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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그리고...

Posted 2010. 4. 5. 13:58
밥에 대해서 글도 쓰고 한국의 밥 문화를 어떻게 다양하게 확산 시킬 수 있을까 고민 하면서 (영어권) 해외 푸드블로그, 음식 관련 출판계를 보면 그 컨텐츠의 깊이와 방대함이 정말 놀랍다.  프렌치와 이탈리안, 그리고 이 두 나라 음식을 중심으로 무궁무진하게 짬봉되고 진화되어 다양한 식문화가 발달되었다. 우리나라 음식도 굉장히 좋은데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더러 우리나라 사람들조차도 우리 밥에 대해서 자부심이 없다.  정부가 한국음식의 세계화 작업을 하는 것을 보면, 우리 밥에 대한 사랑없이 돈만 써서 사진찍고 여기 저기 무성의 하게 그 사진을 뿌리고 그 사진을 줏어서 볼테면 보라는 식의 어처구니 없는 전략아닌 전략뿐이다. 얼마전에 참석했던  TEDxSeoul "음식의 마음"에서 한국 거주 외국인으로서 한국음식에 대해서 블로그활동을 하고 있는 Jennifer Flinn이 재미있는 발언을 했다.  한국 사람들은 음식을 서열화하는데, 이탈리아 음식을 제일 위에, 그 다음에 일식, 그리고 마지막 아래에 한국 음식을 놓는 다고 한다. 웃을 수 만은 없는 농담이었다. 

뉴욕타임즈의 기자 한 명이 오늘날 가장 다양한 음식문화의 향연을 맛 볼 수 있는 뉴욕시의 레스토랑 변천사에 대한 책을 썼다 -- "Appetite City." 1815년에 프랑스 파리에는 3,000개의 레스토랑이 있었다. 같은 시기에 뉴욕에는 단 한개의 식당도 없었다. 그 때 뉴욕은 한국에서 오늘날 20 - 30년전의 서울 강남이 논밭때기에 그치지 않았다고 회상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1827년에 스위스 출신의 두 형제가 파리의 분위기를 재현하여 Delmonico's라는 카페를 열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뉴욕의 일화는 서울의 먹는 문화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해 주었다. 뉴욕에도 원래부터 다양하고 재미있는 식문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무의식 중에 내 안도(?)감에 뭔가 찜찜한것이 있었다. 내 기억이 3월 25일로 돌려져 김훈선생의 강의가 떠올랐다. 그 때 강의가 끝나고 질문시간에 "젊었을 때 김훈선생님께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구"냐는 질문이있었다. 그 답은 누구가 아니고 "밥"이었다. 김훈 선생의 답변을 다시 듣고 요약해보았다.

"젊었을 때 저에게 영향을 준 것은 사람이 아니고 밥입니다. 내 청춘의 꿈은 밥을 먹는 것이었습니다. 기막힌일이죠. 제가 66년에 대학에 들어갔는데 그 때 저는 밥을 못 먹고 있었습니다. 삼국유사,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실록을 다 읽어봐도 우리가 밥을 못 먹고 있었습니다. 일부만 먹고 있었죠. 매달 굶어 죽고, 얼어 죽고, 전쟁에 죽고, 이런 기사가 매일 나옵니다. 사람들이 밥을 못 먹고 먹는 사람만 먹었습니다. 내가 고등학교 때도 이랬습니다. 그 때 우리나라 국정 지표가 기아퇴치였습니다. 나라가 굶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밥을 먹는게 꿈이었습니다. 내 많은 친구들의 꿈도 같았습니다. 그것은 매우 정당한 것이었습니다. 한나라, 시대 전체가 밥을 굶고 앉아 있으면 그 시대에 태어난 젊은이들은 그 나라를 밥 먹는 나라로 바꿔야겠다는 당연한 꿈을 갖는 것입니다. 그것은 비속한 것이 아닙니다. 아주 건강하고 정당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밥을 먹는 세상, 나라를 만들었죠. 우리나라 역사를 볼 때, 고조선, 백제, 신라, 삼국시대 등 이런 구분도 필요하겠지만, 이 역사를 두 개로 나눈다면 밥을 못 먹는 시대와 밥을 먹는 시대로 가를 수 있습니다. 고조선 때 부터 내가 고등학교 때 까지는 밥을못 먹는 시대고, 내가 대학교에 들어간 이후 부터가 밥을 먹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밥을 못 먹는 나라를 먹는 나라로 바꾸어 놓은 것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것보다 더 위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밥을 먹는 나라로 만들었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 세대들은 많은 비리와 죄악과 차별과모순을 저지른 것이죠. 그것이 사회의 구조적인 악이 되서 지금 깔려 있는 것입니다. 구조적인 악의 바탕위에 이 사회의 먹이 피라미드가 서 있는 것이죠. 이 구조적인 악을 해결하지 못하면 이 세대는 희망이 없는 것입니다. 아마 나는, 우리세대는 그걸 해결하지 못하고 그 고통스러운과제를 후배세대들에게 떠 넘기고 물러가는 수 밖에 없겠죠. 이 것이 내 청춘에 가장 영향을 미친 것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밥입니다.

