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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Posted 2010. 8. 14. 00:25
어제 먹은 음식의 일부를 올려보련다.

점심 때, 소영언니를 만나서 쌈지스페이스 지하에 있는 두부식당 (이름은 까먹었다)에 가서 정식을 먹었다. 애피타이저로 초록색 부침이 나왔다. 맛은 밍숭맹숭. 약간의 풀맛과 밀가루 맛이 양념간장과 어울어져 혀에, 부친개인양 다가갔다. 그래도 색깔로 일단 먹어준다.

이 식당은, 음식은 참 훌륭한 편인데, 여느 한식당 처럼 너무 정신없다. 그런데, 그게 바로 한국의 식당 분위기인데 왜 나는 가는 곳 마다 무언가 내 기준에 의해 생성된 완벽한 조화를 기대하는지 모르겠다. 마이 프라블럼, 아이 노우.

상추와 닮은 풀이 정확히 상추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쁘지만은 않게 자유롭게 키워진 잎사귀 같았다. 그 옆에 두부, 완전 싱싱함. 입에서 사르르 녹는 맛이 일품!!  메인이었던 도야지 고기. 요즘 워낙에 고기가 땡기지 않아 많이 먹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맛 있었다. 쫄깃한 육질은 아니었고, 치아가 부실한 내가 먹기에 좋은, 스르르 허물어지는 육질이라고나 할까.

그 다음에 경운동 74 (청담동 고센 맞은편에 세븐티포는 아직 있나, 급 궁금)에서 커피를 투고해서, 러그져리어스하게 사무실을 혼자 쓰는 소영언니 오피스에 가서 오후를 보냈다.

언니의 퇴근 시간무렵 - 그 때 까지 거의 같이 놀기만 했지만 - 인사동 길로 다시 갔다. 늘 무언가 어설픈 분위기의 인사동 상점을 둘러보며 미국에 갖고 갈 선물을 장만했다. 선물을 준비하는 것이란 즐겁지만, 의무감이 과중되면 피곤한 일이 된다. 특히, 인사동 같은 분위기에서 서둘러야 할 때는. 인사동이 전통의 거리라고 많은 한국 사람들이 외국인에게 안내하고, 외국인들도 머스트씨 사이트로 들르는 곳이지만, 이 곳이 얼마나 한국을 알려주는지 모르겠다. 아니 안다:  쪼끔... 알려줌. 훕!

이번에 미국에 가는 메인 이유인 Mr. Burnside 선물은 고심 끝에 식탁 플레이스매트를 골랐다. 93년에 미국에 처음 갔을 때 ESL선생님이셨던 번사이드 할아버지와 그의 부인은 엄마 다음으로, 어떤 면에서는 더 크게, 내게 집에서 만드는 음식과 hospitality에 대한 긍정적인 영향을 주신 분들이다. 늘 주위 사람들을 초대해서 소박한 밥상을 나누고 교재하는 분들. 3년간 췌장암 투병을 하시던 할머니는 올해 1월에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전수받은 요리 및 베이킹 기술로 계속해서 손님 접대를 하고 계신다.

한국식 밥상은 반찬을 가운데 두고 다 같이 나누어 먹기 때문에 젓가락 끝에 잡힌 음식이 그릇에서 부터 입안으로 인테이크 되기까지 이동하는 경로에 조금이라도 떨어질 확률이 높으나, 서양스타일은 음식을 자기 앞에 있는 접시에 덜어 놓고 먹기 때문에, 앞 접시에서 바로 입으로 옮기면 끝이기에, 식탁에 예쁜 천이나 플레이스매트를 깔아도, 괜찮다. 자주 빨지 않아도 된다. 

몇 달전에 결혼한 친구 피터의 선물도 같은 것으로 골랐다. 

얘네들은 구매한 곳에서 포장을 해주셨다. 정사각형이 프랑스에서 샌프란시스코로 놀러오는 바바라에게 줄, 비단 (?) 보석상자이고, 그 밑에 납작한 것은 번사이드 할아버지께 드릴 안경집이다. 보자기 천으로 만들어진 것. 

그리고 나를 위해서 - 부채. 3년 전에 하늘색 부채를 사서 (1,000원) 찢어질 때 까지 쓰고 버렸드랬다. 그리고 올 해, 몇 주 전에 새로 장만했는데, 글쎄 며칠 쓰지도 못했는데 어느날 밤 사라져버린것이다. 인사동 간 김에 똑같은 것으로 다시 샀다. 얘는 2,000원. 200% 인상가. 

찍사 소영언니 曰: "말썽쟁이 흑인같구나."

피곤한 쇼핑을 마치고, 인사동 길에 새로 문을 연 오설록에 갔다. 
지금 내가 웃는게 웃는게 아니지만, 
내 머리처럼 정신없고 부시시한 내 마음을 잠시 밝혀 준,

홍차아이스크림이다.
깔끔한 맛의 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내 입맛이 참으로 자극적이고 센 것에 길드여진것 같다고 다시 생각함. 
(오설록에 대한 평: 위치, 넓은 공간, 맛, 그리고 가격과 견주어 볼 때 언니오빠들의 서비스가 참 걸맞지 않았다. 2-3년 전쯤, 강남 스타타워에 자주 가던 때에, 거기 오설록에서 일하던 아가씨가 아직도 기억난다. 너무나 싹싹하고 상냥하고, 무엇보다 오바스럽지 않으면서 편안한 서비스를 해 주던. 내가 가게를 열면 꼭 그녀를 고용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아직도 거기에 있지는 않겠지? 생각해 보면, 오설록에서 직원 교육을 잘 시켰다기 보다는, 그녀는 그냥 그랬던것 같다. 자기일을 그렇게 야무지게 해내는.) 

이 날의 인사동 투어는 오설록에서 끝나지 않았다. 달짝지근한 아이스크림과 와플을 먹은 우리는, 삼청동으로 올라가서 떡볶이를 먹었다. 즉석떡볶이를 먹고. 여기(선재미술관 옆)까지 오니, 얼마전에 개업한 "카페 코"가 생각이 났다. 내가 커피를 배웠던 곳, 커피스트(성곡미술관 앞)의 시스터 샵. 총총 선재미술관 앞에서 우측 가회동 방향으로 걷다가 헌법재판소 방향으로 우회전하여 직진.하다가. 신한은행과 헌재 사잇길 사이로. 말만 듣고 더듬어 갔는데 쉽게 찾았다. 카페 파사드에 달려 있다던, 코 모형이 킁킁 반겨주었다. 갔더니, 조윤정 샘이 바쁘게 직접 커피를 내려주고 계셨다. 내 뽀글이 헤어스탈을 적극 좋아해 주던 분들 중 1인. 

집에 와서 포장을. 2008년 전주에 갔을 때 15,000원어치 한지를 사왔드랬다. 그 때 부터 포장은 모두 한지로 하고 있다. 디자인 포장지 보다 우선, 싸고, 이쁘다. 2년을 넘게 썼더니 이제 이쁜 색깔이 별로 남지 않았다. 새로운 서플라이를 준비해야 할 때.

신혼부부 선물은 연분홍에 진분홍 띠로.

번사이드 선생님꺼는 무늬 한지와 노끈.

생각해보면, 선물포장 만큼, 뜬금없는 행위도 없다. 싸는 사람 만족이랄까? 꼼꼼히 재단해서 각 잡고 모양을 만드는데 적지 않은 정성과 시간이 들지만, 이 물건이 전달되면 받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내용물일테니. (특히, 미국사람들은, 선물을 받으면, 포장지를 부욱-- 찢어버리는 경향이 있음)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기대치가 살짝 어긋난다고 할까? 포장을 하고 나면, 선물을 고르는데 들어간 수고와 돈은 미미해 보이기도 한다. 

6년만에 처음으로 미국에 간다. 6년 동안 나는 많이 변하고 늙었지만, 미국은 왠지 똑같을 것 같다. 미국이 나라는 저래도, 미국사람들은 좋은 사람들 진짜 많다. 내가 좋아하고 내게 중요한 사람들을 여럿 만나러 가는데, 기대가 별로 안 생긴다. 지금 여기에 두고 가는 과제와 사람들이 지금 내게는 꽤 무겁다. 그리고, 나는 너무 현실에 충실한 것인지, 새로운 장에 settle down하면 내가 떠나온 곳에 대한 미련이 참 없다. 흠. 그 말은 또, 여기를 떠나 미국에 가면, 한국을 살짝 잊어버리고 저기서 만나는 공간과 사람에 집중해서 시간을 보낼 수도 있겠다. 꼭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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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윤의 봄눈

Posted 2010. 8. 7. 13:01


어제 라디오에서 듣게 된 노래. 
박지윤이 작년에 앨범을 낸 것도 몰랐다. 

내가 박진영을 아주. 좋아했던 시절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 기숙사 방에서 박진영 1집을 테이프 늘어지도록 듣기도 했었고. 그 때 창밖에 쌓인 눈과, 기말고사에 압박을 받았던 기억이 너무나 생생하다. 그런데, 대학교 1학년 땐가, 아무튼 2000년 이전, 청담동 안나비니 - 지금도 이 레스토랑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 거기서 밥을 먹는데 우리 테이블 옆에 박진영이 혼자서 앉아있었다. 계속 전화를 하면서. 대부분 영어로. 너무나 아는척을 하고 싶었는데, 친구들이 말렸다. 흐. 끝내 못하고, 우리는 그냥 맹수다를 떨다가 일어서는데 (아, 근데, 무슨 상품의 시장점유율을 논하고 있었던게 어렴풋이 기억난다. 음, 이걸 왜 기억하는거지),

그 때 박지윤이 들어왔다. 
긴 생머리를 풀고, 얌전한 스타일의 치마와, 그 당시 페라가모 구두를 신고 딱딱하게 각진 가죽백을 들고 다니던 여성들의 분위기였다. 이, 동영상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질끈 동여맨 머리, 믹스앤매치로 주렁주렁 낀 팔찌와 검은색 매니큐어 - 그런데 너무나 인형같이 이쁜 박지윤은 와일드 해 보이지 않는구나. 

