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Posted 2013. 8. 6. 21:41

백수생활을 하다 짬짬히 직장을 다녔어서 그런지 그 때가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명절이었고 나와는 상관없는 연휴를 틈타 북쪽으로 향해서 헤이리에 갔다. 혼자서 가볍게 움직였던 걸로 기억되니 아직 에스더와 민혁이가 한국에 오지 않은 때인듯 하다. 헤이리를 한 바퀴 휭 돌고, 북하우스에서 책 구경을 하다가 그 옥상에서 책을 읽다가 너댓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물가를 오른쪽에 두고 자유로를 내달리는 기분이 참 좋았다. 석양이 내려 앉으려 할 즈음 햇살이 물가에 스파클링을 일으키는게 (이것이 "윤슬"이라 불린다는 것을 최근에 배웠다) 보이고 열어 놓은 창문을 통과하면서 내 살을 부비대고 머리카락을 산발로 만들어 놓던 시원한 바람에 흐믓해 하던 찰나, 틀어 놓은지도 몰랐던 라디오에서 이 노래가 나왔다.

에헴, 


그리하여, 나는 파주/헤이리 얘기가 나올 때 마다 두고두고 이날의 드라이빙 스토리 - 석양, 윤슬, 바람, 호텔 캘리포니아 - 를 욹어먹게 되었다.


어제는 일로 오랫만에 파주에 갔다.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아도 되는 건물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만나러... 한 분은 내가 건물 앞쪽으로 삐질땀을 흘리며 걸어가고 있는데, 회사 건너편에 서 계셨다.

"아 안녕하세요! 누구신가했어요 멀리서. 왜 그쪽에 서 계세요?"

"햇빛 좀 쏘이러 나왔어요."


에헴. 


일을 마치고 나서 다섯시 즈음, 바로 집으로 가기가 아까워, 전에 생각해 두었던 카페나 가보자. 두 군데를 시도했는데 한 군데는 월요일이라서 (월요일 휴무) 다른 한 군데는 다섯 시라서 (다섯시 문닫음).... =_=


여기가 파주라도 헤이리가 코 앞은 아니나, 카메라타로 발길을 돌렸다. 무쟈게 오랫만... 

월요일이라서 사람도 별로 없고 참 좋았다.

점점 혼자서 뭘 한다는 것이 쪽팔림을 건너띈지는 오래고 괜찮아졌다가 이제는 편안하다. 곱게 늙어가는 현상의 일부라면 상관이 없겠으나 이게 이상한걸까? 잠시 작은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 무엇도 고정적인것으로 규정짓는 것은 옳지 않다 생각하고,

몸소 깨면서 깰 때 부딪혀야 하는 세상의 모든 관념에, 다시 한 번 부딪히고...


썰렁한 헤이리의 밤 길을 빠져나오며 몇 년전에 에스더와 함께 갔던 레스토랑 앞을 지나쳤다. 어두움이 묵직하게 깔린 동네에 드문 드문 켜있는 불 빛 중에 하나, 그 아이가 청바지에 연보라색 웃 옷을 입고 그 안으로 들어가 계단을 올라가던 뒷 모습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뚜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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