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방

Posted 2012. 3. 2. 16:25

가만히 앉아서 혹은 흔들리는 지하철에서 서서
책을 읽는 마음은 자본의 원리와 거리가 있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애착도 아니다.
여기서 책을 좋아한다는 것은 열심히 읽는 사람과 열심히 사는 사람을 모두 얘기한다 -- 이 두 집단에 교집합이 있을 수는 있지만 가지런히 포개지지는 않기에. 일단 만들어진 책은 읽혔을 때 제 구실을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그냥 사는 사람도 굉장히 많다,고 나는 말할 수 있다. 이 때 쓰는 돈은 무분별하여 주위해야 할 가벼운 소비 따위와는 다른 차원의 씀씀이로 종종 느껴진다. 그러나 착각이다.

책과 관련하여 또 황당무개한 의외적인 사실을 발견한 적이 있다.
출판사의 사업자등록증을 보니, 업종이 제조업으로 분류되어 있더라말이다.
아니, 책을 만드는 일을 제조업이라고 일컫다니, 너무 불경스럽다.
그런데, 사업자등록은 영리 사업장에게 주민등록번호 따위의 관리대상용 번호 하나 부여하고, 세금을 징수하기 위한 목적이 제일 클텐데, 그런 거에다가 막 "정신활동" 이런말을 쓸 수도 없겠고,
결국에는 제조업 말고도 또 딱히 갖다붙일것도 없기는 하다.

아무튼, 책.
21세기에 책 쓰고 만들어 파는 사람들에게 참 사방에서 에워싸며 숨통을 조여온다.

여차저차저차블라블라울라 전자책.등장하여.
손가락으로 화면을 훑는 다거나, 버튼을 깔짝. 꾹. 눌른다거나 하면서 동공을 열심히 굴려보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킨들은 가벼워서 좋고, 그 외 기기는 무거워도 편리는 하지만... 책을 읽는 것이 문자와 동공의 접촉으로 이루어졌다가 그렇게 끝나도 되는건지말이다. physical sense에서만 말한다고 해도 말이다.

전자책은 우선 공간적 감각을 꽝으로 만들어 버리는게 영 맘에 들지 않는다. 물론 화면 아래 쪽에 내가 지금 백분지 몇을 읽었다는 표시가 나오지만, 내 손으로 책을 들고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에 잡혀 감지되는 두께로  그 책 안에서 나의 진도를,
숫자로 말고 몸으로 느끼는 게 더 옳다고 여겨진다. 옳지 않소?!!
그리고 아까 혹은 어제 읽은 그 부분, 그 부분을 찾는 일은 단연코 엄지 손가락 지문이 해야 할 일이다. 전자책의 검색기능이 아니라.

나는 종이책으로 30년을 넘게 살아온 인간이라서 전자책의 공간감각 부재에 대해서 타령을 하는데, 그럼 앞으로 자라나는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 부터 전자책을 주로 접하다보면 종이책을 불편해 하게 될까? 걔네들은 분명 그렇게 될 것 같은데,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내 간절한 마음, 참 노인네스러운 기분이 들게 한다.

아무튼, 책에 대한 비논리적인 애착과 사랑에서 시작하여 내 삶의 여러 정황 및 쌓여온 사건들에 힘입어, 책방에서 자원봉사, 자봉을 하였다. 서울 시내에, 아니 전국에 몇 남지 않은 책방 중에 하나, 이음에서 지난 두달여 동안, 매일은 아니지만, 책방이 돌아가는 과정을 조각조각 배웠다. 그 중에 가장 설레이는 일로, 새로 주문한 책들이 도착하면 종류별로 서가에 꽂았다. 처음에는 사고 싶은 책이 더 늘어나 고민되었지만, 그게 시간이 지나니 새 책들은, 어여삐 바라본 후 자리를 찾아 꽂아 주게 되었다.

여튼, 배우고 느끼고 얻은 것이 많았는데, 
단 한 가지를 굳이 꼭, 꼽아서 얘기해보라고 하면,
 

반품 작업이다.
책방에서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도 팔려나가지 않는 책들을 모아서 반품을 한다. 
그 어느 정도 시간이 얼만큼인지, 얼나마 걸리면 책방 사장님의 시야에 들어와 반품 대상 목록에 낙찰되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내가 두 달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어여쁜 시선으로 바라보고 꽂았던 것들도,
그 두달 안에 서가에서 뽑혀 재활용 상자에 꾸역꾸역 담겨서, 반품의 행로를 시작한다.
도매상으로 돌아가 재분류되어 출판사로 가는 것일 것이다.

내가 잠시 출판사에 몸 담았던 시절,
매일 반품되어 돌아오는 책들이 천덕꾸러기처럼 한 곳에 쌓여 어떤 정리를 기다리는 것을 보았다.
얼마 동안 자리를 차지 하고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불편한 마음을 갖게 하다가,
어느날 자신에게 싸여진 골판지와 묶여진 노끈이 해체된다.
애초에 정가에 팔려 곱게 읽혔으면 하는 바램과 함께 인쇄되었던 순수했던 책들은,
그냥 버려질 수도 있는 제조품으로 전락이 되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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