여튼, 노래 좋다. 
박진영과 루시드폴 -- 
박지윤이 6년동안 쉬었다고 하는데,  
쉬면서 생각하고 고민하고 성장한 과정을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당분간 이 노래를 계속 듣게될 듯. 루시드폴이 만든 노래, 가사를 친히, 복사한다.
자 내 얘기를 들어보렴 따뜻한 차 한 잔 두고서
오늘은 참 맑은 하루지 몇 년 전의 그 날도 그랬듯이
유난히 덥던 그 여름날 유난히 춥던 그 해 가을 겨울 
계절을 견디고 이렇게 마주 앉은 그대여
벚꽃은 봄눈 되어 하얗게 덥힌 거리
겨우내 움을 틔우듯 돋아난 사랑
처음으로 말을 놓았던 어색했던 그날의 우리 모습 돌아보면 
쑥스럽지만 손끝에 닿을 듯이 닿지 않던 그대는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인데 
하루에도 몇 번을 내게 물어봐도 나는 믿고 있어
떨어지지 않는 시들지 않는 그대라는 꽃잎

처음으로 말을 놓았던 어색했던 그날의 우리 모습 돌아보면 
쑥스럽지만 손끝에 닿을 듯이 닿지 않던 그대는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인데
하루에도 몇 번을 내게 물어봐도 나는 믿고 있어 
떨어지지 않는 시들지 않는 그대라는 꽃잎

그대라는 꽃잎
어제 가족들이 놀러가서 오랫만에 혼자만의 아침을 맞았다.
왜 이렇게 좋은지. 후후 
블루베리 머핀을 만들었다. 내가 먹으려고 만든 것은 백만년만이다.
커피 내리고,
적당히 물컹하고, 당분이 농후한 복숭아와 함께.
오늘, 잘 놀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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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엮이는 만남에서

Posted 2010. 8. 2. 18:15
얼마전에 자전거를 1년만에 꺼내면서, 바람이 다 새어 나간 바퀴에 바람을 넣었다. 한 이틀 씽씽 탔나. 앞 바퀴에 바람이 다시 빠진거다. 그래서 다시 가서 바람을 넣고, 왔는데. 그 다음날 또 샌거다. 그냥 심하지 않아서, 요가수업도 늦고 해서 그냥 타고 갔는데, 약 3km의 길, 가는 길에는 무사히 갔으나 요가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앞 바퀴 타이어가 윌 (자전거도 윌이라고 하나)에서 쑥 빠져나온 것이다.

그날, 점심 약속이 있어 서둘려야 했는데,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려고 해도 안 태워주고, 지나가는 택시도 자전거를 붙잡고 서있는 나를 보더니, 기사 아저씨가 고개를 도리도리 하시더니 쌩 가버린다. 하는 수 없이 정류장 근처 아파트 단지 - 즉, 남의 동네 -  자전거 세워두는 곳에 낯설은 자전거 더미를 비집고 내 자전거를 세워두고 왔다. 

이틀 쯤 방치하다가, 오늘 차를 몰고가서 자전거를 태워서 자전거 포에 갔다.
아저씨, 이거 이렇게 됐어요.
"아, 그려. 두고 가. "
"언제 올까요?"
"한 한 시간 후에 와."
"네에. 얼마나 들어요?"
"여기 물 넣어보고 그냥....(못 알아들음)...하는 거면, 3,000원이고, 다 바꿔야 하면 만원이야."
"네. 그럼 이따가 올게요." 

몇 시간 후에 자전거를 픽업하러 가면서, 난 은근히, 바퀴를 다 갈았으면 했다.
아저씨가 그동안 바람도 몇 번이나 공짜로 넣어 주시고,
그 자전거포를 보면 장사가 잘 되는지 안 되는지 몇 년째 거기에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냥, 그 아저씨 수입에 보탬이 되고 싶은... 오지랖. 

그와는 다르게, 지난 주에, 오래된 치마를 고치러 갔다. 허리가 너무 헐렁해져서리. 흐. 동네 백화점에 딸린 수선실인데, 작년에 대학교 1학년 때 산 겨울 원피스를 멋지게 고치는데 성공하여 다시 찾았다. 
이번에는 치마를 4개나 들고 갔는데, 글쎄, 세상에나, 하나에 2만원씩 달래시는거다.
도합 8만원. 헉헉... 
그 중에 하나는 공짜로 얻은 옷이고, 두 개는 예전에 캐나다 출장 갔을 때 세일해서 하나에 20불 씩 주고 샀던거 같은데. 버릴 수도 없고, 울며 겨자먹기로, 8만원 쓰기로 했다.
"4개나 고치는데 좀 갂아주세요."
"원래 하나에 25,000원씩 받아야 되요. 근데 깎아준거에요."
"카드로 결제해도 되요?"
"카드기계가 고장났는데. 이거 봐봐요. 코드도 빼놨어 안 되어서."
"여기요. 현금영수증 해 주세요."
".... (옆 사람 (직원)한테) 얼만데 그래...?" 
얼버무린다.
내 돈을 받으면서 서랖을 여는데, 돈이 수두룩 쌓였다. 
현금영수증을 안 줄 태세여서, 나 스럽지 않게, 그냥 깨갱, 고친 옷을 입어보러 탈의실로 갔다.
어짜피 내가 거기서 따져도, 나 하나 영수증 끊어주고 말면 뭐하나.
내가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저렇게 쌓인 현금에서, 탈세가 얼마나 이루어질까 하는... 생각이 안들을 수가 없었다. (여기서 이건희의 탈세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자.)
집에와서 백화점 고객상담실에 전화했다. 임대하는 공간이라 직접 제재할 수는 없는 사업장이나, 말은 해본다고. 어쨌든.

자전거를 찾으러 갔다.
"아저씨, 다 됐어요?"
"응, 여기 이게 바람새는거 막는거 이게 헐렁해졌드라고."
"얼마에요?"
"됐어, 그냥 가져가."
"아니에요, 아저씨 받으세요."
"아니야 됐다니까." 

작은 자전거포에서 늘 바삐 일하시는 아저씨. 풍기는 공기가 참 부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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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2010. 8. 1. 01:03

December by 짙은

2010.07.19 ::: 가야산 해인사 앞


더운 여름이지만,
덥기 보다는 예측하기 어려운 여름이다. 
더웠다 좀 더위가 수그러 들었다가. 비가 내리다가, 장마처럼 죽 오는 것도 아니고, 오다 말고.
날씨에 대해 지니고 있는 기존의 생각은 다 리셋트해야 하나 보다.

나는 나름 내 몸에 샘솟는 땀과 잘 지내고 있는 듯 하다.
머 내가 막아버릴 수 없으니까. 
여름을 이렇게 저렇게 잘 보내고, 
시원한 천고마비 가을을 꼭 맞이하고 싶다.
그저, 올 봄이 머무르지 못하고 가야했던 것 처럼,
가을은 그러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길. 모든 오바스러운 것은, 안녕.

내가 잡을 수 없는 시간에 대한 타령도 이제는 그만.
차가운 12월이 왔을 때는
사랑도 일도 좀 더 밝아져 있으면 좋겠다.




머, 아님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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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추억

Posted 2010. 8. 1. 00:06
오늘 모처럼, 혼자 집에 있게 되어, 영화를 한편 보았다. 
혹자는 오늘 이 영화를 본 나를 보고  4차원적이라고 했지만,
아직 못 봐서 오늘이라도 봤는데 멀 어쩌겠나.

영화속에서 그려지는 형사의 폭력성과 잔인함에 정말 짜증이 났다. 다분히 (화면상으로) 익숙한 장면이지만, 형사들의 합법적인 만행에 짓밟히는, 사치스런 단어, 인권을 침해당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백광호 (박노식)네 식당에서 술자리를 즐기고 있던 대학생 (혹은 일반인?) 여성이 TV에 나오는 형사들을 보며 "무식한 형사"들이라 한다. 군화로 용의자를 폭행하는게 당연한 형사질로 알고 살아왔던 조형사(김뢰하)가 안그래도 반장님한테 구겨진 자존심과 열등감에 인생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상스러운 무식함이 참, 싫지만, 내가 직접 겪고 살지 않아서 가끔 보면 더 화들짝 놀라지만, 가해자나 피해자나 모두 대한민국의 시대적인 희생자들이 아닐까 싶다. 오랜 전통의 민간인에 대한 국가의 폭력, 그리고 또 군대에서 만연했을 저런 문화가 사회로 고스란히 이어지면서, 군대에 적응하지 못했던 남성들이나 감사히도 군복무의 의무가 없어 인성을 간직하고 사는 여성들이 비인간적인 대접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우리나라. 휴. 

그리고, 살인의 추억에서 마이 훼이버릿 씬:
아아아, 너무 로맨틱하다. 흐흐흐
수사로 혹독한 고생을 하는 남자친구 (혹은 남편이었나)를 위해, 
자신이 아는 방식으로 마음을 써주는 그의 여인.
그리고 대롱대롱 매달린 링거를 받쳐주는 저 갸냘픈 나무.
이 사진보다 더 멋있는 앵글이 있는데, 쿡티비로 본 거라서 캡쳐는 할 수가 없었고, 다음 영화코너에서 건진 사진이다. 사실 이 장면은 없어도 영화 전체의 흐름을 헤치지 않았을 터인데, 이런 디테일이 정말, 너무 므흣하다. 

