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의 애벌레

Posted 2010. 10. 2. 23:57
미국에 갔을 때 산이 그리웠다.
특히, 나파갔을 때 예쁜 포도밭 주위로 썰렁한 산을 보니 울나라 산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벌써 일년이 훌쩍 넘게 한 달에 두 번 이상씩 수유리에 가고 있지만,
정작 삼각산/북한산 (whatever you want to call it)에 올라간 횟수는 손에 꼽는다.
이 동네 사는 친구들은 동네 뒷산에 가듯, which it is for them, 이 산을 들락거린다.
특히 명진이 언니는 일주일에 5일은 올라간다. 그래서 이 산을, 그녀는 잘 안다.

나도 오늘은 모처럼 등산화까지 챙겨왔건만,
비가 와주시고.
그래도 우리는 명진언니의 안내를 따라 우산을 들고 저벅저벅 빗 길을 나섰다.

너무 챌린징한 코스를 가지 않고 그냥 둘레길을 걷기로 했다.
나름 예쁘장하게 푯말을 달고 샛길 연결하고 다듬어서 만든길.

내가, 산을 좋아하는 첫 번째 이유는 킁킁 나무냄새가 좋아서이고,
이유 2번은, 그 산을 오를 때, 내 신발 바닥이 산 길의 흙과 살짝 맞 닿으며 일으키는 그 어긋남 때문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딪을 때 마다, 신발 바닥에 거푸집같이 나 있는 틈으로는 흙이 안착되었다 빠지고, 평평한 부분에서는 흙과 신발이 밀리는 느낌.을 상상하게 된다. 쌩뚱스러운 상상이기는 하지만, 하이킹이 나에게 주는 묘미이다. 흙을 너무 밟지 못하고 살아서 그런건가?
아무튼, 그런데, 이 만들어진 계단은 산 길의 흙과 나의 접촉을 방해한다.
(이러다가, 고난이도 코스에서 체력이 소진될 때는 또, 급. 계단이 고마워지기도 한다.)

평소 토요일 같으면 줄을 지어 올라가야 할 텐데 (우리가 딱히, 가파른 상행을 한 것은 아니더라도),
비 덕분에 한갓진 숲속을 걷는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인파가 없어서인지 눈에 잘 띄지 않는 생명체가 시선에 포착되었다.
갑자기 내 일상에 곤충과의 조우가 두드러진다고 여겨진다. 흡~
사실 애벌레는 처음 본다.
에릭칼 아저씨가 얘 덕분에 전 세계 수 많은 어린이들에게 알려지고,
... 떼 돈을 버셨겠지. (그림책 박물관도 만드시고.)

비가 심하게 내린 것이 아니라서, 가끔 하늘도 올려다 보았다.
우리는 고개를 넘어서 화계사로 들어갔다. 여름에 해인사에 당겨왔더니, 화계사가 너무 작아보였다. 혹시나 수종사처럼 예쁜 茶방이 있을까 두리번 살펴보았지만, 실망.

잠시 수종사 이야기:



한국에서 살면서 여기저기 마주쳐야만 하는 것이 공사판이건만,
이 현장을 여기서까지 봐야하는 건가. 화가 났다. 그냥 산은 산대로 있게 두면 안되나.
산에 올라와서 멀 또 전망대를 올라가서 봐야 하나.

... 그래도 그냥 한 번 올라가봤다.

훕 - 여기 올라와서 보니 경치가 더 좋긴 좋으네.
(그래도, 불필요하다고 여긴다.)

한쪽으로는 복짝복짝한 서울이 내려다 보이고,

뒷 편으로는 화계사, 아카데미 하우스 (사진에서는 잘 안 보인다), 도봉산이.

우리처럼, 이 전망대에 올라오신 아저씨 아줌마 일행에게 사진 한 컷을 부탁드렸다.

올라갈 때는 가르멜수녀원 담벼락을 지나 올라가서,
화계사를 한 번 찍고,
영락기도원 쪽으로 내려왔다.
나무 냄새 신선한 이곳에서 산뜻하게 한국사회의 종교적인 화해/소통이 일어나면 좋겠다고
우리는 웃으면서 말해본다.
(근데 나는, 그 때 타자로 남아있고 싶다는 생각 =_=)

비 때문에 충분히 오르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 하며... 마을로 돌아왔다.
바지 끝자락이 흥건히 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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