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투어 / Coffee Tour in Seoul

Posted 2010. 4. 21. 14:30
커피교실에서 커피투어를 떠났다. 일주일에 한 번 하는 공부시간외에 다른 날을 하루 정해서...

낙성대 쪽 길상사에서 스님들이 운영하시는 카페, 대학로 학림다방 등 몇 가지 코스가 있었는데 우리 저녁반이 선택한 곳은 가회동/계동이었다. 삼청동길과 헌재가 있는 길은 여러번 지나다녔지만 안국역 3번 출구로 나와서 왼쪽으로 꺽어져 들어가는 현대사옥 옆 길을 쭉 올라가기는 처음이었다.


길바닥은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잘 닦여 있었으나 기분 좋은 훈훈한 동네였다. 엄마의 외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의 아들로 가회동에서 태어나셨다고 한다. 그 독립운동가 아버지는 비운의 삶으로 돌아가셨지만 그 아들은 나름 편하게 사셨다는데, 내가 어렸을 때 지켜본 그 분을 더 알지 못한게 아쉽다. 나라와 시대를 위해 진중했던 분들의 정신이 나에게 까지 이어져 오지 못한 것도 그렇고. 이 길을 걸으며 뚜렷한 한옥촌의 흔적을 체험하면서, 그 할아버지가 태어나 사신 그 집은 어디일까 궁금했다.


이 소아과는 진료중인 병원인가? 사랑과 야망같은 드라마 씬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서울에서 참기 힘든 것 중에 하나가 간판들인데 이 간판은 정보전달과 미적역할을 둘 다 잘 해주고 있다. 오늘날의 컨텍스트에서 그렇게 보이는 것일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태리 면 사무소 - 동네분위기에 잘 맞춘 컨셉이다. 오래된듯한 느낌을 주나 우리나라에서 오래됐었을 수는 없는 가게일것이기에, 약간 속임수를 쓰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어쨌든 자신의 개성을 지키면서 속해 있는 주변을 저해하지 않는 모습이 므흣하구나.


저녁 7시에 약속장소는 한 카페였다. 그런데 모이고 보니 배가 고파서, 빈속에 커피를 들이 마실 수 없으니 밥을 먼저 먹고 오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런데 늦게 오는 사람들 올 때까지 30분 넘게 기다리는 것이었다. 이런... 배는 고프고, 저녁 시간에 카페를 몇 군데 돌지도 못 할텐데, 집에 가려면 또 먼길을 나서야 하는데, 식당으로 우선 옮겨서 늦는 사람들 그리로 오라고 하면 안되나... 나다운 생각으로 마음이 답답해지는데, 지난 주에 조윤정쌤이 나누어 주신 자료집이 떠올라 깨갱 참았다. 여성환경연대에서 만든 현대인을 위한 대안생활 가이드 북 - 느리게 사는 삶, 느리게 사는 즐거움. 커피스트가 여성환경연대의 느리게 살기운동에 6호로 참여했다.



안동손칼국수 집. 저쪽 삼청동 가는길에 있는 북촌칼국수보다 훨씬 더 정겹고 특색있는 곳이었다.


누른 호박전 - 나도 모르게 젓가락에 포커스가 맞춰졌다. 본 사물에서 빗나갔으나 포커스를 맞춰본 적이 거의 없는지라 뿌듯함에 그래도 이 샷을 올린다. (웃을 사람들은 웃으라.) 단호박을 감자전처럼 만든 것이었는데 처음 봤다. 맛이야... 단호박을 재료로 해서 맛없게 하는 일이 더 어려울테니.


메인코스 칼국수. 국물은 사골국물로 뽀얗고 면은 가볍고 정갈했다. 일반적으로 접하는 칼국수와는 사뭇 달랐다. 예전에 유행했던 농심사골라면이었나, 설렁탕면이었나? 그 라면을 연상시켰다. 물론 이 칼국수가 라면 맛 수준이었다는게 아니라, 어렸을 때 외갓집가서 자주 먹던 그 설렁탕면을 회상시켰다. 그 밤에 연탄불에 구워먹었던 고구마도. 의자밟고 올라가서 집에서는 엄마가 못하게 했던 설겆이 했던 할머니 부엌도.


아직 친해지지 않은 분들이었지만, 맛있는 상을 앞에 두고 조윤정쌤의 양파껍질처럼 벗겨지는 친화력에 도란도란 수다를 떨면서 밥을 다 먹고 나니 여덟시 반이었다. 이미 어둑해 졌고 (위 사진은 저녁 6:50분 경), 더 서두를 필요도 없이 만남의 장소였던 커피한잔으로 옮겼다.








커피한잔은 대학로에서 술집을 하시던 사장님께서 여차여차해서 너무 많이 쌓인 엘피판을 어쩔까 고민하시다가 여차여차해서 엘피판을 쌓아 놓았던 장소가 카페로 진화한 결과물이라고 한다. 좀 웃기기까지한 수준으로 도시의 폭력성에 트라우마를 느끼고 있는 요즘 정겨운 동네 탐방, 모든 것에 손 떼가 묻어있고 자본주의의 공격적인 모습이 없어 기분이 들떴다. 그런데, 이 가게는 개업한지 3년 되었다고 한다. 3년보다 훨씬 오래된 역사를 지닌 물건들이 총망라되어 레트로 분위기를 물씬 풍겼지만, 결국엔 내가 느낀 오랜것에 대한 향수와 만족감도 연출된 것에 대한 조작된 반응이었다. 꼭 신랄하게 비판할 필요까지는 못 느끼지만, 그래도 김은 약간 샛고, 그리 나쁘다고만 할 수 없는 야릇한 허무함이 남았다.


커피한잔에서 2차로 집중 수다를 진행한 후 10시를 조금 넘겨 그 골목길을 더 깊숙히 들어가니 카페 무이라는 곳이 나왔다. 여기가 선생님께서 생각하신 두 번째 방문지였는데, 이론, 문을 닫았다. 유동인구가 적어서인지 늦게 까지 운영은 안하나보다. 카페 사장님 부인이 요리를 전문적으로 하시는 분이어서 맛있는 밥도 판다고 한다. 다음 기회에...


그래서 찾아 간 곳이 연두. 여기는 선재미술관 앞 지나가며 여러번 본 것 같다. 별로 인상에 남을 만한 것은 없었다.




사람 만나기가 귀찮은 요즘, 커피를 매개로 낯선 공간을 찾아가 좋은 저녁을 보냈다. 커피공부가 끝나는 6월 이전에, 서울시내 투어를 한 번 더 하고, 강릉 쪽 커피집을 한 번 돌기로 했다.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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