여러 사람들로부터 극찬을 들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김새거나 기대치를 흐트리지 않았다. 
그리고, 송강호, 연기 정말 잘 해서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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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을 불러내야 할 때

Posted 2010. 7. 29. 17:42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by 장필순

커피 뜸 --
커피를 필터에 담고 표면이 평평하게 한 번 쉐이크 한 후,
커피의 가장자리 1cm가량만 남겨두고 타원을 그리면서 물을 붓는다. 혹은 얻는다.
이 때 더해지는 물의 양은 커피 15그램 기준으로, 15그램이 적당하다.
처음에는, 타원을 고르게 그리면서 물을 붓는 것도 쉽지 않지만, 물의 양을 15그램에 맞추는게 참 어렵다. 잘 부으면 뜸을 들이는 30초 동안 물이 필터 아래로 빠지지 않는다. 물이 자신의 맛을 꽁꽁 감추고 있는 마른 커피파우더 사이로 침투해가며 커피 입자에 숨어 있는 맛을 끌어내온다. 그러면서 맛을 뿜어낸 커피는 부풀기 시작한다. 

여기서 쉬어가는 코너: 심함만고의 (心涵萬古義)

빵을 구울 때 오븐 스프링이 잘 일어나지 않으면 실망스러운 것 처럼, 
커피를 내리면서 스타트에 뜸이 잘 들지 않으면 (나오지도 않은) 김이 빠진다.

커피가 물을 머금고 제 맛을 내지 못하는 상태

처음에는 커피가루의 입자굵기가 너무 가늘어서 그런줄 알았다. 커피 굵기도 영향을 미치기는 하지만, 커피의 신선도가 문제였다. 볶은지 오래되지 않은 (굳이 갓 볶은 콩이지는 않아도 된다) 커피콩을 즉석에서 갈아서 사용할 때 (한국에서는 이미 먼 물길 건너 온 커피이기에 최고의 신선도는 아니어도) 나름 가장 신선한 상태이다.

그동안 내가 새로 커피콩을 사서도 뜸이 잘 안됐던 이유는, 커피콩을 상점에서 갈아왔기 때문이다. 집에서 갈기가 너무 귀찮아서. 그냥 통째로 갈아놓고 쓰고 싶었는데, 역시 무언가 노동이 더 필요했다. 분쇄한지 시간이 지난 커피가 잘 부풀지 않는 이유는, 커피콩을 볶을 때 콩안에 생성된 가스와 연관이 있는데 이 부분은 자세히는 아직 모르겠다. 추후에...

커피스트의 하우스블렌드 이제, 홀빈을 사서 집에서 간다.

그렇지만 분쇄한지 시간이 지난 커피가루도, 로스팅이 잘 되었고 볶은지 오래 되지 않았으면, 뜸 들이는 단계에서 부풀지는 않더라도 그 뒤에 물을 부울 때 거품이 잘 일면서 커피가 그 때 불어나기도 한다.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상태에서 커피의 신선도를 갖춘 후 뜸을 들였을 때, 잘 되면 이런 모습이 된다. 

물이 침투하면서 커피가루가 부풀었다.

그리고,
물을 붓는다.

타원으로 물을 돌리기 전에 중앙에 물줄기를 집중하면서 거품을 불러낸다. 
처음에 하얗던 거품 색깔이 갈색으로 변할 때 까지 가운데 집중한다.

커피수업 때 선생님이 내리시는 모습. 1인을 (150cc) 위해 내리는 커피와 2-3인 이상을 위해 내리는 기술은 다르다.고 한다.

거품을 위로 불러와서,
계속해서 머물게 한다. 
가벼운 거품이 커피의 안 좋은 맛을 잡아두고 있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좋은 맛만 아래로 여과 되도록.

그래서 물을 부을 때 수위를 동일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해지는 물과,
아래로 내려가는 물의 양이 다르지 않게 말이다.

커피를 배우기 전과 후에 큰 차이점 중 하나:
전에는 드리퍼위에 물울 한 꺼번에 붓고 부은 물이 다 내려오도록 기다렸다.
그런데, 그러면 커피의 나쁜 맛까지 다 내리게 되는 것이었다.
수위를 끝까지 유지하면서 내리고자 하는 양의 커피가 서버에 다 차면 (예를 들어 150 cc)
드리퍼에 남아있는 커피물은 
버려야 한다.

자꾸 버리다 보면, 별로 안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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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Honest Exit" by Dinaw Mengestu

Posted 2010. 7. 26. 00:20
[[ 진중권님의 트윗 (10/07/25)에서: 
철학, 하면 할수록 머리가 빠개지는 학문입니다. 저 바닥으로까지 내려가 "분절화되지 않은 소리를 내지르고 싶은 심정"이 되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나중엔 도대체 우리의 언어가 과연 사유에 적합한 수단인가 회의가 드는 지점까지.... 
일단 철학은 됐고요, 
나만 그런건 아니겠지만,
단순하게 하고 싶은 얘기를 할 때도 언어라는 것이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지 못해서 답답하다. 너무. Hence, the subject of language has boggled the minds of modern/post-modern philosophers. And then, for me, there's this question of whether to think and express in English or Korean. Being bilingual, albeit imperfect, can bring complementary effects from both languages, but at the same time, it interferes with achieving excellency in either. In other words, it always feels lame. 글 쓰는데 한국말과 영어를 섞어서 쓰지 않는 것을 나름 내 철칙으로 밀어붙여 왔는데, 너무 피곤하다. And it takes too much time. So, now, whatever... Let me be. ]] 

두 세달 동안은 매주 받아서 쌓아만 놓던 뉴요커 매거진을 다시 집었다. 나가는 길에 가방이 무거워 책 한 권 대신의 목적으로. 가벼운 주간지라 어깨는 편하지만, 지하철에서 서서 얇은 종이를 한 장 씩 넘기기가 쉽지 않다. (그치만, 침 바르기는 노노)

뉴요커에서 여름 특집으로 20 Under 40 - 40세 미만의 픽션작가 20명을 선정해 단편집 이슈를 만들었다. 세대를 대표할 만한 작가들을 골랐단다. 그들-편집자-이 인정하듯이 리스트를 만든다는 것에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일단 에티오피아 출신 작가가 쓴 글을 읽고 나서 선정된 작가군을 보니 흥미롭다. 20명 중에 넌네이티브들의 출신지를 보면 나이지리아, 페루, 라트비아, 중국, 에티오피아, 유고슬라비아, 러시아가 있다. 미국이란 나라 자체가 외부의 것의 아말감이면서, 다양성 반영에 매우 뿌듯해하신다. 나도 머, 그것 부터 확인한다. 나름 병이다. 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한 압박감. 



스토리인즉슨,
뉴욕 맨하탄의 사립 고등학교에서 문학수업을 가르치는 에티오피아 헤리티지의 선생님이 평생 아버지랑 나눈 대화가 거의 없었는데,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하여 아버지에게 독백을 시작하며 그 이야기의 청중이 학생들로 옮겨진다. 그동안에 아버지에게 들은 얘기라곤 "Take this," "Don't touch," "Leave now" 등의 짧은 말 뿐. 아버지의 단편적인 조각말을 짜맞추어 학생들에게 아버지의 인생사를 들려준다. 

아버지는, 정치적인 이유로 에티오피아에서 탈출하여 (아버지에 대한 얘기는 대부분이 뻥일 수 있다. 주인공이 풀어나가는 얘기이기 때문에) 수단의 한 항구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드림"의 장소로 갈 것을 꿈꾼다. 아브라임이라는 현지인을 만나 이런 저런 도움을 받는다. 아브라임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아버지를 도와주는. 척. 하는 사람. 아버지는 수단의 한 항구에서 - 자신은 한 모금도 마실 없는 - 차(茶)를 나르기도 하고, 항구에 드나드는 짐을 나르기도 하고, 자다 보니 자기가 누운 곳이 시체 옆이기도 했고, 등등 등등등. 아브라임은 아버지에게 스트레칭을 열심히 연습하라고 한다. 몸을 구부리고 굴리고 수축하고 늘리는. 수단을 탈출할 때 배의 짐칸에 실려 목적지까지 살아서 가기 위한 생존을 위한 연습이었다. 
... my father did not actually make it off that boat alive. He arrived in Europe just as Abrahim had promised he would, but an important part of him had died during the journey, somewhere in the final three days, when he was reduced to drinking his urine for water and could no longer feel his hands or feet.
아버지는 살기 위해 정당한 방법으로 탈출구를 찾고 싶었다. 돈이 많이 들겠지. 그리고, 잡히지 않고 달아남 자체가 상대적으로 honest할 수 없는 운명이다. 정직한 방법으로 인간이 될 수 없는. 아브라임의 잔인함에 이를 갈아도, 아버지에게 다른 옵션을 없었을 것이다.
My father took the photograph from Abrahim and placed it in his pocket. He didn't say, "Of course I will do this," or even a simple "Yes," because such confirmation would have meant that there was an option to refuse, and no such thing existed between them. 
이 글을 읽으면서 추노가 생각났다. 양반의 만행에 말살당한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려는 꿈을 꾸는 노비들. 자기들 끼리 찌질하게 궁시렁거리기만 하다가, 어느날 게중에 똘똘이가 등장하여 좀 더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을 지핀다. 억압과 주눅만 알고 살던 노비들의 가슴에. 여기서 잠깐 삼천포: 쉰들러의 리스트에서 가장 기억이 남는 장면 - 무더운 날씨에 기차간에 꾸역꾸역 미여 터지게 실려가는 유태인들을 향해 호수로 물을 뿌려주는 쉰들러를 보고서, 옆에 있던 독일군이 낄낄대며 말한다. "You are being cruel. You are giving them hope." 추노에서도, 똘똘이 노비를 가칭한 양반의 하수인이 노비들의 취약점 - 인간이고픈 열망 -을 어뷰즈하여 자신들의 목적을 쟁취...하려고 했다.
By the time my father finally made it to London, eighteen months later, he had begun to think of all the men he met as variations of Abrahim, all of them crippled and deformed by their dreams....
The picture of Abrahim's daughter melted away near a large green hedge with ripe, inedible red berries hanging from it. For many nights afterward, he refused to think about her or her father. There were no rewards in life for such stupidity, and he promised himself never to fall victim to that kind of blind, wishful thinking. Anyone who did deserved whatever suffering he was bound to meet.
ripe, red but inedible. 

