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은 일상에 위로를

Posted 2010. 10. 20. 16:03
10대 초반 즈음부터 내 주변은 정치.경제.문화.사회.종교적으로 너무나 다른 사람들로 붐비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신경끄고 나 대로 살아볼 수 있지 않았나 싶지만, 그 서로 다름의 간극속에서 그 "나대로" 사는게 안되었다. 나만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본능적인 분투가 지속. 그렇다고 해서, 지금 서른을 넘긴 나이에 내 정체성을 찾은 것은 아니고, 얼마전에는 나는 그냥 이렇게 끼인 상태에서 잘 살아가보는게 좋겠다는 well-meaning 조언을 받기도 했다. 흡!

2년쯤 전에 세진이의 추천으로 아트앤스터디에서 자본주의에 관한 강신주 교수의 강의를 접했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장(자본주의)에 대한 무언가 불편한, 심히 불편한 점을 콕 찝어주는 시원함과 강사의 어눌하고 재미있는 말투에 푹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작년에 이 내용이 책으로- 상처받지 않을 권리: 욕망에 흔들리는 삶을 위한 인문학적 보고서 - 나왔을 때 4권을 사서 3명한테 선물을 하고, 나머지 한 권은,
고이 모셔두었다.
모셔두길 1년.
이번에 여울 세미나교재로 밀어부쳐... 간택되다.

확 꽂히는 머리말 -

자본주의적 삶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친숙하다는 것, 그것은 무엇인가에 길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길들어 있다는 것은 - 왠지 네거티브한 느낌이다.] 어떤 것에 길들면, 우리는 그것을 나의 일부분인 듯 편안하게 여기기 쉽지요. [근데, 편한거다. 바로, 불편하지 않다는 거. 발가락이 끼는 작은 신발을 신었을 때의 느낌과는 비교도 안되는 그 불편함이 없다는 거.]  가령 누군가 그것을 문제 삼을 때, 우리가 마치 모욕을 당한 듯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것도 이 때문일 겁니다. [이 것은 너무 편하게 살지말라고 비판하는 것인가?] 하지만 친숙해진 것이 항상 바람직한 것만은 아닙니다. [오 정말요?] 사실 친숙한 삶을 낯설게 성찰 [성찰! 이라는 big word]하는 일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삶에 대한 의무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의무고 선택이고를 떠나, 그저 낯설은 내 일상이 불편하여, 뜨악하며 떠밀려 골치를 앓아왔다.] 삶은 우리 뜻과는 달리 항상 낯설어지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지요. [계속 이래야 하는거?] 미리 낯설어지는 경험은 우리에게 삶에 대한 정답은 아니더라도, 지혜는 제공할 수 있는 법입니다. [무슨... 지혜???]

살면서 내게 딱 맞는 옷을 입은 듯한 편한 "느낌"을 항상 갈망하지만, 언제부터인가는,
어떤 종류든 획일적인 장에 있으면 불안해 진다. 낯선것에 낯이 익어버린.
강신주책에서, 낯설음에 대한 변론이 내게는 깊은 위로가 되어서 요즘 이 책을 열심히 읽고 있다. 덕분에 이상도 읽고.

강신주교수가 이 책을 쓴 이유는,
자본주의에 대해 경제학적 관점이 아닌,
이 돈 체제에 깊이 연루되어 있는 우리 내면세계를 탐색하게 해주려고.
"자본주의로 인해 상처받고 분열되어 있는 내면세계를 보듬고 치유할 수 있는 희망도 필요하다고 절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치유.라는 것은 아프다는 것을 인정할 때만 가능한 것이다. 이 돈 체제에서 쪄들어 사는 우리들 중에는, 이로 부터 받은 상처에 대해서 인지하지 못하거나 거부하는 이들이 많다 아주.

저자의 방법론:
이 책에 보면, 19세기 말 파리의 아케이드에서 변모한 백화점이 동경을 거쳐 경성에 상륙한 당시 (1930년대) 상황에 대한 재미있는 묘사분석이 있다. 그런 백화점에,
오늘날 애기들은 간난쟁이 시절부터 유모차에 실려 이른 경험을 시작한다.
일한이 - 우리교회 정원 9명의 평균 연령을 화악 깍아주는 대학교 3학년 생 - 가 마침 학교에서 강신주 교수의 수업을 들으면서 여러 여담을 얘기 해 주었는데,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서 6개월 간 백화점에 가서 살다시피 하셨단다.
100년전의 모던보이들처럼.
salute to his pa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