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 김훈
주제: 자전거 타기의 즐거움
2010년 3월 25일 오후 8시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선교기념관

한 두해 전에 친구들과 북클럽을 시작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 <남한산성> 이었다. 내가 읽은 한국소설이 얼마 안되긴 해도 그 후  좋아하는 소설가가 누구냐는 질문에 주저없이 "김훈"이라고 답하곤 했다. 내용이 너무 우울해서 끝까지 읽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 때 감동의 여운이 아직도 가슴 찌릿하다. 


오늘 김훈선생의 강의를 라이브로 들었다. 선생의 강의를 듣고 깨달은 것 - 나는 울다가 웃는 것을 정말 좋아하네. 주변의 어떠한 잡음 - 진행병에서 벗어날 수 없는 듯한 진행자의 거슬리는 진행방식 - 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본인에게 주어진 시간에 충실하시며 말씀하시는 모습, 중간 중간에 머리를 쓸어 내리시고 두 손으로 얼굴을 비비시는 소박하고 어리숙한 모습에 나는 또 시끄럽게 웃었지만, 강의가 진행되는 동안 내 마음이 여러번 울컥했다. 


저녁 6시에 양화진에 도착하여 8시에 강의가 시작되기 전까지 강가에 서서 스치는 생각이었다며 서강대교, 양화대교, 성산대교, 가양대교를 그림으로 그리시고 양화진, 선유도, 밤섬, (그리고 어떤 봉우리 이름은 까먹었다)의 위치를 설명해 주셨다. 원래 양화진 나룻터는 양화진이 아니라 지금의 양평동인 양화진으로 가는 배를 타는 곳이어서 양화진 나룻터였다고 한다. 


내가 인간 김훈의 성품이 일상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는 알 수 없고, 너무 한 인간을 미화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나이가 들면서 생명력을 잃지 않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 오늘날 부패, 비리, 죄악으로 점철된 한국의 모습은 선생이 30년 전에 기자생활 하실 때 자빠져있던 자리에서 일보의 진전도 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자빠져 있다지만, 그래도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시골의 마을회관에서 만난 노인들, 영일만에서 경운기 모터를 떼어다 달은 1.5톤 자리 어선의 어부들, 자전거로 태백산맥을 넘어가 우쭐한 마음으로 만난, 태평양을 4년간 헤쳐온 연어 떼를 보며 아, 세상에 아름다운 것이 많아서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이 드셨단다. 

오늘의 강의를 내가 아직 읽지 않은 책 두권의 제목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 화이트헤드의 <과정과 실재>, 그리고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한 중년의 인간의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내 젋음이 심히 경박하게 느껴졌다. 가벼운 젋음의 이면에는 실패에 대한 담대함과 충만한 패기가 있겠지만, 30년 조금 더 살고서 인생에서 가시적인 결과에 연연하는 내 모습이 안쓰럽다. 그렇지만, 그래도 내가 아직 젊고, 연륜을 갑자기 쌓을 수는 없으니 이 가벼움을 참을 수 밖에 없겠지. 어쨌든, 곱게 늙고 싶은 나의 원대한 꿈에 현실성을 더 해 준 또 한 분을 만났다.

 
강의 동영상은 여기서
mms://121.78.112.224/yanghwajin/2010/20100325thu.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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