추노는 몇 백년전의 일이라고 하지만, 주인공의 아버지 얘기는 20세기에, 그리고 아마도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만연하던 일이다. 

인간으로 사는게 너무나 사치인 그들. 내게 적용되는 욕망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적용할 수 없는 상황에 있는 사람들. 커피를 쪼끔 파고들기 시작하면서 에티오피아라는 나라에 새로운 관심을 두게 되었지만, 내가 마시는 커피가 어떤 사람들의 손과 어떤 사람들이 밟고 다니는 땅을 거쳐서 온 것인지 막연하기만 하지만. 
 
만족스럽게 내면을 표현, 전달하는 것은 어렵다. 내 속의 정황 파악 자체가 어려울 때도 있고 말이다. 그런데 인간이 처한 원초적인 상황 설명으로 멀리있어 보이는 사람과 소통에 대한 최소한의 장이 마련되고, 머 유치하게 느껴지는 말이지만, 인생의 덫 없음을 공감하게 된다. 내가 처해서 살아야 하는 오늘과 내 가까이에 있는 사람의 오늘이 다르고, 에티오피아에서 배고파하며 오늘을 보내는 사람의 처지가 다르지만. 공감적인 행위를 그려보고, 다른 점을 느낄 수도 있고. 기본적인 해석은 서로에 대한 예를 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그니까, 호모사피엔으로서 보편적인 공감대 형성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치구박구 싸울 수 밖에 없는 것인가? (아... 무슨소리?) 그런데, 싸움은 늘 극심한 불균형의 조건에서 이루어진다. 인간의 존엄성은 쌍방소통이다. 가해자는 피해자 뿐만 아니라 본인에게도 못 할짓을 하는 것이다. 전쟁하지 말자. 군사훈련같은 것도 할 필요가 없었으면 좋겠다. 이번 군사훈련 때는 또 무슨일이 일어날래나 살벌한 염려를 웃음따먹기로 하는 국민으로 전락시키는 상황이 싫다.

내가 사는 에티오피아 커피콩이 얼마나 그들에게 도움이 될래나. 항구는 자신의 존엄성을 잃어도 크게 개의치 않는 일부 기득권으로 통제될 텐데.

섬세한 네레티브의 문학선생님 -- 읽는 내내 여성선생님이라고 가정하고 읽었는데, 읽고 나니 그 어디도 젠더에 대한 레퍼런스는 없고, 나중에 보니 작가도 남자다. Minaw가 여자 이름인줄 알았다. 

One Great Misnomer: "무상급식"

Posted 2010. 7. 25. 23:04
나눴어야 할 곳에서 나누지 못한 얘기, 
앞으로 나눌 얘기의 raw material:

쌀이 남아서 동물사료로 준다는 발상을 하는 정부를 보면, 그 동안의 투쟁을 또 무색케 합니다. 굳이 남북관계나 결식아동들의 문제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소통의 장벽을 쿵! 한 번 더 느끼게 됩니다.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무상급식”이라는 화두를 들고 나왔을 때 경남지역의 20개 시/군 가운데 10개 군 지역에서는 이미 무상급식이 실시되고 있었다고 합니다. 김상곤 교육감을 통해 국민들의 무상급식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 졌고, 우리가 알다시피, 첨예한 정책문제로 치달았습니다. 

저도 그런 국민 중의 한 사람으로서 “무상급식”하면 아이들에게 밥을 무료로 제공하는 것인가보다 했는데, 조금 들여다보니 훨씬 더 복잡하고 중요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무상급식은 결국 선거의 판도에 큰 영향을 미치기에 이르렀습니다. 무상급식에 대한 찬반을 가르는 핵심 논점을 보면 저소득층에 한정해 지원하는 시혜적 복지냐, 헌법이 보장한 보편적 교육복지로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이냐라고 하는데,
이 급식 문제를 단순히 아이들 밥 먹이는 문제로만 볼 때 해당되는 논의입니다. 

최영한 교수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를 인용하면, “무상급식의 논의는 교육적 차원을 넘어 농업의 산업적 기반을 지속가능한 모델로 바꿔낼 수 있는 기회라고 봤다. ‘학교-농가 직거래를 통해 계약 재배와 안정적인 판로가 확보된다면 가격과 품질의 안전성을 동시에 도모할 수 있다. 정부는 재정 지출도 줄일 수 있다. 이렇게 먹고사는 길을 터주면 매년 농가에 지원하는 보조금을 줄일 수 있다. 또한 학교급식을 통해 경쟁력이 확보되면 회사, 공공기관, 병원 등의 급식이나 식품가공, 외식시장에도 진출할 수 있지 않겠나. 지금의 무상급식운동에 생산자 단체가 적극 결합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무상급식”이라는 정책의 이름은 치명적인 오명입니다. 단지, 무상이라는, 공짜급식이라는 인식으로, 여당에서 “자본주의 경제체제하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경남지역의 사례를 보면, 합천군의 경우 지난해 친환경 급식 예산으로 지원한 17억원 중 6억원 가량이 지역 농산물을 사들이는 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이는 부수적으로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와 더불어 인구 이탈을 막는 효과도 보았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은 수도권에 인구 집중 현상이 일어나면서 비수도권 지역의 침체 현상이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수도 이전이라는 좋은 묘책이 있었으나, 그 것은 물건너 갔고, 차선으로 세종시 계획이 있는데, 큰 난관을 겪어 왔지요. 일단 인구가 수도권으로 밀집되는 것은 비수도권 지역에서 생활토대가 마련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농가나 지역의 특성을 살리는 경제활동이 중요한데, 농가가 점점 줄어들 수 밖에 없는 구조가 큰 문제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빵에 대해서 얘기를 하겠습니다. 밀도 농작물이니 생산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고, 또 그렇게 다른 특징을 지닌 밀에서 나온 밀가루는 빵을 만들 때 (물론 다른 밀가루 음식을 만들 때도) 다른 결과를 줍니다. 여태까지는 우리밀 재배 가공방식이 빵 발효에서 중요한 글루텐 성분이 미미하여 빵의 반죽이 만족스러울 정도 (혹은 필요한 정도)로 부풀지 못했는데, 점점 제분, 가공과정이 발달하면서  우리밀도 제빵에도 적합한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인터넷에서 만난 분 중에 월인정원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전남 구례로 귀농하여 직접 밀 재배에 참여도 하고, 지역 밀가루를 이용하여 수 차례의 실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종류의 우리통밀로 빵을 만드는 제빵조리법을 개발하여 블로그에서 공유하고 있습니다. 제가 빵을 만들기를 좋아하더라도, 재료값도 아깝고 무턱대고 실험하는 것을 꺼려하는데, 이분의 실험으로 큰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밀 소비량은 전체 밀가루 소비량의 1%에 가까스로 미치는 상황입니다. 우리밀은 빈땅에 밀을 심어 농가에 추가소득을 발생시킬 뿐 아니라, 밀 재배시 분출되는 가스가 대기에 이득을 준다고 합니다. 

.....

사업을 영위하는데 있어, 지속가능한 수익모델을 생각해 내야겠지만, 우선 음식이라는 주제를 두고 파생 시켜볼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묶어 주는 정신을 김지하선생의 책에서 참고 합니다.

풍수학에서 중요시하는 형국론 원리에서 농업생산에 관한 부분입니다.
“민중의 삶, 먹을거리, 물, 채소와 과일 등의 경우 요즘처럼 수송로가 길고 제철을 어긴 식품으로 인한 병들이 많을 때 이 원리에 입각하여 유기농산물 유통 장사보다 그 지역 단위에서 유기농산물의 생산-유통-소비가 기본적으로 해결되어 그 지역민의 생명을 원천적으로 보장하는 운동이 지방자치제 선거 등에서 공약 사안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 다가오는 대병겁, 악질만세 시대의 최대 병인은 생활, 즉 먹거리, 물, 흙, 공기 등에서 오기 때문이다. (49)

합천에서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자기가 먹는 쌀이 누구네 집에서 생산한 것인지도 안다고 합니다. 요즘 식품에 생산자 이름을 써 넣기도 하지만, 솔직히 식품 포장지에 찍힌 어떤 사람의 이름 석자하고 농심이나 CJ상표랑 크게 다를게 뭐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반면에 아름다운마을공동체 친구들이 홍천에서 재배한 식량을 내가 먹게 된다면, 정말 기분이 이상할 것 같습니다. 내가 같이 공부한 친구들의 손을 통해서 자란 음식을 먹는 다는 소중한 경험이 되겠지요. 

이런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뀐다면, FTA가 줄지어 체결되더라도 단순히 경제적인 논리에서만 먹을거리를 접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미국정부는 대외적으로 농업 재배작을 상품으로 전락시켜 멀리 멀리 수출하지만, 미국에서도 10년 전 부터 슬로우푸드운동등 단거리생산지를 중요시하는 풍토로 크게 변모해가고 있습니다. 정부의 정책과 국민의 생활이 크게 괴리되는 양상을 띄게 되는 것입니다. 마이클 폴란이라는 사람이 “잡식동물의 딜레마,” “욕망하는 식물,” “행복한 밥상” 등의 저서를 통해서 먹을 거리에 대한 인식을 대두 시켰습니다. 출판시장을 통해서 로컬푸드, 가까운 지역에서 재배된 식량을 먹는 운동이 전세계적으로 전개된다면 현재 여러 나라에서 체결하고 있는 에프티에이가 가격경쟁력으로만 승산을 보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진을 한 장 나눕니다.  처음에 이 사진을 보았을 때, 무슨 커다란 곰보빵 만드나 보다 했습니다. 
출처: 시사인 129호

그런데, 이 사진은 메주 담그기 체험 학습에 참여한 경남 합천 초등학교 학생들입니다. 메주를 만들어 본다니, 너무 부럽네요. 학교 급식의 변화는 아이들의 끼니를 때우는 것이 아닌, 자연과 생명을 공부하는 학습을 장을 마련하는 것이지요.

