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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0.10 여자, 정혜 5

여자, 정혜

Posted 2010. 10. 10. 23:30
내 블로그 고정 정독자, 입븐 지연씨,가 영화판에서 자신의 갈 길을 모색하던 때가 있었다. 그 때 지연씨가 담당했던 영화 중에 하나가 <러브토크>였다는 것을, 내가 얼마전에 올린 포스트를 보고 말해주었다. 그러면서 가장 맘에 드는 이윤기 감독의 영화는 <여자, 정혜>라고 추천.

그동안 나는 밝고 바람직한 방법으로 영화를 보려고 무단히 노력을 했다. 극장에서 놓친 영화들은 IP TV, DVD, 다음이나 네이버에서 구매를 시도해왔으나, 내가 찾는 영화가 없을 때가 부지기수라서, 어둠의 경로를 뚫었다. 사실, 정혜씨를 찾다가 지쳐서, 지연씨로부터 사사를 받아 이 길에 들어섰다. 히히. 다운받아서, 침대 위에 작은 상을, 그 위에 랩탚을 놓고 커다란 쿠션에 기대어 널부러져 보는 영화맛이 쏠쏠.

어쨌든.

아파트 베란다에서 초록이 무성한 화분을 손질하고, 바닥을 청소하고, 주방일을 돌보던 정혜씨의 가사활동 뒤로 텔레비젼 소리가 흐른다. 혹여, 남편역할의 어떤 남자가 마루에 널부러져있나보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우체국 직원 유니폼을 입은 정혜씨의 모습이 등장한다.

우체국이란 장소는 내게 살짝 가슴 설레게 하는 공간이다. 예전에 내가 이쁜 편지지, 카드에 편지를 많이 쓰고 소포도 보내던 시절, 또 우편함에서 정크메일에 묻혀있던 손글씨의 이쁜 봉투들을 종종 발견하던 그 시절.에 대한 기억 때문인것 같다.

어쨌든.

정혜씨가 일을 마치고 시장에 들러 장을 보고, 밥을 먹고, 티비를 보고, 잠을, 잠은 잘 못자고, 시계가 울리면 일어나서 치카치카하고 씻고 일하러 간다. and repeat. 정혜씨의 일상에 대한 묘사가 섬세하다. and repeat. 그녀의 여유로운 일상과 느릿한 말투가 따분하고 지루해지려고 한다.

정혜씨의 일상이 흐르는 가운데 중간중간에 플래쉬백으로 그녀의 과거를 접한다. 거슬러 올라가, 정혜씨가 왜 한 번도 웃지 않는지도 드러난다. 아... 이거였구나. 그녀가 입은 상처의 근원은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으나...

얼마전에 트위터 타임라인에서 누군가 사는 것을, 그냥 버틴다...라고 쓴것을 보았다. 버틴다는 그 말이, 왜 이렇게 씁씁한지. 그런데 더 씁쓸했던 것은, 그 말이 왜 이렇게 나의 가슴에 다가온건지 모르겠다. 오늘 수유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나오는 길에 효숙에게 이 말을 했다.
씩~ 한번 웃어준 효숙은 대답했다.
"언니, 예전에는 몰랐겠지만, 지금은 왠지 이해가 되네."
급, 위로 =_=
미국에 갔을 때 정은이언니랑 재홍오빠랑 얘기를 하다가, 나의 입에서 무언가 씨니컬한 발언이 나갔다. 갑자기 싸일런스. 재홍오빠와 정은언니가 서로 당황의 눈빛을 교환했다.
".... 나경아, 음, 너 아닌것 같아."
"응? 언니 왜."
"아니, 다른 사람들은 다 그렇게 말해도 되지만, 너는 그러면 안되지."
ㅍㅎㅎㅎ
내가 요즘, 인생의 버팀.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자니 정은언니 생각이 났다.

어쨌든.

오늘 영화에서 정혜씨가 딱 그랬다. 외부에 대해 테두리를 칭칭 치고 하루하루를 버텨살아가는. 100여분으로 편집된 그녀의 일상에서 그녀는 한 번도 웃지 않았다. 그래도 그냥 좀 웃지. (영화 촬영할 때 배우가 감정조절 하는데 매우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듬)


"정혜씨..."
그녀가 오랫만에 마음을 열어준 남자가 이름을 부른다.
그러나 아직은 웃을 수 없는 그녀의 표정,이
그녀가 살아온 지난 세월의 아픔을 압축해 주는 것 같다.

그래도 이제 정혜씨는 웃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웃을것이다. 그녀가 정성스레 밥상을 차려주.려고했던 그 남자가 그녀를 찾아온 것이다.
정혜씨, 좋겠네. 축하해요! : )

피에스. 정혜씨, 김밥먹을 때 오이를 빼고 먹는다. 나는 햄을 빼는데.
앞 부분을 조금 돌려보니, 오이 빼는 장면과 컵라면 뚜껑 종이를 꼬깔로 접어서 라면을 먹는 (이건 내가 어렸을 때 스케이트장에서 육개장사발면 먹을 때 하던거) 장면은 불필요한 씬이 아니었다 싶다.

******* update:
이소라가 이 영화를 보고나서 "바람이 분다" 뮤직비디오를 제작했다.고합니다.
추운 노래 한곡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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