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카

Posted 2010. 11. 7. 22:51
어렸을 때 남산에서 타본 케이블카는 신기함 그 자체였다. 버스랑 비스무리하게 생기긴 했는데 훨씬 더 작은 네모난 상자에 들어가 문이 닫히면, 그것이 깃다란 줄에 매달려 허공을 탄다.

더 이상 케이블카는 낭만스럽지 않다.

오늘 북한산을 타고 백운대까지 갔다. 얼마전 김두식 선생님 트윗에서 북한산, 지리산 등에 케이블카 건설 - again, the to-die-for word for too many people in power these days - 에 반대하여 매일매일 백운대에 올라가셔서 1인 시위를 하시는 분이 있다는 걸 읽었다.

안개가 자욱한 날의 산행이었다. 앙상했을 나무와 흐드러진 잎들이 보이지 않아 섭섭했지만, 나름 운치있는, 포근함.이 좋았다.

오늘도 보니 누군가 계셨다. 그런데 매일 올라오신다는 지리산국립공원 연하천대피소 전소장 김병관님은 아니고. 김병관님이 오늘 볼일이 생기셔서 이 분 - 김준상, 본인을 겨울연가의 주인공과 이름이 같다고 소개하신 -_- 님이 급 연락을 받고 대타로 오셨다고 한다.

조기 앉아 계신 아저씨처럼, 우리 친구들도 털퍼덕 앉아 반대 서명을 했다. (궁뎅이 시렸음 -_-)

우리가 앉아서 쉬는데 보니까, 김준상씨가 다리를 툴툴 털면서, 피켓을 들은 팔을 이리저리 바꾸며 움직이시는 모습이, 굉장히 팔다리가 쑤신 사람처럼 보였다.

왜 아니시겠어 할 종일 서계신데. 오늘 하루만 하시느라 내공이 약하신겐가? (ㅎㅎㅎ) 여튼, 명진이 언니가 간식으로 싸온 홈메이드 쿠키를 좀 드시라고 드리고서, 대타의 대타로 잠시 활약했다.

자연공원법이라는게 있댄다. 국립공원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려면 이 법에 저촉이 되는 거였고, 지난 9월 20일에 자연공원법 시행령 개정안이 임시국무회의를 통과하여, 10월 1일부터 시행령이 발효되었다. (관련기사 국립공원에 케이블카 설치 초읽기) 아직, 케이블카 설치가 결정이 난것은 아니지만, 이제 합법적으로 이 작업을 수행할 토대는 마련된 것이다. 인간이, 자연을 두고 감놔라 대추놔라 법을 만든다는게 새삼 우습다.

건설이라는, 개념 자체에 무조건 반사적으로 도리도리하게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런데, 좀 더 냉정하게 다시 생각해봐도 이건 아니다. 아 그냥 쫌, 제발 그냥 좀 놔둬줬으면 좋겠다.

생각해보니, 한 2년 전 쯤인가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케이블카 설치 찬반토론을 들었던 적이 있다. 찬성의견을 주장했던 분은, 장애인들과 노인들에게 산악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나 혹은 나와 가까운 사람이 장애인이라면 내 입장이 분명 달라질 수 있겠지만,

난 정말, 여기에 장애인 논리를 들이대는 사람들에게, 제발, 플리즈, 지하철이나 - 장애인프렌들리까지는 아니더라도 - 장애인들이 다닐 수 있게나 만들어달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나도 케이블카의 혜택을 봤던 적이 있기는 했다. 프랑스 샤모니. 1924년 동계올림픽 1회가 열렸던 곳, 2018년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려는 평창의 경쟁도시인 프랑스 안시(Annecy)가 개최지로 선정될 경우 안시에서 멀지 않은 샤모니에서도 경기가 펼쳐질 곳.

이걸 타구, 3800미터가 넘는 몽블랑에 올라갔더랬다. 좋았다, 편리하고.

샤모니에서 이 케이블카가 만들어진 배경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알프스에서 제일 큰 산이랑 우리나라 산이랑 비교는 안했으면 좋겠고, 그들이 케이블카를 만들어서 내가 돈내고 타고 올라갔다 왔지만, 우리나라 산은 성큼성큼 걸어서 올라가고 싶다.

내가 산에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산에 가서 사람들이 바글바글 하는 광경을 보면 난,
왠지 뭉클, 한국 사람들이 굉장히 자랑스러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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