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을 불러내야 할 때

Posted 2010. 7. 29. 17:42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by 장필순

커피 뜸 --
커피를 필터에 담고 표면이 평평하게 한 번 쉐이크 한 후,
커피의 가장자리 1cm가량만 남겨두고 타원을 그리면서 물을 붓는다. 혹은 얻는다.
이 때 더해지는 물의 양은 커피 15그램 기준으로, 15그램이 적당하다.
처음에는, 타원을 고르게 그리면서 물을 붓는 것도 쉽지 않지만, 물의 양을 15그램에 맞추는게 참 어렵다. 잘 부으면 뜸을 들이는 30초 동안 물이 필터 아래로 빠지지 않는다. 물이 자신의 맛을 꽁꽁 감추고 있는 마른 커피파우더 사이로 침투해가며 커피 입자에 숨어 있는 맛을 끌어내온다. 그러면서 맛을 뿜어낸 커피는 부풀기 시작한다. 

여기서 쉬어가는 코너: 심함만고의 (心涵萬古義)

빵을 구울 때 오븐 스프링이 잘 일어나지 않으면 실망스러운 것 처럼, 
커피를 내리면서 스타트에 뜸이 잘 들지 않으면 (나오지도 않은) 김이 빠진다.

커피가 물을 머금고 제 맛을 내지 못하는 상태

처음에는 커피가루의 입자굵기가 너무 가늘어서 그런줄 알았다. 커피 굵기도 영향을 미치기는 하지만, 커피의 신선도가 문제였다. 볶은지 오래되지 않은 (굳이 갓 볶은 콩이지는 않아도 된다) 커피콩을 즉석에서 갈아서 사용할 때 (한국에서는 이미 먼 물길 건너 온 커피이기에 최고의 신선도는 아니어도) 나름 가장 신선한 상태이다.

그동안 내가 새로 커피콩을 사서도 뜸이 잘 안됐던 이유는, 커피콩을 상점에서 갈아왔기 때문이다. 집에서 갈기가 너무 귀찮아서. 그냥 통째로 갈아놓고 쓰고 싶었는데, 역시 무언가 노동이 더 필요했다. 분쇄한지 시간이 지난 커피가 잘 부풀지 않는 이유는, 커피콩을 볶을 때 콩안에 생성된 가스와 연관이 있는데 이 부분은 자세히는 아직 모르겠다. 추후에...

커피스트의 하우스블렌드 이제, 홀빈을 사서 집에서 간다.

그렇지만 분쇄한지 시간이 지난 커피가루도, 로스팅이 잘 되었고 볶은지 오래 되지 않았으면, 뜸 들이는 단계에서 부풀지는 않더라도 그 뒤에 물을 부울 때 거품이 잘 일면서 커피가 그 때 불어나기도 한다.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상태에서 커피의 신선도를 갖춘 후 뜸을 들였을 때, 잘 되면 이런 모습이 된다. 

물이 침투하면서 커피가루가 부풀었다.

그리고,
물을 붓는다.

타원으로 물을 돌리기 전에 중앙에 물줄기를 집중하면서 거품을 불러낸다. 
처음에 하얗던 거품 색깔이 갈색으로 변할 때 까지 가운데 집중한다.

커피수업 때 선생님이 내리시는 모습. 1인을 (150cc) 위해 내리는 커피와 2-3인 이상을 위해 내리는 기술은 다르다.고 한다.

거품을 위로 불러와서,
계속해서 머물게 한다. 
가벼운 거품이 커피의 안 좋은 맛을 잡아두고 있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좋은 맛만 아래로 여과 되도록.

그래서 물을 부을 때 수위를 동일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해지는 물과,
아래로 내려가는 물의 양이 다르지 않게 말이다.

커피를 배우기 전과 후에 큰 차이점 중 하나:
전에는 드리퍼위에 물울 한 꺼번에 붓고 부은 물이 다 내려오도록 기다렸다.
그런데, 그러면 커피의 나쁜 맛까지 다 내리게 되는 것이었다.
수위를 끝까지 유지하면서 내리고자 하는 양의 커피가 서버에 다 차면 (예를 들어 150 cc)
드리퍼에 남아있는 커피물은 
버려야 한다.

자꾸 버리다 보면, 별로 안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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