참고자료>
새 시대의 율려, 품바품바 들어간다. (김지하)
시사인 129호: 무상급식으로 꿈꾸는 세상
교육, 경제 모두 살리는 '식판혁명,' 무상급식
한나라당 텃밭에서 꽃핀 무상급식
시사인 144호
무상급식은 농업의 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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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살짝 무거운 마음으로 대구행 버스에 올랐다. 버스안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니 심신이 더 복잡해져서 의자를 뒤로 젖히고 자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은 듯 한데, 기사 아저씨가 휴계실이라고 깨우신다. "15분 안에 돌아오세요." 흥! 그냥 자야지 하고서 고개를 돌리는데, 창문밖으로 이런게 보였다.

오잉. 아저씨 땡큐 하면서 후다닥 카메라를 챙겨서 일어섰다. 버스 계단을 내려와 아스팔트 위에 발을 디디는데, 킁킁. 나무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가까이 다가가니 강물이 초록색이다. 게다가 하늘까지 어쩜 저렇게 완벽하게 맑은 것인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보다 새하얀 구름과 사이좋게 어우러져 있는 푸른 하늘이 더 푸근했다.

깡시골에서 보낸 고등학교 시절. 맑은 하늘에 뭉게핀 구름을 올려다 보며 많은 위로를 받아더랬다.
뽀송
뽀송뽀송
뽀송뽀송뽀송
다가가 만져보고 싶고, 날아라 손오공처럼 저 구름을 타고 날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그러다 높은 산에 올라 구름을 코앞에서 맞이한 일이 있었다. 구름의 실체를 접하고 굉장히 허무했던 기억이. 그렇다. 그 때 까지 과학적인 사실을 부정하고 내 상상만 키워두웠던 것이다.

어쨌든 이날 금강휴계소에서 서둘러 사진을 몇 장 찍고, 맥스웰하우스 휴계소 카페에서 뜨거운 아메리카노 (휴계소 커피도 이젠 묽지만은 않다.) 한 잔 사들고 버스를 향해 서둘렀다. 날씨는 참으로 다리미 같이 뜨거웠다. 이 무더위 속에 내리 쬐는 햇살과 맑은 하늘과 예쁜 구름, 그리고 그 햇살에 힘입어 한 층 눈부신 자태를 뽐내는 저 낮은 산과 강물이 아무런 첨가물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내 마음을 살랑살랑 달래주었다. 구깃했던 기분이 조금씩 펴지는듯 했다.

서울에서도 얼마전. 평소보다 하루의 일과가 길었던 6월의 마지막 일요일, 그 날의 마지막 순서로 이삿짐을 좀 날라야 했다. 깜깜한 밤이 되었을 무렵, 이사를 하는 신띠아를 하야트 호텔 앞에서 픽업하여 이태원의 한 작은 골목을 찾아야 했다. 처음에 호텔 앞에서 아래쪽으로 내려가다 좌회전해서 쭈욱 갔는데 잘 못들은 길이었다. 후진하기가 귀찮아 해방촌쪽으로 차를 돌려 캐피탈호텔을 지나서 이태원 큰 길을 거쳐 다시 하야트 앞으로 갔다. 그리고 그 앞에서 다른 방향으로 간다 생각하고 독일문화원 앞에까지 갔다가, 이것도 아닌듯 하여, 다시 호텔 앞으로. 하야트와 독일문화원 왕복을 몇 차례. 

가로등이 별로 없어 서울의 다른 길보다 조금 어둑하고, 다니는 차량 수도 적었다. 물론 유턴은 모두 불법으로다가. 신띠아는 아이폰지도를 열심히 검색했고 나는 이제 말을 하지 않았다. 슬글슬금 짜증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가 창문을 활짝 다 열었다. 킁킁. 킁킁킁. 소나무 향기가 차 안으로 급하게 떠밀려 들어와 콧 속을 머리속을 한껏 자극했다. 우와. 그 향긋한 냄새에 안 좋았던 기분이 확 달아나는 듯 했다.

햇살에 빛나는 금강을 보며 남산의 어둠속에서 뿜어져 나왔던 그 향기가 생각났다.

조그만 한국 땅에서, 흐르는 물을 두고 자기 지역의 강 따로 4대강 따로 운운하는 (오마이뉴스기사) 자연에 대한 이 천박한 태도에, 소통에 대한 일말의 노력을 무색케 한다. 강 바닥을 파내는 사람들, 나무를 처참히 베어 내는 사람들 -- 어떻게 살아왔길래 물이랑 산이랑 조우하지 못했던걸까? 다사다난한 생을 살아가는데 우리가 물과 나무로 부터 얻는 정화는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귀한 것인데. 그들이 나무와 강이 주는 생명력을 경험했다면 이리도 처참히 강을 파고 물을 막고 나무를 베어 버리는 만행을 저지를 수 있을까. 결국 그것이 자기 자신을 죽이는 일일텐데 말이다.

죽고 싶으면 혼자, 자기네들끼리 죽었으면 좋겠다. 물귀신 작전으로 온 국민을 이렇게 괴롭히지 말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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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계획없이 갑자기 제주도에 갈 기회가 다가왔다. 비행기표는 마일리지로, 숙소는 지인의 지인의 펜션으로. 제주에 간다니 사람들의 반응은, 
"아, 휴가 가시는구나."
"아.. 네, 뭐 휴가는 아니구요..."
특정 조직에 메인 몸도 아닌 내가 무슨 휴가는..

제주도에 비가 온다는 것은 알았지만, 아침에 떠날 때 우리 동네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 비행기가 착륙하고서 자그만 비행기 창에 물방울이 붙어 있었고, 밖으로는 흐릿한 풍경이 보였다. 공항에서 숙소인 게스트하우스 사이로 가는 길은 폭우가 쏟아졌다. 자동차 창을 뚫어 보겠다는 태세로 빗발은 내리쳤다. 그렇게 굵고 센 비가 오는 것은 정말 오랫만에 보았다. 제주시를 지나, 제주도 남쪽 서귀포시로 들어서자 비가 좀 멈춧했다. 그리고, 짐을 내려 놓고 간 곳은 마라도선착장 바로 앞에 있는 최남단 횟집. 

 

전복회 -
비싸고 좋은건데,
맛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텍스춰는 오돌뼈를 씹는 느낌이다.












이날의 메인디쉬 - 뱅어회. 쫄깃하면서도 부드럽고, 훌륭했다. 마지막에 나온 지리국물도 일품이었던,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 같았던 회.












게스트하우스 옆쪽 밭. 얼마전에 일구어 놓은 밭인데, 비가 와서 잠겼단다. 
"아 그럼 이제 어떡해요?"
"어쩌기는(~), 물 빠질 때까지 기다려야재." 

게스트하우스 사이에서 만난 분들은 모두 타지에서 오신 분들







사이 테라스에서 바라 본 앞 마당이다.















여기서 바베큐파티 하면 정말 좋겠네에 정말 좋겠네~ 그릴에 파프리카 꼬치, 양파구이, 옥수수 이런거 굽고, 고기 먹을 사람 고기먹고 - 제주 흙도야지. 수박화채도~ 아이스박스에 얼음 잔뜩 채워서 맥주랑 콜라병을 꽂아놓구. 막걸리도. 흐 기분 좋은 상상. 



테라스에서 바라 본 뒤. 양파랑 고구마랑 배추랑 재배한다고 한다. 제주에서는 밥 먹을 때 마다 양파절임이 찬으로 올라왔다. 마늘 만큼은 아니어도, 양파도 사랑하지만, 뒷일 - 임냄새 - 감당이 어려워 가까이 하지 못한다.







여기는 카페 옆쪽으로 준비된 책들. 정면에 커다란 창문이 있는데, 비가 주룩주룩 올 때 여기 널부러져서 책 읽는 것도 괜찮겠다. 












나에게 무엇보다
반가웠던 것은,
드립커피바... : ) 

<이 사진출처는: 사이의 손님 포스트>













케냐로 추출한 커피로 만든,
아이스드커피.
히~



















첫 날은 비가 너무 많이와서 주로 실내에서 보내고, 
둘째날에는 바닷가로 나서기로 함. 오예~

사이에서 일하고 있는 줄기씨, 혜련씨, 보경씨와 같이 가기로 했었는데,
내가 신띠아의 이메일을 받고 TEDxSeoul 다음 이벤트 신청하느라 컴퓨터 앞에 잠깐 앉아 있는 사이 그들은 가버렸다. 등록시작 시간인 12시 전부터 클릭해댔는데, 결국 시스템 오류가 지속되어 등록도 못했다. TEDx등록을 못한 것은 실망스러웠지만, 혼자서 해수욕장을 찾아 가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하고서 챙겨둔 짐을 들고 나섰다. 사이에서 나와 왼쪽으로 해안선을 따라 걸어가면 모래가 보인다고 했는데, 안 보였다. 한참을, 플립플랍을 신고서 걸어갔다. 운동화라도 신고올걸.


가도가도 모래는 안보이고, 계속 돌더미만 보였다.















여기 도착하니, 세 친구들은,
글쎄...

자전거를 타고 왔드랬다. -_-

좀 흐린듯 했으나, 그래도 햇빛도 났다. 이날 바다에 들어갈 시간이 길지 않았기에, 보경씨 혜련씨가 썬탠하는 동안 나는 열심히 물속에서 놀았다.



돌아가는 길,  자전거는 세 대 뿐이었고, 줄기씨가 서핑보드를 실어야 했기에,
나는 또 저벅저벅 걸어왔다. 젖은 반바지가 살에 쓸려서 너무너무 아팠다. 흑  T_T


샤워하고 나서,
시원한 수박화채를.

