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섹슈얼리티, 호모포비아

Posted 2010. 10. 21. 00:53

드라마에서 동성애를 다룬다.
조선일보가 드라마 때문에 동성애가 발생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드라마가 인간의 sexual identity를 형성한다는 웃기는 논리에 대해 비웃음 이어진다.

이 얘기가 나온지가 벌써 몇 달은 지난 것 같다.
그런데 오늘밤 트위터에서 한 차례 또 떠들석 하다.
긍데, 얘기가 똑같다. -_-
중요한 사안이 등장할 때 마다, more often than not, 사건의 본질은 관심을 못 받고 그에 겉도는 얘기로 싸움이 지난하게 이어진다.

나는 아마도 영화, "필라델피아"를 보고서 동성애에 대해서 처음 인식했던 것 같다. 세상이 정말 복잡하구나. 생각했고. 별 관심과 생각없이, 동성애를 잘 못 된것이라고 여기고 다녔던적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은 아니고, 대학교 3학년 때 HR에서 employee relations and diversity라는, 조직에서 다양한 배경의 구성원을 어떻게 "관리"하는지에 대한, 그러니까 나름 상당히 실용적인 수업을 들었다. 강의실 앞 테이블에 걸터 앉아 수업을 진행하면서, 중간 중간 손가락을 스냅하며 몸에 항상 리듬감을 유지했던, 젊은 흑인교수였다. 목소리가 우렁찬, 아마도 그 때 30대 초반 이었을. She gave me one of the most memorable assignments of my college years.

제목은 "diversity journal"이었고, 각 학생이 소수자그룹 중 하나를 맡아서 주변에서 그 사람들을 몰래 관찰하는 것이었다. 나랑 다른 "저"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고 보통 사람들이 "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diversity에 대한 이해, 및 나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민감성을 높여보자는 취지였다. 교수님이 쪽지에 흑인, 동양인, 동성애자 등등 을 적어서 애들한테 제비뽑기를시켰고. 나는 벌써부터, 호모섹슈얼이 걸리지 않기를 바랬다 - 그 때는 싫어서라기 보다는 그냥 무지로 인한 두려움과 귀찮음 때문에. surely enough, 나는 homosexual이라고 적힌 종이를 뽑으심.

내 역할이 흑인이었다면, 그냥 지나가다 관찰하면 되지만, 호모섹슈얼은 짐작을 너머서는 식별이 불가능한관계로 직접 찾아나서야 했다. 내가 수업을 듣던 건물 중 하나에서, 늘 지나다니면서, 어 저런것도 있네 스쳤던, 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Resource Center에 찾아갔다. 센터 스태프한테 내 과제를 말해주고, 동성애자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거기서 만난 아줌마는 레즈비언으로서 받은 차별에 대해서 굉장히 적대적인 감정을 실어 설명해주었다. 그 아줌마가 한 말중에서 오늘날 까지 내 기억에 남아있는 말은, 낮은 베이스 음성으로, "you don't mess with me." 그리고 나서, 그 아줌마의 주선으로 학교 행정직원들 중 두 명의 아줌마를 더 만났다. 이 아줌마들은 남성과 결혼을 해서 애들 낳고 살다가, 고민고민 하다가, 이건 아니라는 결론으로 커밍아웃을 하고 이혼을 했다. 애들이 열대여섯살인 때. 이 부분이특히 쫌 더 쇼킹이었다 나에게는. 난 이 아줌마들을 만나면서 낯설은 것도 있었고, 내가 행여 그들을 offend할까봐 매우매우 폴라이트해야 한다는 두려움에 떨렸던 기억이 또렷하다.

암튼 과제로는, 주변에서 대상 소수그룹인들을 관찰하고, 관련 기사를 골라 읽고 해서 일주일에 두 개씩 총 8개의 기록을 적어야 했다. 지난 번에 책장정리하다가 이 폴더를 잘 두었는데, 오늘 다시 보니까, 귀찮아서 다 읽지는 못하겠고, 내가 이 숙제 때문에 매우 혼란스러워했던 흔적이 역력했다. 어쨌든 이 과제를 통해서 동성애자에 대한 관념적인 게으른 판단은 반성하고. 호모섹슈얼인 개인들을 만나, 호모섹슈얼 라이프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것이 매우 충격, 의미있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주변에 여러 분분한 의견들 가운데 내가 어떤 "옳은" 그런데 쉬운 결론을 맺고 싶다는 충동이 강했는데, 내가 읽은 기사에서 쉬운 대답은 없다,라는 것에서 멈췄다.

