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에 다녀왔다. 2009년 3월 후 딱 3년 만에.
구럼비에 갔다가 1당 100쯤 되는 경찰의 호위(?!!)아래 해군건설 공사판을 거쳐나왔다.
나오면서, 2009년에 걸어갔던 마을 앞바다와 솟대와 돌들,이 처참하게 손상된 곳을 지나쳤다.
무력으로 지키는 안보는 무엇일까?
암튼...
태초에 한국이 있었더라.
그 한국은 중국 대륙에 붙어 있었다. 그 위에는 지구에서 최대규모 땅 소유국 소련/러시아가 있었다. 바다를 살짝 건너면 섬나라 일본이 늘 대륙에 대한 야심을 품고 호시탐탐 한국/한반도를 넘보고 있었다. 그리고 저 큰 바다 건너에는 전 세계를 향한 야심을 품고 품는 미국이 있었다. 이러한 동네에 살던 한국은 어느날 허리가 훅~ 하고 잘려버렸다. 그래서 대륙 끝에 붙은 반도였지만, 뚜벅이로 혹은 자전거로 혹은 부릉 차타고 건널 수 있는 국경이 없었다. 결국은 섬나라 꼴이 나고 만것이다.
그리고 그 몸퉁의 한 쪽은 한국의 최대의 적이 되어 버렸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려 견제하고 무시하고 방어 해야 할 그런 존재를 이 섬나라는 지니고 살아야 했다. 그것이 불편하고 불행을 초래하는 원인이었으나 때로는 아주 유용하게 작용을 하기도 했다. 어떤 이들이게는.
그 작디 작은 섬나라 같은 반도의 일부 한국은 늘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정 많고 한 많은 심성깊은 곳이었지만, 삼방이 물로 둘러싸여 그런지 다이나믹 버라이어티한 기질을 지닌 나라였다.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중국과 일본을 우습게 보는 유일한 나라였다. IMF 경제위기를 맞고도 2년도 안되어 위기를 일단락 탈출하고 월드컵에서 1승도 못하다가 갑자기 4강까지 후딱 해치워 버리고. 아무리 큰 재앙이나 열받는 일이 닥쳐도 1년 내에 잊어버리고 끊임없이 되풀이 하는 메멘토 종족의 나라. 해마다 태풍과 싸우면서 다음해에도 그 다음해에도 똑같은 피해를 계속 입는, 대자연과 맞짱뜨는 엄청난 quasi-섬나라였다.
이 섬나라 끝자락에 작은 섬 하나가 있었다. 바람많고 돌많고 여자가 많은 그런 곳이었다. 어느날 그 섬은 평화의 섬이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 천혜의 자연환경에 걸맞은 별명이었다. 그런데 평화라는 별명을 얻고 나서 얼마되지 않아 그 섬에 해군 기지가 들어온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들이 닥쳤다. 해군은 이 섬의 한 마을에 들어가 커다란 기지를 지으려고 했다가 마을 사람들을 설득시키지 못해 짐을 꾸려 나오고 말았다. 그리고 두 번째 마을로 가서 자리를 펴려고 하다가 또 다시 쫓겨나고 말았다.
두 번이나 실패한 해군은 꾀를 내었다. 마을 사람들을 설득시키는 일은 건너 뛰어야 겠다고 결심하고 세 번째 마을로 간 것이었다. 그래서 거기에 둥지를 틀 명분을 만들어 내었다. 그런데 보니까, 어머나! 마을 앞 바다에 커다란 바위가 있네! 그래서 그 바위를 부셔야지 하고 결심했다. 그리고 바위를 부수기 시작했다. 그 바위를 다 부수는데는 대여섯달이 걸릴 참이었다. 일단 바위를 다 부수면 바다 아래 8800톤 (30평 짜리 아파트 110세대가 뭉친 규모) ~ 15,000톤의 무게가 나가는 케이슨이라는 세멘트 덩어리 51개를 바다 아래 담그고 그 위에 그 보다 작은 사각형 덩어리를 올리고 또 그위에 다리 (혹은 팔) 4개 달린 방파제/삼발이를 쌓아 기지의 기반을 쌓으려고 하였다. 그 케이슨은 해군이 찾았던 두 번째 마을에 놓여진 거대한 조형물에서 만들어 지고 있었다.
개중에는 해군 기지를 환영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국의 최대의 적에 대항에 나라를 지켜야 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평화를 무력으로 지키면 안된다는 사람도 있었다. 군 기지를 건설하더라도 그 동네에 사는 사람들을 제대로 설득시키고 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었고. 분분하였다. 한참동안을 사람들은 싸워야 했다. 싸우는 동안 정답게 지내던 사람들하고 멀리 해야 했고, 서로 싸워야만 했다. 싸우는 동안 바위는 부서져갔고, 바위에 샘솟던 바다샘물은 더러워졌고, 그 아래를 헤엄치던 물고기들과 바닷 속 풀들은 멀리 도망가거나 죽어갔다. 그 싸움은 언제 끝났는지 모르겠다. 일단 7조 5천억원이라는 돈이 들어가야 할 참이었다. 건설비용에 1조, 그 공간에 무기를 사다가 채우는데 6조 5천억원 (+ 알파)이였다.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순식간에 쌈터가 되버린 그 마을을 찾아가 마을앞 바다 바위 위에서 살다가, 그 다음에는 바다를 헤엄쳐 부수어져 가는 바위를 찾아갔다. 그는 말했다. 고철을 사다 들이는데 6조 5천억원이나 든다고. 10년도 안되서 버려질 고철들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나마 그게 그냥 6조 5천억원 짜리 고철로 남으면 다행인 것이라고 했다. 그것이 사용 될 일이라도 생기면 더욱 안될일이었다.
20세기 초중반 까지 수천년동안 인간은 변화를 두려워 했고 변화에 대해 적극적이지 않았다. 20세기가 끝날 무렵, 인간은 변화가 여전히 두려웠지만 변화란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무조건 변화를 원했다. 모두 새로운 변화를 먼저 차지하려고 했다. 그러면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참으로 많았다. 그 중 평화와 안보를 지키는 방법은 변화될 수 없었다. 야만적이고 죽이는 방법이 여전히 최고로 여겨지고 있었다. 生하는 방법, 재미있고 창의적인 방법 따위로는 평화를 이루어 낼 수 없다고 믿었다. 평화는 대의로 여겨지는 모든 일에 따라 붙는 수식어였지만, 진정으로 그 사람들이 평화를 원했는지 알수 없는 노릇이였다. 바야흐로 21세기는 모순과 역설이 꼬이고 꼬이면서 동트기 시작하였다.
결정적으로 quasi-섬나라 한국은 너무나 작았다. 작으면서 엄한 곳에 붙어 있었다. 유일한 단일민족으로 꽁꽁 뭉치는 듯 하지만, 혼자서 결정하고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그렇게 바위는 부서져 갔다. 바다에 흙물을 내어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