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2010

Posted 2010. 10. 1. 11:11

추석날 아침 일어나보니, 침대 옆 창문에 잠자리 한 마리가 붙어있다.
창문을 아주, 조심스럽게 연다. 다행히도 아무런 움직임 없이 가만히 있는다.
사진을 찍었다.
복지부동.

그냥 두고서 추석 아침상 준비를, 조금, 돕고 왔다갔다 하다가,
창문을 다시 본다. 그대로 있다 얘가.
내게는 촘촘해 보이는 구멍들이지만,
잠자리가 육지 (잠자리 다리가 몇 개인지 방금 찾아봄 =_=)를 움켜쥐기에는 딱, 적당한가 보다.
내가 깨기전 부터 저러고 있었을테니, 적어도 서너시간은 지난 시점인데.
몸을 몇 시간씩 수직으로 유지하고 있으면 피가 흐르는 방향이 쏠려서 아프지 않나?
여기 붙어서 죽은겐가?
우리집은 17층. 스크린은 열 수 없게 되어있다.

몇 시간이 지나니 나는 이 잠자리에 대해 데면데면해진다.
바깥에서 들어오는 공기가 쌀쌀해,
별로 조심스럽지 않게 창문을 쿵- 닫는다.

잠자리가 화들짝 훨훨 날아가 버린다.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만져지지 않는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
바다의 기별 中 by 김훈

어쩌다가 보니 김훈의 책을 거의 다 소장하게 되어, 얼마전 홍대 와우북페스티벌 갔다가 내게 없던 <바다의 기별>을 샀다. 이 책이 내 책장에 꽂히기 전에, 침대 머리맡에 며칠 머물렀다.

인용한 비애가는 첫 장에 나온다.

방충망너머로
닿을 수 없고 품기는 커녕 만져볼 수도 없고 불러도 들을꺼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스크린을 부술수도 없어 (없는게 아니라 부수고 싶지 않아) 건너와 다가가고 올 수 없었던,
저 잠자리를 나는 좋아하지도 않았다.

암튼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김훈아저씨,
저기서 "모든" 이라는 단어는... 뻥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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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적고 보니, 문득, logic rules가 떠올랐다.
If A, then B 라고 할 때,
If B, then A라고 하면 틀리는 것이고,
If not B, then not A; B가 아닌 것은 A도 아닌것이 A --> B에서 도출해 낼 수 있는거.

또 그리고 보니까, "기어이"라는 단어가 있다.
난, 근데 그 "기어이"가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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