그 후로 계속 이 문제가 나올 때 마다 누군가 속시원한 대답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러던 지난 겨울의 어느날, 명동의 한 월남식당에서 눈물나게 맛없는 쌀국수를 먹으며 교회공동체 친구들과 동성애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하게 되었다. 당시에, 한 진보성향이 강한 교회의 전도사로 있던 은주로부터, 우리는 그 교회의 두 명의 레즈비언 얘기를 매주 들어왔던 차였다. 한 명이 병으로 죽어가는데 그녀의 파트너는 옆에서 눈물없이는 못 볼 정도로 극진하게 죽어가는 애인을 간호했다. 결국 아팠던 그녀는 세상을 떠났고, 교회에서 장례를 치루고 여러 가지 모든 궂은 일을 처리해 주었다. 죽은 여성의 가족들과 엮인 불편한 문제도 많았고. 은주는 너무도 헌신적으로 그 두 레즈비언 여성을 보살펴 주시던 그 교회 목사님께 왜 이렇게 까지 하시냐고 여쭈었보았댄다. "그냥 동성애에 대해서 왈과왈부 따질게 아니라, 예수님이라면 이렇게 하실 것 같아서 그렇게 하는거지."

그리고.
남은 파트너는. 추후에 남성과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제, 일반인들은 이 여성에게 바이섹슈얼이라는 딱지를 곧장 붙이겠지만, 은주가 그녀를 보고 느낀것은, 그녀가 여성의 애인과 연애를 할 때나, 남성의 애인과 연애를 할 때나 그녀의 사랑에 대한 진정성은 똑같아 보인다고 했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은 아니었다. 같이 밥먹던 다른 여성 친구 한 명은 헤테로섹슈얼이지만, 여성 친구한테 성적인 감정을 느껴봤던 경험이 있고, 자기 주변에는 그런 친구들이 아주 많다고 했다.

우리가 장황하게 나눈 이야기를, 도식적으로 간단히 말해보자면, 한 인간이 느끼는 성적 감정에는 일종의 스펙트럼이 있다,였다. 한 쪽 끝이 동성, 다른 끝이 이성. 많은 사람들이 이 양극의 어느 지점에 위치해 있다.는. 나는 곰곰히 생각해보니, 여성한테 어떤 야릇한 감정을 느껴본일은 없다,가 결론이다. 고로 나는 울트라 헤테로섹슈얼. 그날 얘기한 친구들 중에 내가 가장 극단적이었다.

암튼, 우리의 결론은 대략 그랬다. sexual orientation/preference spectrum. 이것을 보편적인 진리로 주장할 수는 없으나, 내 마음은 좀 편해졌다. -_-

난 김수현이 한국사회 성숙도를 위해서 일조했다고 본다. 신정아가 학벌주의 사회 병폐의 물고를 틀어주었던 것 처럼. (파장의 magnitude는 다르다는 것, 인정.) 일단 동성애라는 화두로 논의의 장이 만들어 졌다. 그런데, 지금의 말싸움이 한 동안은 지속될 것이 미리부터 지겨워진다. 동성애.에 대한 본질적인 얘기를 했으면 좋겠다.

그날 명동에서 친구들과 맛없는 것으로 허기를 채운 불쾌감을 안고 그 식당을 나오면서,
"근데, 니가 애를 낳았는데 그 애가 호모섹슈얼이라고 하면 어떻게 할꺼야?"
"음. 한국에서 살면 불행 그 자체일터이니... 네덜랜드 같은 곳으로 갈 수 있게 해줘야할 것 같어."



"Can you hear the heartache in her voice? Can you feel it, Joe?"

La Mamma Morta by Maria Callas
Tom Hanks, Denzel Washing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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