나는 어렸을 때 밥에 대한 좋은 기억으로 밥에 대한 애정을 키웠다. 김훈 선생은 밥을 못 먹어서 밥을 먹자는 꿈을 꾸고 젊음을 보냈다. 역사는 진화한다는 말만 믿고 내 바람을 간직하기가 너무 무모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김훈선생은 역사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있어서 역사소설을 쓴 것이 아니라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 이를 테면 약육강식 (남한산성)이나 인간의 절망과 고뇌(칼의 노래)를 얘기하고자 할 때 역사를 전략적인 도구로 택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무상급식으로 명명된 사안만 봐도 그렇고 밥 문제는 역사의 이해 없이 문제를 풀어가기가 불가능할 것 같다. 그래서 한국에서 먹고 사는게 힘든가 보다.

그런데 고조선 시대 부터 1970년 대 까지 수 천년 동안 잘 못 먹고 살았던 우리나라에 어떻게 이런 훌륭한 음식이 있는지 모르겠다.  임금님만 진수성찬을 먹고 살아도 그 것이 계속해서 후대손손 전달 가능한 것인가?  궁금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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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 김훈
주제: 자전거 타기의 즐거움
2010년 3월 25일 오후 8시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선교기념관

한 두해 전에 친구들과 북클럽을 시작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 <남한산성> 이었다. 내가 읽은 한국소설이 얼마 안되긴 해도 그 후  좋아하는 소설가가 누구냐는 질문에 주저없이 "김훈"이라고 답하곤 했다. 내용이 너무 우울해서 끝까지 읽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 때 감동의 여운이 아직도 가슴 찌릿하다. 


오늘 김훈선생의 강의를 라이브로 들었다. 선생의 강의를 듣고 깨달은 것 - 나는 울다가 웃는 것을 정말 좋아하네. 주변의 어떠한 잡음 - 진행병에서 벗어날 수 없는 듯한 진행자의 거슬리는 진행방식 - 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본인에게 주어진 시간에 충실하시며 말씀하시는 모습, 중간 중간에 머리를 쓸어 내리시고 두 손으로 얼굴을 비비시는 소박하고 어리숙한 모습에 나는 또 시끄럽게 웃었지만, 강의가 진행되는 동안 내 마음이 여러번 울컥했다. 


저녁 6시에 양화진에 도착하여 8시에 강의가 시작되기 전까지 강가에 서서 스치는 생각이었다며 서강대교, 양화대교, 성산대교, 가양대교를 그림으로 그리시고 양화진, 선유도, 밤섬, (그리고 어떤 봉우리 이름은 까먹었다)의 위치를 설명해 주셨다. 원래 양화진 나룻터는 양화진이 아니라 지금의 양평동인 양화진으로 가는 배를 타는 곳이어서 양화진 나룻터였다고 한다. 


내가 인간 김훈의 성품이 일상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는 알 수 없고, 너무 한 인간을 미화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나이가 들면서 생명력을 잃지 않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 오늘날 부패, 비리, 죄악으로 점철된 한국의 모습은 선생이 30년 전에 기자생활 하실 때 자빠져있던 자리에서 일보의 진전도 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자빠져 있다지만, 그래도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시골의 마을회관에서 만난 노인들, 영일만에서 경운기 모터를 떼어다 달은 1.5톤 자리 어선의 어부들, 자전거로 태백산맥을 넘어가 우쭐한 마음으로 만난, 태평양을 4년간 헤쳐온 연어 떼를 보며 아, 세상에 아름다운 것이 많아서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이 드셨단다. 

오늘의 강의를 내가 아직 읽지 않은 책 두권의 제목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 화이트헤드의 <과정과 실재>, 그리고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한 중년의 인간의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내 젋음이 심히 경박하게 느껴졌다. 가벼운 젋음의 이면에는 실패에 대한 담대함과 충만한 패기가 있겠지만, 30년 조금 더 살고서 인생에서 가시적인 결과에 연연하는 내 모습이 안쓰럽다. 그렇지만, 그래도 내가 아직 젊고, 연륜을 갑자기 쌓을 수는 없으니 이 가벼움을 참을 수 밖에 없겠지. 어쨌든, 곱게 늙고 싶은 나의 원대한 꿈에 현실성을 더 해 준 또 한 분을 만났다.

 
강의 동영상은 여기서
mms://121.78.112.224/yanghwajin/2010/20100325thu.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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