보경씨와 혜련씨가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이날 오후에 
 차귀도 앞 바다

































저기,
어선이 지나간다.

"잡은 생선 한마리만
 회떠 주세요." 




















어선과의
교신은 실패하고,












 인근 횟집에서 
  급조로
  피크닉거리를 준비해왔다.

  방파제를 둘러싼,  바다쪽으로 길쭉하게 난 둑에  상을 차렸다.







제주에서 먹은 상추는 유난히 부드러웠다. 첫날 횟집에서도, 차귀도 앞바다 피크닉에서도, 나는 풀입을 아그작 아그작 열심히 씹어먹었다. 풀이 좋다. 


회는 와사비를 듬뿍 넣어 갠 간장에 찍어 먹는게 좋다. 

초고추장은 주로 멍게나 해삼종류를 먹을 때만. 근데 멍게, 해삼은 맛이 있는건지 없는건지 잘 못 느끼겠기에,
주로 초고추장을 먹을일이 없다는.








 이 생선은 아지를 통째로 튀긴 것. 살이 참 많았다. 얘도 와사비간장에 살짝~
살살 녹았다. : )

















 


대략,
 뻘쭘할 때 나오는 차렷자세.

상을 치우고, 자리를 떠나기 전에 한 컷.











이날 저녁에는 탄산수 온천에 갔다가, 저녁 늦게,
아니, 밤이라고 할 수 있는 시각에 고등어 조림과 해물 뚝배기를 먹었다.
내가 평생 먹은 고등어는 몇 마리나 될까?

이제 세 째날. 7시에 일어나게 되면 자전거 타야지 했는데,
어쩌다가 다섯시 반에 일어났다.


다행이도,
바구니가 달린 자전거가 있어,
아이팟이랑 핸드폰이랑 물병을 챙겨서 담고, 페달을 밟았다.

처음은 평지였다.
한 바퀴 두 바퀴 정성스레 돌리다가 어느새 내 다리의 힘이 필요없이 질주한다. 

핸들에 손을 고정하고, 두 발은 양쪽 페달에 올려진 채, 온 몸의 동작을 멈추고 바람에 몸을 맡긴채, 
그 바람 속 바다 냄새를 욕심내어 들이마셨다. 문득, 걱정이 든다. 
돌아가는 길을 어쩔까나...
지금 내 다리는 멈춰있어도 오르막길을 오르는 듯이 무겁다.







가는 길에 만난 코스모스. 얘는 원래 가을에 나타나야 하는거 아닌가...?














비 때문에 이렇게 되었나? 

망가진 무 밭.















이렇게 달려서, 왕복으로 한 3km 쯤을 탄듯하다. 쉬엄쉬엄해서 두 시간 가량.

돌아오는 중간에 내려서 낑낑 걸으면서 끌기도 하고,
옆에 자전거타고 지나가던 아저씨,
"자전거 타고 가야죠."
저도 타고 싶거든요. -_-




이번에 한라산에 못 간것이 아쉬웠다. 바다와 산을 둘 다 가려는 야심찬 목표를 이루기 위해,
모슬포에 작은 산에 오르기로 했다. 송악산. 해발.... 104미터. 껌~!
근데 비가 많이 왔고, 아침에 자전거를 두 시간이나 타서 힘이 좀 빠진 상태.
일단 자전거를 타고 트레일 입구까지 갔다. 여기는 올레길 제10코스의 일부.


예의 바구니 자전거를
세워 놓고






















죽 올라가니, 갈림길 등장. 대부분 등산객들이 전망대로 향하고 있었다. 음, 등산객이 아닌 관광객.

나는 분화구가 보고 싶어, the road less traveled를택했다. 









그러나,
저 화살표 너머 분화구 가는 길을 찾을 수 없어 결국 사람들이 많은 전망대로 향했다.













이런.
은 아니고, 사진이 잘 안보여주지만, 가파른 절벽을 
왼쪽에 두고 올레길이 이어진다.

























바다에서, 삶은 늘 죽음을 거스르고 죽음을 가로지르는 방식으로만 가능했다. 내어줄 것은 목숨뿐이었으므로 나는 목숨을 내어줄 수는 없었다. 죽음을 가로지를 때, 나는 죽어지기 전까지는 죽음을 생각할 수 없었고 나는 늘 살아 있었다. 삶과 분리된 죽음은 죽음 그 자체만으로 각오되어지지 않았다.

아마도 삶을 버린자가 죽음을 가로지를 수는 없을 것이었는데,
바다에서 그 경계는 늘 불분명했고 경계의 불분명함은 확실했다.
(칼의 노래 240)





















전망대를 돌고 돌다가, 길을 묻고 물어 
분화구 입구를 찾아 냈다. 조금씩 보슬보슬 내리던 비도 이제는 그쳤다.









요기에 적힌 글자는:
여느 오름과 달리 여러 개의 크고 작은 분화구가 있다. 주봉의 둘레 500미터, 깊이 80미터의 분화구는 아직도 검붉은 화산재에 덮여 있다. 가파도와 마라도, 형제섬이 한눈에 펼쳐진다. 절울이는 파도가 소리쳐 운다는 뜻.
여기서 화산이 폭발했을 때, 바다의 파도가 울었나 보다. 엉엉 T_T
놀래서 울었을래나, 아니면 원래 알았던 모습이 굉음과 함께 사라져 울었을까?


그리고 수천년(?), 아무튼 길고 긴 시간이 흘러,
모슬포의 바다는 평화로워 보인다. 보이기에. 














이 산을 오르는 동안, 대엿섯 무리, 그래서 한 스무명의 사람에게 길을 물었다. 그런데 다 관광객이었다. "저희도 처음 온거라..." 한 번 발길을 딛고 가는 그들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이 산을 한 번 찍고 가는 이 시간이 그들에게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나도 산 한번 오르고자 아무 생각없이 디딘 곳.




이런 좁은 길로 계속 걸었다. 
별로 가파르거나 힘들지는 않았다.


















 


이제 주위에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혼자서 열심히 걷는데,
쌩뚱,
백합이었다.

얘도 홀로 외로히?
라고 생각하려는데, 옆에 무성한 풀들이 째려본다.


















열심히, 고지도 아닌 저 꼭대기를 향해 가고 있는데, 

이론. 

















봉우리가 많아 조금 낮은 지대로 우회했다. 

내가 사진을 논하기 웃기지만, 가파른 경사를 캡쳐하는게 가장 어려운 것 같다. 예전에 스위스 알프스에서도, 늘 바라보던 그 절벽을 사진에 담고 싶었는데 실패하고 포기. 사진의 이미지가 너무 뻥인지라.






산턱에서 저 멀리 전망대를 바라 보았다.
















우측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가파도와 마라도





















형제섬이
한눈에 펼쳐지는 것은 아니고,
그냥 저기 있는 형제섬이 작게 보인다.












가파른 경사에 솟아난 풀과 풀 사이에 작은 돌이 길을 낸듯 깔려 있었다. 











가끔 지나가는 헬기외에는 나 혼자였다. 여기 철퍽 주저 앉아, 시원한 바람이 좋았다. 

이순신 장군 생각도 하고, 저 멀리 가파도에 사는 사람은 누구이며, 마라도에서 파는 짜장면 재료는 어디서 공수되어 오는 걸까, 잠깐 궁금해 하면서 사진을 찍다가, 메모리스틱에 공간이 부족하여 제주도에 앞서 찍은 사진을 지웠다. 한참을 고민하면서 여러장의 사진을 지우다가, 결국, 사색을 누릴 수 있는 멋진 공간에서 카메라 버튼만 클릭하다 일어섰다. 정말 깬다 나.




내려오다가 찍은 컷 -
내가 앉아 있던 점






















여기 염소떼가 있다는데,
난 걔네들 똥만 즈려밟고















열심히 내려오니,
역시 자전거가 그대로 있었다. 
사실 좌물쇠가 없어 걱정했는데,
제주도에서는 괜찮다고... 들 하신다.



















my all-time favorite, 대장금을 촬영했던 곳이란다. 몇 년전 겨울에 제주도에 왔을 때도 대장금 촬영지를 지나갔는데, 그 때도 그럼 모슬포에 왔었나? 그 때는 아빠의 지인이 운전해 주시는데로,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고 따라만 갔던 때.

참으로 긴 아침을 보내고, 오후에 또 바다로 나갔다. 비는 그치지 않았지만, 그래도 갔다.
이날은 걸어가지 않고, 차를 타고!


우리 발자국


















빗물이 바다물 위에 점 찍는걸 보며
















열심히,
파도를 탔다.

햇빛이 조금 났으면 하고 바랬지만,
햇빛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넘실넘실 장난치는 파도에 몸을 던져 조금씩 바다 깊숙히 나갔다.









같이 물놀이한 28세 청년들 - 이제 가야겠다 싶어 물밖으로 나온 후, 보슬비에 조금은 습해졌지만 그래도 대략 건조했던 옷을 주섬 입고, 기념샷을 찍기위해 발을 다시 담갔다. 






이 사진의 두 청년들도 만난지 이틀뿐이 안되었지만. 카메라는 그 날 물놀이에 동행한, 처음보는 청년에게 맡겼다. 묶었던 머리를 풀으니 그 친구가 하는 말: "누나, 머리가 마이클 잭슨이시네요."
흐~

어쨌든 조금씩, 조금씩 바다물과 만나러 나가다가, 
급 파도물에 옷이 젓었다. 흠뻑. 젖은 옷 그대로, 축축한 수건을 둘러싸매고, 칼국수 집으로 향했다. 보말칼국수. 처음 먹어본 보말칼국수. 맛이 예술이었던 보말 칼국수. 

집에 와보니, 제주여행은 유형의 흔적을 남겼다. 날씨는 저렇게 흐렸지만,
흐린 날씨처럼,
내 얼굴이 끄을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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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

Posted 2010. 7. 9. 22:35
지난 겨울은 정말 추웠다. 아주 오랫동안.

