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을, 잡다.

Posted 2010. 8. 26. 16:50
나는 오늘,
아줌마 대열에 끼였다.

닭으로 요리를 처음 만들어 본것은 대학 때 였다. 닭다리를 사다가 양념을 발라서 구웠는데, 내가 닭 껍질을 안 좋아해서 열 개의 닭 다리 껍질을 다 손질하기로 한 것이다. 미끈덩, 좋지 않은 느낌이었다. 맨손으로 잘 되지 않아 페이퍼타올을 잡고 했는데, 하나, 둘, 하면서 이걸 계속 해야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러다가 문득, 아... 아줌마들이 이래서 터프해 지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 후에 닭볶음탕을 할 때는 한 마리를 통째로 하더래도 이미 손질되고 잘라져 있는 닭을 사다가 하곤했다. 껍질은 그냥 두고. 흐르는 물에 잘 씼어서 양념하는 닭.

그런데 오늘, 저녁 메뉴로 닭을 고르고서 장을 보러갔는데,
글쎄, 글쎄, 세상에나,
통닭이 이렇게 통째로 있는 것이다.

삼계탕이나 백숙이 아닌, 여럿이서 한 마리를 사이좋게 나눠먹을 수 있는걸 해야했기에, 도막을 내야했다. 그런데 닭다리만 넣고 탕을 만들기가 아니다 싶어, 제대로 하고 싶어서, 용기를 내어,
통닭을 골랐다. 흐.

집에 와서 포장비닐에서 얘를 꺼내서, 흐르는물에 씻는데, 갑자기 안에서 손질된 간이 흘러나왔다. 포장하는 사람이 내장을 안에다 넣어나보다. 흡... 여기서 한번 놀라고.

잘 씻은 닭을 일단, 페이퍼타올을 깐 도마에 올려놓고, 바라보며
칼을 들었다.
"언젠가 한 번은 해봐야 할일이야." 라고 나한테 말하면서.

이젠, 닭을 꼬꼬댁 닭으로 생각하면 안된다. 그저 내가 지금 도막을 내야 하는 대상일 뿐이다.

우선 내 왼손으로 닭의 왼쪽 다리를 움켜 잡았다. 작은 칼로 다리와 몸통 사이의 살을 가르고나서 큰 칼을 들고 뼈를 내리 쳤다. 비교적 용이한 분해. 그동안 내가 먹은 닭다리가 얼만데, 여기서 끔찍해 하는 것은 너무 이기적인 내숭이다 싶어 꾹 참고, 오른쪽 다리도, 툭. 탁.

그 다음은 정면과 후면의 분해: 등과 가슴사이의 양쪽을 갈랐다. 가슴 부분은 잠시 제쳐두고 등을 잡았다. 가르기 시작했다. 아, 정신이 혼미해졌다. 등은 비교적 쉬웠나보다. 닭은 등뼈가 약한가? 저녁을 먹고난 이 밤, 등뼈 자르는 기억은 별로 안난다. 손 쉽게 몇 도막을 내었던것 같다.

마지막으로 가슴부위를 들었는데, 닭 가슴 부분에 잔뼈가 너무나 많았다. 칼도 잘 안들어가고. 내 손이 닭살에 힘껏 매달려, 뼈를 분리해 내야 했다. 미끈덩만 하고 잘라지지는 않고. 아, 너무나 괴로웠다. 잔인한 나. 이걸 먹는 나. 얼마나 많이 먹었냐. 징그럽다고 못 자르면 정말 더 잔인한거다. 먹을 건 다 먹어놓구선. 칼을 내리치고, 뼈에 살짝 끼인 칼에 힘을 계속 가하고...

이렇게 하여, 닭 한 마리를 다 잡았다.

닭 껍질 벗기는거는 정말 껌이었다. 갈비찜하면서 핏물 고인 갈비조각 더미에서 한 조각씩 꺼내어 기름 발르는 일도 참 싫었었는데, 그것도 아무것도 아니다. 기름이 미끈하여 수고가 들뿐.

닭 뿐만이 아니라, 가족들 먹이겠다고 수 많은 닭을 잡으시고 생선을 토막내고 하신,
우리의 엄마들과, 또 소수의 아버지들. 아줌마보고 터프하다고 하는 수 많은 non-아줌마들. 셧업~
아줌마의 손이 부드럽지 않고 칼집이 난 (나도 살짝...) 까닭은, 주변인들 때문이다.

닭을 손질하여 볶은 야채위에 얹은 모습은 찍지 않았다. 오늘 엄청 호들갑을 떨었지만, 점점 더 이 일에 익숙해지겠지. 손질...된 닭과 식탁의 사이는 건너뛰고, 결과물은 이랬다.

내가 닭하고 낑낑대는 동안 도망간 태훈오빠,
내가 해준 밥을 먹은적이 없다고... 투덜댄 재홍호빠,
다행히. 모두들 맛있다고 해주었다. 흐, 맛이 이상했으면 너무 더 슬펐을꺼야.

닭 한마리 희생하고, 나는 더 터프해지고,
우리는 정겨운 밥상을 나누었다.

이렇게 저 닭은,
지구에 태어난 소임을 다하고,
우리의 뱃속으로 종적을 감추었다.

레서피에서 마지막에 고추를 넣으라기에, 파란 고추를 샀는데 왠지 너무 매워보여서 넣을까 말까 살짝 고민이 되었다. 그래서, 씨를 빼고, 송송 썰어서 넣었다. 그런데, 씨를 빼는 과정에서 손가락을 사용한것이다. 고추 하나쯤은 괜찮을줄 알고.

어렸을 때 부터 나는 부엌에서 끼어드는 것을 좋아했다. 엄마가 귀찮다고 뿌리치셨지만, 틈새를 노려 한 바가지 감자를 퍼서 깍든지, 마늘을 까든지, 김을 재든지... 무수리 성향이 짙었다. 내가 열살쯤이었나. 할머니 생신이었다. 엄마가 그 해는 비교적 크게 상을 차리셨다. 일손이 부족하여 나도 떳떳이 한 몫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그리하여 내가 고추전을 맡았는데, 초록색 풋고추를 측면으로 반절 자르고 씨를 다 빼내고 엄마가 준비하신 소를 넣는 것이 내 임무였다. 감자 깍고 마늘 까는 것 보다 훨씬 더 있어보이는 태스크였다. 완전, 성실하게 맡은바 소임을 다 한후, 하루를 마무리 하는데,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손이 욱신욱신 아리기 시작했다. 살짝 잠이 들다가 다시 깨서 울었던 것 같다. 엄마가 미안해 하시며, 고추씨때문에 그런걸꺼라고... 매운기를 빼려고 설탕을 발라서 비벼보고 물에 손을 담가 두고, 긴밤을 지새웠던,

그런 적이 있었다.

오늘밤, 고추 하나 때문에 손이 계속 손이 아린다. 
그런데, 고추씨도 계속 접하면, 그 매운맛이 무뎌지나 보다.
엄마의 손이란...

'살다 살리다 살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a late-night dinner  (0) 2010.08.28
Homemade French Dinner  (0) 2010.08.27
Pizzeria DELFINA  (1) 2010.08.26
오랫만에,  (5) 2010.08.26
Napa Valley  (3) 2010.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