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두리반 이야기

Posted 2010. 4. 29. 01:50
홍대쪽에서 회사를 다닌 기간이 1년이 채 되지 않는데 짧은 시간동안 두리반이 처한 before and after Christmas 2009를 지켜볼 수 있었다.

내가 처음 두리반에 간 것은 가을 끝자락이었던 것 같다. 이미 건물에는 보기 흉한 현수막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고, 그 건물에 남은 것은 두리반 뿐이었다. 외부는 흉물스러웠지만 큰길 공사판의 소음과 어글리한 쇠붙이에 떠밀리듯 좁은 인도에서 식당안으로 들어가면 깔끔하고 훈훈한 분위기였다. 두리반은 크고 둥근 상이라는 의미인데, 두리반 식당 안의 테이블은 굉장히 투박하고 날카로운 모서리가 두드러지는 사각형이었다. 의자도 사각형 벤치, 그 위에 커다란 따뜻한 털이 방석용으로 깔려 있었다.

처음 간날 동행한 사무실 식구들은 보쌈정식과 매운 칼국수를, 나는 풀이 그득한 비빔밥을 주문했다. 그런데 옆자리에 앉은 여성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만두 (뽕잎 만두였던것 같다)를 먹는거다. 좀 추했지만, 나도 모르게 한참동안이나 시선을 그 만두에서 띌수가 없었다.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면 원하는게 이루어진다....는 말이 내게도 적용되는 순간이었다. 우리 사무실 분들과 주인아주머니 - 지금은 많이 유명해지신 안종려님 - 와 친분이 있기는 했지만, 그날 따라 (그 후에는 없었음) 만두를 서비스로 주시는거다. 오예~

그러던 어느날, 오전에 외출하신 우리 사장님과 점심 때 동교동 삼거리에서 만나기로 했다. 날이 너무 추워서 두리반에 들어가서 기다려야지 하고 달려갔는데... the rest is history. 그리고 며칠 뒤에 텔레비젼에서 우연히 두리반과 (나에게 낯설지 않은) 정금마을의 철거 사건을 다루는 시사프로그램을 접했다.

한 서너달 사이에 두리반에서 예닐곱번 쯤 밥을 먹었다. 다시마 칼국수, 뽕잎 칼국수,  또 다른 여러 종류의 칼국수를 먹었는데 쇼트텀 메모리 현상이 극심한 관계로 기억이 안난다. 그리고 원래 맛있는 무채를 맛 보기가 쉽지 않은데, 두리반 무채는 내 잎에 딱 맞았었다. 한 번은 혼자가서 밥 먹으면서 무채를 몇 번씩 더 달라고 하여 먹었다.

2009년 성탄절 이후로 두리반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먹을 수는 없지만 못지 않게 훈훈한 일이 추운 날씨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나가다 두리반에서 진행되는 행사 포스터를 많이 봤는데, 5/1일에는 나도 가보려 한다. 여기서 예약하면 된다는데, 어디를 클릭해야 할지를 모르겠네.

<사진출처 모두: 박김형준>

두리반에 좋은 기운이 모여서 예측하지 못했던 사건이 발생하고 있지만, 암울한 상황에서 사막에서 꽃이라도 피듯 희망을 발견하는 움직임들이 있지만, 난 그저 뽕잎 칼국수를 다시 먹고 싶을 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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