했다.

서울에서도 얼마전. 평소보다 하루의 일과가 길었던 6월의 마지막 일요일, 그 날의 마지막 순서로 이삿짐을 좀 날라야 했다. 깜깜한 밤이 되었을 무렵, 이사를 하는 신띠아를 하야트 호텔 앞에서 픽업하여 이태원의 한 작은 골목을 찾아야 했다. 처음에 호텔 앞에서 아래쪽으로 내려가다 좌회전해서 쭈욱 갔는데 잘 못들은 길이었다. 후진하기가 귀찮아 해방촌쪽으로 차를 돌려 캐피탈호텔을 지나서 이태원 큰 길을 거쳐 다시 하야트 앞으로 갔다. 그리고 그 앞에서 다른 방향으로 간다 생각하고 독일문화원 앞에까지 갔다가, 이것도 아닌듯 하여, 다시 호텔 앞으로. 하야트와 독일문화원 왕복을 몇 차례. 

가로등이 별로 없어 서울의 다른 길보다 조금 어둑하고, 다니는 차량 수도 적었다. 물론 유턴은 모두 불법으로다가. 신띠아는 아이폰지도를 열심히 검색했고 나는 이제 말을 하지 않았다. 슬글슬금 짜증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가 창문을 활짝 다 열었다. 킁킁. 킁킁킁. 소나무 향기가 차 안으로 급하게 떠밀려 들어와 콧 속을 머리속을 한껏 자극했다. 우와. 그 향긋한 냄새에 안 좋았던 기분이 확 달아나는 듯 했다.

햇살에 빛나는 금강을 보며 남산의 어둠속에서 뿜어져 나왔던 그 향기가 생각났다.

조그만 한국 땅에서, 흐르는 물을 두고 자기 지역의 강 따로 4대강 따로 운운하는 (오마이뉴스기사) 자연에 대한 이 천박한 태도에, 소통에 대한 일말의 노력을 무색케 한다. 강 바닥을 파내는 사람들, 나무를 처참히 베어 내는 사람들 -- 어떻게 살아왔길래 물이랑 산이랑 조우하지 못했던걸까? 다사다난한 생을 살아가는데 우리가 물과 나무로 부터 얻는 정화는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귀한 것인데. 그들이 나무와 강이 주는 생명력을 경험했다면 이리도 처참히 강을 파고 물을 막고 나무를 베어 버리는 만행을 저지를 수 있을까. 결국 그것이 자기 자신을 죽이는 일일텐데 말이다.

죽고 싶으면 혼자, 자기네들끼리 죽었으면 좋겠다. 물귀신 작전으로 온 국민을 이렇게 괴롭히지 말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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