겨울에 다니던 회사 앞 길은 볕이 잘 들지 않아 눈이 오랫동안 녹지 않았다. 입시철이라 홍대학원가 학원생들이 쉬는 시간마다 우르르 몰려와 그 쌓인 눈 위에 빈 물병, 컵라면 그릇, 젓가락, 젓가락 껍데기, 빈 담배갑, 담배꽁치, 삼각김밥 껍데기 등을 꽂아 놓고 갔다. 그리고 그 위에 눈이 또 쌓였다.

미국에서 다녔던 대학이 아주 추운 곳, 일년에 6개월을 겨울이라 부를 수 있는 곳, 그야말로 3월에 햇살 한 번 살포시 내리 쬐주고 4월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눈이 계속 내렸던 동네에 있었기 때문에 추위에 이골이 날법도 했지만, 그래도 너무 추웠다. 뼈속까지 시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올겨울이 이렇게 괴팍하게 추우니 여름 더위도 요상할 것인데. 그 때 더우면 이 추위가 기억이 날까? 주변인들은 대부분 아니다에 한 표를 던졌다.

이 여름, 드디어 소설을 읽을 짬이 나서 김훈의 <칼의 노래>를 집어 들었다. 대충 유쾌한 내용이 아닐것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래도 그냥...  분위기가 남한산성이랑 비슷하게 시작하여 초반에 별 재미는 없었는데 푹푹찌는 더위 속에, 양미간에 들어간 힘이 느껴지는 무거움이 싫지는 않구나.
가까운 곳에서 [적탄이] 발사되었던 모양이었다. 적탄이 몸에 박힐 때 화약의 독이 스며서 상처가 화농되었다. 하루도 갑옷을 벗지 못하는 날이었다. 여름의 남쪽 바다는 무덥고 끈끈했다. 갑옷 밑에서 여름내 진물이 흘렀다. 진물이 마른 뒤에도 습한 날들이 계속되면 어깨뼈가 쑤셨고 왼쪽 팔이 힘을 받지 못했다. 상처가 아물어도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살아 있는 아픔이 살아 있는 몸 속에 박혀 있었으나 병의 실체는 보이지 않았다. 병은 아득한 적과도 같았다. 흐린 날들의 어깨 쑤심증은 내 몸속에 들어와 살고 있는 적의 생명으로 느껴졌다. (192 - 193)

2005년 7월 :: 양재역으로 걸어가는 길

더위에 지쳐 여름의 아름다운 모습에 너무 소홀한 채 이 계절을 지내고 있다. 초록의 싱그러움. 밝은 햇살. 겨우내 그리던 것이 아닌가. 특히 겨울에 양재대로나 양재천길을 지나가게 되면 있지 않은 푸르름이 몹시 그리워 진다. 그러다가 봄에 나뭇가지 위에 뾰족 올라오는 어린잎들을 볼 때의 그 므흣함이란... 무어라 설명할 수 있을까?

어쨌든 덥다. 내일 밖에 나가면 짙은 초록의 나무를 보면 나는 고마워해야 겠지만, 그래도 이밤, 이 얼음을 생각하고 싶다. 장갑을 벗은 맨손의 사진이었으면 더 효과적일 것도 같은데, 그래도 그 때는 추웠으므로.

2007년 2월 :: 프랑스 남부, 샤모니 몽블랑 꼭대기에 있는 동굴 속


오늘 오랫만에 멜리사를 만났다. 오늘 휴가라서 백수인 나와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나를 만나려고 낸... 휴가라고 생각한다 난. 목요일에 출근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6.2일 수요일 밤 개표방송을 비몽사몽 밤새 지켜본 유부녀. 둘이 너무나 좋아하는 매드포갈릭에서 갈릭스노윙피자를 먹었다. 봉은사 앞.

내가 정말, 체인레스토랑은 몽땅 다 싫.어.하지만, 매드포갈릭은 매우 사랑한다. 훌륭하다. (두 번째 좋아하는 디쉬는 고르곤졸라 크림 파스타) 우선 작은 샐러드를 먹고나서, 이 피자를, 네 조각씩 삽시간에 먹어치웠다. 그리고 오크우드 건너편에 새로 발견한 카페 (이전에 삼결삽집이었던)의 테라스에서 더위에 무뎌진 채로 앉아 그간의 업데이트를 하고,

우리는 걸었네. 이 땡볕에서.

원래 교보문고 까지 걸어갈 참이었는데, 그냥 라마다호텔까지만 걷고, 길을 건너 버스를 탔다. 에어콘이라는 것이 쌩한 버스를 타니, 몸에 묻은 땀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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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집_옹달샘

Posted 2010. 7. 5. 16:00
비스킷클라우드(: 구름과자)라는 웹/모바일개발사를 창업하신 태한씨. 태한씨가 새로운 밥집을 안내해줬다. 얼마전에 지연씨랑 태한씨랑 둘이서 여기서 밥 먹으면서 내 생각을 했더란다. 내가 좋아할꺼라고. 맛있는거 먹으면서 내 생각을 했다니 이리 기쁠수가. 하하 :D

홍대주변에 수 많은 카페와 식당이 있어도 때로는 어디서 밥을 먹어야 할지 난감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만만하게 아무때나 가면 좋을 식당인것 같다. :: 옹달샘

곤들레 나물밥이라는 것인데, 나는 나물을 너무 좋아해서. 한 입에 반한 그 고소하고 편안한 맛. 내 뱃속도 좋아하는 듯 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나물밥이다보니, 밥이 다소 진 경향이 있다. 그래서 진밥을 싫어라 하는 사람들에게는 좀 안 맞을수도 있음.

반찬이 간단하고 깔끔하다는 생각. 된장찌게 오케이; 김치 굿; 전 굿; 물김치 베리 굿; 짠지무침 베리 굿. 그릇도 하얀 플라스틱 그릇이 아니고 멋진 그릇이라 좋은데, 요식업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저 그릇을 얼마나 깨먹을까라는 생각이... 앞섰다.



원래는 갈비찜과 닭볶음탕이 전문이라고 한다. 


옹의 티:
화장지로 입 닦는거 정말 싫어요 ~_~


:: 옹달샘:: (02) 333-2440 
지도는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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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콤 따라하기

Posted 2010. 7. 3. 00:21

Some years ago, something about this man inspired me.

Malcolm Gladwell


I thought about it, and realized that
it wasn't his ability to crank out best-selling books,
or his insight to pick something so banal and turn into great stories,
or his engaging public speaking skills like he did here.

It was his hairdo.

Unlike the other assets of his, this was something I could imitate.

Then, I did it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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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모메 식당: 세 여인의 일탈

Posted 2010. 7. 1. 23:48
카모메식당은 음식얘기가 나온다고 많은 사람들이 내게 추천해 줬던 영화다. 오랫동안 미루다가 지난 주에 드디어 보았다. 근데 왠걸, 식당이 영화의 배경이긴 하지만, 사실 음식이 주제는 아니다. 오히려 세 여인의 일탈에 대한 얘기이다. [스포일러 있음]

사치에는 핀란드의 헬싱키 골목길에 작은 식당을 열었다. 번창하는 레스토랑 보다는 동네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가볍게 들어와 허기를 채울 수 있는 동네식당을 꿈꾸며 말이다. 심야식당에 나오는 컨셉과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는데, 심야식당은 그야말로 동네식당 분위기인 반면에, 카모메식당은 (핀란드에 안가봐서 그쪽 동네 분위기는 잘 모르겠지만) 동네식당이라기 보다는 마치 아이키아 가구 전시실에서 촬영한 듯 너무 깔끔하여 정겨운 동네 분위기는 없다. 

세 여인:
사치에는 소박한 음식을 알아주는 곳을 찾아서 핀란드로 왔다. 엄마가 일찍 돌아가신거 외에는 개인사를 잘 얘기하지 않는다.
미도리는 그냥 지도를 펼쳐 놓고 눈을 감고 찍은 곳이 핀란드였다. 알라스카든, 타히티든, 그녀가 있던 일상을 벗어나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가고 싶어서 떠나왔다.
           (미도리상, 콕 찍은 곳이 서울이면 어쩔뻔했어요?) 
마사코는 20년간 부모님 병수발을 하다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야 족쇄에서 풀린듯한 느낌으로, 그 언젠간 아버지의 기저귀를 갈다가 텔레비젼에서 보았던 핀란들의 모습을 찾아서 왔다. 

세 여인 모두 자기가 있던 곳에서 벗어나는 일탈을 꾀었다. 목적지에 대한 생각은 그저 조용하고 친절하고 언제나 여유로운 모습의 핀란드 사람을 꿈꾸며 온것이다.

이 영화의 명대사로 일컬어지는 대목은 사치에와 마사코의 대화에서 나온다. 식당을 운영하는 사치에를 보고 마사코가 말한다.
"좋아 보여요. 하고 싶은 일 하고 사는거."
"하기 싫은 일을 안 할 뿐이에요."

정말 그럴까? 하기 싫은 일을 안 하고 사는게 좋은 인생인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굳이 사치에가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고 사는지도...

인간의 존재는 관계속에서 규정될 수 밖에 없기에 사치에는 일본을 떠나 핀란드로 옮겨서 새롭게 자신의 삶의 장을 형성해야 했다. 인종차별도 받았을 것이고; 한 달동안 파리날리는 식당에서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밖에서 쑥덕대던 세 할머니의 불편한 시선도 참아야 했을 것이고; 준비해 놓은 재료를 음식으로 팔지 못하고 많이 버려야 했을 것이고; 이따금도 찾아오지 않는 손님을 마냥 기다려야 했다. 사치에는 이 모든 것을 싫지 않은 일로 받아드렸다.

