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으로 살기

Posted 2010. 3. 23. 00:35
거상 김만덕은, 일단 시작했으니 주욱 보기는 본다. 6회에서는 홍이가 커서 놀랍지 않게 제주에서 최고로 인기 높은 기녀가 되었고, 예상했던대로 순응적이지 않은 여성으로 자랐고, 옆에는 그녀의 꼿꼿함을 어떻게 해서든지 꺽어보려는 무리가 있다. 또, 가까이에는 동아가 홍이를 늘 지키고 있고, 홍수 도령도 성인이 되었다. 홍이도 자랐고 홍수도 자라서 이미연도 나오고 한재석도 나온다.  정홍수의 아역을 맡은 도지한을 처음 보고서 너무 쌍커풀이 두껍고 사극에 몰입하기가 어려운 마스크라는 생각을 했는데, 한재석이랑 닮은 모습이 나름 이유있는 캐스팅인가보다했다. 스토리 구성이 엉성해서, 아니면 편집을 잘 못했다는 생각에 절대 몰입은 못하고 있는데 한재석의 연기가 별로 보탬이 되지 않는다. 앞으로 좀 더 잘 하면 좋겠다.

이래 저래 궁시렁대다가, 홍이의 대사 한 대목을 곱씹어 보게 된다. 별이 엄니가 전복을 억울하게 뺏기는 것을 보고 정의로운 홍이는 상소를 쓰고, 걸린다. 서문객주와 지저분하게 얽혀있는 제주 현감 최남구가 잔뜩 열받아서 6회의 메인 소재인 홍이의 화초머리 행사를 이틀 뒤로 잡아버린다. 그리고 홍이가 자신의 화초머리를 올려주기로 되어 있는 강유지 (강계만의 서자)와 마주 앉는다.

강유지: 그냥 나랑 하룻밤 논다고 생각하면 안되겠느냐.
홍이: 제 인생인데 제 의지대로 할 수 없다는게 분합니다. 

이런식으로 허다한 여성들이 자기 없는 인생을 살았을 상상을 조금만 해 보아도 깝깝하다. 조선시대에는 여성들 뿐만 아니라 신분이 낮은 계층에 속하거나, 사악한 무리의 뒷 덜미를 잡힌 남성들도 억울한 사정이 많았겠지만서도. 그 당시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유의지라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웠을 테니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내가 나 될 수 없는 인생이 무언가 이건 아닌듯 싶으면서도 그 부조리를 직시하고 사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러면서 주체를 상실하고 타자에 기대어 내적 파시즘/지배주의에 길들여져 살아가야만 하는 인생이 아니었을지?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어쨌든 헌법상으로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얼마나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사는지 모르겠다. 정의와 자유를 외치지만, 누군가가 직접 올바른 결정을 내려주고 바람직한 리더가 되어 주길 바라고 있다. 내가 내 인생에서 발생하는 사건에 대해서 얼마나 생각을 하는지, 또 사건을 당하지만 않고 만들고 사는지 살펴 보면 자유 민주주의 가치를 정말 이해하고 중요시하는지 되짚어 볼일이다. 자신의 정인을 선택할 수도 없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게 극히 제한된 인생을 살지만 그래도 홍이는 자신의 인생의 사건을 직접 헤쳐나가는 듯 하다. 그러니까 인생의 주인공일 뿐만 아니라 21세기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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