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可不可"

Posted 2009. 5. 19. 19:34

연극하는 오빠 덕분에 지난 1년 동안만 다섯 편의 연극을 보았다. 할인 받아서 내가 돈을 절반 가량 내고 티켓을 산 적도 있지만 공짜로 많이 봤다. 연극계의 형편이 궁한데 좀 미안한 마음이다.

어쨌든 지난주에 불가불가를 보러 갔을 때는 한참 대한민국史를 공부하고 나서 우울함이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갔더니 이번 연극의 주제는 연극(쟁이)과 역사다. 역사적인 주제로 연극 속에서 연극을 하는 것이다. 두 시간 가량의 공연에서 다루어 졌던 것을 물론 내가 다 파악하지는 못했고, 나중에 프로그램을 보니 그 안에서 다루어 졌던 내용은,

- 계백장군이 황산벌 전투 출정 전에 부인을 베는 장면이 나오고
- 이율곡의 10만 양병설
- 병자호란
- 정중부의 난
- 을사조약

10만 양병설은 어렴풋이 들어 봤던거, 병자호란은 작년에 김훈의 남한산성을 읽고나서 깜짝놀라면서 알게된거, 정중부의 난은.... 이것은 무엇?... 을사조약은 을사조약.

우울모드 종합셋트였다.

창작의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느냐는 질문에 대한 작가 이현화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

사실 무슨 이야기를 써야지 하고 노력해서 찾은 게 아니라, 소재가 집필을 부추겼다고 해야 하나, 암튼 시대가 그렇게 만든 것 같아요. 우리 세대가 참 독특한데 4.19세대의 막내이자 6.3세대의 맏형이거든요. 제가 43년생이니까 일제시대, 해방 직전에 태어났어요. 사회적으로 핍박이 심할 때 태어나서 해방을 맞앗죠.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6.25가 터졌어요. 안데르센 동화집이나 읽어야 할 나이에 피난을 갔고, 거기서 철저한 반공, 반일교육을 받았지요. 그때 그 반공, 반일 교육의 중심이 이승만 박사였고요. 그런데 우리가 자라서는 또 4.19를 봤거든요.....간신히 마음을 추스르니 대학교 때 5.16이 일어났어요....좀 있다가 6.3사태가 일어났죠. 그리고 우리가 드디어 사회의 첫발을 내디뎠을 때, 유신이 벌어진거에요. 직장인 방송국에 총과 칼로 무장한 군사들이 문을 지키고 있었죠. 그러고 나서 10.26에 5.18, 6.10까지. 우리 세대는 일종의 로제타석 같아요. 뭔 숫자들이 그렇게 많은지. 그 역사적 상징들에 항상 끌려왔어요. 그것들이 은연중에 나로 하여금 그을 쓰게 하고, 내 작품을 형성시켜준 건지도 모르겠어요. 모든 창작에 있어 구상은 머리로 하지만 집필은 가슴으로 하는 거거든요. 그 시대의 아픔들이 우리로 하여금 글을 쓰게 만들었고, 우리는 독자를 대신해 그 병을 앓았던 거죠. 작가는 시대의 아픔을 대신 앓아준느 영원한 환자이며 작품은 그 투병기 입니다.

내가 공부하기에 너무 우울해 하는 그 역사를 살아낸 사람들이 있다. 내가 궁시렁데는 것은 일종의 배부른 소리이기는 하나, 내 세대의 입장으로서 자연스러운 반응이라는 것을 주장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냥 궁시렁데다 말지도 않아야 겠다는 결심도 하기는 한다. 그러지 말아야 하는 것이 또 간접경험 세대의 책임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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