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

Posted 2013. 11. 3. 23:58




홑겹의 원피스 같이 생긴 옷 하나를 여름옷 상자에 넣기 전에 한 번 더 입고 나갔다.

레깅스 입고 속에 털바지도 입었지만

싸늘했다. 


일요일 저녁에 홍대를 돌아다녔던 적이 있었나 모르겠는데,

오늘이 어쩌면 처음일지도.

여유로이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들도 눈에 많이 띄고,

한산하지 않았다.


스카프를 여미고 몸을 움추린채 집에 들어오자마자,

방바닥과 발바닥의 마찰로 온 몸에 온기를 입었다.

온기는 필수이지만 늘 덤으로 주어진 듯한 기분이다.

날이 추울수록.


조정치의 유작遺作은 리핏으로 엄청 들었던 앨범인데,

가사는 오늘 처음 들은 것 같다.

'유언'이라는 곡의 가사는 일기장에 손으로 적어 두었다.

우리들 삶에 약속된 것 없으니
준비할 일이 있던가
좀 이르지만, 추억이라 말하고
폼나게 뒤돌아 선다.

너와 나 서로 오해한 적 없으니
설명할 일이 있던가
염치없지만, 이해하라 말하고
다소곳하게 잠든다.

아쉬운 맘으로 꺾어가려 하지는 말기를.
송이송이 피었다, 계절 지나가면 시들어지길.

훔치지 않고 바람에 떨군 눈물
땅위로 천천히 스며
그리움 전해 들은 다음 생들을
비옥히 적셔 주겠지.

한때의 맘이라, 비워내려 하지는 말기를.
순간순간 되뇌어, 마른목 적시는 물이 되길.

다하지 않고 남은 몇마디 말은
어디든 전하지 말고
그리움 옅어지는 좋은 날에나
가끔씩 노래해 주오

가끔씩 노래해 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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