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aturday

Posted 2012. 3. 17. 18:22
책방에 들리게 되면 전혀 몰랐거나 직접 찾아 보지 않았을 책을 만나게 된다. 충동구매로 집으로 오게되는 책은 책방의 재고품처럼 고스란히 내 책장 한 구석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때로는 우연히 만나서 충동적으로 산 책이 적지 않은 감동, 영감, 즐거움 등, 유익한 것을 주기도 한다.

온라인 서점의 폐해가 이런 우연의 만남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하고자 했는데. 사실 얼떨결에 이루어진 클릭질에 뜻밖의 것을 만나기도 한다. 가령, 온라인서점에 광고비를 내고 눈에 띄는 자리에 우선적으로 소개되는 책을 실수로 클릭했다가 - 나는 일단 대중적으로 인기있는 책은 별로 흥미가 안 간다. 추후에 뒷북치는 일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 방에 쌓여있는 수두룩 많은 책들이 희소성 짙은 내 시간과 의지를 두고 다투듯이 마우스의 화살표 끝과의 교착과 검지손의 씽크로 인해 간택되길 바라는 수십개의 링크 무대기에서, 하나 클릭하고 클릭했다가 건져지는 훌륭한 작가와의 만남도 있으니 말이다.

수유에서  하룻 밤 외박을 하고서 낮에 집으로 돌아와 보니, 내 책상에 우편물이 놓여져 있다. 그 중 하나가, 겉 봉도 없이 서둘러 나를 맞이 한다. (누가 뜯었지? -_-a ) 2 - 3년쯤 전에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에 가입하여 한 달에 한 번씩 만원을 낸다. (내가 적극적으로 낸다기 보다는 통장에서 고정적으로 실수없이 빠져나간다고 하는 것이 옳은 표현이겠다.) 10만인클럽 회원들에게 오마이뉴스에서 보낸 선물인가보다, 이 책. 이 책을, 아니 한 달에 만원씩 받아 모아서 이 두꺼운 종이에 칼라로 인쇄해서 책을 공짜로 뿌리는 것을 못마땅해하며 집어 들었다.

문성근이란 사람, 실망을 할까봐서 그런지 섣불리 너그럽게 평가하고 싶지 않지만, 군더더기 오바스러운 감정없이 바라보아도, 응원하고 싶어진다. 다른건 몰라도, 세간에서 "진정한 명문가"로 일컫는 그런 집안에서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할버지 할머니의 업적을 말아 먹지 않은 것 만으로도 큰 업적이라고 생각한다. 혈통과 성장기에 이루어진 축적이 그에게 토대나 귀중한 자산을 마련해주었을 수는 있지만, 그것은 어느 정도의 상관관계이지 인과관계는 결코 아니다,라는게 내가 살면서 두리번 두리번 주변을 지켜보면서 쌓은 관찰에 의해 내린 주장. 

여튼. 문성근에 관한 9개의 키워드,라는 탁월한 미끼로 시작하는 이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한 자리에서 꼼꼼히 다 읽어버렸다.

한번은 고은 선생 육순 기념으로 시 낭송회가 열렸는데 고은 선생이 저더러 낭송을 하라고 하셨어요... 그 중 하나가 <자작나무 숲으로 가서>라는 시였는데 시어가 시공을 막 날아다녀요. 기가 막힌 시였어요.

집에 와서 큰형한테 얘기했죠. 저런 예술가들이 있는데 나는 뭔 연기를 한다고 장난스럽게 이런 짓을 하나... 호근이 형이 그러더군요. "각자가 우주고 각자가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예술인 거다. 고은 선생이 너만큼 연기를 하시겠느냐. 시를 잘 쓰시는 거지." (21-22)

...배우는 그렇게 시작했죠.
아버지도 좋아하셨어요. "그래 잘했다." 제가 회사 다니는 걸 늘 안타까워하셨어요. 말씀은 안 하셨지만 '저렇게 인생을 소모해서 뭐 하려고 그러나' 하는 마음을 가지고 계셨던 거죠. (23)

민란 운동하면서 제가 배우 생활 한 걸 고맙게 생각했습니다. 배우나 연출자는 모든 기존 질서를 뒤집어 보거든요. 인정을 안 해야 작품이 되니까. (30)

자기 한계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 안 되는 일에 도전하려는 측면이 있고요. 또 상업 배우들이 이미지 관리 때문에 나쁜 역을 안해요. 저는 그게 굉장히 불쾌하더라고요. 배우 알기를 뭘로 아느냔 말이지. 배우가 CF 모델이냐? (77)

정봉주가 얘기하는데 여의도에는 대권 시나리오가 299개가 돌아다닌다더라고. 다 자기가 할 수 있고 자기가 해야 한다잖아. 엄청난 욕망의 덩어리가 여의도 정치인 거죠. 유시민이가 말하기를 '비루한 짐승의 욕망을 가지고 고결한 이상을 실현하는 게 정치'라나? 암튼 말도 잘해요 (웃음). (85)

저는 새누리당의 집권과 뭐가 다른지 정책으로 말씀드릴 겁니다. 유권자께 지역구도 극복하자 말하지 않을 거예요. 유권자 책임이 아닌데 왜 해요? (98)

오늘 토요일 아침, 문성근이 어린 시절에 나무를 탔던 그 산 앞 캠퍼스, 한신대 캠퍼스에 새로 생긴 카페에서 꽤 괜찮은 맛의 커피를 마셨다. 오늘 아침 일찍 겪은 어떠한 일에 마음이 자꾸 좁아지는 것 같아 괴로워 하며 통 큰 창문을 마주하고 앉아서. 카페는 참 조용했다. 드문 일이다. 조용하고 좋은 카페. (그러나 완벽할 수 없었던 것은, 눈치 없이 의욕이 넘치는 카페지기가 중간에 자꾸 말을 걸어와 내 마음의 통풍과 친구와의 대화를 자꾸 방해했다.) 

암튼,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자잘하게 덮어버리고 싶던 일이 정말 자잘하구나, 생각이 든다. 이렇게 또 토요일 해가 저물고 3월의 절반이 지나 세월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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