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뿔소.되기 & 노동
Posted 2010. 10. 26. 23:56
네 개입니다.
그럼 고양이가 두 마리이면 다리가 몇 개입니까?
8개.
네, 맞습니다.
그럼, 그 다리 8개 중에서 두 개를 빼면, 각 고양이는 다리가 몇 개일까요?
그 중 한 마리는 다리가 하나고, 다른 하나는 다리가 다섯 개여도 고양이 일까요?
다리가 하나여도 쥐를 잡을 수가 있을까요?
그럼 고양이지!
고양이는 다리가 하나도 없더라도 쥐를 잡아야해. 왜냐, 그게 고양이의 천성이기 때문이지.
머, 이러면서 (연극속에서) 논리학자.라는 역할을 맡은 자들이 말놀이를 한다. 이성을 들이대면서. 대략, 계몽주의자들.
하얀 무대에, 커다란 방 문 크기의 하얀 판넬이 무대 가장자리로 양옆과 뒷면을 메우고,
하얀색 큐브 의자 9개가 무대 중간에 놓여있다.
8명의, 각이 딱 떨어지는 검정수트를 입고 검정 구두를 신은 등장인물들이 그 큐브에 앉아서 바삐 일한다. 락스로 세균청소까지 말끔히 한 듯한 분위기의 사무실. 여기에 술이 취해 헤롱헤롱한 주인공 베랑제가 머리는 산발을 하고 셔츠는 푸라헤치고 등장. 세상이 정해 놓은 틀에 맞추어 성실히 살아가는 무리들, 예를 들어, 인간이라면 "주어진 의무감을 책임감 있게 수행해 나가면서 살아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베랑제의 친구 쟝같은 인간들이 득실거리는데, 그 경직한 질서의 장에 베랑제가 균열을 내고, 숨구멍을 튼다.
그러던 어느날, 이 동네에 코뿔소가 등장하여, 사람들은
코뿔소가 나타났네,
말도 안되, 니가 봤냐?
아니 정말로 봤어. 굉장히 크고.. 또 어... 이렇게 생겼어. 정말 내가 봤다니까.
뿔이 하나야? 두개야?
뿔이 하나면 아시아 코뿔소야, 아프리카 코뿔소야?
아니면 그 반대야?
격하게 싸우다가, 하나 둘 씩 코뿔소로 변해가기 시작한다. 코뿔소의 출연을 목격한 자들의 증언을 비이성적이라고, 언론기사는 조작된 것이라고 바락바락 우기던 보타르까지도.
이 때, 베랑제와 그가 사랑했던 데이지만 인간으로 남아, 끝까지 인간으로 남아 있기로 다짐을 하고, 서로에 대한 사랑을 고백한다. 드디어, 먼발치에서 지켜보던 사랑을 확인했는데, 둘은 행복해지는가 싶더니만, 결국은 그녀는, 마음을 두고 있던 코뿔소의 무리를 보고 마음이 흔들려, 그 무리에 합류한다.
베랑제가 orz 끝까지 인간으로 남아있겠노라, 절규하면서, 하얀 판넬의 반대면 거울이 무대 위에 벽을 만든다. 관객들이 모두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게.
오라버니가 지난 여름에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에 가서 연기한 작품인데, 이번 주에 2010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일부로 대학로에서 공연을 하여 오늘 보았다 - 코뿔소. 오빠가 작년 이맘 때 4, 5차 까지 늘어지는 코뿔소 오디션을 치르며, 피가 마르는 것 같다.고 하던게 기억이 난다. 벌써 1년.
부조리극 작가로 잘 알려진 유진 이오네스코. 오빠가 작년에 이오네스코의 <의무적 희생자>도 해서 봤는데, 이오네스코의 작품은 굉장히 주제가 무거우나, 2010년 대한민국의 체제에서 엄청 공감가는 부분이 많다.
오빠 연극을 보러갈 때면,
의례적으로 집에서 만든 빵으로 샌드위치를 한 보따리 만들어다 주곤 한다. 공연 전에 배우들이랑 스탭들이랑 나누어 먹으라고. 그런데 이번주에 너무 정신이 없어서, 간식은 커녕 작품설명글도 제대로 못 읽어보고 갈판이었다. 꽃을 사가면, 배우는 무지 싫어한다. 나는 땜빵은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기 싫어 문자를 보냈다.
