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ate-night subway ride

Posted 2010. 10. 17. 01:27
수유에서 오이도행 막차를 탔다. 아마도 막차였던듯. 별로 졸리지 않아서 여울에서 발제하고 있는 강신주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는데 주변에 취객의 소음이 시끄러워, 어느쪽에서 누가, let alone 왜, 떠드는지 고개 한 번 들어보지 않고 이어폰을 꽂았다. 책 읽기에 방해되지 않으려고 슈베르트 교향곡 모음 앨범을 선택하였다.

몇 정거장을 지났을래나,  볼륨이 제법 높은 내 이어폰을 뚫고 안 이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정말 왜 토하고 지랄이야."
옆 간 차에서 누가 토하는거 보고 건너온 사람인가보다. 구토를 목격한 짜증을 지하철 열차 사이 연결통로를 건너오는 동안 해소하지 못하여 연결문에서 문 두개는 더 떨어져 앉아있던 내 앞을 지날 때 까지 궁시렁대는 아저씨였다. 지난 번에 누가 지하철에서 토했을 때는, 지하철 내에 방송이 막 나오더니, 다음 역에서 역무원들이 승차해 구토를 치웠드랬다. 작년에 지하철 9호선 운영관련 매뉴얼을 대량으로 번역했었는데, 열차내에 구토 상황 발생 시 어떻게 처리하는지는, 없었던 것 같다. 어쨌든 하루에 지하철에서 오바이트하는 인간의 숫자는 얼마나 될까. 분명 통계 수치가 있을터인데.

나는 버스타고 가다가 토가 올라와, 입에 물고 내린적은 있다. 전지현처럼 도로 삼킨 것은 아니고. 내리자마자 아마도 하얀 모습으로 쌓였을 눈위에 깜깜한 밤 어두움덕에 덜 미안한 마음으로 마구 토했던 적이 있다. 지난 겨울인듯. that was one of the two times i threw up after drinking. 매스꺼린 속이 지속되다가 토해버렸을 때 느끼는 시원함도 있지만, 그 시원한 느낌 lasts in between the intervals. 근데 다 끝났을 때, 좀 더 심층적으로 다가오는 후련함이 있다. 참고 싶지 않은데 참을 수 밖에 없는 것을 참고 있다가 드디어 다. 뱉어 내었을 때의 쾌감.

근데 지하철에서는, 후련할 때 까지 토할 수는 없겠지?

여튼 지하철로 돌아가서. 만차는 아니더라도 제법 사람이 많은 지하철에서 세상과 단절하고 귀에는 슈베르트가 울리게 두고, 눈과 생각은 자본주의가 강타한 파리를 몸소 체험해 내고 있는 보들레르에 집착했던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에 집중했다. 도박장과 사창가를 어슬렁거릴 때, 보들레르는 노동과 사랑의 진정한 가치를 망각했었으나. 도박장과 사창가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거의 본능적으로 도박장과 사창가를 멀리 하려고 했다. 이쪽 저쪽 양극을 경험했던 보들레르는, 오늘날 평가/분석되기를, 무의식적으로 종교가 아닌 건강한 노동의 세계를, 그리고 매춘이 아닌 사랑을 지향했더란다. 이념적으로 어떤 한 가지 입장을 고수한 것이 아니라, 양 극단 사이에서 끝까지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그가 중요했다고. 이 책 제목은 <상처받지 않을 권리>라고 매우 허접하지만, 이 책의 머릿말 제목이 더 본질적이다 - 자본주의적 삶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여튼, 강신주선생은 분석하기를,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랑이 자본을 영속적으로 압도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사랑이 자본주의의 포섭을 막는 일종의 혁명적 힘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도 한다.

내려야 할 때가 다 되어 이 챕터를 서둘러 끝내느라 문이 열리자 마자 가방과 책과 아이팟을 주섬 움켜쥐고 문앞에 줄 선 사람뒤로 섰다. 자리에서 일어나 문앞으로 이동하는 몇 초간 내 옆으로 앉아 있던 사람들을 보니, 정신은 말짱해 보이는데 표정은 굉장히 심각해 보이는 아줌마, 그 옆에 몸을 30도 각도 옆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면서 졸고 있던, 얼굴이 취기로 가득 붉은 아저씨, 등등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침에 일찍 탄 지하철은 The Family Man에서 - 이제는 한 때 라고 말할 수 있는 - 자본주의의 정점이었던 월스트리트의 M&A대가로 나왔던 니콜라스 케이쥐가, 아침에 배달된 "crispy"한 월스트리트저널에 매료되는 모습이라면,  지금은 하루라는 시간동안 몇 번 이리저리 접혔다 펼쳐지고 여기 저기 깔리고 받침역할을 해낸, 하루의 마지막 순간에 어딘가에 남겨진 신문지 분위기다. 모두들 하루의 피곤을 고스란히 짊어진 채 얼릉 집으로 가고 싶은게 역력한. 내 상상이지만. 내 정신이 오늘 밤 말짱하여 오밤중에 올라탄 지하철이란걸 살짝 까먹었던 것 같다. 앗, 근데 오늘 토요일인데.

어쨌든 내리면서, 내가 전에 몽롱한 상태에서 막차를 탔던게 기억났다. 내가 술마시고 귀가하는게 빈번해 (in an absolutely relative term) 진게 올해니까, 아무리 오래되봐야 올 초인것 같다. 그 날은 내가 좋아했던 어떤 남성과 다른 몇 사람들과, 아닐법한 조합으로 술을 마셨다. 다른 사람들은 소주를 마시는데 나는 혼자 맥주를. 암튼, 나는 한 병을 혼자서 다 마시고 취했고, 다행히 지하철이 아직 끊기지 않은 시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밤늦게 올라탄 지하철에서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어 몸을 추수리기 어려워 끝자리에 기대어 있었다. 몇 사람 되지 않던 그 열차간에서 대학 신입생의 나이쯤 되 보이는 몇명의 무리들이 마구 떠들더니, 가위바위보를 하더니, 그 중에 한 명이 일어나 지하철 의자 한 쪽 끝의 봉을 타고서 구겨진 신문지들이 올려져 있는 그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맞은편 아래 앉아 있던 그녀의 친구들은 인증샷을 찍어댔다. 그 위에 올라간 그 애가, 너무나 부러웠다. 아, 나도 올라가고 싶어라.

그날의 하이라이트는 집 앞에 간신히 도착하여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였다. 17을 누르고 돌아서서 엘리베이터에 혼자있을 때 의례적으로 하듯, 거울을 들여다 보았다. 어.머.나. 자주색 빛 나비모양 귀걸이가 한 쪽 귀에만 걸려있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만나러 간다고, 내가 좋아하는 니트를 입고, 그 옷에 늘 맞춰걸던 귀걸이였다. 즉, 내가 진심으로 아끼던 귀걸이였던 것이다. 몽롱한 정신이 화득짝 깨어, 17층까지 올라가는 동안,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고양이처럼 살금 현관문을 통과해 내방으로 들어가기 까지 그 짜증을 삭힐 수 가 없었던 기억이,
오랫만에 오밤중에 지하철을 타고 내리면서 든 생각이다. 지하철에서 봉에 기대어 고개를 움직이다가 빠진듯했다. 떨어졌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I have now long forgotten the guy, but I still can't get over with my lost earring. 제 짝을 잃고 이제는 무용지물이 된 남은 한 쪽만이 화장대 서랍 어느 작은 상자에 들어있다. 그 니트를 다시 입을 철이 도래했다. 혼자서는 도무지 쓰일데가 없는 그 나머지 한 쪽을, 버려야 할 텐데 아직 놓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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