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날에

Posted 2013. 7. 20. 15:00

작년에 여름 내내 더워 더워 투덜 투덜대기만 했더니 여름의 끝자락에서 여름을 보내며 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후덥지근하고 삐질삐질 땀이 흐르는데 극도로 습하기까지 한 한국의 여름 날씨라는 것은 어디를 보아도 만만한 조건은 아니다.


일정이 없는 토요일 아침. 아침에 장보고 콩나물 국을 끓이고 밥을 먹기 직전에 어제 저녁에 받아왔어야 할 옥수수를 받으러 마을 언니네 집에 후다닥 다녀왔다. 커다란 양파망에 들어있는 옥수수 30개. 짧은 거리였지만 땀이 많이 났다. 낑낑 걸음을 옮기며 이 상황에서 어떻게 여름을 곱게 대할 수 있을까 잠시 고민하는 찰나, 살랑 바람이 불어왔다. 지난 주 지리산 등반 때 구비구비 부딪혔던, 드넓은 지리산 산등성을 휩쓸고 순환하는 중에 내 이마와 목덜미를 스쳤던 그 바람에 댈것은 아니었어도, 그 바람을 떠올리게 했다. 시원했다.


유쾌하지 않은 땀과 습기를 견디며 여름을 싫어하지 말자,라는 긍정적인 사고 전환은 너무 작위적이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겨울 날씨의 추위에는 더위를 다스리는 자연풍에 버금가는 그 무엇은 없다,는. 연료 사용해서 난방해야 하고. 모닥불을 피울 수는 있으나, 모닥불의 온기는 불연듯 선물처럼 찾아오는 바람과는 다르니까. 


그래서 올여름의 새로운 발견이다. 땀을 식혀주는 살랑 바람의 존재. 더운 만큼 많이 불지 않아서 귀하고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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