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eping my sanity intact

Posted 2010. 11. 17. 00:04
미국에서 운전할 때는 빵빵 경적을 울려본 일이 없었다. 거기서 내 성질이 더 좋았던 것은 아니고, 그냥 운전하다가 방어할 일도 화를 낼 일도 별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꽤 먼 거리를, 심심한 고속도로를 넋 놓고 쭈욱 오랫동안 달리는 일이 잣다는 게 불만이라면 불만.

한국에 와서 운전을 시작하면서는 옆차가 얌체같이 끼어 들거나, 아니면 내가 오는지 못 보고 들어오거나 할 때도 경적을 눌르는게 굉장히 낯설었으나. 금방 익숙해 졌고, 몇 년이 지난 지금, 난 종종 빵빵 거리거나, 궁시렁댄다.

"어머, 즈 아저씨 모야!"
"우씨, 즐대 안 비켜준다 내가."
"아... 또 끼어든다."
"하하, 쌤통이다. 아까 끼어들더니만, 이제 요기에."
심지어는 이런 말도 한다. "아, 딱 운전 못하는 여자 스탈이야 쟤!"
때로는, 양보 해 준 사람들한테, 목례로 인사하기도. =_=

요즘 매일같이 심신이 노곤하여, 집에 와서 그냥 잠자리에 들기는 아깝고, 정신은 살짝 혼미한 가운데 포스트를 쓴다. 블로그에 대고 꿍시렁 꿍시렁 대는게 운전하다가 쭝얼거리는 것처럼, 살짝 뻘쭘하다는 생각이 들던 찰나. 낮에 잠깐 읽은 블로그에서 어떤 expat이 한국에 와서 살면서 여러 모로 힘들었는데, 블로그가 그나마 자신의 sanity를 지켜주고 있다고 한 말에 새삼 위로가 되었다. 사람들은, 걍 비슷한 생각을 하고 사는 것 같다.

나는 나름대로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 있다고 여기는데, 오늘은 어제 꾹 참았던거랑 오늘 분량의 스트레스랑 한꺼번에 나를 괴롭혔다. 일터에서는 내 주변인들이 나 보다 훨씬 상태가 심각한지라 내가 누울 자리도 다리를 뻗을 자리도 없다. 오늘은 다행히도 칼퇴근을 못하고도 요가수업을 갈 수 있었다. 열심히 숨 쉬면서 땀빼고 (오늘은 균형잡기가 많았음), 집에 와서.

웃! 애플케키를 만들다.

저녁 시간 서너시간이, 오늘 하루치 (혹은 며칠 분량의) 내 안에 쌓인 독소를 제거해준 듯.

레서피는 David Lebovitz 아저씨의 것을 따라했다. 일주일에 두 세번 날라오는 다비드의 이메일을 그냥 지워버릴 때도 많지만, 어제 같은 경우는 짬짬히 딴짓을 하면서 (머, 딴짓은 늘 하는 짓이긴 하다. =_= 워낙, 내가 산만한지라.) 레서피를 정독했다. 재료가 간단해서 조만간에 한 번 만들어 봐야지 했는데, 오늘 바로!

이 레서피에서는 블랙럼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했는데, 블랙럼을 사러갔더니 없어서, 대신, 내 맘대로 베일리즈를 넣었다. 망치게 되면, 기분이 정말 안 좋을텐데... 내심 불안불안.

다비드 블로그 포스트의 사진 (내 사진이랑 수준이 다!른!)을 보면, 아메리칸 답게 사과 껍질을 굉장히 두껍게 깎았다. 나는, 아주 얇게 잘 깎을 수는 있으나 : )
언제부턴가 사과를 껍질 채로 먹기 시작했다. 케이크에도 그냥 껍질채로.

12시가 다 되어서 오븐에서 꺼냈다. 사진 찍으려고 한 쪽 잘랐는데,
흐미, 한 쪽을 다 먹어버리고 말았다.
쯤, 성공적이다!!!
촉촉한 케잌과 부드럽게 익은 사과를 씹는 맛에. 킁킁. 풍겨오는 베일리향이 너무 잘 어울린다.
설탕을 레서피에 제시된 양보다 줄여서 넣었더니 많이 달지도 않고, 낼 아침에 커피랑 먹어도 좋겠다. 회사에 싸갈까 살짝 고민중인데, 오늘 별로 이쁜 사람이 없어서, 퉁하다. 지금 나는. >_<

그나저나,
남은 베일리로는 무엇을 해야 할까나.



'살다 살리다 살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untitled  (0) 2010.11.26
The day evened out at the end.  (2) 2010.11.23
기다림, make it here and now  (2) 2010.11.15
그래도 살만한...  (0) 2010.11.14
제목은 생략  (3) 2010.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