반면에 미도리는 새로이 찾아 나선 곳에서도 그녀에게 익숙한 스타일을 고수한다. 식당운영도 그녀가 아는 성공적인 방식으로 운영하기 위해서 광고를 내볼까 궁리도 하고 음식을 현지인에게 맞춰볼까도 연구하고. 심지어 동네 청년 뻔뻔단골 토미에게는 친구 좀 데려오라고 성화를 낸다. 

사치에도 타지에서 혼자 사는 생활이 쉽지는 않았겠지만 어느날 불쑥 등장한 미도리를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반사적으로 비춰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사치에에게는 미도리의 보챔이나 조급함이 없다. 자신이 (아마도 어렵게) 선택한 상황을 전적으로 수긍하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한다. 그래서 미도리가 어느날 - 내가 떠나면 니가 쓸쓸하겠니? - 물어도, 너한테는 니 인생이 있는 것이다...라고 딱 잘라 말한다. 사치에는 - 영화에는 안 나오지만 - 미도리가 결국에 떠날 것을 알았을 것이다. 사치에는 강인하고 현실적이다. 자신이 택한 일탈의 허구성을 승화시켜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 내고 만족하며 산다. 그런데 무섭다. 너무 외로운 삶이다. 흑.

미도리에게 핀란드 여행이 헛된 시간은 아니었겠지만, 그녀를 보면 일탈을 꿈꾸는 소망에는 반드시 반환점이 있는 것 같다. 여행이라는 사건을 중심으로 그 이전과 이후가 동일하지는 않겠지만, 수동적으로만 일상에 처해 있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마사코상도 미도리상이랑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음. 구체적인 설명은 생략.)

결국 인간이기에 일탈을 꾀하여 볼 수 밖에 없지만, 또한 벗어나고자 하는 그 일상의 소중함이 결론적으로 얻게 되는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모든지, 누구든지,
있을 때 잘 하자...고 말하고 싶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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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라구요...

Posted 2010. 7. 1. 21:42

상수역에서 주차장 골목으로 걸어가다 보면, 
오른쪽에 
이렇게 이쁜 가게가 있다.

그런데, 간판이....


들어오라는건지,
말라는건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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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10

Posted 2010. 7. 1. 11:22


동창이 밝았느냐 7월이 시작됐다.
어느새 한 반년이 훌쩍지나 버렸느냐
여 남은 여섯달을 잘 살아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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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글린 파프리카 구하기

Posted 2010. 6. 29. 00:51
열흘전 쯤이었나, 파프리카를 구입하는 육인농장에서 문자가 왔다. 세일한다고. 우리나라 농업의 안녕과 번영에 각별한 마음을 두고 있는 나로서 행여 잉여 수확된 파프리카가 무더기로 폐기되는 사태를 방치할 수 없어 기꺼히 충동구매를 했다.

인생에서 과히 가장 비생산적인 시기를 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마음이 분주한지, 신선하고 건강한 상태로 배달된 파프리카 2kg를 그대로 잊혀지게 두었다. 그러다 어제 보니까 얘네들이 벌써 생기를 잃기 시작했다. 우리집에 도착했을 때만해도 빛깔 번쩍이고 탱탱했었는데. 지못미... OTL 


이제 너무 쭈글해져 생으로 먹을 수는 없었고, 몇 개는 볶아서 반찬 만들고 나머지는 식빵을 만들기로 했다. 월인정원님의 레서피를 참조하여. 

기본 배합 재료:

우리밀 통밀 250g 
인스턴트 이스트 4g
볶은소금 3g
꿀 20g
파프리카 즙 200g


우선 파프리카를 손질하여 믹서에 간 후 파프리카 분량을 기준으로 나머지 재료의 분량을 늘렸다.

재료를 다 섞으면 아래와 같이 된다. 이스트와 소금이 맞닿지 않게만 주의하면 된다.


1차 발효 상태


휴지: 1차 발효 후 잠시 휴식 중


팬에 앉히다.

날씨가 더워서 인지 발효가 쑥쑥 잘 되었다. 


2차 발효 후 오븐에 들어가기 전

2차 발효 중에 계란물을 발라준다.

두 배가량 부풀면 예열된 오븐에 넣는다.
월인정원님 레서피에는 190도로 되어있는데, 
우리집 오븐은 좀 세서 185도로 줄이고 약 25분 구웠다. (참고로, 오늘의 날씨: 30도)

그런데,,,
오븐에서 나온 식빵. 오븐스프링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T_T) 
빵 구울 때 집안에 퍼지는 고소한 냄새도 좋지만,
나에게 최고의 기쁨은,
반죽, 1차발효, 휴지, 성형, 2차발효의 과정을 거쳐 오븐에 들어간 반죽이 
마구 부풀어 위로 불쑥 솟는 그 모습, 
오븐 스프링을 보는데 있다. 그런데 정말 오늘은 거의 실패다.

왠지 사이좋아 보이는 두 빛깔

다 구울 때쯤 아빠가 오셨다. 
"이제 먹어도 되는 거냐?"
"네, 드셔요."
평소에 내가 만든 빵을 좋아하시고, 운동하러 가실 때 주문해서 싸가기도 하시는데, 
이거 한 조각 들고 다시 밖으로 나가시면서 하시는 말씀,
"야, 근데 맛이 별로다."
(oh thanks for being so honest. +_+)

먹어보니 소금양이 부족하다. 소금 양을 30-40% 정도 늘렸어야 했다.
어쩌면 이 상태로 당뇨환자들에게는 좋을 것 같기도 하고.

일단, 오늘 빵 만들어서 소영언니에게 주려했는데, 언니 미안하오.
그냥 다시 흑미랑 호밀빵으로 해야겠오. 

오늘 만든거는, 올리브오일  발라서 후라이팬에 구으면 나름 고소하게 먹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쭈글린 파프리카 구하기는 반절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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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나갔다 오니 엄마가 맛있다고 하심. 아랫집 애리네 나눠줬는데 반응 좋다고 하심.
확 동의는 안해도 위로는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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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S. 생각해 보니 이 식빵엔 크림치즈나 리코타가 어울리겠다. 야채니까 좋은 조화.
아직 시도는 안 해봤으나 ㅎㅎㅎ 굿일듯.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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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010

Posted 2010. 6. 28. 09:37

girls' lock-in night::: 1600 Villa St., Mountain View, CA::: July 2004


10년 동안 써 모은 일기장을 보면 참 뿌듯한데, 더 이상 못쓰겠다. 일기 좀 써보려면,
손으로 쓸지 자판을 두둘리지 고민부터 하게되고,
손에 통증이 와 핸드롸이팅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고,
자판을 두드리다 보면, 그게 잘 안된다.

간혹가다 내 일기장을 들춰볼 때 혼자서 키득대며 좋아라 하곤 했는데,
이 짓도 해본지가 너무 오래된 듯 하다. 현실에 너무 충실한걸까.

트위터를 몇 달간 해 보니, 이게 퍼블릭 도메인이라서 말을 가려하게 된다.
말을 가려하는게 싫다.
그런데 내가 남들에게 꽁꽁 숨겨놓은 일기장에 조차도 완전히 솔직하지 않은걸 알게됐다.
언론의 자유는 차치하고, 나는 나 한테 표현의 자유를 얼마나 허락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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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Posted 2010. 6. 25. 00:04

낙동강 by 최백호 (2000)

낙동강 짙은 물 위에 구슬픈 비 내리는데
미움도 정이련가 울고 있는 물새야
찬 바람에 흔들리는 저 갈대처럼
떠나는 사람들을 원망을 마라
처음부터 알고있던 이별인것을
너 만은 쫓지 마라 변하지 마라
어느 누가 뭐라해도 세월은 간다

흐르는 물결이야 저 바다로 가겠지만
남겨지는 한숨들을 낙동강아 아느냐
때가 되면 돌아오는 철새들 같은 
가엾은 사람들을 비웃지 마라
떨어지는 낙엽같은 인생인 것을
너 만은 쫓지 마라 변하지 마라
온 세상이 다 변해도 세월은 간다
세월은 간다

섬뜩한 동영상을 보고, 낙동강 다녀왔다 - 5.29일. 6.2 선거전이었는데, 선거가 끝나고도 크게 달라진것은 없고, 월드컵에 묻혀 우리들의 관심에서 조금 소원해진게 사실이다.

회룡대에서 내려단 본 회룡포 마을

아빠가 어렸을 때 한강에서 물놀이 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그냥 낭만적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리고 3초간 했던 상상은 강둑에 앉아서 발만 담근 모습이었다. 지금 내가 아는 그 시멘트 강둑.

그런데 옛날에 한강은 우리가 오늘 보는 거대한 한강이 아니었다고 한다. 지하철 타고 당산철교, 한강철교, 동작대교, 동호대교를 건너면서 보는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고. 파리에서 센느강 보고서 너무 작아서 웃어줬는데, 아 한강도 원래 그런 모습은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에 우리 아부지가 놀이터 삼았던 한강도 대략 이런 모습이었나보다. 




저기 현수막에 걸린 말 -- 우리가 꿈꾸는 강의 이름은 "행복"입니다.

저기 물가에서 빨간 (혹은 파란) 깃발 있는데 까지 모래를 거두어 내는 작업이 계획되어 있단다.





<"낙동강 살리기 34공구"라는 푯말이 있는 곳>

우리가 타고간 봉고차 타이어에 펑크가 나서 마을의 작은 정비소에서 일행이 모두 기다려야 했다.
정비소 앞에 작은 길을 사이에 두고 논둑이 있어 사람들이 놀고 있었는데, 
정비소 아저씨가 화들짝 놀라시면서, 
"아 거기 왔다갔다 하지 말아요. 큰 차 많이 다녀요."

이 동영상을 찍은 곳은 그 논둑 앞은 아니지만, 지나다니는 트럭의 모습은 같다.

아름다운 모 - 밥이 되기 전에 대형 트럭의 굉음과 진동에 너무나 아프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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