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밥

Posted 2014. 1. 18. 00:41

어제 엄마한테 문자를 보냈다.

"내일 갈까?"

"그래 와."

"그래"

"퇴근 후 왔다가 아침 출근하지?"

"ㅇㅇ"


퇴근 후 회사를 나서며 전화를 했다.

"나 지금 출발 해."

"어머, 우리 지금 동네 식당에 있는데."

"나 가서 밥 먹어야 되."

"식당으로 와."

"싫어."


오랫만에 엄마아빠 집엘 가는 데 식당에서 밥을 먹으라니, 참 엄마스럽지 않으신 우리 엄마다.  순간 식당밥을 먹을 생각만 해도 무언가 조미료 같은 불쾌감이 몰려왔다. 


집에 문열고 들어가니 불이 다 꺼져 어두컴컴했지만, 요란하게 칙칙대는 밥통 소리와 함께 따끈한 밥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내 전화를 받고 집에 올라와서 밥을 안쳐놓고 잠깐 또 나가셨나 보다. 한 주 내내 새벽같이 집을 나서 밤 늦게 집에 들어갔더니 목요일이었지만 지칠대로 지친 상태였다. 쇼파에 잠시 널부러져 있다보니 엄마 아빠가 들어오셨고, 엄마는 후다닥 생선을 구워 밥을 차려주셨다. 갖지은 현미밥은 딱 보니 쌀농부에서 주문한 쌀이었다. 마이 훼이보릿 쌀. 고소한 현미밥에, 삼치구이, 끓인지 하루이틀은 된듯한 진한 김치찌게, 구운 김, 도라지무침, 오징어채 볶음 등의 적지 않은 가짓수의 반찬이었다. 배고픈 마음에 허겁지겁 삼키려는 식욕을 억누르며 꼭꼭 씹었다. 고소하고 따뜻한 밥 맛. 이 맛을 두고 어찌 식당에서 먹으라는 것인지. 나 참.


어릴 때 이따금 외식을 하게 되면 횡재를 한듯 기뻤다. 매일 매일 집에서 먹는게 재미가 없었는데, 무뚝뚝하신 아빠는 밖에서 있다가도 끼니 때가 되면 꼭 집으로 오셨다. 가족끼리 다 외출한 때에도 밥은 집에 가서 먹는 것이었다. 엄마는 아빠가 융통성 없는 남자라고 투덜대시기 마련이었고, 나도 모든 것이 독재자 아빠의 뜻대로 결정되던 내 어린시절, 내 마음을 헤아려 주지 못하는 아빠가 늘 야속했다. 그러다 어느날, "엄마가 한 밥이 제일 맛있으니까 그렇지." 한 마디 하셨는데, 우리는 아무도 곧이 곧대로 그 말을 듣지 않았다.  매 끼니 밥 하는 사람 귀찮은 것은 배려할 줄 모르는 무심한 사람인 아빠는,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밖에서 밥먹는 것을 싫어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버렸다.


그 이유를 마음과 혀로 깨닫기 까지는 내가 좀 늙어야 했다. 엄마아빠의 품을 떠나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밥을 먹으면서 엄마의 손 맛과 어느것도 쉽사리 이겨낼 수 없는 집 밥의 든든함을 몸으로 알아 내기까지는 말이다. 이따금씩 엄마 밥을 먹으면서 마음이 뭉클해지기까지 할 때면 아빠가 왜 그렇게 집 밥을 고수했는지를 심심찮게 떠올린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래도 그렇지, 좀 더 부드럽게 납득이 가도록 해주었으면 좋았겠다 싶다. 몇 년 전 터진 코피가 멈추지 않아 응급실에 실려갔던 아빠는 곧바로 40년 가량 피워 온 담배를 끊었다. 그리고 1년 후 쯤 심장 문제가 발동하자 더 오래 마신 술을 끊었다. 그리고 사람에게서 독소가 빠져나가는 것을 나는 보았다. 지금은 놀랍게도 유연해진 아빠의 모습을 보자면, 사람 오래 살고 볼일이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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