"모사다줄까?"
"담배... 말보로레드"
"-_-"
공연이 끝나고 대학로예술극장 앞 GS25로 갔다.
"말보로 레드 두 보루 주세요."
"네, 5만원입니다."
"네? 오마눤이요?"
허거걱.
가난한 연극쟁이가 이 왠 부르조아질이냐.
담배가 싸지 않다는 것은 대충 알고 있었는데, 돈을 막상 내려니 너무나... 비싸다.
난생 처음, 내 돈 내고 담배를 사 본거.
사실 오빠한테 5만원의 범위내에서 미래의 가능성을 상상해 볼 수 있도록 현금을 줄까 했었다. 그럼으로써 오빠가, 강신주의 <상처받지않을권리>에 나오는, 부르디외 식으로 말해서, 5만원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소멸시키며 구매할 만한 가치 있는 상품들은 무엇일까? 생각 해 보며, 담배를 덜 피우지 않을까 싶어서리.
그른데, 보니까, 현금이 없었다. 그래서 긁었다.
카드를.
그리고 나는, 자본주의의 진정한 목적에 부합하기 위해서 노동을 한다.
내 시간과 적지 않은 기회비용을 팔기로 했다.
물론 노동에 대한 댓가를 금전적 보수에 국한시키는 것은 상당히, 상당히 비약적이지만,
일천한 내 노동히스토리를 뒤 돌아 볼 때, 이번 일은 과히, 참아내야 할 인고의 몇 달이 될 듯하다.
그래서 난, 지금 코뿔소가 되어야 한다. 내 안과 밖에 부조리와 참을 수 없음이 도처에 널려있지만, 내 자신에게 한 점 부끄럼 없으려는 투쟁은 잠시, 휴전에 들어간다.
지극히, 코뿔소가 되어 그렇게 살아야 한다. for the time being.
그른데,
되어야 하다니? 나도 이미 코뿔소가 아니었던가..... 레알?
그럼 고양이가 두 마리이면 다리가 몇 개입니까?
8개.
네, 맞습니다.
그럼, 그 다리 8개 중에서 두 개를 빼면, 각 고양이는 다리가 몇 개일까요?
그 중 한 마리는 다리가 하나고, 다른 하나는 다리가 다섯 개여도 고양이 일까요?
다리가 하나여도 쥐를 잡을 수가 있을까요?
그럼 고양이지!
고양이는 다리가 하나도 없더라도 쥐를 잡아야해. 왜냐, 그게 고양이의 천성이기 때문이지.
머, 이러면서 (연극속에서) 논리학자.라는 역할을 맡은 자들이 말놀이를 한다. 이성을 들이대면서. 대략, 계몽주의자들.
하얀 무대에, 커다란 방 문 크기의 하얀 판넬이 무대 가장자리로 양옆과 뒷면을 메우고,
하얀색 큐브 의자 9개가 무대 중간에 놓여있다.
8명의, 각이 딱 떨어지는 검정수트를 입고 검정 구두를 신은 등장인물들이 그 큐브에 앉아서 바삐 일한다. 락스로 세균청소까지 말끔히 한 듯한 분위기의 사무실. 여기에 술이 취해 헤롱헤롱한 주인공 베랑제가 머리는 산발을 하고 셔츠는 푸라헤치고 등장. 세상이 정해 놓은 틀에 맞추어 성실히 살아가는 무리들, 예를 들어, 인간이라면 "주어진 의무감을 책임감 있게 수행해 나가면서 살아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베랑제의 친구 쟝같은 인간들이 득실거리는데, 그 경직한 질서의 장에 베랑제가 균열을 내고, 숨구멍을 튼다.
그러던 어느날, 이 동네에 코뿔소가 등장하여, 사람들은
코뿔소가 나타났네,
말도 안되, 니가 봤냐?
아니 정말로 봤어. 굉장히 크고.. 또 어... 이렇게 생겼어. 정말 내가 봤다니까.
뿔이 하나야? 두개야?
뿔이 하나면 아시아 코뿔소야, 아프리카 코뿔소야?
아니면 그 반대야?
격하게 싸우다가, 하나 둘 씩 코뿔소로 변해가기 시작한다. 코뿔소의 출연을 목격한 자들의 증언을 비이성적이라고, 언론기사는 조작된 것이라고 바락바락 우기던 보타르까지도.
이 때, 베랑제와 그가 사랑했던 데이지만 인간으로 남아, 끝까지 인간으로 남아 있기로 다짐을 하고, 서로에 대한 사랑을 고백한다. 드디어, 먼발치에서 지켜보던 사랑을 확인했는데, 둘은 행복해지는가 싶더니만, 결국은 그녀는, 마음을 두고 있던 코뿔소의 무리를 보고 마음이 흔들려, 그 무리에 합류한다.
베랑제가 orz 끝까지 인간으로 남아있겠노라, 절규하면서, 하얀 판넬의 반대면 거울이 무대 위에 벽을 만든다. 관객들이 모두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게.
오라버니가 지난 여름에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에 가서 연기한 작품인데, 이번 주에 2010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일부로 대학로에서 공연을 하여 오늘 보았다 - 코뿔소. 오빠가 작년 이맘 때 4, 5차 까지 늘어지는 코뿔소 오디션을 치르며, 피가 마르는 것 같다.고 하던게 기억이 난다. 벌써 1년.
부조리극 작가로 잘 알려진 유진 이오네스코. 오빠가 작년에 이오네스코의 <의무적 희생자>도 해서 봤는데, 이오네스코의 작품은 굉장히 주제가 무거우나, 2010년 대한민국의 체제에서 엄청 공감가는 부분이 많다.
오빠 연극을 보러갈 때면,
의례적으로 집에서 만든 빵으로 샌드위치를 한 보따리 만들어다 주곤 한다. 공연 전에 배우들이랑 스탭들이랑 나누어 먹으라고. 그런데 이번주에 너무 정신이 없어서, 간식은 커녕 작품설명글도 제대로 못 읽어보고 갈판이었다. 꽃을 사가면, 배우는 무지 싫어한다. 나는 땜빵은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기 싫어 문자를 보냈다.
"모사다줄까?"
"담배... 말보로레드"
"-_-"
공연이 끝나고 대학로예술극장 앞 GS25로 갔다.
"말보로 레드 두 보루 주세요."
"네, 5만원입니다."
"네? 오마눤이요?"
허거걱.
가난한 연극쟁이가 이 왠 부르조아질이냐.
담배가 싸지 않다는 것은 대충 알고 있었는데, 돈을 막상 내려니 너무나... 비싸다.
난생 처음, 내 돈 내고 담배를 사 본거.
사실 오빠한테 5만원의 범위내에서 미래의 가능성을 상상해 볼 수 있도록 현금을 줄까 했었다. 그럼으로써 오빠가, 강신주의 <상처받지않을권리>에 나오는, 부르디외 식으로 말해서, 5만원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소멸시키며 구매할 만한 가치 있는 상품들은 무엇일까? 생각 해 보며, 담배를 덜 피우지 않을까 싶어서리.
그른데, 보니까, 현금이 없었다. 그래서 긁었다.
카드를.
그리고 나는, 자본주의의 진정한 목적에 부합하기 위해서 노동을 한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을 길들이고 자극하여 끝없이 상품을 소비하게 합니다. 그 결과 노동으로 얻은 화폐는 소비되고, 그럼 또다시 노동을 할 수 밖에 없지요. 결국 소비와 노동이라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 때, 자본주의는 계속해서 번영하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 (상처받지않을권리 프롤로그)이번 주 부터, 정해진 날짜에 통장에 월급이 찍히는 댓가로,
내 시간과 적지 않은 기회비용을 팔기로 했다.
물론 노동에 대한 댓가를 금전적 보수에 국한시키는 것은 상당히, 상당히 비약적이지만,
일천한 내 노동히스토리를 뒤 돌아 볼 때, 이번 일은 과히, 참아내야 할 인고의 몇 달이 될 듯하다.
그래서 난, 지금 코뿔소가 되어야 한다. 내 안과 밖에 부조리와 참을 수 없음이 도처에 널려있지만, 내 자신에게 한 점 부끄럼 없으려는 투쟁은 잠시, 휴전에 들어간다.
지극히, 코뿔소가 되어 그렇게 살아야 한다. for the time being.
그른데,
되어야 하다니? 나도 이미 코뿔소가 아니었던가..... 레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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